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병장 이동석  [Homepage]  2008-07-06 21:53:04, 조회: 258, 추천:0 

일병말에 계룡대 시절 써냈던 백범일지 감상문입니다. 독서후기 쓰고 싶었는데 정작 책 읽은게 없어서, 예전에 썼던 파일 보아콘서트 대비해서 지우기도 해야되서 이거라도 올립니다. 반강제적으로 반나절만에 토해내야했고, 아주 아주 부대찌개의 쓴맛을 느끼고 있던터라 제 사상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초등학생이나 쓸법한 독서감상문을 써내었지요. 아주 건전하고 온건하고 희망에 차 부르르 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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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 분계점을 걸어서 넘던 날에 나는 중국집에 있었다. 복귀를 앞두고 왠지 조급한 마음에 음식을 ‘들이키고’ 있을 때였다. 함께 밥을, 깐풍기에 배갈도 먹던 친구는 “너도 민족이랄지 뭐 ’그런 거‘ 좋아하냐?“ 고 물었다. ’나는 민족을 개념적으로는 존중하지만, 배타적인 순혈주의적 민족주의라든가 나치와 파시스트 그리고 일본의 천황을 볼 때엔 일종의 종교적 개념이 내포된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인 모든 것이 그렇듯 합리적이라든가 이성적이라든가 같은 표현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에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려는데 그러니까 약간의 거짓을 섞자면 김구 선생이 떠올랐다.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을 다했던 이’라서 라면 순 거짓이고 김일성을 만나러 38선을 넘어갔던 선생의 모습을 담은 활동사진이 머릿속에서 좌르륵하고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최대한 백범의 미소를 지으며, 자장이 범벅이 돼있는 입으로, 탕수육을 하나 집어 먹으며 이러저러한 내면이 오롯이 담겨있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이다 하나 먹어도 되냐?” 

그러니까 난 답답했다. 트림 하듯 생각을 뱉어보려고 사이다를 ‘들이켰다’. 친구는 뉴스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뉴스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쩐지 어색한 악수를 하고 있었다. 

“통일은 한 이삽십 년은 기다렸다 해야 되지 않을까. 독일 봐봐, 아직도 회복이 안 되잖아. 우리는 독일보다 더 못사는데 더 심각해지겠지. 우리 남한이 더 먹고 살만해질 때까진 통일 된데도 말려야 돼.” 

문뜩 해방 직후의 좌와 우, 찬탁과 반탁, 남과 북으로 맹렬히 갈라지던 사람들을 붙들기 위해 가랑이가 찢어져라 매달렸던 김구 선생이 떠올랐다. 그리고 겨우 봉합을 하려고 한 땀 꿰는데 어둠속에서 안두희가 뚜벅 뚜벅 걸어왔다. 안두희의 늘어진 손에 질겨보이는 실이 달려있다. 실은 어둠속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어둠이 너무나 깊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김구 선생은 그 어두컴컴한 곳에서 어디선가에서 새어 들어오는 어스름한 빛에 의지해 바느질을 하려고 한다. 선생은 침침해져버린 자신의 노안(老眼)을 한탄하는 대신에 열심히 불을 찾는다. 실이 팽팽해지고 안두희의 손이 올라간다.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다. 권총이 불을 뿜는다. 선생이 쓰러진다.  안두희도 바람 빠진 풍선마냥 바닥에 널브러진다. 안두희에게 달려있던 실이 어디선가 잘려나간 듯 힘을 잃고 늘어진 체 바람에 나부낀다. 

그런 말을 들으면 선생은 슬퍼할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뿐이었다. 통일이 돼야 한다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까지 부르는데도 말이다. 통일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려는데 기껏해야 우리는 한민족이니까 따위의 같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이유나 북한의 자원, 그중에서도 인적 자원을 이용하느니 어쩌느니 남북 양측의 막대한 국방비 지출을 경제 발전에 쓸 수 있다느니 어쨌다느니 같은 싸구려 경제논리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 때문에 선생은 더욱 슬퍼졌을지도 모른다. 맙소사. 남북이 다시 만난 이렇게 좋은날에 선생을 슬프게 하다니. 선생께 사죄의 잔이라도 권해드리고 싶은 날이었다. 더불어 선생과 술이라도 한잔 하며 밤새 이야기나 하고 싶은 날이었다. 

