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우리 기쁜 젊은 날'을 그린 소설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
상병 이우중 [Homepage] 2008-11-12 18:32:02, 조회: 274, 추천:1
젊은 날의 肖像 - 이문열
이 소설에서 이문열 본인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소설의 작중 화자에 그 작가를 대입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독서법이라지만, 성석제의 첫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의 서문에 나오는 “누구든지 첫 소설은 그의 자전적 내용이다.”는 말이 아니라도, 작가 후기를 읽어 본다거나 하지 않더라도 이 책에는 그의 모습이 녹아 있다.
작가의 말이다.
“(전략) … 작품이 작가의 일부일진대 기왕에 내보낸 책에서도 내 삶의 편린은 점점 박혀 있을 테지만, 이 책처럼 내 삶과 밀착된 것도 드물다. 비록 턱없는 감상과 애정 때문에 극적인 과장과 미화(美化)의 폐해를 입고 있긴 해도 이 갈피갈피에는 무슨 열병처럼 지나온 내 젊은날들이 영원한 그리움과 회한으로 숨쉬고 있다. 앞으로 내가 문학적으로는 이보다 얼마나 더 완벽한 글을 쓰게 되든, 그리고 또 어떤 평자(評者)가 어떻게 평을 하든, 내 가장 큰 애착은 항상 이 책 위에 머무를 것이다. … (후략)”
혹자는 이문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남 사림의 계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가 이문열의 이해는 그의 책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쓸 때의 그와 굳이 여기저기서 욕을 들어먹어가면서까지 『신들메를 고쳐매며』굳세게 전진하겠다는 보수적인 문사-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이문열에 대해 같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두 작품이 발표된 시간의 차가 25년이나 되니 그 사이 세상을 느끼는 기관이 심장에서 머리로, 그리고 다시 말초신경으로 옮겨갔다거나 하는 이유로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데 25년의 간극을 둔 타인의 가치관 변화야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만.
막상 내용에 대한 소개가 늦어졌다. 이 책은 열아홉에서 스물,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강진에서 지낸 날들을 그린 「하구」, 1960년대의 짧은 대학생활의 고뇌-라기보다도 뭉개져가는 지적 허영심, 우월감 등이 있는, 그리고 잠깐의 스쳐지나간 사랑 비슷한 이야기도-가 담긴 「우리 기쁜 젊은 날」, 그리고 학교를 박차고 나와 근원적인 결단-“이를테면 쓴 이 삶의 잔을 던져버릴 것이냐, 참고 마저 마실 것이냐 따위”-을 내리기 위해 강원도 산골로, 경상도의 산촌으로, 그리고 동해바다에서 드디어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원점인 서울로 돌아오는 여로의 과정인 「그 해 겨울」의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중화자와 작가를 동일시하는 단계를 지나, 거기에 소설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을 투영시켜 비교해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나’로 등장하는 또다른 내가 있었다. 아니, 이상적인 나의 방황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가령, 스스로가 “한낱 대학입시에 그처럼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경위는 지금으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그 당시에 쓴 일기의 내용들,
“시계의 초침 소리를 듣는데 소홀하지 말아라. 지금 그 한순간 순간이 사라져 이제 다시는 너에게 돌아올 곳 없는 곳으로 가 버리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라. 한 번 흘러가 버린 강물을 뒤따라잡을 수 없듯이 사람은 아무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날 수 없다. 더구나 너는 이제 더 이상 그 초침 소리에 관대할 수 없으니. 허여된 최대치는 이미 낭비되고 말았으니.” 라든가 더 심하게는
“너는 말이다, 한번쯤 그 긴 혀를 뽑힐 날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그 실천은 엉망이다. 오늘도 너는 열여섯 시간분의 계획을 세워 놓고 겨우 열 시간분을 채우는 데 그쳤다. 쓰잘 것 없는 호승심에 충동된(바둑을 말함인 듯) 여섯 시간을 낭비하였다.
이제 너를 위해 주문을 건다. 남은 날 중에서 단 하루라도 그 계획량을 채우지 않거든 너는 이 시험에서 떨어져라. 하늘이 있다면 그 하늘이 도와 반드시 떨어져라. 그리하여 주정뱅이 떠돌이로 낯선 길바닥에서 죽든 일찌감치 독약을 마시든 하라“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이 열아홉 살, 이 일기를 썼을 당시의 화자와 같은 나이였다. 그 때 내 머리를 강타한 것은 그 내용보다도, 독한 마음가짐보다도 도저히 열아홉의 나이로는 믿겨지지 않는 문체였다. 정작 본인은 “열아홉의 과장된 어법과 미문(美文)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회고했지만-그리고 어디까지나 그건 ‘소설’일 뿐이었지만-.
그리고 대학에 들어간 ‘우리 기쁜 젊은 날’의 그 지적 허영심.
“모든 것에 대해서 다 그러하지만, 갈망은 항상 더 큰 갈망을 낳기 마련이었다. 나는 무모하리만큼 열심히 읽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도서관의 서가에는 그만큼 더 많이 읽어야 할 책들이 늘어났다.(중략) 따라서 그렇게 읽은 피상적인 지식의 단편들은 약간 고급한 교양이나 찻집 같은 데서 동년배의 감탄을 사기에는 훌륭해도 대신 내 독서 범위를 더욱더 무한정하게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항상 책에 대한 갈망으로 허겁지겁하였지만 느는 것은 새로운 갈망 뿐 결국 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다만 모든 것을 다 아는 바보였다.”
