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두통과 날개
병장 주해성 2008-09-08 16:10:49, 조회: 151, 추천:0
머리가 아파서 왔습니다. 선생님.
해결해 줄 수 있어요. 고칠 수 있으니 자 살펴봅시다. 머리가 어떻게 아프죠?
아파요 그냥.
욱씬욱씬 거리나요?
아뇨 그 표현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지끈지끈 거리나요?
아뇨. 그것도 아니에요.
그럼 머리 옆쪽이 아픈가요?
아뇨. 그냥... 막 머리가 아파요.
그럼 머리가 묵직한가요?
아뇨 아뇨 아뇨! 머리가 아프다고요! 악!!!!!
고열과 두통과 구토와 울렁거림으로 지칠 대로 지쳤다. 눈을 떴다 약을 먹고 쓰러지기를 만 하루. 더 이상 허리가 아파 누워있기가 괴롭다고 느끼던 찰나 돼지 멱따는 듯한 후임의 환호소리 -위닝에서 이겼나보다-를 기상나팔소리 셈 치며 일어나 옆 생활관의 후임에게 CD를 빌리러 갔으나 유키구라모토와 비틀즈는 누군가 빌려갔고 남아있는건 크러쉬나 에미넴, 맨슨 따위 밖에 없었다(난 환자였다) 얼마 남았다고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가 할 때 옆 관물대에 빛나는 흰색 책 한권이 보였다. “중고등생을 위한 필수 한국단편소설 35편” 내가 샀던 105편 시리즈는 어디로 갔을까 생각을 하며 차례를 보던 중 딱 눈에 하이라이트 되는 이름이 있다. 이상. 내가 이상의 작품을 읽어 본적이 있던가? 그의 이름을 볼 때 마다 이상해진다.
나의 짧은 독서량과 치약뚜껑만한 지적그릇으로 인한 한국 근대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은 단숨에 무너졌다. 초현실주의. 닝기리 이런걸 중학생들도 이해한다는 건가? 나는 “나”에 의식 속에 휘둘려졌고 그 의식의 끈을 부여잡기 위해 애썼다. 소설의 실존가능성과 독자의 해석의 영역을 폭넓게 늘여놓으면서도 비틀비틀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오 재미있다. 나는 여태껏 무엇했나 이런 거 안 읽어보고. 우우욱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본문 중
아내는 그에게 아달린을 주었지만 <날개>는 나에게 아스피린을 주었다. 아니다 아침에 먹은 아스피린이 이제야 드는지도 모르겠다. 허사 나의 선입견과 고통에 아달린을 놓아야지. 그리하여 날개를 달아 날아봐야지.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0:02:29
병장 이동석
저도 머리가 아파요. 작업할때는 무사했는데 오히려 끝나고 불꺼진 방으로 들어가다가 머리를 다쳤죠. 당시에는 괜찮더니 일어나보니 골이 흔들리는군요. 머엉-
뇌는 역시 소중해요.
아스피린이라도 먹었으면 하는데,
씁, 병원도 못가게 하는군요.
어지러운 통에 멱살을 잡을뻔했는데
그랬으면
더 머리 아플뻔했죠. e. 2008-09-08
19:22:11
상병 이우중
아직까지도 타이레놀과 아스피린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근데,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날개도 박제가 되어버린 걸까요?
아달린을 놓으면 다시 훨훨 날 수 있을는지...
저도 날고 싶어요. 2008-09-08
20:05:31
병장 이태형
필독서라기엔 좀 억지스러운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뭐 나름의 기준이 있으니까 선정한 것일테지만.
이상의 날개는 책마을에 정말 많이 언급되는군요.
꼭 읽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재밌다니, 기필코. 허허.
그나저나 비틀즈와 유키구라모토라니요, 부럽네요.
저희는 만날 가요밖에 2008-09-10
15:42:10
상병 김동욱
음, 생뚱맞지만
이상을 좋아하신다면 김연수의 <굳빠이 이상!>을 추천합니다! 2008-09-13
21:56:20
병장 이동석
음, 생뚱맞지만 추천 잘 받겠습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