어쨌거나 복귀하자마자 백범일지를 다시 펼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단지 근무시간 사이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포상휴가가 탐나서 읽을 때와는 다르게 그러니까 순전히 선생이 하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였다. 그러자 선생은 어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성의껏 들려주었다. 선생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니 선생은 조금의 과장에도 주의하고 자아도취는커녕 일단의 성취에 대한 경계까지 하면서 진지하게 자신의 일생과 깨달은 바와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개구쟁이 소년 창암이었다가, 수천 명의 연비를 이끄는 ‘아기접주’였다가 의병전쟁에 참가하고 의기로 일본군인을 때려죽인 열혈청년 창수였다가 탈옥하고 원종이라는 이름의 중이 되고, 신교육․계몽운동가 연하(蓮下) 김구(金龜)에서 망명독립운동지도자 백범(白凡) 김구(金九)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하다고 밖엔 말하기 힘든 자신의 생을 회고했다. 선생은 늦게 결혼한 탓에 아직 한참 어린 두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썼다고 밝히면서도 책을 써낸 이유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쓴 것이 아니라 단지 일제의 핍박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에 후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자식들에게 아비의 경력을 알려주기 위해 썼다며 자신을 본받지 말고 동서고금의 위인을 본받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선생의 애끊는 부정(父情)과 일제와의 항전을 앞둔 비장함이 절실하게 느껴져 가슴이 뻐근해졌다. 

선생은 신민회 사건으로 두 번째 옥고를 마치고 나올 때에 스스로의 호와 이름을 바꾸어 공표하였다. 선생이 일본군경에게 붙들려 뭉우리돌이라 불렸을 때부터 그렇게 결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의 애국심이 자신정도가 돼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람’으로 백범(白凡)이라 스스로를 칭한 것이었다. 언뜻 너무 단출하여 초라하게까지 보이는 선생의 호에 이런 큰 뜻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선생의 생생한 육성으로 독립운동사 이면의 숨은 이야기들과 선생 당신의 심정까지 듣고 나니 정말이지 내가, 우리가 알고 있던 김구 선생은 겨우 껍데기만 박제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나 거사를 앞둔 상태에서의 두려움, 한 여인에 대한 연모의 감정까지 선생은 인간적인 면모를 오롯하게 보여준다. 아니 보여준다기 보단, 굳이 꾸며대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적절하다.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한껏 꾸미며 보여주고 싶어 안달난 정치인과 연예인들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선생은 정말이지, 겸손한 사람이었다. 

선생의 사상이 듬뿍 담긴 ‘나의 소원’이야 말로 이 책의 백미이자 핵심이라 할만하다. 지난한 투쟁의 과정동안 담금질되어온 선생의 사상이 온전하게 담겨있다. 그 유명한, 소원 세 개를 물었더니 첫째는 대한독립이요 둘째는 우리나라의 독립이고 셋째는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말하겠다던 선생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글이 바로 이 ‘나의 소원’인 것이다. 

