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소유의 종말』 회고
병장 정영목 2008-07-23 09:21:17, 조회: 239, 추천:0
다음 주까지 슈가라 오늘 이외에는 시간이 없을 듯 합니다. 막 일병 달았을 때 책마을에 올렸던 글, 퇴고해서 다시 올리는 걸로 대신하겠습니다. 다음 1000자 글은 일자리 나누기와 관련된 주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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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미래를 정보화 시대라는 용어로 표현하지만 이는 산업 시대를 인쇄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처럼 협소한 정의이다. 그보다는 접속의 시대라고 부르는 게 적합하다.
접속 중심의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한시적으로 팔아 치우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산업 시대에는 소비자에게 상품을 팔면서 무료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요즘은 애프터서비스를 통해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겠다는 계산으로 상품을 아예 공짜로 제공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값싼 내구재는 여전히 시장에서 거래되겠지만 가전 제품이라든지 자동차나 집 같은 고가품은 공급자에 의해 소비자에게 단기 대여, 임대, 회원제 같은 서비스 계약의 형태로 제공될 것이다.
판매자와 구매자로서 시장에서 재산을 교환하던 근대 경제의 기본 구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재산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재산은 엄존한다. 하지만 재산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빈도는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경제에서 재산을 장악한 공급자는 재산을 빌려 주거나 사용료를 물린다. 근대 경제의 중요한 특성이었던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 교환은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지는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 접속으로 바뀌게 된다. 시장은 여전히 살아남겠지만 사회에서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기업은 물적 재산이건 지적 재산이건 교환하기보다는 접속하는 쪽을 택한다. 물적 자본의 소유권이 한 때는 산업 사회의 근간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주변적 지위로 밀려날 것이다. 기업은 물적 자본을 자산이 아닌 단순한 경상비로 취급하게 된다. 반면 지적 자본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고,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지적 자본을 절대로 팔지 않고 단단히 거머쥔 채 제한적으로 임대하거나 사용권을 빌려 준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확확 바뀌는 세상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진 생각이다. 가진다, 보유한다, 축적한다는 생각이 금과옥조로 떠받들어 졌고, 사유 재산이 인간을 재는 잣대로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세상에서 소유의 의미가 퇴색하게 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오히려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간형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 각광 받을 사업은 예전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화적 체험을 파는 사업이 될 것이다. 이것이 접속의 개념과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리사는 자신이 만든 요리를 파는 것이 아니라 맛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에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경험을 팔아야 한다. 그 요리의 역사, 의미가 첨가되면 더욱 좋을 것이고, 날마다 갖가지 음식으로 회원제 점심 파티를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패스트푸드를 팔 때에도 단순히 빨리 먹기 위한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그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음식 먹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 잠시 속하는 경험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너는 내 것, 나는 네 것"이라는 말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곤 한다.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접속의 시대에는 "네가 나라는 존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잠시 권한을 준다"라는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자신을 결코 팔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아직은 무정하고 사랑을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로 치부되기 쉽지만, 이미 우리들도 실제론 그렇게 하고 있다. 결혼이 과연 소유의 의미일까 임대의 의미일까? 이건 해석하기 나름이다.
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 의식이 유희 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 이는 사실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문화 자본주의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발전시켜 온 문화적 다양성을 샅샅이 발굴하여 상품화 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문화적 다양성은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마치 자연을 이용하여 생산력을 극대화 시킨 산업 시대가 자연을 피폐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시대 흐름을 미리 읽고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 나가야 한다. 이는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소유에서 접속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조류 앞에서 사람들은 사회 계약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사유 재산의 관념이 산업 시대의 근간이었음을 잊지 말라. 시장에서 재산을 거래한다는 발상을 버리는 것, 인간 관계의 구조적 틀에서 일어나는 개념 상의 변화를 소유에서 접속으로 밀고 간다는 것은, 마치 지금으로부터 5백여 년 전 영국에서 토지와 노동을 재산 관계의 틀 속으로 사유화하려는 인클로저 운동이 벌어졌을 때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문화 영역이 상업 영역에 흡수되어 가는 상황에서 우리 문명은 과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가? 음식점의 예처럼 우리의 문화가 보다 풍요로워 질 것이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랑의 예처럼 우리가 선뜻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접속의 시대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은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이건 필자의 사족이건데, 사랑의 영역에서는 보노보처럼 자유로운 성행위로 사회 평화를 추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33:33
병장 장윤호
잘 읽었습니다.
소유에서의 접속으로의 패러다임 이행의 '원인'이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의문으로 남습니다. 때문인지 접속중심의 경제구조와 그 사회문화적 양태 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네요.
글로 유추해보면 이행의 원인은 문화산업의 중흥 때문인 것 같습니다만,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수 있으신가요? 2008-07-23
10:10:37
병장 정영목
가장 큰 원인은, 변화가 너무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뭔가의 유용성이 너무도 빨리 퇴색되다보니, 소유하는 행위가 낡은 것을 창고에 재워두는 것와 진배없어진 거지요.
역으로 생각해봐도 됩니다. 변화가 느리면 일시적인 접근권 만을 사고 파는 행위가 우위에 설 수 없을 겁니다.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는 비용이 더 들테니까요. 2008-07-23
10:29:51
일병 이동열
유형의 세계에서 무형의 세계로 바뀌어 가는것은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무형의 문화영역이 점점 상업화되는게 한편으로는 걱정스럽습니다(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질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지켜나가야할지(먼산) 2008-07-23
10:45:17
병장 장윤호
답변 감사합니다. 인간문화와 생활양식의 휘발화(?)라고 이름 붙여도 되겠네요.
경제구조에 이어 인간의 생활양식마저 무정형화되고 유동적이 된다면..
소외라는 단어만이 머리 속을 맴도네요. 어제 마씨 아저씨 이야기를 읽어서 그런가.. 2008-07-23
11:09:40
병장 정영목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문제를 일자리 나누기로 푸느냐, 완전 경쟁으로 푸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상이 확연히 달라지듯이.
접속의 시대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현 체제 그대로 그 시대를 맞이하면 아무래도 부정적 효과가 더 클꺼라는 시각에는 동의합니다. 인간 소외, 문화 다양성의 고갈 등. 그러나 공유의 전략적 우세라는 상황을 잘 이용하다면 분명 나쁘지 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그 관련 흐름으로써 위키노믹스라는 용어도 회자되고 있지요. 2008-07-23
12:07:40
병장 이동석
전 사족이 마음에 드는군요. 러브 앤 피스.
소유가 종말되가고 접속이 시작되고 있는 이때
결혼제도가 과연 개인이나 사회에게 계속 유효할지에 대해 회의가 들었거든요.
사랑은 믿습니다만, 결혼은 못믿겠습니다.
말이 좀 짧지만, 조만간에 제가 생각하는 후리섹수론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깁스도 풀었는데 병영문학상도 좀 써야할터인데) 2008-07-23
12:56:05
병장 이태형
아직도 소유냐 존재냐를 다 읽지 못해서 그런가.. 2008-08-09
15:2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