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조선 최대 갑부 역관 - 이덕일  
상병 이지훈   2008-12-14 00:12:21, 조회: 138, 추천:1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에 거시사와 미시사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것들의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이해한 느낌을 말해보자면 거시사와 미시사는 광활한 평야에 서있는 인간의 두 가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광활한 평야에 서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넓디 넓은 평야 속에 서있는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반대로 자신을 돌아보다보면 자기 눈 앞의 엄청난 평야의 규모에 놀라고 만다. 역사학에 등장하는 거시사와 미시사라는 개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의 역사, 한국사학은 일제강점기, 육이오, 분단, 독재 등을 겪으면서 위에서 언급한 거시사와 미시사 중 주로 거시사 쪽에 편중된 연구 방향을 가지고 있다. 교과서만 보더라도 사회사, 정치사, 경제사에 보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미시사라고 볼 수 있는 문화, 풍속, 인물 등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미 30년 전부터 제기된 바 있으며, 요즘 쏟아지는 각종 '대중적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오는 역사 관련 서적들이 30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중학생 때만 해도 역사 관련 서적이라고는 어려운 말들로 뒤섞인,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중학생이었고(뭐 현재 수준도 크게 높아진 것 같진 않지만) 그 때는 그저 관심 분야 정도 였으니까 이렇게 기억이 남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최근 5년간 소위 대중적인 역사책이라고 소개하며 등장하는 책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이덕일 씨도 이러한 대중적인 역사책을 집필하는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또다른 책 '조선왕 독살 사건'은 모서점의 베스트셀러까지 올랐다. 그 책은 조선 국왕이 절대 군주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자신의 왕권을 위해 신권을 어떻게 견제하고 왕권을 지키기 위해 했던 각 국왕의 고민과 노력을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주제를 통해 흥미만 유발시키고 끝나버리는, 그저 옛날 이야기만을 말하는 책일 줄 알았는데, 각 국왕이 왕권 강화를 위해 어떠한 고민을 했고 그로 인해 신하들과 일어난 마찰 등에 대해 독살이라는 소재를 끼워넣어 생각보다는 구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최대 갑부 역관'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역관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기 때문에, 역관이라는 주제를 꺼내올린 것은 인정하겠는데, 그것이 전부다. 이 책이 역관이라는 주제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해보자는 의미로 나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머리말에서 분명히 이 책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역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조선왕 독살 사건'처럼 거시사가 보지 못하는 세밀하고 좀 더 역사적 인간 개인에 집중하는 미시사를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전혀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역관이라는 과거 직업(?)의 소개, 그 이상이 아니다. 처음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조선왕 독살 사건'을 봤을 때 생각했던 '자극적인 주제를 통해 흥미만 유발시키고 끝나버리는 그저 옛날 이야기'인 것이다. 현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역사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선 전혀 끄집어 낼 수 없다.

시중에 나오는 역사학 서적이 꼭 어떠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쏟아져 나오는 일련의 '대중적인' 역사학 서적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거시사와 미시사가 균형잡힌 한국사학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고 싶다. 광활한 평야만을 보고서는 세상이 넓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자신만 보고서는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거시사와 미시사 두 시각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항상 균형을 이루어 역사를 여러 부분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거시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했으나, 이제 연구의 성과가 드러나고 있는 미시사가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 위주로만 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연 이러한 미시사 연구 방향이 역사적 개인을 조명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역사학, 인문학일 수 있을까.

이 책과 같이 읽고 생각한 책
그래도 문학이 필요한 이유 - 김병익
조선 국왕 독살 사건 - 이덕일
역사학개론 - 이상신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3:46 

 

병장 이동석 
  이덕일씨는 집필실에 출근했다 퇴근하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더군요. 그 책들도 일정 시간동안 딱 그 정도의 비용만을 투여하는 정도-랄까요. 2008-12-14
00:21:17
  

 

상병 이지훈 
  으음 집필실 출퇴근이라, 신기하군요. 저에게 글쓰는 사람의 이미지는 항상 어딘가에 처박혀서 글을 짓는 그런...류 거든요 2008-12-14
00:43:28
  

 

병장 이동석 
  직장인 마인드-더라고요. 책 출판도 철저히 기획-에 의해 연봉 맞출정도로 출판하고, 흐흐. 2008-12-14
01:16:21
  

 

병장 이동석 
  미시사 영역이 어째 '자극적인 주제를 통해 흥미만 유발시키고 끝나버리는 그저 옛날 이야기'로 굳어져가는지, 사회교육학부-고로 역사학도이기도 한 저로서도 안타깝습니다. 현장 연구자들도 그런 수요-가 있는 분야만 연구하는것도 사실이거든요. 학문의 영역에서도 시장논리를 배제할수 없게 되었다는걸 인정하긴 싫은데. 쩝. 2008-12-14
01:41:05
  

 

상병 이지훈 
  저도 인정하긴 싫은데. 쩝 2008-12-14
02:30:25
  

 

병장 김민규 
  직장인 마인드의 글쟁이라. 진정성을 확보하고 싶다면 역시 혼을 담아야 해요. 혼. 절대로 전지현 얼굴이 겹쳐 떠오르면서 행복해지고 있는 상태는 아니랍니다. 2008-12-14
03:41:38
  

 

일병 김예찬 
  요즘의 이덕일은 대중교양저설가의 탈을 쓰고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교란 시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슬픈 건, 좀 진지한 사람들에게서도 이덕일의 이름이 한국의 글쟁이들을 논할 때 요새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는 점이죠. 제가 보기엔 공병호나 이덕일이나 다를게 없는 레벨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