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도(得道) 
 
 
 
 
가끔 그때가 생각난다.
한 십년 전에 명리학을 한다는 분이 사주를 풀어주신 적이 있는데 
‘너는 초년 운이 박복하니 고생이 많았을 것이고 중 장년은 다사다난(多事多難) 하지만 네 뜻을 펼치기에 일신의 불편함은 없을 것이지만 말년이 되면 모든 게 다 부질없고 넓은 호수에 달이 뜬 격으로 모든 걸 버리고 잊을 수 있으니 혼자 있어도 외로울 것도 없고 재산이 없어도 그 불편함이 대수 겠느냐 ’

나는 이 어른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말년에 제가 어떻게 된다는 건데요’
‘글쎄 쉽게 말하면 득도(得道)를 한다는 말인데...’

같이 있던 사람들이 웃고 난리가 났다.
‘야 네가 신선 된다는 거잖아 수염 길게 난 할아버지. 근데 여자 신선도 있나?’

세상사가 부질없는 신선이 된다. 
그때는 웃고 말았지만 힘든 일이 생기거나 고비가 올 때 마다 이 말을 떠올리게 되는데 내가 원하는 부자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이 말이 무척 마음에 든다. 남들이 웃을까봐 입 밖에 내어 말해본적은 없지만 대충 하기 싫은 일이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 닦는다고 생각하고 어쩌면 곧 신선이 될지도 몰라 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웃기곤 한다. 신선이 되는 길은 도를 닦으며 스스로를 수련해야 하며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숨을 가다듬고 마음을 다스려 내공을 쌓는 것이다. 내공을 쌓는 방법은 무공을 빌어 얘기하자면 정파가 되어 오랜 시간 호흡을 가다듬고 수련을 통해 쌓아가는 방법이 있고 사파처럼 외가무공에 중점을 두어 그 기교를 가다듬어 수련하는 방법이 있는데 방법으로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그러나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나는 사파의 외공을 쓰는 사람으로 정파의 삼경(三境)과 사파의 보이지 않은 벽을 뚫는 극마(極魔)가 비슷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우리 책마을에는 상당한 고수들이 포진해있다. 이런 사실은 책가지에 올려진 주옥같은 글을 보거나 책마을을 하루만 가만히 들여다봐도 알 수 있는데 이런 이유로 우리 책마을이 정통성을 부여받고 오랫동안 거주이전의 압박 속 에서도 면면히 이어올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길게는 A4지 두장이요 짧게는 한 장을 채우기도 힘든 칼럼을 쓰면서도 기꺼이 나의 미천한 내공을 쌓는 도장으로 책가지를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해 늘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된다.

칼럼처럼 짧은 글을 쓴다는 건 굉장한 공력을 필요로 한다. 짧은 글안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쓰지 말아야 할 것은 털어버려야 하고 또 숨고르기를 통해 몇 번의 멈춰야 할 곳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논문이나 학술지처럼 시시콜콜 현상에 대해 증명을 하고 이해가 가도록 풀어야하는 작업이 아닌 이상 이런 여백과 생략의 공간은 철저히 필자의 공력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무릇 좋은 글은 여백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내공이 충만한 불친절하게 보이는 이런 글들이 시시콜콜 설명을 늘어놓아 읽는 이의 감정을 일률적으로 자기의 뜻대로 끌고 가는 글보다 훨씬 풍부한 상상력을 유발하게 된다.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똑같은 글을 읽어도 당신과 나의 생각이 다른 것은 이 여백에 나의 생각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소통을 원한다면 공식을 대입해야하는 수학 문제를 풀면 된다. 그러나 글이란 것은 수학문제와 달라서 법칙에 의존하지 않고 단어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가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를 만나게 되면 즐거울 수 있는 이유이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나는 영화 평론을 즐겨 읽는 편인데 내가 본 영화를 평론가들은 갖가지 이론과 현상의 분석학적 측면을 들이대며 풀어내곤 하는데 과연 이 사람과 내가 본영화가 같은 영화일까 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의도로 가끔 감독과 평론가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감독의 입장에서야 그런 의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평론가가 들이대는 잣대는 지극히 개인적인 지식과 논리이기 때문에 그 다른 결론에 도달한 결과를 만들어낸 미묘한 간극을 좁히기 힘든 것이다. 어떤 영화를 세 번을 더 보고도 원작을 찾아 읽고 영화시간보다 더 긴 써플을 다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각종 평론을 다 찾아 읽고 그것도 모자라 해설집도 찾아 읽어보았지만 결국 발견하게 되는 것이 공감과 이해가 아니라 차이점과 의아함 일 때가 있다.
50억의 인구 중에 똑같은 사람은 한명도 없듯이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는 것이다. 가끔 인간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 생각하면서 뼈 속까지 시린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 우주 천지간에 혼자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고독감을 이기기 위해 완벽한 소통을 꿈꾸면서도 결국은 서로 다른 층을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 내공이 무자라서 이런 무력감을 이기지 못해 때로는 목소리 크고 각종 논리로 무장된 사람들에게 타협하며 스스로 편승하기도 한다.  미워하는 사람도 많고 또 모질고 독한 면도 있어 한번 보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람에게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도 않으며 큰일은 큰일대로 무서워하고 작은 일조차 안절부절 마음을 못 다스리고 오르막 뒤에 내리막을 미리 걱정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나쁜 일을 미리 슬퍼한다.

