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11월 결산  
상병 이우중  [Homepage]  2008-11-30 16:11:08, 조회: 188, 추천:0 

언제나 월말이면 그렇듯이ㅡ

1. 봉섭이 가라사대 - 손홍규
전체적으로 비루한 인물들에 대한 비루한 이야기지만 언제나 그렇듯 작가가 등장인물들을 보는 시선은 따뜻하군요. 수록작 ‘매혹적인 결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대중이 위대하다는 걸 믿는다면 왜 이 세상이 지금 이 꼴로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고, 그걸 부정한다면 우리가 존재하는 걸 설명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이에요.
방구석에 처박혀 이 세상은 보르헤스적인 사람과 마르께스적인 사람들로 나뉘어져 있다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석제는 보르헤스로 위장한 마르께스적 소설가”이며 “신경숙은 마르께스로 위장한 보르헤스적인 소설가”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며 배가 고파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경마장에서는 “경마예상지를 사들고 꼼꼼하게 살펴보며 확률에 의지하는 보르헤스적인 사람과 예상지는 사되 자신의 직감을 믿으며 무모함에 의지하는 마르께스적인 사람”을 분류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다 부질없습니다. 삶은 그냥 흘러갑니다.

2. 2007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의 ‘깊’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별로였습니다. 박민규에게서 박민규적인 것만을 기대했던 저의 불찰이 크겠지만요. 백가흠의 ‘루시의 연인’은 단편집 “조대리의 트렁크”수록작이기도 했는데 또 봐도 재밌더군요. 여기서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나옵니다. 성석제의 ‘여행’은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황순원문학상은 김연수의 ‘달로 간 코미디언’에 돌아갔습니다.
김연수와의 인터뷰 내용 중에 와닿는 부분이 많아서 옮겨봅니다.
-김연수는 어렵다.
“작가로서 내 소설은 어렵지 않다. 독자가 그렇게 느낀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럼 작가가 ‘달로 간 코미디언’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시라.
“소통의 문제다. 그게 안 보이다니... 실망이다.”
-소설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돈을 벌 수 없다.
“돈은 번역을 하거나, 다른 글을 써 벌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 소설은 숭고한 것이다. 나는 소설가다.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을 쓴다면 그건 소설가가 아니다.”

“나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다.” 한 마디로 설명되는 인터뷰였습니다. 그는 진정 프로-라고 인정하고 싶습니다.

3. 레벌루션 No.3 - 가네시로 가즈키
시원하게 읽히는 소설입니다. 1할 2푼 5리의 삶은커녕, 경기장도 밟아보지 못한, 아니, 앞으로도 제대로 된 야구장을 밟기는 어려울 것 같은 마이너리티들에게 야구는 야구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외쳐주는 것 같은 이야기입니다.

4. 젊은 날의 초상 - 이문열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5&sn=on&ss=on&sc=off&keyword=이우중&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576
중간에 이상하게 끝내버렸는데요, 하버마스와 라스웰을 인용한 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아, “민중이란 말의 허구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해 보았는데 뭐 흐지부지됐습니다.

5. 낙서문학사 - 김종광
이 분도 위트넘치는 문장을 선보이십니다. ‘낙서문학사 창시자편’에서 ‘낙서문학사 발흥자편’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작가의 말을 빌자면 현재 출판업계에 대한 꼬집기라던데요, 후속작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굳이 출판업계 뿐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건 읽는 사람이건 조금은 뜨끔하게 만들었어요. 가상도시(국가) ‘율려’가 무대인 소설도 두 편 있는데 역시 재밌습니다. ‘율려 탐방기’와 ‘절멸의 날’이에요. ‘단란주점 스타크래프트’는 또 어떻구요. 약간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유쾌한 소설집이었습니다.

