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발자크와 함께한 7월, 결산
이병 홍명교 2008-09-01 12:28:12, 조회: 280, 추천:3
7월 결산 짧게 써보았습니다. 도서관에서 찾은 책도 있고, 제가 구입한 책들도 있습니다. 발자크를 읽다가 중간에 문체론, 문학이론에 관한 책들이 껴있네요. 독서후기가 많이 늦었네요. 앞으로 자주자주 들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무 기여도 없는 저를 필진으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필진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겠습니다. 며칠 있으면 사바세계에 잠시 나가는데 그 전에 얼개를 써서 올리겠습니다. 모두들 좋은 하루되세요(웃음)
1. <시대의 우울>, 최영미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들 중 겨우 꼽은 읽을 만한 몇 안 되는 책이었습니다. 시인 최영미가 몇 년에 걸쳐, 그리고 몇 번에 걸쳐 유럽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겪고 느낀 것들에 대해 일기 쓰듯이, 에세이 쓰듯이 써놓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작가의 여행이 다분히 ‘미술관’, 그리고 ‘엄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유럽 대륙과 영국 등 곳곳에 있는 미술관, 박물관, 성당 등의 예술작품들에 대한 감상기같은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이 분에 대해 아시는지요? 최영미씨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로 문단에 화려하게, 그리고 논란 가득 안고 등단한 스포츠권 출신 시인입니다. 이 소박한 여행기에는 그 시절 그 논란많던 시를 둘러싼 비난들에 대한 억울함의 하소연도 조금 담겨있습니다. 역시나 텍스트라는 것은 그것 자체로는 존재한다고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요컨대, 김지하 시인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같은 글도 어느 순간(91년 5월의 그 폭발적인 시기. 2008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숫자--100만명--가 거리로 나왔던 시기죠.), 어느 매체(그 당시 이글은 조선일보에 실렸죠.)에 실렸는가가 그 글에 부여된 정치성을 부여했던 것처럼 말이죠. 여하튼 시대의 무게에 상처받은 이 한 개인--최영미--은 자신이 만든 연못으로부터 한동안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2. <사라진느>(오노레 드 발자크)
발자크의 ‘인간희극’ 중 단편 네 작품을 모아놓은 단편집입니다. 발자크는 '인간희극'으로 당대의 풍경을 빠짐없이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인간희극’은 90여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대부분 장편이지만, 소수의 단편도 남겨 놓았죠. 본래 발자크는 ‘인간희극’을 크게 네 개로 나누어 구성하려고 하였으나, 마지막 4부는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인간희극 속에는 수백여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요컨대, 갖가지 소설마다 등장했던 인물들이 재등장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인물들의 관계망은 소설과 소설 간의 경계를 넘어서서 얽히고 설키게 됩니다. 요컨대 <사라진느>에서 나왔던 노인의 자손들이 <고리오 영감>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죠. 한 발자크 연구가는 발자크의 '인간희극' 90여개의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들의 총 등장횟수를 각각 계산하기도 했는데, 이건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네요. 아무튼 이 수백여명의 인물들은 당대 파리에서 살고 있는 귀족, 왕족, 부르주아, 평민 등을 아우르며 구성됩니다. 이런 독특한 구성 때문에 '인간희극'은 캐릭터들의 직조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라진느>는 몽환적이고 기묘한 한 노인에 대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묘사하는 솜씨가 뛰어난 작품으로, 롤랑 바르뜨가 무수하게 언급했던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생리적으로 남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평생을 이름 높은 가수로서만 살아온 한 노인을 어느 무도회장에서 만난 화자가 그의 과거와 삶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그 노인의 사연을 역추적해나갑니다.
이 책에는 <사라진느> 외에도 3개의 단편이 더 있는데, 그 중 단테가 이탈리아에서 잠시 잠적해 있던 시기에 있었을법한 사건을 가정하여 쓴 소설은 몽환적이고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고딕소설과는 다른 차원이며, 또 낭만주의 소설과도 다른 이 소설은 발자크가 만들어낸 새로운 유형의 소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3. <사르트르 - 시점과 타자>
사르트르의 여러 저작들 중 <존재와 무>에 대해 한국외대 불문과 교수이자 사르트르 전공자인 저자가 철학적 과제들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얇은 책입니다. 살림지식총서로, 쉽고 축약적입니다. 그러나 역시 <존재와 무>를 어서 읽고 싶다는 생각만 드네요.
4. <미셸 푸코>, 살림
작년에 영상이론 공부하시는 분들이랑 같이 미셸 푸코 세미나를 몇 개월간 하면서 <광기의 역사>와 <감시와 처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등을 읽으면서 푸코에 대한 관심을 깊이 가졌었습니다. 스승인 알튀세와 정치적으로 돌아선 이후의 그의 반정립적 태도에는 깊이 동의할 순 없었지만, 그가 얘기하는 계열체적 역사연구 방법론이나 역사관이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살림지식총서에서 나온 이 작은 책은 ‘친절한 후기 푸코 안내서’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책입니다. 글이 난삽하고 푸코 연구에 있어서의 번역투의 문장들이 곳곳에서 산만하게 전개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들은 눈에 잘 안들어오더군요.
