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로널드 프레이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1968년의 목소리  
상병 김소망   2009-06-02 065200, 조회 121, 추천0 

[독서후기] 로널드 프레이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1968년의 목소리


1. 1968년 혁명과 1950년대의 청소년들
  1950년대의 전후 유럽사회는 정치적ㆍ일상적 권위주의, 빈부격차에 의한 계급문제, 도덕적 보수주의가 만연하였다. 이 시대는 모두에게 고통의 연속이었겠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였으며 오히려 규범화시켰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극빈층의 청소년들은 사회적 냉대와 편견에 시달리며 좌절감과 분노를 키웠고, 중산층 가정의 청소년들은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과 동등한 물질적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도덕적 보수주의는 청소년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담론을 억압하였으며, 일상적 권위주의는 가정의 분위기를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억압의 연속이었다. 서유럽에서는 반공주의가, 동유럽에서는 중앙집권제적 스탈린주의가 대중의 정치적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제한하였다. 이 책의 저자 로널드 프레이저는 이 시대를 ‘교착상태에 빠진 50년대’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대중이 언제나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었다. 버트란트 러셀 등 진보적 지식인을 중심으로 반핵ㆍ반전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으며, 제 3세계에서는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해방되고,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영화 시켜 영국에 저항하는 등 교착상태 타파를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68세대들은 50년대라는 암흑의 시대를 보내면서 교착상태에 좌절하고 분노했지만 동시에 그것을 타파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기도 하였다.

2. 1968년 혁명의 시작 - 대학점거
  50년대라는 문제적 시기를 보낸 청소년들은 성년이 되어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를 이론화 하면서 개혁적인 담론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좌파적 청년단체들과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공부모임, 포럼을 통해 이루어졌다. 서독 사민당 산하 청년단체로 있다가 사민당이 우경화하자 사민당과 결별, 독자적인 운동을 주도한 서독 SDS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은 소련의 억압적 체제와는 다른 맑스주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였으며 아나키즘적 이상주의를 공부하기도 하였고 당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자였던 마르쿠제,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를 공부하였다. 또한 제 3세계의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공부가 있었으며 실천적으로 그들을 지원하기까지 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공부의 과정은 단순히 사회적 주체들에 대한 위치규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주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실천의 준비과정이었다.
  그들이 최초로 실천에 나선 것은 자신들이 속한 대학 내부에서부터였다. 그들은 대학을 ‘예비노동자 양성소’로 보았고, 자본가들이 원하는 인간을 무한생산해내는 ‘인간공장’으로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대학의 이사회를 움직이고 이사회는 교수들을 꼭두각시처럼 부린다. 그리고 학생들은 예비노동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친 후, 거대 자본의 물결 속으로 편입해 들어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은 제 3세계의 민족해방투쟁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며, 자본가의 미적 감각을 충족시키기 위한 건축물이 아닌, 서민들의 실용주택을 디자인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다. 어떤 급진적인 청년들은 이러한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대학생들도 임금을 받고 학업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대학 역시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 안의 부속품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들에게 있어서 최초의 실천은 대학을 점거하는 일이었다. 프랑스, 이딸리아, 서독에서 대학점거는 유행처럼 퍼져나갔으며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는 영국에서도 뒤늦게나마 대학점거의 물결이 일었다.

3. 1968년의 절정 - 노학연대(勞學連帶)와 학외 직접투쟁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실천하였다. 프랑스 대학생들은 CGT와 연대하여 드골정부에 대한 반대투쟁을 전개하였고, 투쟁의 과정 속에서 혁명의 상징인 바리케이트를 곳곳에 세웠다. 서독의 학생들은 영미의 지원을 앞세워 자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이란 샤의 서독 방문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였으며 이 투쟁의 물결 속에서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오네조르크를 추모하며 더 거센 항쟁을 지속하였다. 북아일랜드에서는 PD(People's Democracy  인민의 민주주의)계열이 한때나마 우파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공화주의자를 제치고 해방투쟁의 주류로 자리잡아 영국에 저항했으며 버나데트 데블린이라는 걸출한 웨스트민스터 의원을 배출해내기도 하였다. 이딸리아에서는 이딸리아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피아뜨의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의 노학연대투쟁이 있었다. 이 기간 중에도 대학은 끊임없이 점거되었으며 학생들은 건설노동자들에게서 헬멧과 쇠파이프를 빌려 무장한채 경찰에 맞섰다. 노학연대는 청년학생들의 실천의 절정에 속하는 것이었다.

