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수요와 공급의 원리(2) 

보통 경제학 교과서는 바로 이 수요공급의 원칙부터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현대 경제학은 한계 개념과 탈이념 추구를 위하여 수학적 방법에 상당 부분의존하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수요공급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출된 원리 중 미시경제학 전체를 통틀어 계속 반복되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잉여, 그리고 사회전체 잉여의 최대화 문제이다. 비용, 효용에 대한 개념이 우리가 일상 생활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요와공급의원리(1)에서 설명했듯이 가격기구하에서 각 거래자의 잉여는 극대화된다. 잉여란, 실제로 지불한 비용보다 초과적으로 얻은 이득을 뜻하며 잉여를 취득한 이는 그만큼 부자가 되었다, 고 이해해도 좋다. 예를들면 내가 10만원까지는 낼 용의가 있던 PSP 중고를 고작 4만원에 판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난 그 PSP를 구입함으로써 6만원만큼 부자가 된 것이다. (4만원으로 10만원의 효용을 얻었으므로) 만일 이같은 잉여가 가격기구에 의해 도출된 것이라면 내가 얻어낸 잉여는 전적으로 나에게 귀속되며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은 것이 된다. 위에서 내가 중고시장에서 PSP를 구입하면서 판매자나 기타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으므로 사회 전체가 6만원만큼 더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잉여란 그런 것이다. 

만일 PSP에 100억원의 효용을 갖는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만일 그 사람이 4만원에 이 PSP를 구입했다면 이 세상과 그 사람은 약 99억9996만원만큼 부유해 진 것이다. 그 사람의 효용은 증가했고, 그 사람은 절약한 기회비용만큼 보다 부유해 졌다. 이제 그 사람은 자신이 지출할 각오가 되어있었던 99억9996만원을 다른 소비에 지출함으로써 자신의 효용을 추가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우리는 알 수 있다. 가격이란, 그 자체로서 기회비용 그 자체가 되지는 않지만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범위에서 대부분의 일상에 화폐가 가치의 척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회비용 그 자체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자세히 생각해 보자. 화폐는 액면 가치 이상의 효용을 사실상 전혀 제공해 줄 수 없다.*1 따라서 화폐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효용은 액면가치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는 구입 행위의 대부분에서 우리가 구매하는 재화에 대하여 가격기구에서 결정된 가격 이상의 효용을 느낀다. (그렇지 않다면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우리는 자신이 지출한 비용을 초과하는 효익을 느끼며, 이는 우리의 구매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성립한다. *2 화폐의 한계효용도 역시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체감하는*3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화폐는 척도로서 작동한다.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구매를 결정한 재화 대신 다른 재화를 구매한다는 등의 선택을 행할 수 있다. 이같은 선택을 통해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행할 수 있으며, 구매가 완료되었을 경우 지출하게 된 기회비용은 결국 내가 사지 않은 재화의 구매가 - 가격이 된다. 만일 구매 행위 자체를 그만두었다면 화폐는 그대로 온존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현재소비의 효용을 이연하여 미래소비로 대체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난삽한 단락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화폐는 가치의 척도이기에 결국 모든 기회비용과 효익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이는 화폐가 내포하는 유동성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물건을 구입한 뒤 지출한 화폐에 대하여 '후회'하는 것은, 원래는 또 다른 재화의 한계효용을 취득할 가능성이 손실된 것에 기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재화의 취득 가능성은 곧 그 재화의 가격에 상응하며, 가능성의 상실은 유동성의 상실로 이해할 수 있다. 물건을 지른 뒤 느끼는 후회감은 따라서 '화폐 유동성의 상실'에 기인하는 것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같은 화폐 유동성은 누구에게나 동등한 액면 가치를 갖게 한다. 즉,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은 누구에게나 짜장면 세그릇, 혹은 해장국 두그릇의 효용을 제공하며, 인스턴트커피 30잔을 선사한다. 누가 갖게 되든 자유주의 경제시장에서 만원짜리로 구매가능한 물품들은 같다. *4 하지만 모든 개인들의 각 재화에 대한 한계효용은 모두 다르며, 이는 일관되게 평가할 수 없다. (경제학자들은 다만 통계적 추측을 할 뿐이다) 따라서 해장국 두그릇에 대해 어떤 사람은 1만원 이상의 효용을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하의 효용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래는 화폐유동성과 물품의 가치에 대해 이승일 필진과 본인이 나눈 대화의 내용이다. 이 주제에 대해 쉽게 가질 수 있는 오해와 (이승일 미안...) 그에 대한 답변으로 이뤄져, 참고를 위하여 첨부하도록 한다. (본인의 허가를 이미 득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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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이승일

제목   
   영기군에게 무식한 질문 하나. 


