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제비일기 - 아멜리노통브  
상병 이지훈   2008-11-06 03:26:37, 조회: 141, 추천:0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어요
책 자체의 느낌으로 후기를 쓰려고 했는데 읽은지 시간이 좀 흘러서 그런지
자꾸 다른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려고 하네요 허허
아예 소통이란 주제로 따로 글을 써볼까라고도 생각이 들더라구요 음...

인간에게는 더듬이 대신에 언어나 춤, 음악 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들은 개미의 그것처럼 완벽하진 않더라도 인간끼리 훌륭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더듬이”들은 개미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개미의 더듬이는 신체의 일부분인 반면 인간의 “더듬이”들은 신체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언제든지 인간은 자신의 “더듬이”들을 집에 놓고 올 수도 있고, 쓰레기통에 버려버릴 수도 있고,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처럼 창고에 처박아놓을 수도 있다. 개미는 자신의 더듬이를 달고 다니며 상대 더듬이와 교차하는 순간 모든 정보를 교환하지만 인간의 “더듬이”는 소통을 하는 한 쪽이 선택적으로 소통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미들은 자신과 같은 종족이라면, 자신과 마주치는 상대라면 누구든지 소통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은 소통을 할 수 있는 대상이 개미와 비교한다면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제비일기에서는 소통하기를 원하면서도 소통하지 못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실연을 당하고 언어, 음악 등의 더듬이 사용법을 잊어버린다. 사람과의 소통은커녕 다른 아무것과도 소통하지 못한다. 아무것과도 소통하지 못하던 그는 어느 날 청부살인업자가 되어 살인을 저지르고 소통함을 느낀다. 그리고 더듬이를 사용하는 것보다 그는 살인이 더 훌륭한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차라리 더듬이를 숨기고 다니며 자신이 원할 때만 소통하고, 원하는 사람에게만 소통하는 것보다는 상대의 죽음을 공유하는 살인이 낫다는 판단이다. 소설 중반부까지만 해도 주인공의 살인의 행동이 마치 더듬이의 그것을 능가하는 훌륭한 소통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귀를 라디오헤드로 막고 있었고, 자신에게 죽은 아무에게도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살인이라는 것이 훌륭한 소통이라는 것은 살인에 대한 정당화일 뿐, 그는 그저 자신의 일방적인 환상적 소통을 위해 소통을 선택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소통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벌했을 뿐이다.

이는 일기를 쓴 소녀를 자기 손으로 죽였으면서도 그는 그녀와 소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죽인 소녀와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살인으로는 아무 것도 소통하지 못한다. 소녀와의 소통에 대한 욕구는 결국 그가 잊었던 더듬이 사용법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는 언어라는 더듬이로 소녀의 일기를 미친 듯이 읽고 또 읽지만 그 무미건조한 일기장에서 그는 또다시 소녀와 소통하지 못한다. 방 안으로 흘러들어온 제비가 그 소녀이기를 바랄 정도로 그는 소녀와의 소통을 원하고 그 소통에 대한 욕구가 사랑으로까지 발전하지만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소녀의 일기장을 원하는 무리는 그를 잡아 가두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소녀의 일기장을 모두 먹어버리고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일기를 쓴다. 그는 자신과 소통하지 못한 소녀가, 행여나 소녀의 일기장을 빼앗으려는 무리와 소통하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어쨌든 그 무리가 주인공보다 소녀의 일기장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예상되니 말이다. 그리고 죽음을 예감한 주인공은 소녀가 쓴 언어로 된 문자 그 자체를 먹어버리면서까지 소통하고자 한 것이다. 마치 외워지지 않는 영어사전의 한 부분을 구겨 먹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읽고 삼켜버렸지만 결국 그는 소녀와 소통하지 못한다. 그리고 소녀와의 소통이 실패한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마치 먹어버린 소녀의 일기가 자신에게 소화되어 소녀의 무언가가 자신의 글에 나오기를 바라는 것처럼.

인간은 서로 소통하기를 원한다. 때문에 글쓰기와 음악과 춤과 노래와, 기타 인간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항상 새로이 생겨나고 기존에 존재하던 것은 발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서로 소통하는 것에는 상대의 일기장을 먹고 그 위에 내 일기를 써야만 하는 것과 같은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한계가 있다고 소통하는 것을 포기하자는 회의주의적인 발상은 아니지만, 소통이란 주제로 나의 과거 경험들을 되짚어보면 왠지 슬퍼지는 건 사실이다.

감사1. 정병훈님의 후기를 보고 읽게 된 상실의 시대도 다 봤습니다. 역시 좋은 책이었어요
감사2. 항상 좋은 쪽지대화해주시는 좋은 선배 황인준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3:08 

 

병장 정병훈 
  아멜로 노통브 작품은 보통 살인에 관련된 것이 많은거 같네요. 적의화장법도 살인이 나오고, 살인자의 건강법도 그렇고, 보통 그런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이 작가는 항상 촌철살인적인 화법과 숨막히는 반전을 숨겨 놓기 때문에 매력적인 작가이기도 하죠. 흐흐흐 저도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나저나 역시나 소재가 독특하고 소통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이렇게 부풀릴수 있다는게 참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더욱이. 제 독서후기를 보고 상실의 시대를 접했다니. 이거 제가 감격할 따름입니다. 
흐흐흐. 밥한번 사드려야 겠는걸요? 2008-11-06
05:19:28
  

 

일병 송기화 
  아멜리 노통브!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입니다만은, 왠지 이 사람 책 추천해주면 다들 벅차하더라구요. 흐음. 전 머큐리 정말 좋아합니다. 작가 최초의 멀티엔딩....(음?) 2008-11-06
08:44:10
  

 

일병 이동환 
  아멜리 노통브! 정말 감미로운 작가죠~ 전 세상에서 살인이 제일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