이와 같은 지적 허영심으로 나 역시 개론서만을 읽고 마치 그 분야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듯한 자만심을 가지고 떠벌리고 다닌다거나 문학, 특히 고전의 경우 요약본과 평론가들의 해설을 가지고 앵무새처럼 외고 다닐 뿐이었다. 우스운 것이라면 이런 행동들이 이 책을 읽은 후라는 사실일까.
독일사람 하버마스 씨는
“나중에 태어난 자의 특권으로 앞 세대를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라스웰은 정치의 무관심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고 한다.
탈(脫)정치적 무관심과 무(無)정치적 무관심, 그리고 반(反)정치적 무관심.
왜 여기서 뜬금없이 두 사람의 말을 인용했는가 하면,
아.. 귀찮다. 손 아프다. 그만 써야지. 죄송합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47:08
병장 김선익
왜 그만 쓰쎴어요. 나는 솔직해서 이문열씨가 좋아요.(웃음)
'젊은 날의 초상' 2008-11-12
18:56:27
상병 이우중
저는 솔직히 이문열씨가 좋아요. 낄낄낄.
여기서 질문 하나. 갑자기 헷갈리는데 '몽블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소설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였나요?
몽블랑 만년필이 있는데 이 몽블랑이라는 게 해발 8,000미터가 넘는 몇 개의 산맥 중 하나이며 어쩌구저쩌구를 알면 일반 상식 수준은 되는 것이고 이 산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걸쳐 있는데 프랑스 쪽 경사는 가파르고 이탈리아 쪽 경사는 완만하며 이탈리아 어로는 몬테 비앙코라고도 불린다. 이 정도를 알고 있으면 어느 정도의 상식이 된다... 하고 시작되는 소설이었는데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또 화자와 작가를 동일시하고 그의 지식에 탄복한 적이 있었답니다. 2008-11-12
20:57:44
병장 문두환
/우중
정말 왜 그만 쓰셨나요? 당근이 즐거워질뻔 했는데. 흠흠.
그런데 '아담이 눈 뜰 때'도 이문열씨 소설이었던가요?
매우 인상깊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2008-11-12
23:05:02
병장 김동욱
아마 '우리 기쁜 젊은 날'이 나오고 앞의 두 편이 발표되어, 한권의 책으로 엮인거죠? 저도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70년대에 쓰인 작품임에도, 마치 제 대학생활인냥 대입해가며 술술 읽었는데.
인상깊었던 장면은, 그 여관방에서였나요. 허름해보이는 소년과 합방을 하게 됐을 때, 주인공이 그의 차림새를 보고 의심해서 돈을 꽁꽁 숨기고 자다가 - 소년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위선적인 허물을 깨닫게 되는.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바로 다음에 <사람의 아들>을 집어들었어요. <사람의 아들>을 읽은 후로는 더욱 이문열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종교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논외로 하고, 책 속에서 기득권을 가진 종교의 위선에 대한 비판과 그것을 바로 고쳐보려는 활동을 해나가는 이들을 그린 작가가 어찌 그런 '변화'를 겪었을까, 그때부터는 그 사람의 작품보다는 그 사람에 대해 더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강준만 교수가 쓴 <이문열과 김용옥>(상)을 찾아 읽었습니다. 강준만식 글쓰기답게 다양한 논문들이나 자료들을 통해서, '문학권력'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문열씨에 대한 비판을 조목조목해나갑니다. 대중적인 인기와 문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은(공지영씨를 생각해보면 알수 있듯 이것은 공존하기가 힘들다는) 이 작가에 대해서 말이지요. 교양주의적 소설, 마광수 교수에 대한 문단권력, 선거때마다 신문지상의 발언과 이른바 홍위병 발언을 둘러싸고 진중권 교수와 벌인 논쟁 등등. 굳이 비판만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그렇고, 왜 그만쓰셨어요! 한참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말이지요. 2008-11-13
00:01:38
상병 이지훈
앞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뒤가 궁금한데 나중에 다시 정리해서 올려주시는건가요?
흠 많이 아쉽습니다 긁적 2008-11-13
05:44:59
상병 이우중
저도 왜 갑자기 쓰다 말았는지 모르겠어요. 언젠가 이문열의 다른 소설로 찾아뵙도록 하죠. 허허..
동욱님/
발표 순서는 '그 해 겨울'->'우리 기쁜 젊은 날'->'하구' 순서였드랬어요.
저도 선거 때에 맞춰서 나오는 그의 발언들 때문에 참 마음이 아팠는데요, '이문열과 김용옥' 꼭 한 번 읽어 봐야겠네요. '문학권력'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두환님/
죄송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아담이 눈 뜰 때'는 내용이 어떻게 되죠? 2008-11-13
08:06:41
병장 문두환
/우중
그 소설의 주인공도 그 나이 또래였던 것 같군요. 고3에서부터 대학교 입학까지 지적/젊음의 방황을 그린 소설이었습니다. 동욱님이 말씀하신 책은 저도 일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역시 강준만 교수답게, (옳다거나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대상자들을 표현하는 신선한 단어를 뽑아 냈었죠. '지식폭력'이라고. 흐흐. 2008-11-13
17:35:26
병장 이동석
저 이거 읽고 댓글 달았었는데, 롤백-되서 지워졌나 봐요. 허허. 다시 읽어도 중간에 끊긴게 아쉬운 즐거운 독서후기-입니다. 2008-11-30
17:54:35
병장 이동석
그리고 하버마스와 라스웰을 왜 인용했는가-를 말해주세요. 흐흐 2008-11-30
18:0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