동기가 가지고 있는 맨큐의 경제학 뒤적거리다보다보니깐 이런 말이 있더군. 
조금 돌려서 말하자면 맨큐는

"일반적으로 1000원짜리의 물건을 주는 것보다 1000원짜리 화폐를 주는 것이 받는 사람에게 더 이익이다." 라는 명제에 87%의 미국 경제학자들이 동의한다고 하더군. 

우선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방식을 말할게.
나는 "더 이익이다." 라는 말이 여기서 경제적 이익 이외의 것을 의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만약 그것이 비경제적 이득이라도 그것을 이용해서 결국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 사실 이 부분에서 크게 자신은 없는데 일단 그렇다고 전제할게. 

저 명제에서 '받는 사람' 은 어떤 구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임의의 사람 x 이므로, 만약 그에게 1000원짜리 화폐가 더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면 그것은 곧 1000원짜리 화폐가 1000원짜리 물건보다 '경제적으로 더 가치있음' 을 뜻할 것이야. 다시 말하자면 1000원짜리가 1000원짜리 물건보다 더 비싸다는 말이 아닌지? (물론 여기서 도소매와 관련된 마진은 무시)

그렇다면 우리는 1000원짜리 물건을 사기위해 1000원을 지불해야할 필요가 없지. 그것은 손해보는 일이니깐. 따라서, 예컨데 990원만 지불하면 될꺼야. 근데 그렇다면 그 물건은 곧 990원짜리 물건이 되겠지. 한편, 앞에서 살펴본 말이 맞다면, 990원짜리 물건보다 990원이라는 화폐가 경제적으로 더 가치있으므로 우리는 990원을 다 지불할 필요도 없어. 그래서 한 980원만 지불하면 되겠지.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보면 물건의 값은 0에 수렴하게 될텐데 당연히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지.

1000원짜리 화폐가 더 이익이라는 것은 당연히 풍부한 교환가능성을 염두해두고 한 말일 것 같은데,  난 이것이 일종의 착시현상이 아닌가 싶어.

교환가능성을 고려한 1000원짜리 화폐의 가치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애. 

이 세상에 모든 1000원짜리 물건을 Vi 라고 쓰고 i는  1부터 n 까지의 번호를 메김. 그리고 임의의 사람 x가  i 번째 재화를 살 가능성을 Ci 라고 쓰면, 

1000원 = ∑ViCi   가 될것이고 이 때 당연히 ∑Ci = 1  이겠지. 

그런데 우리는 ∑Ci = 1 라는 사실을 약간 망각하는 것 같애.  즉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선택할 가능성은 자동으로 사라지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종의 잔상처럼 남아있는 것으로 지각해서  ∑Ci > 1 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 그래서 천원짜리 화폐가 같은 값의 물건보다 더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 최소한 세 부분에서 내가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 첨삭 지도를 좀 부탁해. 난 87% 의 경제학자들이 저 명제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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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이영기 :: 음. 일단 당연히 늬두 알다시피 보통 언론이나 사람들이 '무슨학자 몇프로'라고 하면, 이를테면 경제학자라고 하면 내가 보는 관점에서라면 금융학이나 금융전문가, 내지는 치부전문가 등이 조난 포함되어있을 가능성이 지독히도 많지. 그러면서 모수는 경제학회 회원수, 막 이런 걸로 잡고 했으면 충분히 나올 숫자인듯. 일반적인 금융, 혹은 재무담당자라면 기회비용, 효용등 보다는 부의 연쇄적 증강에만 주의를 주로 기울이니까 소비행위 자체를 지양하니, 뭐 그럴 수 있고. 

근데 이 문제라면, 경제학자 87%도 가능하다고 봐. 이를테면 나라면 10만원을 내고 NDS를 사겠지만 그런 마니아 취향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10만원을 그런 게임기 따위에 절대로 내놓지 않겠지. 일반화하면 '어떤 물품에 붙은 가격은 수요공급곡선상의 초과효용값을 갖는 사람들에게만 초과효용을 제공한다' 정도가 되려나.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질 수록, 그리고 소비나 공급의 가격탄력도가 낮아질 수록 보통 '많은 사람들이 임의의 물품에 대해 느끼는 효용은 그 물품에 붙은 시장가격'이 되겠지만 보통의 시장은 그렇지 않지. 임의의 사람이 임의의 물품에 대해 느끼는 효용은 흔히 그 시장가격보다 낮거나 높고, '현대사회의 물품'이라고 가정하면 지극히 다양화된 취향이나 생활패턴의 문제에 따라 '임의의 사람에게' 가격 이하의 효용만 가질 확률이 높겠지. 그렇더라도 역시 '특정한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효용을 갖겠지만. 

