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채식주의자 - 한강
상병 이우중 [Homepage] 2008-09-06 15:50:58, 조회: 234, 추천:0
워낙 필력 좋으신 분들이 많아서 그냥 꼬리만 달려고 했는데 요즘 독서후기가 뜸한 것 같아서요. 그래도 '책마을'인데 잡문이나마 독서후기가 많이 올라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한 번 써 봅니다.
이번에 소설집 ‘채식주의자’가 동인문학상 본심에 올라갔다는 말을 들은 터라 보자마자 덥석 집어 들었습니다. ‘채식주의자 - 몽고반점 - 나무 불꽃’의 세 소설을 모아서 만든 연작소설인데요, 작가는 ‘몽고반점’으로 2005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죠. 한국문학의 이해 시간에 ‘몽고반점’에 대해서 배우기도 했었는데 글쎄요...
각설하고, 1부 ‘채식주의자’입니다.
제목은 채식주의자인데 작품 속의 영혜는 채식주의자가 아닙니다. 육식을 하지 않는 거죠. 채식을 하는 것과 육식을 하지 않는 것, 이 둘은 토톨로지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여기서는 내포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채식주의자는 채식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잖아요. 해설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주의’라는 말은 대개 특정 대상에 대한 강력한 신념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나요. 실제로 그녀가 채식이나마 다른 사람(동물)이 먹는 것을 같이 먹는 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영혜의 채식은 동물성을 벗고 식물화되려는 부작위적 행위의 일환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몽고반점’은 저번에 수업할 때도, 이번에 다시 읽어볼 때도 그다지 와닿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직 수많은 AVI 파일들을 접하기 전에 저의 낙은 하나였습니다. 근처 비디오가게에서 16mm 국산 격정멜로 비디오를 빌려 보는 거였죠. 거기서 지금은 가수로 활동하는 두 분의 초기 작품들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했었는데요, 그 중에 ‘처제의 일기 4’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무슨 개소리냐고요. 네. 이 ‘처제의 일기 4’랑 ‘몽고반점’이랑 놀랍게도 내용이 겹친다는 겁니다. 제 어렴풋한 기억에 따르면 처제의 몸에 물감을 발라가지고 행위하는 걸 찍는데 제 3자가 등장하다가 결국은 형부 자신이 모델이 되어 찍는다는 게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거에요. 소설은 2004년에 발표됐고 영화는 세기말의 혼란 속에서였나 뉴 밀레니엄을 맞이한 들뜸 속에서였나 어쨌든 소설보다 먼저 제작되었을 텐데 말이죠. 물론 작가가 영화를 보고 따라서 소설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동의 묘사 측면이나 내용상으로 볼 때 두 작품은 크게 차이가 없다는 거죠 제 생각은. 만약 그렇다면 ‘처제의 일기’가 대종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사실 그렇진 않거든요 다른 영화들을 보면. 그럼 이 ‘몽고반점’이 꼭 이상문학상을 받을 만한 그런 수준 높은 작품이었나 하는 의구심도 아주 살짝 들기는 하고 말이죠. 그냥 그런 소설 아닌가 싶기도 해서요.
‘나무 불꽃’을 읽고 나서야 알았어요.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육식을 하지 않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닌 영혜씨가 아니었군요.
고기 안 먹는다고 버티다가 정신줄 놓고 나무가 되겠다던 영혜씨의 언니이자 그런 동생의 몸에 물감을 발라 놓고 관계하는 것을 찍은 사내의 아내이고 아픈 아이의 엄마이면서 다 큰 둘째딸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고기를 쑤셔 넣던 아버지의 장녀이기도 한, 그러면서도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당신이군요.
네, 당신 말대로 이건 꿈일지도 몰라요. 그건 영혜한테 하는 말이 아니잖아요. 당신 자신에게 애써 각인시키려고 하는 것 아니던가요?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에요. 그러니 계속 주무세요 아줌마. 안녕히.
붙이지 않아도 관계없을 것 같은 쓸데없는 사족 하나.
이 책은 해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해설은 해설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요, ‘문제나 사건의 내용 따위를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해설의 의미 아니던가요. 이 해설자는 그렇지 않아요. 내용을 더 어렵게 꼬아서, 라는 건 좀 무리가 있겠지만 어쨌든 별로 풀기 쉽게 설명을 해 주지 않아요. 제 생각은 그렇다는 거에요 여러분. 제 말에 현혹되지는 마세요.
그리고 해설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소제목에는 ‘갤러리’와 그 넘버가 붙습니다. 근데 이 넘버도 제멋대로 바뀌는데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네요. 일례로 “갤러리 42.19573587464576…… : 일상은 수난이요” 같은 것들이요. 뭐 마라톤 거리를 나노미터 단위까지 나누면 그렇게 될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불필요한 표현이라고 - 해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 생각하는 건 못 배우고 뭣도 모르는 저만의 의견이겠죠?
결산 때 뵙도록 하죠. 안녕히.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44:36
병장 정이연
친구들이 한강, 한강해도. 교수님이 한강은 말이다... 해도 소설만은 독고다이식으로
다 언급하니까 읽기 싫다며 안읽었었는데 이거 한 번 읽어봐야겠군요. 2008-09-07
08:21:19
병장 이동석
문인의 밤이었나, 뭐 그런 행사 옛 여자친구 따라 가봤더니
한강씨와 천운영씨에 몇몇 문인들 오셨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가도 왔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누구였드라)
한강씨는 뭔가 딱 예민하게 생기셨더군요. 작품 낭독을 하는 목소리는 뭔가... 음,
어쨌거나
문학이 죽거나 말거나 문인들은 끊임없이 나오는군요. 허허. 2008-09-07
21:19:47
병장 이동석
그건그렇고, 여기는 글마당이 아니라
책마을인데 막상 책이야기는 거의 없군요. 크크. 2008-09-07
21:20:59
상병 이우중
허허.. 글마당이라.
천운영씨 책 표지사진에는 너무 포스있는 사진들만 실려 있어서 무섭게 생긴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신 분들은 귀엽다고 하셔서... 한번 보고 싶어요(웃음) 2008-09-08
08:40:31
상병 김동민
한강, 너무 예뻐요. 저의 여신... 2008-09-15
14: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