6. ’99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을 포함한 9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샤갈의 마을’ ‘사탄의 마을’ ‘독산동’ 등 수평적 공간탐사의 과정을 거친 작가가 ‘지붕’으로 올라가기 전에 거친 수직적 공간탐사 과정에 있는 곳이 ‘옥탑방’이라고 하네요. 원재길의 ‘삼촌의 좌절과 영광’도 너무 서둘러 끝낸 것 같은 느낌을 뺀다면 괜찮았고요, 이윤기의 ‘손가락’ 최일남의 ‘우리말 역순사전’은 소소한 맛이, 하성란의 ‘당신의 백미러’와 한승원의 ‘검은댕기두루미’는 몽환적인 느낌이 좋았습니다. 이순원의 ‘1978년 겨울, 슬픈 직녀’에는 재밌는 부분이 있더군요.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신 아프리카라고 하니까 완전 다들 빠져가지고 잘 하는 짓이다”는 거였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보면 ‘쌍팔년도 아프리카’도 정작 쌍팔년도에는 풀렸거나 불군기한 걸 뜻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6.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 김도언
비루한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앞서 나온 ‘봉섭이 가라사대’가 떠올랐는데요, 여기는 좀 더 일상적으로 비루한 인물들이 나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에요. 미리 “이 소설의 제목에서 ‘melancholy’의 올바른 표기는 ‘멜랑콜리’이지만, 작가의 요청에 의해 ‘멜랑꼴리’로 표기하였음을 밝힌다”고 말해놓고 시작하고 있군요. 멜랑꼴리한 감정은 정말로 멜랑꼴리라고 적어야지만 기분이 사는 것 같아요 저도.
작가는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못난 존재들이어서 지극히 세속적인 방법으로 욕망하고 다투고 병들고 질투한다...(중략)... 그런데도 나는 이들 모두의 생이 관찰되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모든 삶은 예외 없이 비장하게 죽음과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거의 탈고할 즈음 단 한 순간이라도 연민 없이 사람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대체 이게 ‘사소한’ 멜랑꼴리인가 싶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러니까, 소심한 학원버스 운전기사가 술김에 부원장에게 대들고, 원장이 젊은 여선생의 양아치 남자친구에게 린치를 당하고, 누군가는 아프리카에서 집단폭행을 당해 죽고 그로 인해 얽힌 관계가 해소되는데 기여를 한다고 할지라도(사실 이 부분에서 약간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었어요) - 근본적으로 그들의 우울, 위악, 인생의 얼룩, 가식, 속물근성 등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겠더군요.

7. 아내가 결혼했다 - 박현욱
어이쿠. 고료가 1억원이나 되는 줄 몰랐네요. 세계문학상 말이에요.
어쨌거나, 왠지 모르게 주인공 남자가 찌질해 보입니다. 폴리가민지 폴리피델리틴지 제 정서와는 도무지 맞질 않아서 그런진 몰라도요. 본문에도 나오듯이
“연속 결혼, 할부 단혼으로 표현되는 시리얼 모노가미란 일부일처는 일부일처이되 평생 동안 여러 명의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일부일처제를 의미한다. (중략) 이미 서구에서는 시리얼 모노가미의 형태가 순수한 모노가미를 압도했다고 한다. 이혼율이 급증하는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정도면 모를까요.
누군가 이런 요지의 말을 했어요. 아마 ‘조원’이라는 작자였을 거에요.(어디 나오는 사람이게요?)
‘내 마음 속 방의 주인은 오직 한명 뿐인데, 그러나 그 임자가 하루에도 열두번씩 바뀐다’고 말이에요.
솔직히 이건 공감이에요. 하지만 나는 아직 사랑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ㅡ여기서의 사랑은 단순히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같이 잠을 잤다고 해서 명명되는 그것이 아니에요ㅡ 크게 이 글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는 처지는 못 되어요.
덧. 최소 몇 줄씩은 되는 세계문학상 심사평 중에 눈에 띄는 게 있네요.
“젊다. 빠르다. 신선하다. 부지런하다. 흥미진진하다.” - 성석제
이 분도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8. 사람의 아들 - 이문열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5&sn=on&ss=on&sc=off&keyword=이우중&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938

관심좀 가져주세요. 흑흑

9. 신(1-2) 베르나르 베르베르
빨리 3-4, 5-6권의 3부작을 다 읽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는 것은 언제나 마지막 장을 넘긴 후가 되더라고요. 이 책을 잡고 있을 때는 오직 책의 내용 안에 푹 빠져들어가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요.








