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9월 상반기(!!) 결산입니다.  
상병 이우중  [Homepage]  2008-09-18 22:11:29, 조회: 366, 추천:0 

조기축구회에 왔으면 볼을 차야죠.
뜨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시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아직 9월도 지나가지 않았지만 9월 상반기(...) 결산을 하려고 합니다.
연습장에 끄적거린 거라 다 반말입니다. 이해하시길.

1.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 성석제
처음에 수록된 작품이 ‘잃어버린 인간’이다. ‘어두워가는 저녁에 손을 맞잡고 타박타박 걸어가던 쌍둥이, 그들의 눈, 그 크고 겁먹은 눈들’(p43)이 소설 밖으로 꿰뚫고 나와서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하다면 불편한 시선을 느껴야 했다.
그건 그렇고, 성석제는 변했다. 모호한(어찌 보면 열린) 결말의 사용이나 잉여인간적인 보통 사람(보다 약간 모자란)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골계와 해학적인 문장으로 풀어나가는 건 그대로이나 뭔지 모르게 조금 달라졌다. 문장 자체에서 톡톡 튀는 맛이 약간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이 변화는 최근작 “참말로 좋은 날”에 이르면 더 확연히 눈에 띈다. 수록작 제목처럼 ‘집필자는 나오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이런 변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볼 때 성석제 맞아? 하고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가령, 박진희가 긴 생머리에서 어느 날 갑자기 파마를 하고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의 당혹감이랄까.(철저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하루 이틀 보고 나면 또 그대로 예뻐 보이는 게 그녀 아니던가.
그의 소설에서 마사오나 조동관 같은 깡패가 나오지 않는다고, 노래하듯 톡톡 튀며 흐르는 재기 넘치는 문장에서 차분한 서술의 문장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글이 재미가 반감된다거나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또 찬양 일변도다. 다음에는 꼬투리를 한 번 잡아봐야겠다.

2. 그녀의 눈물 사용법 - 천운영
도서관에 원하는 책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 이리저리 둘러보다 소설(주로 단편집)을 집어들게 되는데 그럴 경우에 나는 책 표지에 나오는 작가 프로필을 먼저 읽는다. 사진과 함께 몇 년 몇 월 며칠 어디 출생이며 무슨 매체에 어떤 글로 등단했는지, 지금까지 낸 책들은 뭐가 있는지, 수상 경력은 어떻게 되는지 등이 실리는 게 보통이다. 책을 집어든 당시에는 아직 무명작가네 하는 생각에 다시 내려놓을까도 하지만 기왕 집었으니 가지고 와서 읽어보는데 의외의 반응을 안겨 주는 작가들이 있다.
당시의 천운영, 한창훈, 정길연을 포함하여 여러 명.
아, 그 전에 나의 소견 좁음을 잠시 짚어 봐야 한다. 수상경력이 많은 작가의 글을 선호하는 데에서 이 편협함은 대표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래서인지 XX년 XX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집착하는 것 같다. 심사평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꼴에 검증된 작품만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 원.
천운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 “명랑”을 집어들었을 때만 해도 뭔가 강해 보이는 인상의 사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바늘’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바늘”이 있다.’ 까지만 보고 선입견을 가졌었다.(물론 당시에도 그녀는 ’02 이상문학상 본심에 ‘눈보라콘’으로 올라가는 등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작가였는데 수상작품집을 좋아한다는 나는 그조차도 제대로 몰랐지만) 물론 다 읽고 나니 생각이 바뀌긴 했었다. 해설의 도움을 받고서야 ‘욕망’을 그리고 있구나. 하고 느낀 정도에 그쳤지만, 무명작가 어쩌고 하며 지껄일 자격은 글재주는커녕 독해 능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에... 이번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역시 욕망의 서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해설에 따르면 욕망과 서사는 어쩌면 동어반복일 수도 있다지만 내게는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 해설까지 문학적 함축을 이용할 필요는 없지 않나? 어쩌면 그 둘의 내면에는 겹치는 속성이 있을지도 모르나 동어라고 하기는 좀 무리인 것 같은데) 하지만 이번에는 ‘나’의 결핍을 ‘너’에게서 충족시킬 수 없고 ‘너’ 역시 결핍된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결국 ‘너’의 결핍을 포용한다. 저번처럼 ‘가질 수 없는 너’ 혹은 ‘가지고 나니까 소용없는 너’를 내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어렴풋이 이렇게는 느꼈지만 그게 뭘까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해설을 보고 알았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발견이란다. 결핍과 욕망과 파괴와 사랑. 천운영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하하. 그게 ‘사랑’이었다니.