5. <골짜기의 백합>(오노레 드 발자크), 홍신출판사
시골의 한적한 고장의 몰락한 귀족 출신인 젊은 남자가 어느 무도회에서 기혼의 한 백작 부인을 만나면서 운명처럼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과 화려한 궁전에서의 만남들도 그드르이 사랑을 이루고 말죠. 대체로 이 시기 19세기 프랑스의 소설들은 이런 식의 플롯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 <골짜기의 백합>이 사실주의 문학의 막을 열은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단지 발자크가 쓴 소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시대의 정치적 환경, 시대의 공기, 인물심리 등이 서로 얽히고설켜 전개되는 서사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속물적 근성,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사슬, 돈과 물욕에 점령된 속세 등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관조하고, 또 이야기의 경계 밖에서는 시대의 풍경을 그려냅니다. 발자크는 낭만주의라는 이름으로 다분히 현학적으로만 전개되던 당대의 문학이 사회와 시대의 풍경을 그리고 비판적 기능을 담당하는 예술 장르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가 당시에 귀족적 삶을 동경하고, 왕당파적 견해를 지닌 정치지향을 지녔음에도 스스로 자신의 예술에 의해 ‘혁명적’ 지위를 획득했다는 평가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땐 업무 때문에 한창 바쁘고 힘들 때였습니다. 게다가 열흘 넘게 읽다보니까 정신적으로도 좀 침체기에 빠지더라구요. 그래도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말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머리 속에 가득 차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 책을 읽다가 종종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늦은 밤 침대 위에 작은 불을 켜고 2시간을 읽다가 책을 덮은 그날 새벽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책읽기가 뭔가 저를 수행하는 자세로 저를 이끄는 것 같네요.
6. <사랑과 행복의 비밀>(오노레 드 발자크)
80여 페이지 분량의 두 개의 단편작품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과 행복의 비밀’이라는 작품이고, 또 하나는... (흠) 제목을 잊어먹었네요. 두 작품 모두 흥미롭고 유머가 많아서 몇시간만에 후다닥 다 읽었습니다. 발자크 여행도 막바지로 가는 느낌이네요.
7. <문학이론입문>(테리 이글턴), 창작과비평사
영국 문화이론계를 대표하는 문학이론가 테리 이글턴의 근대 유럽문학 비평서입니다. 소설 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다루며 문학이론을 설명하기보다는 문학이론사에 대한 비평서이므로 ‘입문’답지 않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영국 근대소설부터 시작해서 프랑스 낭만주의, 사실주의, 상징주의와 미국의 신소설, 그리고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까지 비판적으로 돌아보면서 문학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요컨대 문학이 세계의 모든 것을 설명해내거나 구원할 수 있다는 망상도, 또는 문학이란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상관없이 따로 떨어져있다는 고립주의도 문학을 구원해낼 순 없다는 것입니다.
테리 이글턴은 구조주의가 영국과 미국의 보수적인 문학이론의 한계를 뒤집어 전혀 다른 지평을 밝혔다고 일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구조주의’도 68년을 경과하면서 많은 한계에 봉착했다고 평가합니다. 과연 문학, 또는 예술이라는 것이 그간의 기대들처럼 세상의 ‘구조’를 밝혀내는 도구적 기능을 갖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는 것입니다.
문학과 예술의 역할에 대한 세상을 향한 질문에서 ‘문학이론연구사’를 비판적으로 소개해나간 저자는 문학이론연구사에서의 주요 문학이론가들을 하나하나 소개한 후 종반부에서 다시 다른 질문으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그렇다면 문학이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것일까요? 문학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의 긴장상태를 팽팽하게 유지하는 것 자체가 문학이론의 역할이며, 지배이데올로기의 파열구를 만드는 역할을 자임하게 될 것입니다.
8. <참여문학론>, 살림
일전에 읽은 <사르트르 : 타자와 시선>을 쓴 변광배씨가 쓴 책으로 이 책은 장 폴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개괄적 입문서입니다. 이 책에 드러난 세 가지 주제 중 두 가지에 대한 대답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문학이 존재하는가? 무엇을 써야 하는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9. <문장강화>, 창작과비평사
1930년대에 조광지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 출판한 이 책은 소설가 이태준이 자신이 지닌 글쓰기의 정수들을 정성껏 모아 엮은 글쓰기 기초학습책입니다. 지난 1989년 재출간 이후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고 2004년에는 제2판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예문으로 제시된 글들은 대부분 1920~30년대 당시의 이름 높은 소설가들이 쓴 글로 그 자체로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방법론에 있어서 기술적 방법론이 아닌 문체론적인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그치는 저자의 진정성을 접하는 데에서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39:48
병장 이태형
아는건 문장강화 뿐이로구나.