자주독립을 위해 평생을 투신했던 선생이 가장 원하는 바는 당연하게도 우리 민족이 세운 완전한 자주독립국가의 국민으로 사는 것이다. 선생이 원하는 국가는 일제나 나치 독일처럼 자기민족을 위해 다른 민족을 짓밟는 국가가 아니라 사해동포, 세계민족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위해 한몫 할 수 있을, 완전한 자주권을 가져 스스로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울 국가였다. 선생은 세계민족이 어울려 나와 남 구분 없이 사는 것을 선생도 최고의 이상으로 여겼으나 이는 너무 큰 이상이기에 쉽게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 보고 선결의 과정으로 자주독립의 민족국가를 생각한 것이다. 또한 선생은 국가 내에서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의사에 좌우되지 않고 국민들의 의사로 만들어진 법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를 꿈꿨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사를 알아보기 위한 절차일 뿐 그것이 내용자체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미국의 정치제도를 소련의 정치제도보다 우위에 두면서도 미국의 것 또한 무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의 제도만 취할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동안 발달된 몇몇 제도에서도 취할 것이 많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선생이 꿈꾸는 우리나라는 부국도 강국도 아니고 아름다운 나라였다. ‘생활이 풍족할만한 부력과 남의 침략을 막을만한 강력정도만 바라고 오직 한없이 원하는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선생의 표현에서 선생의 ‘아름다운 나라’의 구체 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인류의 모범이 될만한 문화를 꽃피워 진정한 세계의 평화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건전한 철학의 기초로 한 지식과 기술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선생은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며 교육자들과 후대의 교육자들에게 훗날을 당부하였다. 선생이 어이없이 서거하고 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 당부가 지켜지고 있는지 반문해 볼일이다. 그 뒤로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한 우리나라는 결국 냉전시대를 거스르지 못하고 남북으로 나뉘고 말았다. 한국전쟁 후 남북에는 각각 선생이 그토록 경계했던 독재가 시작됐다. 북쪽은 김일성부자, 공산당의 독재로 지금에 이르렀다. 남쪽은 독재의 주체가 자유당에서 군부로 바뀌었다가 개발논리에 의한 사상의 독재까지 이뤄졌다. 그 논리에 의해 베트남에 파병을 하기도 했다. 근 반세기만에 군부가 물러갔고 정권교체도 이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독재는 자본논리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선생이 예상했던 것보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훨씬 잘살고 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여전히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라고 보기엔 어렵다. 선생의 생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유해지고 강해졌지만 문화는 그다지 아름다워지지 못한 것 같다. 남북이 나뉜 채로 서로 화합할 생각보다는 분단 상태를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양측이 서로를 헐뜯고 우위에 서려고 경쟁해왔다. 최근에 들어 남과 북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선생이 원하던 인류전체의 평화와 행복에 기여하고 모범이 되는 모습은 아직 아니다. 선생이 우려한데로 ‘건전한 철학의 기초위에 서지 아니한 지식과 기술의 교육은 그 개인과 그를 포함한 국가에 해’가 돼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지금의 우리나라가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선생을 위시한 많은 애국지사, 그러니까 선생이 원했던 수많은 애국심 넘치는 백정, 범부들의 피와 땀의 결실로 지금의 우리나라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아직 할일이 많다는 것이다. 작게는 나라 안의 자유를 증진시키고 건전한 철학의 토대를 만들어 그를 바탕으로 교육을 정상화시키고 크게는 갈라졌던 남과 북을 다시 하나로 되돌려야만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는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를 이루고 세계에는 화합과 평화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선생의 천수가 언제까지였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선생은 당시로서는 많은 나이인 일흔넷의 나이에 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죽음은 너무 일러 보이기만 한다. 선생이 할일이 많고 선생만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을 잃었음을 한탄만 해서는 안 된다. 선생의 업적은 실로 초인적이었지만, 각지에서 민족의 미래를 위해 활동했던 운동가들, 초개처럼 목숨을 버린 열사, 의사들, 작은 성의나마 큰 뜻으로 보탠 수많은 무명씨들이 없었다면 시도조차도 어려웠을 것이니까. 세상은 영웅적인 몇몇의 힘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이 없음을 아쉬워만하며 그들을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선생이 원하던 대로 우리 백정 범부들이 선생처럼 해야만 우리가 바라는 바가 이뤄질 것이다. 다만 선생의 가르침을 다시 새기어 볼일이다. 

평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문자 그대로, 몸과 마음을 다했던 백범선생은 그러니까 조국의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에 운명하였다. 어쩌면 선생은 조국의 미래를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제의 온갖 탄압과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근근이 키워왔던 독립의 역량이 채 꽃피기도 전에 일제가 연합군의 원자 폭탄 두 방에 무조건 항복을 외쳤을 때, 대한의 국민들이 모두 기뻐 광복을 외칠 때 선생은 기쁘기보단 “이제껏 해온 노력이 아깝고 앞일이 걱정“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동포의 총탄에 맞아 운명하리라곤 아무리 선생이라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이 행복했기를 바란다. 비록 시대의 오발탄에 맞아 돌아갔더라도 그는 정말이지 선생이라고 부를만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더불어 많은 이들이 백범일지를 통해 선생을 만나봤으면 좋겠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데이비드 베컴까지 심지어는 패리스 힐튼도 자서전을 썼지만 책장을 덮으며 그 책을 쓴 사람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은 드물다. 더욱이 그 사람에게 술이라도 한잔 올리고 싶게 만드는 책은 더욱 드물다. 다음 외박에는 효창원에 한번 들려 술이라도 한잔 올려야겠다. 그리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이를 대하듯, 우리 모두를 열렬히 사랑하며 살다 갔던 선생 아닌가, 인사를 하는 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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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글은 자랑스럽다 이런건 절대 아닌데, 하나의 기점이 되었던건 사실입니다. 입궁한 뒤로 처음 합법적으로 독서를 하게 되었고, (화장실에 숨어서 책본것 말고는 처음이었지요) 입궁한 뒤로 처음 글을 쓸수 있었고, 책 읽는 시간과 글 쓰는 시간까지 고작 점심시간부터 저녁시간까지의 반나절만 주어진 상황에서 임기응변적으로 토해낼수 있는 순발력을 처음 맛봤다 할까요.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전무후무한 일이라 평생 마음먹고 쓴글은 마무리 지어본적이 없음) 이 상황이 저희 부대찌개집에서 응모한 이가 너무 적어 사장님께서 아침 회의때 오늘 일과 끝나기 전까지 토해놓으라고 하달된 지시사항에 쫓기고 쫓겨 막둥이인 제게 해치울수 밖에 없었던 일이었지요. 하하.