이렇게 쩨쩨하고 소심한 나는 신선이 될 수 있을까
내 사주를 덕담으로 풀어주신 그 분은(덕담이 맞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이 화두를 꽤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많이 즐거워하실 지도 모르겠다.




<모든 무공을 가장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면 정(正)과 사(邪)로 나뉜다. 정파는  사파를, 사파는 정파를 서로가 원수보듯 하며 서로가 서로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였다.

정파는 달마가 역근(易筋)과 세수(洗髓)의 두 진경(眞經)을 중원에 보급한 것에 맞춰 그것을 기반으로 성장한 무공으로 대부분이 불가(佛家)나 도가(道家) 계통의 무술들이 주종을 이뤘다

고대의 무술은  짐승이나 조류의  행동을 흉내 내고 모방하는데서  시작되었다. 유명한 소림오권(小林五拳)은 호랑이, 표범, 뱀, 원숭이, 학의 움직임을 보고 이루어졌으며, 도가(道家)로부터 전수된  검법(劍法)도 동물들을 흉내 내어 시작되었다. 이러한  검법 (劍法), 도법(刀法),  창법(槍法), 봉법(棒法),  권법(拳法), 장법(掌法)  등의 무술을 통털어 외공(外功)이라  한다. 반면에 내공(內功)은 단전호흡(丹田呼吸)이나  숨을 뱉고 쉬는  법을 일컫는 토납술(吐納術)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오랜 기간을 두고 토납을 반복하면  몸속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쌓이게 되고 그  무형의 힘을 권이나 장, 또는 검에 실어 내보내는 무술을 내공이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이 어느정도 쌓이게 되면 몸 안을 일주천 시키며 더욱 그  힘을 증폭시켜 그것이 쌓이는 속도를 증가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때 그 힘을 어떤 순서로 어떤  혈도로 보내느냐에 따라 각종의 운기조식의 기법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정파의 경우 내공을 익히는데 있어, 그 공력이 천천히 쌓여 나간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진신내공(眞身內功)을  얻거나 영약을  복용하지 않고서는 통상의 경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을 해도 절정고수에 이르려면  40세가 넘어야 가능했고 초절정의  고수가 되려면 60세가 넘어야  가능했다. 물론 타고난  신력(神力)으로 외공(外功)을 사용하는  자들도 있지만 내공이 받쳐지지 않고서는 절정고수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이렇듯 정파 내에서도 무공을 쌓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마교에서 처럼 파격적인 방법으로 속성으로  내공을 쌓지는 않는다. 정파의 경우 자칭 명문(名門)이라 불리는 많은 방파가 있다. 그들은 대부분 도가나 불가 계통이며 뛰어난 고수들을  많이 배출했기에 그런 명가의 칭호가 주어진 것이다. 

정파의 경우 내공을  특출한 경지까지 연마한 고수들을 일컬어  사람들은 삼경(三境)의 고수라 부르고 있다.  초절정 고수의 경우 내공의 정도와 그의  무술 실력이 거의 비례하기 때문에 삼경의 고수에 들어가는  경우 거의 적수를 찾기 어렵다고 하겠다.

정파의 무공이 이상과 같다면 사파의 무공은 정파의  무공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사파는 달마가 전래한  무공 대신 중원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무술이다. 그렇기에  토납술에 있어 정파와는  다른 방법을 택한다.  대부분의 사파의 경우 녹림(綠林;산적이나  해적 등 남을 등쳐먹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의 집단, 창부 등도 여기에 속함)이나 사파  무공을 익히는 역사가 짧은 작은 군소  방파들의 경우 내공의 기술이 정파보다는  떨어지므로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상대무공에  대한 파해식이나 기괴한 초식 등을  개발하여 기교에서 앞서가는 외가무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때문에 약간의  기술과 그에 대한 숙련도만 있으면 되므로 빠른 시일안에 고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절정고수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파 고수들이  미숙한 상태기 때문에 이들의  무공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사파의 경우 검뿐  아니라 무기에서 상대방에 대해  실리를 취하기위해 각종의 다양한 무기를  개발하여 사용하며 암기 종류도 많이 애용되고 있다.