나머지는 포스가 느껴지는 것 뿐이로군요. 2008-09-01
12:31:57
병장 조현식
이런 분들이 있는데 제가 어떻게 필진을 하겠어요?
읽어본게 하나도 없군요.. 더군다나 이데올로기의 파열구 자임 부분에서는 거의 이해조차 안갑니다. (눈물) 2008-09-01
13:22:55
병장 이승익
리플을 달기에도 무서운 수준의 결산입니다.(어흑) 2008-09-01
13:31:29
병장 이동석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홍명교님 같은분이 이상한겁니다. (농담)
이런 분이 조선시대때 태어나셨으면 아마 세살때 사서삼경을 떼고 다섯살때 왕 앞에서 시를 지어내고 일곱살때 과거에 합격할...(죄송)
원체 책 많이 읽으시면 글이 좀 달리거나, 글이 화려하면 실속이 없거나 하던데
홍명교님은 욕심쟁이. (농담) 2008-09-01
13:35:07
상병 이동열
왕의 귀환인가요?(웃음)
아무튼 명교님을 기다리던 저같은 이로서는 반가울 따름이네요
명교님 기다렸습니다~ 2008-09-01
14:19:45
이병 홍명교
너무들 과찬하시는데요. 저 그런 사람 아니예요. (억울)
그냥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자율성을 꽤 많이 보장해주는 좋은 부대에 와서 책을 많이 읽을 수가 있네요. 2008-09-01
15:07:06
상병 고동기
밀란 쿤데라의 「느림」에 인용된 소설이 「골짜기의 백합」이었군요.
소설 내용을 읽으면서 백작부인의 밀고 당기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하하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백작부인의 남편과 젊은청년이 마주치지 않나요?
명교님 덕분에 원작이 뭔지 알았으니 꼭 읽어봐야겠네요. 2008-09-01
15:24:31
병장 이동석
명교님을 그런사람으로 매도해서 죄송합니다. 음, 뭐랄까 시기와 질투를 억누르지 못하는 한 인간의 비겁한 시도정도라고 생각해주세요. (웃음)
<문학이론입문>이 유난히 눈에 띄네요.
예술로 모든 세계를 구원할수 있다
예술은 세계와는 무관하게 존재해야한다
사이에서 번민해왔지만, 사실 그 둘 어느것도 답은 아니다.
그런데 지배이데올로기의 파열구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게 문학 자체인가요? 문학 이론인가요? 물론 둘을 떼어놓고 생각할수는 없겠지만은 고민해왔던 문제의 실마리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여쭤봅니다.
그건 그렇고 발자크의 그 넓은 세계를 다 둘러보시다니,
하... 귀신같은 사람. (장근석식으로다가) 2008-09-01
15:26:25
병장 황인준
그냥 말이 안 나와요. 흑.
저도 저런 책 읽고 싶은데, 읽어도 이해가 안 가니 원.
다음 글도 기대기대 하겠습니다. 2008-09-01
16:45:54
일병 김예찬
와, 저도 발자크와 함께한 휴가를 보냈습니다. 반갑네요. 2008-09-02
13:18:58
병장 김준호
살림에서 나온 '미셸 푸코' 전 상당히 괜찮게 읽었는데요. 특시 '감시와 처벌'에서의
규율 권력에 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전에 학교에서 진태원 선생님이
하시는 '문화와 철학'이라는 수업의 리포트 방향 잡을 때에도 이 책의 도움을 많이 얻었던
기억이 있어서 좋은 책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나저나 참 알찬 결산들이 이어지네요. 뿌듯합니다. 허허 2008-09-02
15:34:25
이병 홍명교
김준호/
진태원씨 수업도 들으시고 부럽네요.
세미나네트워크 새움이라는 곳에서 가끔 세미나나 강연도 하시던데. 2008-09-03
08:38:35
병장 이재민
"이런 분이 조선시대때 태어나셨으면 아마 세살때 사서삼경을 떼고 다섯살때 왕 앞에서 시를 지어내고 일곱살때 과거에 합격할..."
예전 굇수 이영기님을 보고 든 생각이었는데...
요즘 시대에 한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있구나 하고 혀를 내둘렀던.. 2008-09-03
13:45:49
병장 김준호
새움네트워크에서 꾸준히 강의하신대요. 요즘도 제가 강의하는 학교에서 강의를 하시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 만약 하신다면 수강&청강을 할 생각이 아주 많은 그런 좋은 분이시지요. 2008-09-04
11:19:49
병장 김준호
아 제가 강의하는 학교가 아니라 제가 다니는 학교죠... 2008-09-10
10:15:39
병장 이동석
준호님은 오타쟁이 후후훗. (농담)
그 새움 네트워크?
강의를 들으려면 어떡해야하죠? 2008-10-02
10:21:01
상병 김동욱
동슥님 수강신청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땀) 2008-10-09
00: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