이 급하고 쉽고 어쩔수 없이 쓰여진 글 덕분에 기형도의 출생지로 파견 온뒤 포상으로 설탕 한움큼을 달게 먹었고 삼십만냥이나 되는 용돈도 잘 썼지요. 지금보니 참 기묘한 인연의 백범일지 되시겄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47:24 

 

병장 이동석 
  음, 다시 보니 정말 딱 초등학교 감상문대회에서나 나올 글이로군요. 
이게 상받은게 신기하거나 
혹은 이런 글을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부대찌개집 분들은. 2008-07-06
22:01:24
 

 

병장 이태형 
  아주 잘 읽었습니다. 
역시 동석님.. 
다른 글은 없나요!? 네!? 
컴온요! 

일제나 나치들도 자기네들 입장에서 보자면 훌륭한 정책이 있었는데 대실패 이후에 악당으로 취급되어 그 본질이 왜곡되어 해석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그네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니 오해마시길.. 

우리만큼은 우리나라 일이니까, 김구 선생이나 기타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겠지요, 왜곡되지 않은. 온전하게. 
어쩌면 외국에서 바라본 시각에는, 우리나라 역사 중에 수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일제나 나치처럼 악당으로 여겨지는 게 있지 않을까요? 

그냥 문득 든 생각입니다. 

가지로 외칩니다. 
꼭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2008-07-07
07:28:22
  

 

병장 김준호 
  아 이거 보고 한 번 써볼까 하다가 책도 못 구했고, 무엇보다 대박 귀찮아져서 포기했던게 문득 아쉽네요... 다른 것보다 용돈... 근데 기형도의 출생지가 계룡인가요?? 2008-07-07
09:35:17
  

 

병장 김원택 
  후후....... 백범일지 독후감 대회......... 거기...... 저도 제출을 했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저희 사단은..... 제출자가 많은 편이던걸요........ 

뭐........ 용돈이나 벌 수 있음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급조해서 하나 제출했더니..... 

과감히 사단에서 부터 짤렸습니다.... 후후.... 대신 지금은 전출간 저희 연대 소속 대위 한 분이 군단에서 상을 받으시더군요.....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백범이 바라는 방식으로 이 나라의 역사가 진행되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2008-07-07
10:55:27
  

 

 
  너무 잘 읽었습니다 상받은게 전혀 신기하지 않습니다 좋은걸요! 2008-07-07
12:16:47
  

 

일병 이동열 
  전 백범 선생님의 '문화의 힘'을 동경해서 

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라는 동경을 가지게 되었더랬죠(땀) 

아직은 머나먼 꿈이지만 언젠가 문화행정을 펼쳐보이고 싶습니다(웃음) 2008-07-07
12:22:10
  

 

병장 이동석 
  기형도의 출생지는 연평도입니다. 전 우연찮게 연평도로 파견오게 되었는데 오고나서 이곳에서 기형도가 나고 자랐다는걸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실상은 취학전에 경기도로 이사했음) 

전 기형도와 관련한 모든 책을 가지고 있을정도로 욕심은 많았지만, 한번도 그의 시를 찬찬히 읽어보지는 않은 게으른 팬이었습니다. 안개가 짙게 껴서 배가 안뜨고 설탕 섭취도 다음을 기약해야했을때 울적한 심정으로 기형도 시집을 폈는데 경기도 연평에서 태어났다는걸 알게 되었지요. (또 우연의 운명적 해석) 

어쨌거나 덕분에 기형도와 관련된 책을 단번에 읽을 기회가 생겼고, 그 다음날에는 그 짙은 해무가 걷혀 설탕도 무사히 섭취할수 있었죠. (또 극적으로 미화하는 그저그런 일상) 2008-07-07
12:33:26
 

 

병장 이동석 
  태형// 
태형님 인정을 받은게 가장 기쁘군요. (웃음) 
계룡대 시절 쓴맛을 진하게 느낄때의 몰래 기록하던 파일들을 받아서 있긴한데, 패스워드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글과 지금의 글처럼 뭔가 단절된듯 합니다. 허허. 그나마 이건 해당 행사를 주관했던 곳의 게시판에서 찾아서 올린거지요. 

