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훈련소 퇴소이후 보충대에서
이병 홍명교 2008-07-08 09:21:32, 조회: 447, 추천:2
그동안 읽은 책들 결산하려고 합니다. 보충대 대기기간때 읽은 책 네 권, 그리고 이곳 남원에 와서 읽은 책 11권정도가 있는데, 따로따로 나눠서 써보겠습니다.
#보충대 대기기간
<연어>, 안도현
연어 우화입니다. 동강 상류에서 시작하여 태평양 반대편까지 다다랐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떼의 우화를 통해 삶, 인간 공동체, 꿈에 대한 교훈극을 전지적 시점으로 써내려간 글입니다. 술술 잘 읽히고 쉬워서 머리 식히며 읽기 딱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육군훈련소에서 35사단 보충대에 왔을때 너무 심심해서 진중문고에 꽂힌 책 중 하나를 집어서 본 것이었는데, 책 붙잡고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자기 본분을 지키며 도전이란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인가에 대한 우화적 소설인데, 그 안정성만큼이나 썩 마뜩찮은 혐의도 존재합니다.
나이든 연어와 현명한 연어는 철없고 의기 많은 연어에게 말합니다. 엄한 데 넘보지 말고 자기 본분과 자리만 지키며 삶의 목적을 다 이루라고. 좋은 말이긴 하나, 그저 좋은 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레퍼토리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힘 센 아저씨들이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않습니까. 니 주제나 파악하고, 본분이나 지키라고.
다분히 평온하며 아름다운 글이지만, 다분히 정치적인 글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계를 두는 철학적 성찰은 의도치않게 위험하게 노출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한비야는 놀라운 에너지로 가득찬 사람입니다. 그녀는 세계에 대한 도전과 모험의 정신 하나만으로 모든걸 훌훌 털고 30대중반에 세계여행을 떠났고, 그리고 이후에는 여행을 직업으로 삼아 세계 곳곳에서 자신이 개인적 체험으로 느낀바들을 솔직담백하게, 철저히 개인사적인 문체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언젠가부터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파괴하는 세계 곳곳의 공동체적 풍경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역할도 하고 있죠. 한동안 한비야씨는 대학교에서, 그리고 몇몇 강좌에서 신자유주의가 파괴하는 세계-공동체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로서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비야씨는 모험가이면서 여행가이기도 하고, 폭로하는 목격자이면서 자선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활동을 '자선'의 차원으로만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할 것인지는 앞으로 더 두고볼 일이겠지만요.
아무튼 이 책은 그런 한비야씨가 세계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한반도 땅끝 해남에서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 맡은 냄새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투박하지만 솔직한 이야기들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는 듯 전해져오는 이유는, 글의 문체와 행간 안에 숨겨진 그녀의 솔직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화려한 문학적 수사 따위와는 거리가 멀지만, 한비야씨의 책을 보면 '솔직함과 도전' 그 자체만으로 이미 작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듯 해보입니다.
<어른 노릇, 사람 노릇>, 박완서
소설가이자 수필가 박완서는 '나이듦'과 '여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 독보적 문학가입니다. 박완서의 책은 그것이 소설(fiction)이든 수필(essay)이든 간에 그것이 삶의 경험의 차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소설과 수필의 구분이 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나이든 세대이자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의 변두리의 위치에 서있게 된 화자가 끊임없이 일상의 공기를 환기시키면서 자기 일상의 목소리를 "정치화"시켜내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듯합니다. 요컨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 특히 나이든 여성이 자기 일상의 투박한 고통, 어려움, 괴로움, 고독 등에 대해 발화한다는 것은 노인과 여성을 끊임없이 배제시키는 이 지독한 가부장사회에서 지극히도 정치적인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박완서라는 개인의 '정치적 입장'이 어떤 것이건 간에 말입니다. 박완서의 소설은 오직 박완서만이 쓸 수 있는 소설입니다.
<로마이야기6>
로마제정에 대한 이 방대한 행정학적, 정치학적 연구서 시리즈는 참으로 군대에 있음직하다고 여겨질만한 책이었습니다. 정치가들의 정략적 술수와 리더쉽에 대해 총체적으로 서술된 역사연구서로 개인의 삶의 차원에서부터 로마 시대 남유럽사의 정세까지 하나로 얽어놓았고, 철저히 황제 1인의 리더쉽만으로 역사의 변동 근원들을 인과적으로 서술한 역사서입니다. 이 때문에 역사 연구의 차원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바가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삐딱한 시선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39:02
병장 이동석
실로 간만의 결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명예의 전당이나 책가지말고는 처음보는 결산글)
한비야씨 책 읽어보고 저도 저녁밥 먹고 식후운동 삼아 국토 종단이나 해볼까하는,
(천리 행군인가?) 2008-07-08
11:14:32
이병 서석호
'한계를 두는 철학적 성찰은 의도치않게 위험하게 노출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말이네요. 책마을에는 말을 너무 멋지게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웃음] 2008-07-08
11:38:00
일병 이종권
아하 35사단이시군요~
저도 35사단 본부대에 있습니다. 보충대에 있을 때 '연어'를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연어의 용기가 내 삶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들었던 책이었죠 2008-07-08
12:39:39
이병 홍명교
이종권/
아, 사단본부시군요. 전 103연대 본부 작전과에 있습니다.
예전에 쓴 제 가입인사글에 남겨주신 댓글보니 저 아신다고 하셨죠?
예전에도 알았고, 책마을과 같은 사단까지... 보통인연이 아닌가봐요.
사단본부대에 홍도은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사단참모부에서 봤는데 보직이 뭔지 모르겠네요. 2008-07-09
10:13:01
병장 이태형
천년의 사랑 읽고 집어던졌었는데.
그 남자네 집도 재미없고.
아아.
난 작가의 역량을 몰라보는 멍청이인가! 2008-07-09
10:18:18
이병 홍명교
/이태형
천년의 사랑은 양귀자 아닌가요? 2008-07-09
12:28:42
병장 이태형
그런가요.
잘 기억이 안 나네요(허허)
후반부로 갈수록 이뭐....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던 책이라. 2008-08-09
15:4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