조금 더 납득가능하게 설명해보지. 일반적으로 물품의 효용은 다른 재화와는 독립적으로 효용을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균형분석처럼 전체 시장을 놓고 보면 어쩔 수 없이 모든 물품은 사실상 독립재가 아니지. 보완재나 대체재같이, 다른 재화와 연계되어서 효용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지. 일반적으로 생활패턴이나 취향이 다양하다는 것인, 어떤 계통의 상품들에 대한 보완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되고. 간단히 예를 들어서, 건프라를 좋아한다면 MG 하나를 4만원 주고 사서 끝이 아니지. 그걸 만들 건마카나 니퍼, 에어스프레이가 있어야 더 높은 효용을 얻을 수 있을테고, 그런 물품이 없다면 건프라 4만원에 초과효용을 갖고 있지 않을 확률이 높은 거고. 하지만 그런 취향을 갖지 않은 대다수 사람은 그런 보완재를 보유하지 않지. 따라서 임의의 물품에 대해 시장가격 이하의 효용을 갖게될 경우가 많고, 따라서 시장가격과 효용이 항상 거의 일치하는 화폐가 보다 높은 효용을 가질 수 있는게지.  2007/01/11    

병장 이승일 :: 흐음 독립제가 아니라서 그렇다는 소리군... 그런데 그 사실이 오히려 효용을 더 높일 수는 없는건가? 즉 1억짜리 차는 거기에 옵션을 달아 효용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 이상의 잠재적 효용가치를 가지면 안되는건가?  2007/01/11    

병장 이영기 :: 더 높은 가치를 당연히 가질 수 있지. 하지만 그건 확률적인 문제고, 생필품이 아닌 대부분의 물품은 임의의 사람에게 화폐가치 이하의 가치를 가질 확률이 절반을 넘을 것이라는 말이지.  2007/01/11    

병장 이승일 :: 오케바리 이해했소. 난 화폐의 풍부한 교환가능성 때문에 저런 말이 나온 줄 알았는데...핵심을 잘 못 파악했었군 ! 쌩큐베리감솨~~  2007/01/11    

병장 언노운 물건이 원하는 물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런거 아닌가.  200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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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돈이 남아돈다면 화폐를 휴지나 불쏘시개로도 사용할 수 있을테고, 동전으로 집을 지어도 말리지는 않겠지만, 지금 우리는 일상적인 영역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그런 비정상값을 고려하지는 않도록 하겠다. 

*2. 원론적으로 우리는 모든 재화에 대한 자신의 (한계효용/재화가격) 값을 화폐의 한계효용에 일치시킴으로써(수학적으로 m=MUa/Pa=MUb/Pb=.....=MUx/Px로 쓸 수 있다)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재화에 대하여 소비하고 또 다른 구매행위를 곧바로 진전시킬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각 재화의 (한계효용/재화가격) 간의 불균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효용은 사회적 관계성 속에서 발달할 수 있으며 계속 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화폐에 대해 느끼는 한계효용보다 더 높은 한계효용값을 갖는 재화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효용을 보다 더 증대할 수 있게 된다. 

*3. 화폐의 한계효용이 체감한다는 것은 아직 경제학자 간에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소한 노숙자의 1만원과 빌게이츠의 10달러는 분명히 서로 다른 가치를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는 소득함수에서 나타난 단순한 탄력성 효과인지 혹은 보다 많은 재화(화폐)의 취득에 따라 당연한 한계효용의 체감효과가 나타난 것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다. 어느쪽 의견을 따르든 지금 이 부분의 논의에 변함은 없다. 다만 본인은 화폐의 한계효용 또한 체감한다고 생각하며, 소득함수의 탄력성 효과일 뿐이라는 지적은 '그게 그거'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위와 같이 적었다. 

*4. 물론 유동성을 지출하고 취득한 재화의 효용은 각자 다를 수 있다. 매일 1억씩 뿌려대며 살았던 재벌5세를 가정해 보자. 이 사람에게 1만원으로 구입가능한 재화들은 극히 낮은 효용을 가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심지어, 비재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삼풍백화점 폐허 아래에서 17일째 고립되었던 사람에게 1만원 어치의 물과 식량은 그야말로 생명 그 자체, 인식가능한 최대값에 상응하는 효용을 지닐 것이 분명하다. 이같은 개개인의 단위화폐에 상응하는 재화의 효용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보상과 분배에 대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