일제나 나치에 관해서라면 책마을 다른분들이 잘 설명해주실 겁니다. (하하) 

제 개인적인 의견이라면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그들의 행위도 승자에 의해 과장된면이 없잖아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곤 해도 그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자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인접국에 막대한 피해를 미친건 사실이니까요. 물론 그 시대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하는짓이 다 그랬으니까 그들만 유난히 비난받아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놈이 그놈이다,라는건 아니고 승전국들은 과연 뭐가 얼마나 떳떳한지, 독일이나 일본같은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이 전쟁을 일으킬수 밖에 없었던 정황을 따져 보아야 하지는 않을까 정도랍니다. 
어쨌거나 전체주의와 국익이라는 개념이 결합되었을때 그 결과는 얼마나 가공할만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할 반면교사의 결정체라고 생각합니다. 홀로코스트와 디아스포라는 그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설명이 안되는 것이지요. 

전후 당시의 독일인들의 죄책감을 다룬 영화로 스티븐 소더버그(오션스 시리즈 만든)가 고전적인 흑백영화로 만든 '굿 저먼'이 있습니다. 조지 클루니, 케이트 블란챗, 토비 맥과이어 같은 배우들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소더버그는 무슨 능력이 좋아서 하는 영화마다 캐스팅이 그따위인지...부럽...) 

의열단이나 한인 애국단 같은 무장항일운동을 했던 단체들을 대하는 일제의 자세는 마치 탈레반을 대하는 알흠다운제국의 자세에 비견할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찌 감히 탈레반 따위를 항일애국지사들에게 비견하냐고 격분하실는지도 모르겠지만,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입장에선 알흠다운제국나 일제나 고놈이 고놈일꺼라 생각됩니다. 

일제가 자그마치 후진 왕정 국가 조선을 개화시켜주기 위해 (더불어 대륙진출의 거점과 전초기지를 위해) 점거한것처럼 알흠다운제국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파쇼 독재정권을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침공한거 아니겠습니까? (더불어 석유와 무궁무진한 지하자원을 위해) 

왠지 적어놓고 식겁해서 알흠다운 제국으로 바꾸었습니다. 
아이 러브 뉴욕!! 깁미더 쵸콜렛!! 2008-07-07
16:57:56
 

 

병장 이동석 
  준호// 준호님 댓글보고 위의 댓글 달았답니다. 대답이 되었을지. 그때 자그마치 우리그룹 총수님과 임원분들과 무엇보다도 김구 선생의 친아들인 김신 전 회장님까지 대동한 자리에서 상받은거라 아무리 개념없는 비정규직인 저로서도 다리가 후덜거리더군요. 

그 감흥을 이어가 공군 독후감대회때는 좀 더 본격적으로 써보려고 했습니다만, 결국 참을수 없는 귀찮음으로 포기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걸 보니 글쓰는건 글 쓸 여유가 있어서 쓰는게 아니라 쓸수 밖에 없을때 쓰는것 같습니다. 

원택// 아무래도 부대찌개 분들은 약간 로리타 취향이라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 비슷한 공모전 결과를 보고 수상작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웃음) 정말이지 뭔가 희망에 차서 부르르 떨며 눈물이라도 한줄기 짜줘야 되는것 같습니다. 
백범이 꿈꿨던 나라라. 국가주의자는 아닙니다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운건 어쩔수 없군요. 하하. 

정민// 감사합니다. 정민님 활동도 인디큐알에서 잘 구경하고 있습니다. (웃음) 

동열// 동열님의 문화행정 기대하겠습니다.(웃음) 단편 영화 찍으며 유관 기관 드나들때마다 의외로 답답한 문화 행정 공무원들과 의외로 유연한 일반 행정 공무원들을 보면 전문적인 문화 행정가들의 필요성을 절감했었답니다. 2008-07-07
17:3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