3. 채식주의자 - 한강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7&sn1=&divpage=1&category=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570

4.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 - 이상운
여행작가 ‘이마립’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작소설이다. 아주 알기 쉽게 쓰여진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이게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은 아닌 것 같고... 그럼 포스트모더니즘의 세태를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인가? 흠... 뭐야.
어쨌든 작가는 이마립의 입을 빌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 것 같다. 하여간 내용은 재밌다.
‘시체는 어디 있는가’에서 이마립의 “소설이 지어낸 이야기지만 보편성이 있으니 거짓은 아니다”라는 말에 듣고 있던 관광버스 회사 사장은 “보편성 같은 건 없으며, 그래서 인생은 단 한 번뿐인 개별적 사건들의 무한한 연속”이라고 답한다. 이런 분위기가 그의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것이다.
표제작인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에서는 이마립이 죽은 시인 장운성을 회고하는데 이 사람은 시인이면서 광고 프로듀서로 떼돈을 벌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자신을 혐오한다. “광고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어서 자꾸만 뭔가를 사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아름다움과는 관계가 좀 있지만 진실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봐야죠”라는 말이나 “지금은 심오한 모든 것들이 천박한 화장을 하는 시대”라는 표현에서 이마립과 장운성과 작가와 어쩌면 일부의 독자들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완전한 소통을 100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겨우 5를 주고받기 위해 95의 쓰레기를 토해내야만”하는 소비의 파시즘 시대를 개탄하면서도 끊임없이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는 등장인물들. 수록작 ‘로이 리히텐슈타인 풍의 여자’(제목 센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에서 철수가 읊는 노래이자,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에서 시인 장운성의 서시를 소개해야겠다. 이 시야말로 소설의 요약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으니.

나는 노래한다
일시적이고 대중적이고
싸구려적인 것들을

나는 노래하고 외친다
섹시하고 싱싱하고
신나는 것들을

나는 노래하고 외치고 토한다
일회용적이고 임시적이고
대량 생산적이고
다국적 기업적인 것들을

랄라 트랄라
트랄랄라 랄라

참, ‘그레고르 잠자는 왜 벌레가 되었을까’에는 “그레고르 잠자는 사람들이 원해서 벌레가 되었다”는 대목이 있다. 뭔가 와닿았다. 비단 소비에서만이 아니라 바야흐로 새로운 파시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5. 소라단 가는 길 -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연작(그것은 칼날 등 4개. 그렇다. 솔직히 제목이 다 기억 안난다.)이 실려 있던 세로쓰기로 되어 있던 소설집을 눈이 빠져라 읽었는데 그 이후 처음 잡은 그의 책이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가의 신작이라니.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 독서후기면 책 내용부터 이야기해야지.
‘원혼의 한을 푸는 신성의 언어’라... 에이, 귀찮다. 독서후기는 무슨.
이라고 써 놨네요. 뭐지... 이제 60대가 된 동창생들이 오랜만에 고향으로 가 국민학교 동창회를 하면서 6.25 당시의 에피소드들을 담담하게, ‘그땐 그랬지’ 하는 식으로 풀어놓은 소설입니다. 어조는 담담하지만 보는 사람으로서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네요. 좋은 느낌으로 읽은 책이에요.

6. 스나크 사냥 - 미야베 미유키
솔직히 이 작가가 왜 그리 유명한지 모르겠다. 브레이브 스토리도 네 권이나 되길래 대하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큰 규모의 스토리겠지 싶어 큰맘먹고 집어들었는데 그냥 판타지였고... 고양이의 모습을 닮았다는 냥이족 아가씨도 나온다. 냥이족이 뭐냐 냥이족이.  축구왕 슛돌이나 낚시왕 강바다와 큰 차이 없는 작명센스다.
그리고,                .  .  .   .  .   .  .   .   .  .   .  . 
          중간중간에 도대체 이런 점은 왜 찍는 거야? 무슨 의미지?

