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나는 오늘도 책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헤맨다  
상병 정근영   2009-03-04 00:24:33, 조회: 141, 추천:0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

  사람이 한 권의 책과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빈약하고 어설픈 나의 글실력으로 이것을 정의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단순히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정보들을 얻기도 하고, 또는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을 받으며 한참동안 그 책에 취해 살기도 하지만, 단지 이것만으로 ‘책과 만난다’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가 않은 기분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책을 읽는다’는 말이 주는 일방향적이고 단조로운 느낌 때문이리라. 자고로 ‘만남’이란 상호의존적이고 쌍방향적 소통을 뜻하는 것일진대, 유감스럽게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독서’의 범주에 이것은 포함되어 있지가 않다. 단지 수동적으로 텍스트를 섭취하고 책이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말할 뿐이다.
  그렇다면, 책과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 걸까. 앞에서 나는 ‘만남’을 상호의존적이고 쌍방향적인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책과의 상호의존적인 만남을 위해서는 내가 책을 읽음과 동시에 책도 나를 읽어야 한다. 이는 독서의 주인이 결코 책을 읽고 있는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책을 읽는 주인으로서의 ‘나’만을 강조하고 ‘책’을 단지 읽는 행위의 목적으로 인식할 때, 이 독서는 반쪽 짜리에 불과하다. 이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보고 인식하고 기억하기 때문에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또한 가식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독서는 읽는 이에게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독서로는 결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반면에 책을 읽는 동시에 책 속에서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한다면, 바로 이것이 책과 만나는 순간일 것이다. 이 순수하고 절대적인 순간 사이에는 어떠한 허위와 가식도 존재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작가의 대중적인 명성이나, 그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 따위는 전혀 관계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을 공명시키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문장 한 줄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작가의 명성과 판매부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그 책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사람과 책(더 나아가 그 작가)의 순수한 만남은 한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책을 만난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에는 우리 시대의 영향력있는 11인을 있게끔 만들어준 결정적인 책과의 만남이 소개되어 있다.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떠나서, 이들의 책 이야기는 그 자체로 훔쳐버리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고, 숨막히게 고혹적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들을 이루고 있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수많은 작가와 책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그러면서도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앞으로 읽을거리들을 찾아냈다는 즐거움과 내가 한번도 닿은 적이 없던 미지의 영역에 대한 동경때문이었을 것이다.
  보르헤스는 “나는 책 목록에 대한 목록을 찾아헤멨다”고 했다. 이와 비슷하게 나는 대학교 1학년때 가끔씩 도서관에 들러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거대하게 놓여져있는 서가와 서가사이를 지나다니며, 괜히 읽지도 않는 책을 꺼내어 훑어보고는 했었다. 머릿속에는 읽지도 않는 주제에 이런저런 작가들과 이런저런 책들이 입력되기 시작했고, 단지 ‘이름을 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기분에 젖었다. 마치「69」의 겐이 장 폴 사르트르와 오에 겐자부로의 전집 제목을 외우고 다녔던 것처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굳이 도서관에 ‘책’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눅눅하면서도 낯설지않은 책내음이 주는 깊은 아늑함과 포근함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너무 닳고닳아 이제는 반들반들해져 버린 낡은 책을 쓰다듬는 것을 좋아했다. 말하자면, 그때의 나는 ‘책’보다는 책의 향기를 맡거나, 책을 느끼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이다. 이 책은 왠지 모르게, 아무 것도 모른채 서가와 서가 사이를 거닐던 그 때의 내 모습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책을 왜 읽어왔는가. 사실 나는 아직도 자신있게 답을 말하지 못하겠다. 정혜윤이 책의 말미에 ‘살아보지 못한 삶도 삶이다’라고 말했듯,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느끼기 위해 책을 읽기도 했고,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책을 읽기도 했으며, 나를 마주하고 있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려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사실 나는 흔적을 찾아 헤메고 있었던 것이다. 나보다 먼저 살다간 이의 생각과 고뇌와 경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을. 나는 그 속에서 아직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 나 자신을 찾고 있었다. 내가 최근 2주일동안 단 한줄도 책을 읽지 못한 것은 아마도 다른 이의 글에서 나를 발견하고자 했던 압박감과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결코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 내가 책을 읽고 책이 나를 읽는 것, 여기서부터 책과의 만남은 시작되고, 내면의 변화를 갈구하는 불이 타오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요즘 너무너무 즐겁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같기에. 비록 독서가 예전같지 않게 약간은 치열하고 무거워졌으며,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이제 기껏해야 5~6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가벼운 책읽기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이제야 내가 올바른 책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헤맨다.



