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이 종영되었다. 성유리는 역시 예상대로 죽었고, 남자는(남자 이름따위 관심없다) 그녀를 수년이 지난 어느날까지도 잊지 못하고 그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는 연인의 죽음을 1년이 지난 뒤까지도 못잊어, 결국 임수정이 그의 무덤 위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지나치게 익숙한 광경들이지만 여전히 그 광경들을 보면서 나는 가슴 한 구석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을 느낀다. 왜 살아진 이들은 떠나간 연인을 평생 그리워 하는가. 왜 그들은 떠나간 이들을 잊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랑을 놓치 못하는가. 

일반적으로 구매행위는 단위가격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한계효용이 가장 높은 재화나 서비스를 대상으로 할 때 보다 효율적이다.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한다면, 모든 과자가 모두 370원이고 새우깡을 먹을 때의 효용은 400원을 지불할만 하고, 양파링을 먹어 얻는 효용이 소비자가 450원의 값을 낼만하다고 느끼며, 칸쵸의 효용은 300원이라고 생각한다고 가정하자. 합리적인 소비자가 선택해야할 과자는 당연히 양파링이다. 한계비용 - 1개 과자를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 - 이 한계효용 보다 낮은 소비가 합리적인 선택인데, 양파링은 그 격차가 가장 크다. 양파링을 먹을 때 얻는 소비자 잉여는 80원이고, 칸쵸는 도리어 20원 손해를 보게 된다. 매우 단순한 이치다. 

단위 가격이 동일하지 않다면 이 합리적 소비의 공식은 다음과 같이 변한다. (한계효용/가격)이 가장 큰 대상을 소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며, 가장 효율적이다. 한계효용이란 1단위 소비에서 느끼는 효용이며, 따라서 구태여 가격으로 나눌 것 없이 해당 재화를 소비할 때 지출한 1원당 한계효용을 환산해서 생각하면 보다 더 능률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계효용이 조금이라도 높은 소비를 취하는 것이 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높은 초과효용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공식을 극한까지 고민한다면, 효율적 소비란 자신의 모든 한계효용을 동등하게 만드는 소비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높은 효용 값을 갖는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예산제약선 내에서의 효용 최적화를 달성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계효용은 재화의 소비량에 따라 체감하게 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재화들의 소비량이 일정할 때 특정 재화의 소비량이 증가한다면, 해당 재화의 한계효용은 처음 한 단위때의 한계효용보다 낮아진다. (단백질님이 아무리 언제나 옳다고 해도 앉은 자리에서 20인분을 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첫번째 젓가락에 쥐어진 한 점과 배가 그득할 때 억지로 집어먹는 한 점이 주는 효용은 엄연히 다르다) 만일 다른 재화에 비해 높은 한계효용값을 갖는 재화가 있다면 그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해당 소비의 한계효용을 낮춰, 균일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효율적 소비를 도출할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 아무리 높은 한계효용을 갖는 재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정없이 무한히 소비하는 것으로 자신의 소비 최적화를 이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재화든 소비에 따라 한계효용은 체감하며, 결과적으로 당해 재화에만 올인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소비를 촉발하게 된다. 일단 한계효용이 매우 높은 재화가 있다면 그 재화를 최우선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행위일테고, 그리고 그 재화의 한계효용이 낮아진다면 비로소 다른 재화를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구태여 한계효용을 매번 측정할 것도 없이, 질리거나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 다른 재화를 자연스레 소비하게 될테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되면 당연히 합리적 소비가 도출된다. 합리적 소비란 대부분 각 개인의 소비 행위 그 자체를 뜻한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효용값이 가장 높은 소비를, 만일 소비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재화 소비량이 일정한 상태에서 특정 재화를 소비하는 행위는 한계효용을 체감시키며' 두번째로 한계효용이 높은 재화들을 거듭 소비하여 한계효용을 체감시키는 일련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효용값이 여전히 가장 높은 재화에 대한 상대적인 기회비용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소비 행위의 효용은 언제나 음의 값을 갖게 된다. 