4. 1968년의 마지막 - 새로운 방향의 모색, 좌절과 폭력
  68혁명은 민주지향적인 운동이었으며 스스로 ‘반권위주의’를 표방했다. 그러나 SDS 등 좌파 청년단체 내부에서의 중앙집권성, 의사결정의 비민주성이 문제제기 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반여성성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로널드와 인터뷰한 독일의 한 운동가는 그러한 움직임을 ‘반권위주의에 대한 반권위주의’라 불렀다. 남성 운동가들이 내세운 ‘성해방’ 담론은 새로운 ‘성착취’ 담론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집에서는 여성의 오르가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SDS에서는 그것을 논하지 않는” 경직성과 비일상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로널드 프레이저는 여성주의가 68운동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였다고 말한다.
  운동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에는 위와 같은 내부적 요인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각국 정부의 조직적인 탄압에 있었다. 정부의 조직적인 탄압은 때로는 폭력시위의 유효성과 정당성에 대한 좌파청년단체 내부의 의문제기 및 토론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또 일부 운동가들은 운동의 지지부진함과 조직적 탄압 앞에서의 무력함에 대한 좌절로 비무장 투쟁에 대한 회의를 나타냈으며, 조그맣게는 ‘일기예보자’와 같은 무질서한 폭도들로 변하기도 하였고, ‘조금 심각하게’ 변한 이들은 ‘적군파’, ‘붉은 여단’ 등의 무장테러집단으로 변모해 우파 요인에 대한 암살과 테러를 일삼았다. 운동의 물결은 그렇게 잔잔히 사라져갔다.

5. 68년 혁명과 한국
  최근 좌파 운동권 내부에서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는 부끄러운 사건들은 보수적 언론과 우파적 시민단체가 좌파운동 전체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운동권 내부의 경직된 위계적 분위기, 민족주의 편향성 등은 (한국에서는) 변혁운동 자체가 지니고 있는 원초적 성질로서 규정되고 있다. 이념적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이라는 양면성은 상상 속에서는 공존하기 힘들지만 이미 한국사회에서는 현실화 되어있는 것이다.
  운동권의 문제가 양면성에만 있었던가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와 ‘분단 및 독재체제’로 환원시켜 담론의 객관성을 결여시키고 이에 대한 비판을 ‘개량주의’ 내지는 ‘수정주의’라 매도하였던 한국 좌파 진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주체사상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으로 일관한 운동의 주류 세력(X총련)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1968년 혁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바는 운동의 양상 그 자체가 아니라 운동의 후반부에 드러나는 운동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운동하는 사람과 공부하는 사람은 모두 사회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구성에 관해 연구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규범적 사실’로서 주어진 사실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이며, 그 문제제기는 공부하고 있는 자신, 운동하고 있는 자신에게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허무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 아니라 운동과 공부의 방향성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한 실천지향이어야 한다. 68혁명은 안타깝게도 정치적 허무주의(정치적 무관심)로 막을 내렸다. 이제 교착상태에 빠진 우리의 운동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은 바로 68혁명이 후반부에 추구했던 바와 비슷한, 운동 자신에 대한 문제제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제기가 변혁에의 움직임을 사그라들게 할 것인지, 운동의 방향성을 더욱 명확하게 할 것인지는 우리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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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 쫓긴다는 핑계로 글을 완결성 있게 쓰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더 완결성 있는 글쓰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7-20
084020 

 

병장 이동열 
  저도 지금 소장중인 책인데- 읽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독서후기로 만나게 되니 반가움과 함께 부끄러움이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소망님의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2009-06-02
085947
 

 

병장 김형태 
  YTN의 자막뉴스로 보았습니다. 서울대 교수들 오늘 성명발표.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하여 성명발표하기로해... 라는 자막이었습니다. 