나는 자신의 책에 대해서 가장 겸허하게 생각했다. 그것을 읽는 사람들을 나의 애독자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건 잘못이다. [...] 그들은 나의 독자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독자일 테니까. 나의 책은 콩브레의 안경점 주인이 손님 앞에 내놓는 확대 유리알과도 같이 일종의 확대경에 지나지 않아. 그 덕분에 그들 자신을 읽는 방편을 내가 제공해주는 구실을 한다. -「베를린의 어린 시절」, 발터 벤야민
 

20.3.1.9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45:16 

 

병장 이동열 
22.36.32.7   문득 작가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이 떠올랐습니다. 텍스트를 읽어내려감을 통해서 작가는 죽고 독자는 살아나게 되지요. 텍스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면서 그 사유가 커져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벤야민의 문장을 읽으니 이런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갑니다. 

근영님을 바라보면 문득문득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요. 예전 독서후기때에도 말씀드린 것 같지만. (웃음) '비록 독서가 예전같지 않게 약간은 치열하고 무거워졌으며''예전처럼 가벼운 책읽기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는 문장에서 나아가는 근영님의 모습과 웅크리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한동안 불안한 상태에 있었고- 지금 역시도 그러한 상태에 처해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책이란 책을 못(?), 안(?)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벗어나려고 합니다. 언제까지 웅크릴 수는 없잖아요. 

저 역시도 책 속에서 잃어버린 저를 찾아보려 나서겠습니다. 함께 하셨으면 해요. 근영님과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2009-03-04
08:49:54
 

 

병장 안재현 
22.35.36.98   음 제목에 공감이 가는군요, 무슨책을 읽던 간에 전 주인공에 제 감정을 이입해서 읽는편이지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이에요 흐흐 2009-03-04
09:09:34
 

 

병장 이지훈 
18.49.9.198   그렇기 때문에 ‘책을 만난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저도 어서 책을, 그리고 저를 만나러 가야할텐데 설탕 후 정신못차리고 방황하고 있군요. 어서 가야겠어요 2009-03-04
22:38:51
 

 

상병 정근영 
20.3.1.47   동열 / 정말 요즘은 책이 잘 안 읽어져서 미치겠습니다. 책을 한 권 읽으면, 그 책에 대해 뭔가를 써야한다는 압박감이 들어서, 글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다른 책이 읽히지가 않아요. 요즘 들어서는 '단지 독서라는 행위에 나를 너무 구속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가끔 들고는 하는데, 책을 읽고 감상을 적는 습관을 들이고 나니까 이거 끊기가 힘든걸요.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어서 글 한편 쓰려면 꽤나 걸리는데, 허허. 아무튼, 함께해 보자구요. 궁을 벗어나려면 아직 많이 남았으니, 책이나 죽어라 읽어나가야죠, 크크 

재현 / 저랑 비슷하시군요, 흐흐. 저도 워낙에 읽고있는 책에 감정이입을 잘 하는 편이라, 읽을 때마다 '아, 이 책은 정말 최고야!'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때문에 객관적인 시선으로 독서후기를 쓰기가 참 힘들더라구요. 이미 사랑스럽고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허허. 예전에 하지연 씨도 이와 같은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지훈 / 요즘 안 보인다 했더니, 설탕을 먹고 오셨군요.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