속성으로 내공을 쌓는데 좋은 점도 많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번째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걸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내공을 쌓는 속도가  빠른 기술일수록  그 확률은 더욱  올라간다. 그때문에 마교에서는 처음  입문한 무사들은 가장 빠르게 내공을 쌓는 기술을 사용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가 되면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바꾸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잘못하면 지금까지 고생해서 쌓은 내공은 고사하고 목숨까지 바쳐야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생기는 이점은 주화입마의 위험도를 잊어버릴  만큼 대단하다.마교의 경우  20대에 절정고수가 가능할 뿐더러 30대에 초절정고수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때문에 마교의 고수들은 외가의 무공보다는  장풍(掌風), 지풍(指風), 검풍(劍風), 검기(劍氣) 등을 이용하여 적을 공격하는 내가의 무공을 사용했고, 특히 나 패도적인 장풍을 쏘아내는 기법들이  많이 발달해 있었다.

그 다음  문제점은 일정수준 이상 무공을  쌓았을때 벽에 막힌  것처럼 더 이상 진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을 마교의 고수들은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불렀고 그 벽을 뚫으면 마(魔)의 정점(頂点)이라고 불리는 극마(極魔)의 경지로 들어설 수 있다.

그리고 그 윗단계는 없으며 아마 일부 마인들은  탈마의 윗부분은 정파의 생사경과 같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그들은 무공의 시작은  다르지만 끝은 같은 것으로 종결지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탈마의 경지에 이른 사람도 없는 형편이었으니  그 추측은 어디까지나 망상일 뿐이라고 사람들은 일축하고 있다.>

                                    05년 8월 어떤 이가 올려주신 글을 스크랩해서 발췌 했슴.



 

  
 
 
 
 병장 한상천 (2006/03/17 18:30:04)

아, 지연이 누님의 글을 이제 볼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가슴이 아려지고 있습니다. 
책마을의 글들이 모두 날카롭고 첨예해서 자치 잘못하면 베일수도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그 속에는 따뜻함이 늘 산재해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지연누님이 글을 써주는 그날까지는 말이죠. 건강하십시요.    
 
 
상병 송희석 (2006/03/17 22:31:44)

내공이 또 한단계 올라가셨군! 쳇! 난 주화입마 바로 직전인데!    
 
 
병장 노지훈 (2006/03/18 07:41:34)

훗, B급과 사파는 통하는데가 있어요.    
 
 
상병 박종민 (2006/03/18 14:36:21)

아? 정말입니까? 
너무너무 기다리는 칼럼인데 이제 못보는 건가요?    
 
 
병장 노지훈 (2006/03/18 16:58:24)

종민 /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 상천님이 지연님 글을 못보는 것은 상천님이 사바세계로 가시기 때문이죠.    
 
 
병장 김강록 (2006/03/19 09:59:12)

혹시 이거 묵향 1권?    
 
 
병장 노지훈 (2006/03/19 10:05:19)

무공의 끝 없는 경지를 알고 싶다면 황제의 검을... 
단, 읽는 자세는 럭키짱을 대하듯이, 경건하게    
 
 
상병 권희용 (2006/03/20 07:07:32)

묵향이네요.(웃음) 

흐응~ 맞는 말같아요. 글을 쓰는데에는 많은 내공이 필요하죠.(... 칼럼이래잖아!)    
 
 
상병 안대섭 (2006/03/21 11:36:33)

저희 어머니도 신선이 되실꺼랍니다.    
 
 
상병 민경국 (2006/03/22 13:15:19)

파울로 코엘료가 '오 자히르'의 주인공을 빌어 말한 것과 비슷한 듯 하네요. 
'나는 나의 책을 읽은 이들이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책을 만들고 있음을 느낀다' 
대략 이런 정도의 내용이었지요. 
영화평론에 대한 의견, 참으로 깊이 공감합니다. 
영화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들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요? 
예술과 기술의 차이점 정도라고 어렴풋이 느낄 뿐입니다. 아직은..    
 
 
병장 주영준 (2006/03/24 14:14:05)

기술이 곧 예술이며, 수사가 곧 논리라고 믿는 저는, 정사통합보다는 사정통합론자랄까요.    
 
 
병장 주현탁 (2006/03/26 09:39:36)

마지막 글 어디서 많이 봤다고 했더니 위에 답글처럼 묵향이군요. 
하지연님 꼭 득도하시길 바랍니다.    
 
 
병장 박소윤 (2006/04/03 03:54:14)

신선이 되려면 금도끼 은도끼 를 들고 나무꾼의 심성을 테스트 하기위해 
호수속에서 멋지게 나타나기 위해서 싱크로나이지드 스위밍(synchronized swimming)도 
배워야 한다고 하던데요....(후다닥~) 
모두들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시길..(수습이좀 되나요?..땀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