7. 달을 먹다 - 김진규
제목이 ‘달을 먹다’이다. 무슨 뜻일까? 표지 그림은 초승달이 하나 떠 있고 열린 문을 통해 여인이 달을 바라보고 있는 건데... 배경이 되는 하늘은 붉은 색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월식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 이유는 뭘까.
음, 처음에 작가 이름만 보고 남자인 줄 알았는데 중학생 딸을 둔 여작가였군. 되게 젊어 보인다야.
작가는 13회 문학동네소설상에 이 소설을 가지고 갑자기, 정말 갑자기 등장했다. 작가 인터뷰를 보니 지난 해 10월 쓰기 시작했던 이 글이 처음 쓴 작품이란다. 그 전에는 시도 단편도 써 본적이 없다고 했다. 세상에나.
근데, 이 소설은 읽는 이를 조금은 불편하게 만든다. 삼대(혹은 사대)에 걸쳐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인물 몇몇의 시선으로 토막토막내어 전달해 주는 방식을 취하다 보니 중간에 맥이 끊기면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는데 심사위원인 박완서씨도 그건 마찬가지였다고 하신다. 내 집중력에 그렇게 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나보다.
조금 아쉬운 점은 작중화자들의 목소리가 비슷해서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힘들었다는 거다. 전반적으로 담담한 어조야 그렇다 쳐도 묘연, 태겸, 여문, 향이, 설희, 후인, 희우, 난이, 기현의 아홉 명에 이르는 전달자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말투와 분위기를 내고 있다는 점이 책장을 앞으로 넘기는 일을 더 잦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참, 그런데 원래 문학동네소설상에 응모할 당시의 제목은 ‘내심(內心)’이다. 음, 이 뜻은 알 것 같다. 주인공들이 1인칭으로 전개하는 소설이니 주인공들의 속마음이겠지 뭐.
얼핏 읽어보면 사극버전 ‘가을동화’정도로밖에 비춰지지 않을지도 모르나 담담한 어조를 통한 감정의 절제로 인해 단순한 퓨전 멜로 사극으로만은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아, 말 안했구나. 정조 시대가 배경이라고 한다.
작은 꼬투리 하나를 더 잡자면 ‘~에 다름아니다’는 번역체 문장이 곳곳에 눈에 띄어 조금... 어쨌건 차기작이 기대되는 작가다. “남편이 쏟아내지 않고 그렇게 계속 구겨 넣기만 하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해서 글을 쓰게 되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표면장력의 끝을 보았기 때문이라고도. 계속 구겨 넣기만 하는 나는 뭔가 싶기도 했다. 이미 미쳐버려서 이런 건가 아니면 아직 구겨 넣을게 많이 남은 건가. 아무래도 후자 같다. 더 구겨 넣어 보자.

8. 걸 - 오쿠다 히데오
적당히 유쾌하고, 쉽게 읽히고, 읽으면서 장면이 영상으로 쉽게 떠오르는, 드라마 대본으로 써먹어도 좋을 것 같은, 딱 그런 소설. 역시 그답게.
‘마돈나’의 여성 버전 정도라고나 할까. 닥터 이라부가 나오지 않는 그의 소설은 좀 어색하다. 네 편 다 ‘걸’이라는 제목에 맞게 OL이 주인공이다. 아예 한 회사 안에 등장인물들을 다 집어넣어서 연작소설 비스무레하게 만들었어도 좋을 것 같다. 하기야 오쿠다 히데오 소설들이야 다 거기서 거기니 뭐.(그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참신한 것도 너무 많이 쓰다 보면 그로 인해 식상해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여튼 경쾌한 소설이었다. 끝.

