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어린왕자  
병장 김선익   2009-01-22 22:30:31, 조회: 70, 추천:1 

어린왕자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어른이 되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어린왕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어렸을 적에 이미 시시해져버린 교훈같은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정작 어른들에게 필요한 건 어린왕자같은 동화가 아니라, 이런 아이템들이 아닐까 싶다.

‘귀마개아이템’ - 귀마개아이템을 장착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얼굴에 철판이 깔리게 된다. 귀마개를 끼고 얼굴에 철판을 깔면 그 어떤 뒷담화 혹은 루머, 폭언등에도 넉살좋게 대응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넉살
‘오리발아이템’ - 오리발아이템을 장착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알리바이를 만들어준다. 오리발을 내밀면 어떠한 잘못이라도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타당성을 얻게된다. 
‘돋보기아이템’ - 돋보기아이템을 장착하게 되면 상대방의 장점에 대해 혹은 자신있어하는 부분에 대해 잘 알게 된다. 접대 혹은 면접시 큰 효과를 발휘한다.
‘확성기아이템’ - 확성기아이템은 보청기아이템과 상반되는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확성기 아이템 사용시 그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주장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필요한 건 논리적인 말이다. 확성기아이템이 당신의 주장을 잘 전달해줄테니 말이다.
‘보청기 아이템’ - 보청기아이템은 그와 반대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말에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보청기아이템 장착시 상대방의 주장에 진심을 가지고 대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모모가 가진 천부적인 재능처럼 말이다.
‘드레인밸브’ - 드레인밸브를 장착하게 되면 간단한 조작으로도 가슴 속 응어리들, 답답한 것들을 단숨에 해소시킬 수 있다. 중요한 건 쫙 빠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리발아이템을 장착 중이었다. 핑계를 잘 댈 수 있고, 모든 행동엔 변명거리들이 준비되어있다. 요즘같은 경쟁시대에 아주 딱이다. 부작용이 있다면, 자기변명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내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던 일들이 흐지부지될때도 오리발을 내밀면 끝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템교체를 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드레인밸브가 마음에 들었지만, 가끔은 너무 쿨한 것도 사람답지 않아보여 뜨거운 가슴으로 가슴 속 응어리들은 녹여버리기로 하고 포기했다. ‘어렵다,어렵다’해도 그게 다 사람사는 낭만이지 않을까도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보청기와 확성기아이템에 눈독을 들여보았다. 문제는 같이 사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란 사실이었다. 귀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가슴아픈 세상이기에, 그렇다고 남의 마음에 쏙 드는 말을 논리적으로 해보자기엔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다. 보청기와 확성기아이템이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세상사에는 오류인 것 같기도 했다. 입 하나, 귀 두 개의 신적인 비율로 아이템이 배분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돋보기아이템은 나만 착용하면 안되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착용해야 그 존재의 의미가 성립될 것 같았다. 자꾸 우리를 순서대로 줄 세우려는 지대한 압력에 대항하자는 뜻에서 아주 좋을 것 같았다.
결국 난 이런 저런 고민 끝에 귀마개와 철판아이템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이 아이템들을 다 장착하고 있는 그 분께 넉살좋게 받아치기 위해서 말이다. 시기적절하게 내미는 오리발에 당황한 우리, 대항할라 치면 어느새 귀마개와 철판을 끼고 확성기를 준비하고 계시네. 어라? 어느새 우리의 귀엔 보청기 아이템이, 으악~ 돋보기아이템은 그렇게 사용하는게 아닌데 단점만 너무 잘 찾아. 이제는 우리네 눈과 귀를 막고 드레인밸브까지 장착시키려고 한다. 너무 쿨해져버린 우리의 2008년 청소년인권상 수상자는 이런 수상소감을 남긴다 ‘그 분께서 이 상을 주신 것만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분께 이 상을 돌립니다’

어린왕자가 나한테 해주려고 했던 말이 이거였을까? 아니면 이런 아이템들이 있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만들어낸 망상이었을까? 잠시 의문을 남겨본다. 귀마개 장착하고 얼굴엔 철판깔고 누가 뭐라하든 이 세상 아둥바둥, 어린왕자가 말한 보이지 않는 진리를 찾아 열심히 살아야겠다.



수평선 너머에 살고싶다
그 곳에 가면
모든 기억은 추억이 될 수 있다
이미 져버린 노을을 향한 기다림
태양이 뜨기만을 기다렸던 아늑함

담배 한 개피, 뜨거운 사랑
수평선 너머로 던져본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59:45 

 

병장 이동석 
  오랜만입니다. 선익님. 

그 분-이 누군지 알것같아요. 2009-01-23
06:10:48
 

 

일병 이상훈 
  단백질 인형? 2009-01-23
07:47:23
  

 

병장 최동준 
  어린왕자가 주는 느낌과 결론은 생각하는 사람마다 다르군요 
전 '헛된 시간은 절대 헛된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2009-01-23
08:06:48
  

 

병장 이우중 
  한컴타자연습에 장문연습 '어린왕자' 
끝까지 안나와요. 중간에 잘려요. 

아, 그나저나 그 분-은 누구신가요? 2009-01-23
09:56:44
  

 

병장 고은호 
  길들여지는 것. 
세상 수 많은 사람들 중에 나에게 의미있는 한 사람이 되는 것. 

왕자와 여우의 이야기. 

저는 어린 왕자하면 이런 것들이 생각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웃음) 2009-01-23
10:53:46
  

 

병장 김민규 
  아, 선익님, 참 오랜만이예요. 
쓰잘데기 없이 넉살만 늘어서 능구렁이같이 넘어다니는 스스로를 발견할때마다, 허허, 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근데 꼴받으면- 이게 또 가관이예요. 얼굴 시뻘개져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다니니, 확성기 아이템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죠. 
뭐, 내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하면서 어지간한 풍랑에는 일렁임이 없는 깊은 물처럼, 좀 그렇게 살아야 할텐데. 이건 촐랑촐랑, 이리 튀었다 저리 날았다, 무슨 날치도 아니고. 
잘 읽었어요. 종종 모습좀 보여주시길... 2009-01-23
11:4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