[얼개]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정말 써 보도록 할게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47:38 

 

상병 이우중 
  아 참, 여기서 나온 '아프리카'는 영목님의 그 '아프리카'입니다. 2008-11-30
16:14:04
  

 

병장 정병훈 
  휴- 책마을에 있으면서, 점점 읽는 책이 줄어드는것같습니다. 왜냐구요? 
책 읽을 시간에, 책마을에 올라온 글 읽고, 글 뽑아내는데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고 싶네요.(글쓰는데 꽤나 시간이 걸리네요.) 
이젠 공부도 하고, 책도 읽어야되는데 필진이라는 뭐시깽이를 덥석 물어버렸으니, 
모르겠군요. 

베르베르의 신은 위시목록에 추가 되어 있는 작품이랍니다. 흐흐 그게 3부작이란건 처음 알았네요. 
그 외에도 '아내가 결혼했다.' '레볼루션', '젊은 날의 초상' 같은 작품은 한번 읽어 보고싶네요. 2008-11-30
16:25:28
  

 

일병 정일하 
  '아내가 결혼했다', '신'은 꼭 읽어보고 싶군요.. 흐음 2008-11-30
16:34:36
  

 

병장 이동석 
  푸하하- 역시 우중님은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이야기를 폭넓게 소개해주시는군요. 전 이번달에 시집 몇장 말고는 읽은게 없기에 우중님이 부럽고, 자극-도 됩니다. 티비보거나 자빠져 있을 시간에 책이라도 한줄-봐야겠어요. 

그런데 우중님 정치외교(?) 전공 아니신가요? 전에 밴드왜건-이야기할때 경제-쪽이나 정치외교-의 냄새(?)가 흐흐. 일전에 말하신적 있다면 죄송합니다. 여러분이랑 댓글이나 쪽지로만 이야기를 나눠서인지 기억이 혼동되고 그래요. 낄낄. 2008-11-30
17:53:39
 

 

상병 이우중 
  병훈님/ 
저도 3부작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어가지고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맞을 거에요. 내용상으로도 끝날 것 같지는 않았으니ㅡ 
일하님/ 
처음 뵙는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도 추천드리고 싶어요. 
동석님/ 
정치외교.. 로 가고도 싶었지만 제 전공은 언론정보랍니다. 밴드왜건은 커뮤니케이션학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거에요. 낄낄낄. 2008-11-30
18:02:40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한국문학에 대한 깊이있으면서도 폭 넓은 독서는 어떻게 가능하신거죠? 허허. 가이드(?)같은게 있는건가요? 껄껄. 2008-11-30
18:05:37
 

 

병장 김민규 
  햐. 이 독서량. 멋집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2008-11-30
18:33:13
  

 

병장 김현민 
  달로간 코미디언. 읽어보고싶습니다. 

김연수가 말한 인터뷰내용 인상적입니다. 2008-11-30
21:25:49
  

 

병장 문두환 
  우중님도 너무 오랜만에 오신 것 같애요. 아아 이제 이 야근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부들). 2008-11-30
23:23:17
  

 

상병 김동민 
  박민규는 왠지 점점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느낌. 성품 때문인 것 같기도, 작가가 되기엔 너무 착한 것 같아요. 올 해 룡룡룡룡은 그나마 재밌게는 읽었지만. 
김연수는 읽을때마다 아쉬워요. 
김종광은 얼마 전 읽었는데 문제제기는 좋았는데, 표현면에서는 아쉬웠어요. 2008-12-01
09:43:50
  

 

상병 이우중 
  그 룡룡룡룡이 '말많을 절' 맞죠? 
이번 황순원문학상인가 이효석문학상 작품집에 실려 있던 거 같은데 '사람의 아들'때문에 포기했답니다. 허허. 

그나저나 동민님도 오랜만이군요. 두환님도 오랜만 다들 오랜만이에요 허허허 

참,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가이드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내키는대로 읽어요. 좋아하는(이라기보다도 한 번 이상 들어본) 작가 위주로 집어 든 뒤 대여 권수에 여유가 있으면 한번 쭉 넘겨 보고 괜찮다 싶은 걸 고르는 게죠. 2008-12-01
12:21:43
  

 

병장 이동석 
  오오, 도서관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독서방식- 멋집니다. 2008-12-11
10:15:22
 

 

병장 김동욱 
  동열님 주소가 다들 날아가버렸어요,흐. 
역시 늘 꾸준한 동열님답게 이번달도 깔끔한 결산을! 

달로 간 코미디언, 진짜 괜찮았는데! 2008-12-16
01: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