뚫려라 언어장벽아. 이제 좀 허물어 질 때도 되지 않았니?


 1. 저번 4.5간의 나들이 중에 토플 책을 하나 사러 갔습니다. 전역한 후에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려고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석,박사 유학과정을 밟을 듯도 하고..) 토플 점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에 CBT 방식 이였을 때 사 놨던 무수한 책들 - Oxford를 비롯한 십 여권 – 은 IBT로의 전환에 따라 그냥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미안해. 책들아. 모두 내가 게으른 탓이야. 
CBT 시절 Listening, Reading, Structure에 Essay Writing이 첨가되어 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 IBT에는 한국인의 자랑 Structure가 자취를 감추고, Speaking이 대신 등장했습니다.
만점은 120점으로 4개 분야가 사이 좋게 점수를 4 등분해서 30점씩.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전부 평등하구나. 아이쿠야. 
책을 보는 순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옵니다. 일단 다른 책은 다 제쳐 놓고 말하기 즉 Speaking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나름대로의 언어에 대한 개똥철학이 있습니다. 그건 말하기와 듣기를 무조건 최우선 적으로 들이 판다는 거죠.

언어의 목적이 의사소통에 있다면 그 언어를 사용하여 나의 의사를 상대에게 전달하고 – speaking – 반대로 남의 의사를 받아들이는 – reading –의 과정이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말하기가요. ‘말하기’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언어의 ‘이해’입니다. 필요한 어휘를 끄집어 내서 상황에 맞도록 조합에 내는 일련의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을 순간적으로 해내야만 말이라는 놈은 튀어나오게 되죠. 아무리 열심히 암기해서 머릿속에 쑤셔 넣어도 우리가 처하는 상황은 항상 순간적이고 새로워서 ‘말하기’는 자신 스스로가 새로운 조합을 생성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는 한은 미개척의 영역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에 반해 듣기 ‘ Listening’는 어느 정도 통박이 통합니다. 어휘들 사이의 구조와 느낌 그 조합의 적합성을 전부 이해하고 있지 않더라도, 상황을 파악하고 중요한 어휘를 잡아내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정말 잘하려면 이 정도로는 택도 없지만요.

이걸 뼈저리게 느낀 게 일본어를 배울 때 였습니다. 사실 ‘배웠다’라는 표현도 정확하진 않습니다. 전 그냥 ‘즐겼을’ 뿐이니까요. 저패니메이션의 광팬인터라 10여 년 전부터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봐왔습니다. 만화책이야 일단 친절히 우리나라말로 번역이 나오니 그렇다 쳐도, 애니메이션은 일부러 더빙을 하지 않는 이상에야 정신 없이 떠드는 일본말들을 자막을 통해 눈으로 따라가며 보게되죠.

그래서 저는 정말로 생각하나 없이 그 애니메이션을 1~2년간 줄창 보기만 했습니다. 학습을 하겠다는 의욕은 요만치도 없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문득 느낌이 오더군요. 무언가 들리는 것 같다 싶은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계속해서 중첩되자 이전까지 무의미하게 들리던 일본어 문장들 사이에서 어떤 의미. 일본어 전체를 관통하는 전반적인 ‘흐름’같은 게 느껴지더군요. 가끔씩 자막이 안 나온 것들을 그냥 봐도 대충 어느 정도는 알겠더군요. 

근데 막상 일본인을 만나보니까, 말이 하나도 안 튀어나오는 겁니다. 그쪽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은데, 이쪽에서 말을 조합하려니 단어도 잘 생각안나고 뒤죽박죽 엉망진창. 그래서 조금 더 신경을 집중해서 애니메이션을 보았습니다. 등장인물이 뭐라고 떠들면 그걸 가볍게 따라 하는 수준으로. 그러니까 그게 정말 신기하게도 되더군요.
정말 간단한 회화 밖에 못하던 수준이 금세 어느 정도 복잡한 회화도 가능한 수준으로. 그 후 일본인 강사가 하는 수업을 들어봤습니다만, 제가 사용 가능한 어휘 안에서는 자유자재로 회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이제부터 문제는 가용 가능한 어휘의 영역을 넓히는 것 뿐이었죠. 그 후로는 정말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 만으로 – 간단한 일본어 만화책을 사서 사전을 끼고 읽어본다거나, 간단하게 일본어로 감상평을 써본다거나 – 언어의 틀이 잡혀가기 시작하더군요. 

   그 후로 저는 영어에도 비슷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군대에 있는 통에 접근방법은 상당히 제한되고 있습니다만. 리딩이나 문법같은건 정말 완전히 때려치우고 오로지 말하고 듣기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10년도 넘게 영어를 공부해왔습니다만 그렇게도 입도 뻥긋하지도 못하던 영어가 요즘에는 조금씩 될랑 말랑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일본어처럼 간단하지는 않습니다만, 어떻게든 의사를 전달할 수는 있을 것도 같습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공부’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말’을 배우는 거니까요. 갓난아이가 문법, Voca 책 펴놓고 암기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떻게든 자신의 느낌이나 표현을 그 나라 언어로 표현하려고 애써보고, -물론 표현이 조잡하거나 문법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 그러면서 부족한 단어를 찾아가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영어 공부를 하다가 문득 떠올라서 주절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