9. 오빠가 돌아왔다 - 김영하
오빠가 돌아왔단다. 오빠. 오빠! 이는 유명한 말을 빌자면 그 이름만으로도 듣는 이를 설레게 만드는 말이다.(내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 정도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너그럽게 이해해 주어야 한다. 나는 정말 이 호칭에 목말라 있다.) 근데 여기서 불리는 ‘오빠’는 내가 갈구하는 그것과 꽤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친오빠다. 나는 근친상간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설령 ‘젊은 느티나무’나 ‘달을 먹다’에서처럼 피가 섞이지 않았다 해도. 어찌됐든 친오누이 아닌가. 그리고 누가 뭐래도 금기에 과감히 도전하는 근친상간적(사실 이들을 ‘근친’으로 묶을 수 있나 싶기도 하지만) 성적 판타지의 최고봉이자 백미는 바로 처제와 형부인 것이다. 주위 비디오 대여점만 가도 ‘목표는 형부다’류의 제목들이 판을 치지 않는가. ‘처제의 일기’는 아예 시리즈로 제작돼 내가 본 것만도 서너편을 훌쩍 넘긴다. 말이 줄줄 샌다. 좀 아니다 싶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근친상간에 관심 없다는 거다.
각설하고, 열네 살 화자의 시각에서 서술되는 자신의 가정은 한 마디로 완전 콩가루다. 백전백패로 두드려만 맞다가 열여섯에 아빠에게 첫승을 거두고 집을 나갔다가 사년만에 웬 여자애를 데리고 돌아온 오빠. 저항하는 아빠를 작신작신(이 표현 좋은 것 같다. 작신작신.) 패주고 떡하니 집안의 일인자로 들어앉는다. 동물의 왕국에서 주로 접하는 야생원숭이라든가 사자 가족을 연상시킨다. 결국 동물들이랑 큰 차이가 없다는 거다. 가족 간의 유대는 애정이 아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며, 권력 분배는 나이나 경험의 존중에서가 아니라 물리적, 경제적 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가족이야말로 대표적인 게마인샤프트라고 배웠는데 여기서는 그냥 게젤샤프트일 뿐이란다. 그리고 화자인 소녀는 입이 거칠다. 마치 작가의 전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수록된 ‘비상구’의 화자처럼. 아, 그러고 보니 나중에 얘가 좀 더 자라가지고 거시기에 그리다 만 화살표 문신을 새기고... 음, 충분히 가능성 있다.
오빠라는 단어에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잡설이 길어졌는데,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를 포함하여 ‘그림자를 판 사나이’ ‘크리스마스 캐럴’ ‘너를 사랑하고도’ ‘이사’(제4회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있기도 한) ‘너의 의미’ ‘마지막 손님’ ‘보물선’의 8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인물 대부분이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사이를 쏙 빼버린 냉정과 열정의 양 극단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학평론가(?) 김태환씨는 ‘냉정’을 ‘냉소’라고 표현했다. 그래, 냉소가 더 적합할는지 모른다. ‘너의 의미’에 나오는 3류 감독, 그러니까 ‘나’가 냉소의 한 끝에 서 있다면 작가 조윤숙은 열정의 끝에 서 있다든지, 혹은 ‘너를 사랑하고도’의 박영수와 정인숙과 국회의원 보좌관 아저씨(사실 이들은 마주하는 상대에 따라 열정과 냉소를 오가기도 한다. 희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냉정과 열정, 그 사이 어딘가는 아니니까.) 같은 인물들, 그리고 ‘보물섬’이나 ‘크리스마스 캐럴’등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이런 구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이라니, 윤숙아. 라고 ‘나’는 쿨하게 말하고 싶겠지만, 그래도 조윤숙은 틀림없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아주 열정.적으로
그런데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가끔씩 섬뜩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불꽃과 폭죽들이 새해를 알리며 치솟다가도 TV가 꺼지자 젤리처럼 끈적한 침묵이 스르르 내려와 차곡차곡 고였다든가 하는 표현에서 그런 게 드러나는데 희망을 주는 듯하다가도 나중에는 여지없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 그런 느낌이랄까.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현실은 절망적이라는 게 아닐까. 그러면 냉정과 열정의 끝으로 치닫는 이들은 어떻게든 절망적인 현실, 그러니까 냉정과 열정 사이의 어딘가쯤에 있는 현실의 가장자리로 가장자리로 가다가 종내는 현실을 확 벗어나버리고 싶다는 일종의 현실도피행각일 수도 있다고 보인다.
덧1. ‘크리스마스 캐럴’의 진숙은 조경린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수록작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의 여인과 닮아 있음을 느꼈다.
덧1에 대한 덧2. 그래서 어쩌라고.

