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모모-미하엘 엔데  
상병 이지훈   2009-01-28 23:03:09, 조회: 123, 추천:0 

결정하는 시간과 시간이 결정하는 것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결하거나 추진할 때 논의라는 것을 거친다. 논의를 거친 뒤 대표성을 가진 결정이 나오면 그 결정을 따라 우리, 즉 일정한 목적을 가진 집단은 실천하고 행동한다. 집단은 수많은 개인의 목적을 하나로 묶어서 집단의 실천으로 나아가게 한다. 인간은 지극히 사회적 동물이기에 홀로 자기 자신 이외의 것들을 해결하거나 추진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수많은 사람이 연관된 일에 대해 슈퍼맨처럼 인간 개인 혼자서 무언가를 처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집단의 힘, 집단의 실천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해야 한다. 집단의 힘은 한 가지로 집중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아니, 그렇지 않으면 아예 힘조차 낼 수 없다. 한 가지로의 집중을 위해 개인의 목적을 묶어 대표성을 가진 결정을 내리는 논의는 이러한 면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매우 중요한 과정인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인간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다. 언어, 문자를 시작으로 통신, 교통, 정치제도, IT기술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다. 이 중 가장 논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언어, 문자를 제외한다면 정치제도일 것이다. 여기서의 정치제도란 대표성을 가진 결정을 이끌어내는 다수결, 과반수, 하다못해 사사오입까지를 포함한 일련의 의결 절차들만을 이른다. 우리는 이러한 도구를 사용해 더 많은 의견을 오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논의를 위해 가지고 있는 도구들이 정말 대표성을 지닌 결정을 만들어내는데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여 수많은 개인의 목적을 잘 묶고 있을까? 이 도구들은 시간에 의해 쉽게 무뎌질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불가항력이다. 시간은 무심히 인간을 조롱하듯 그렇게 흘러가버리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한 시간이면 수많은 자연적 변화가 일어나며 인간은 시간이 버리고 간 수많은 문제에 직면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시간을 따라 흘러가겠지만, 문제의 암초들은 인간이 시간처럼 쉬이 흘러가지 못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래도 흘러가기는 한다. 여기서 도구들의 한계는 드러나게 된다. 시간에 노출된 도구들은 제 기능을 상실한다.

어떤 논의를 통해 대표성을 지닌 결정을 내릴 때 종종 누군가의 입에서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이 없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당장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보여주며 인간들을 몰아대는 것은 그 동안 인간이 논의를 위해 차곡차곡 다져놓고 날카롭게 갈아둔 도구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 사실상 “시간이 없다”는 스킬 시전 이후 흔히 말하는 소통을 통한 논의는 사라지고, 논의는 일단락, 논의의 탈을 쓴 독재, 독선만이 남는다.

물론 정말 당장 처리해야할 시급한 문제인데 모두의 의견을 다 조율하다가는 엉망진창이 되겠다 싶은 것들도 있을 수 있다. 아니,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시급하고 시급하지 않고를 결정하는 것 또한 가치 판단의 문제로,  논의라는 것을 크게 볼 때 논의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의 가치 판단이 자주 논의의 바깥에 영향을 준다는데 있다. 보통 이상적인 논의는 논의에 참가하는 모두가 명목상으로라도 발성할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지닌 상태가 전제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네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논의는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같은 입장, 상황에서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시간을 멈출 수도, 거스를 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 상황은 구성원의 시간에 대한 가치 판단을 강요한다. 

누군가는 시간이 흘러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면 문제는 자동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후자는 논의를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않고 시간 타령을 하며 흘러가는 시간에 모든 것을 띄우는 태도로 소통에 임한다. 모든 문제를 시간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것은 집단, 그리고 집단을 이루는 개개인에게 있어서 상당히 치명적인 위험이다. 이들에게는 결정하는 시간의 많고 적음보다, 효율적이고 비효율적이고 보다 시간이 결정하는 것을 가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애초에 시간에 대한 가치 판단이 비교적 자유로운 구성원들은 시간의 흐름이 역사를 만들어주는 것을 보며, 더 이상 어려운 소통과 지겨운 논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반대로 시간에 대한 가치 판단이 비교적 부자유스러운 구성원들은 지속적인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임한다. 결정하는 시간을 걱정하는 구성원들과 시간이 결정하는 것을 가늠하는 구성원들 간에 진정한 논의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억압 혹은 그에 대항하는 폭력뿐이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우리를 방해하는 암초들의 생김새를 감상하고 그려낸 결과물이 아니다. 걸리는 암초를 몸으로 까부시면서 생기는 상처와 흉터가 역사다. 그건 반쪽짜리일 뿐이다. 그 남겨진 암초는 언젠간 뒤따라 흘러오는 누군가가 부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암초를 까부실 수 있도록 모두의 이야기에 오랫동안 귀 기울여줄 모모가 필요하다. 모모가 될 수 없다면, 시간이 없다는 궁색한 변명만은 하지 말자. 차라리 변명대신 침묵하고 모모처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진득하니 이야기를 들어보기 시작하자. 논의에서, 소통에서 제외되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시대의 소통을 책임지는 언론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역사는 시간이 결정하지 않는다.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이야기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4:53 

 

상병 황동경 
  책 이름만 보고나서는 무슨책인지, 어떠한 내용인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수동적인것 보다는 역시, 능동적인 행동과 모습으로 살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2009-01-28
23:06:27
  

 

병장 최동준 
  시간은 최고의 협박수단인것 같네요 
... 2009-01-29
03:27:56
  

 

병장 김민규 
  저는 상황논리를 믿지 않습니다. 조급함이 줄 수 있는건 오판 내지는 부분적 이해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치 자체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제기되어야 하며, 설령 그것이 인위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하더라도, 의사소통은 이타적 행위를 촉진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하자고 제의하는 것은 중립적 행위입니다. 그것에 임하는 개인들의 자세에 의해서 그 다음의 행로와 방향, 성격이 결정되겠지요. 그러나 실용적인 기술논의에 있어서는 소수자에 의한 대행이 보다 타당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것이 핵심적인 변화를 가져올 만한 것이 아니라면,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뭐 여러 생각이 드는데 명료하게 정리를 못 하겠네요. 이빨이 욱신거리면서 두통이 온 탓인가요. 좀더 생각해 볼만한 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9-01-30
16:58:06
  

 

상병 이지훈 
  고맙긴요. 이 글도 뭐 썩 명료하진 않아서요. 

뭐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민감한 문제를 논의할 때 "에잇 시간없어. 당장 처리해야돼." 하면서 더 논의를 할 수 있음에도, 더 논의를 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논의를 끝내버리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태도에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그러한 태도를 이용하는 것.... 

근데 쓰다보니 이야기가 좀 멀리 떠버린 느낌이랄까요. 자신의 논리를 넘고 넘다가 결국 자신도 잊어먹은...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