참 피나는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저 운동권에 있었던 대부분의 분들이 지금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 세대라고 생각하니 많이 뿌듯해집니다. 제 측근들도 운동권에 있던 분들이 많은데 이제 그들은 많이 변했나봅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말로 그들의 '영웅담'을 듣고 싶지만 왜인지 그들은 현실에 쫓겨 과거의 희망을 다 저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곤하죠. 

하아- 정말 이제는 우리 몫입니다. 2009-06-02
103406
  

 

상병 김태완 
  운동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이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현정치나 정당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겠죠. 
요즘은 무턱대고 좌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좌파를 욕하다가도 우파에 대해 지적하는 소리가 높아진다 싶으면 우파의 욕을 하는 일명 '팔랑귀'를 가진 청년들의 수가 현저히 높아진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연예계나 스포츠에만 관심이 있지 정치는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해 버리다가도 뉴스 혹은 세간에서 정계에 터진 사건 하나를 가지고 떠들어대면 이내 우르르 몰려들어 남들의 생각이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동조해 그저 한껏 욕을 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타국에서 비웃는 한국의 '냄비근성'을 참 여실히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비록 허무주의로 인해 사그라 들고 말았지만 68년 혁명때의 청년들처럼 현세계를 살고 있는 수많은 청년들도 운동 자체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나 정치에 적극적 관심을 가짐과 동시에 그와 관련된 공부를 많이 함으로써 부당하다 판단되는 것들에 대해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9-06-02
162247
  

 

상병 양동훈 
  태완씨의 말이 와닿네요. 
솔찍히 정말 말도 안되는 이분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적절한 이분법은 

결국 나이든 사람은 우파이고 젊은 사람은 좌파라는 거랑 
돈있는 사람은 우파이고 돈없는 사람은 좌파라는 거겠죠. 

좌파가 우파의 억압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까닭은 
나이에서 오는 지식의 양과 깊이가 후달리기 때문이고 

돈이라는 데서 오는 권력의 크기가 후달리기 때문이겠죠. 

우루루 그냥 휩쓸려가는 정신머리는 필요없습니다. 
자신이 자신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자신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속칭 '모범생'이라 불리는 녀석들과 '아는 것 많은 듯한 잘나가는 대학의 상위권 학생들'이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하니 진짜 진심으로 토할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깊이도 없는데다가 넓이도 없는 생각.... 온 신경이 자신과 자신 주위의 지극히 좁은 세상에 한정되어있는.... 안타까웠지만 결국은 그게 '이 세상'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인간 군상의 대표적인 모습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니가 뭔데 그딴식으로 판단하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 눈에는 그랬어요.) 

결국은, 우리 모두가 당당해지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 당당해지기 위한 조건들이 완성될 때 즈음에는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결국은 끝없는 쳇바퀴속에 말려드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2009-06-02
184359
  

 

상병 박원익 
  속칭 '모범생'이라 불리는 녀석들과 '아는 것 많은 듯한 잘나가는 대학의 상위권 학생들'이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하니 진짜 진심으로 토할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깊이도 없는데다가 넓이도 없는 생각.... 온 신경이 자신과 자신 주위의 지극히 좁은 세상에 한정되어있는.... 안타까웠지만 결국은 그게 '이 세상'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인간 군상의 대표적인 모습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니가 뭔데 그딴식으로 판단하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 눈에는 그랬어요.) 

위의 논평에 적극적으로 동감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자주 게워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본문의 유익한 내용도 잘 읽었습니다. 2009-06-03
06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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