덧3. 9월 마치고 보아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44:49 

 

병장 이동석 
  9월 상반기? 
두둥- 2008-09-18
22:16:17
 

 

병장 이태형 
  이틀에 한권 이상 읽으시는군요. 
괴물. 2008-09-19
07:11:13
  

 

병장 윤영돈 
  상반기? 와우- 2008-09-19
08:00:58
  

 

이병 홍명교 
  와우 2008-09-19
08:10:59
  

 

병장 조흥준 
  그냥 죽네요... 2008-09-19
08:27:27
  

 

병장 황인준 
  대단하십니다. 2008-09-19
08:44:42
  

 

상병 이동열 
  도서관관리병이라고 하셨던거 같은데(땀) 부럽습니다(울음) 2008-09-19
09:29:21
  

 

상병 이우중 
  도서관 관리는 아니고 그냥 도서관 우량고객일 뿐이에요(웃음) 
사서가 책 못빌린다고 괜한 심통을 부리면 고개 하나 넘어 본청 건물까지 가는 경우도 있답니다.(궁생활 날로 먹는다고 욕먹을지도.. 도망.) 2008-09-19
11:16:06
  

 

병장 이현승 
  천운영씨 소설은 저도 좋아합니다. 이번 이상문학상 우수상 '내가 데려다줄게' 

도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2008-09-19
11:18:01
  

 

이병 홍명교 
  와... 도서관관리병이요? 너무 부럽네요. 
저도 우리 연대 도서관을 관리하긴 하는데 바뻐서 관리같은건 할 시간도 없네요. 2008-09-19
11:33:52
  

 

일병 김예찬 
  요새 나오는 미야베 미유키 작품을 읽을 때 마다 너무 다작해서 작품의 질이 조금씩 떨어져 가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미야베 미유키는 <<이유>> 가 정말 걸작입니다. 2008-09-19
11:41:16
  

 

상병 이우중 
  현승님. '내가 데려다줄게'도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 수록돼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명교님. 전 관리병은 아니고 도서관 출입이 잦은 도서관 죽돌이라고나 할까요(웃음) 
예찬님. 미야베 미유키 작품을 몇 권밖에 안 읽은 짧은 소견으로는 '미야베 월드'니 하는 말들이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근데 '이유'는 꼭 한 번 읽어 봐야겠네요. 2008-09-19
12:33:02
  

 

상병 이동열 
  미야베 미유키같은경우 '사회파 미스터리'류(?) 작품을 읽으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예찬님이 말씀하신 '이유'라든지 '모방범''화차'같은 작품은 추천할만 합니다 

물론- 다작으로 인한 아쉬움이 없잖아 있는 작가이기는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본 상업작가들이 주로 그러하더군요... 오쿠다 히데오라든가, 땀) 2008-09-19
12:53:28
  

 

병장 이건진 
  맙소사. 
제가 읽고싶었던 책들을 많이 읽으셨네요. 
그녀의 눈물 사용법, 달을 먹다. 채식주의자. 오빠가 간다. 

취향이 비슷하신가봐요. 하하. 2008-09-30
05:26:46
  

 

병장 이동석 
  이상운의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 확 당기네요. 

그런데 전 오빠가 돌아왔다를 좋아해서 몇번이나 본거 같은데 왜 기억이 안나죠? 

[계속 구겨 넣기만 하는 나는 뭔가 싶기도 했다. 이미 미쳐버려서 이런 건가 아니면 아직 구겨 넣을게 많이 남은 건가. 아무래도 후자 같다. 더 구겨 넣어 보자.] 
그건 그렇고 이 표현이 마음에 드는군요. 2008-10-02
11:08:00
 

 

상병 이우중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 
괜찮았어요 하하. 

마지막의 덧1에 나오는 조경린은 조경란과 전경린이 퓨전한 걸까요? 
이 아이디랑 글 쓸 당시의 아이디랑 달라서 수정이 안되는군요 
전경린입니다!! 2008-10-02
14:25:38
  

 

병장 이동석 
  하하, 이런 안타까운 일이. 2008-10-03
14:25:59
 

 

상병 김동욱 
  우중님은 책도 많이 읽고 후기도 열심히 쓰는, 착한 분이신듯. 크크 2008-10-06
00:5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