명확히 다시 생각해 보자. 한계효용에 대한 일련의 논의는, 소비는 한계효용이 '화폐의 한계효용'보다 높은 지점에서 이뤄진다는 전제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이 모든 논의는 화폐의 한계효용은 체감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실시되었으며 화폐는 자신의 효용에 대한 인식가치체계를 표상한다. 화폐가 들어갈 자리에 인식 및 가치 체계를 대입시켜 다시 이해해도 명백하다. 각각의 소비행위가 반영하는 한계효용은 '화폐'라는 기회비용에 대하여 인식된다. 모든 경제적 행위는 기회비용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이뤄질 때 가장 합리적일 수 있으며, 효율적 소비, 즉 가장 높은 한계효용을 갖는 재화를 소비할 경우의 기회비용은 화폐이다. *1 

바꿔 생각해 보자. 가장 높은 한계효용을 갖는 재화를 남겨둔 채로 소비한다는 것은 기회비용을 전이시키게 된다. 이제 소비에 따른 기회비용은 '가장 높은 한계효용' 그 자체가 되며, 조건에 따라 현재 소비에 따른 한계효용은 기회비용보다 낮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소비는 합리적 소비라는 관점에서 이제 재화가 아니라 비재화로 전락한다. 소비는 노동이나 기타 심리적 위안이 될 수 없으며, 그 어떤 행위로도 기회비용은 보상받지 못한다. 따라서 소비하지 못하는 한계효용에 대한 집착, 추구는 합리적 행위이며, 자신의 경제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시도이다. 

일반적으로 사랑의 유통기한은 3년 선이라고 한다. 3년이 지난 뒤에는 불타는 듯한 열렬한 사랑인 愛에서 차분히 가라앉아 그저 그러한 情으로 변한다고 한다. 뜨겁게 상대를 사랑하고 소유하려는 시도는 3년을 넘기기 힘들며, 그 이후에 그들의 생활을 유지하고 그들 사이에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것은 보통 정이다. 愛는 순식간에 불타올라 3년의 기간동안 급격히 체감하는 것으로, 情은 3년의 기간동안 천천히 체증하여 장기적으로 증가하는 곡선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 형태라고 가정하자. (편의상 직선으로 가정하자)이 경우 愛와 情의 곡선을 단일한 평면에 도시할 경우 두 곡선은 일정한 지점에서 교차할 것이다. 두 곡선의 애정합산치의 최대치의 위치는 당연히 두 직선의 기울기에 따라 다를 것인데, 위의 가정한 내용에 따르면 愛의 체감이 훨씬 급격할 것으로 예상되며, 따라서 애정합산치는 원점에 가까울 수록(사랑이 시작한 지점에 가까울수록) 최대값에 가까울 것이다. 

한계효용은 소비가 실시되기 전까지 유지된다. 한계효용의 체감은 소비를 실시한 이후에 시작되며, 그 전까지는 여전히 유지된다. (기타 다른 이유로 소비자의 한계효용이 변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et cetera (다른 조건이 유지된다면) 합리적 소비자의 효용은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가정되며, 이는 흔히 사실이다) 의 가정은 여타한 조건의 변화가 없을 시 한계효용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연애가 막 시작했거나 혹은 아직 결혼이 시작하지 않았다면 연인의 愛에 대한 한계효용은 아직 체감하지 않으며 (사실 愛가 급격히 체감하는 현상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Gossen 제1법칙)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연인이 사망한다면 애정의 한계효용값은 변화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 

보통 애정, 특히 愛는 가장 한계효용이 높은 재화일 것이다. 사랑은 무엇보다 강렬하며, 이는 젊은 층에게 흔히 공감되는 사실일 것이다. 사랑은 가장 강렬한 열정으로 우리를 사로잡으며, 사랑을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많은 것들을 기꺼이 포기한다. 이는 바꿔 말하면 사랑의 한계효용이 지극히 높다는 것을 말하며(우리가 포기할 수 있는 것들 - 개인시간, 돈, 친구, 기타 그 외의 많은 것들이 모두 사랑의 비용에 해당한다. 사랑은 최소한 그 비용들보다는 높은 효용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시점에서의 연인의 사망은 곧 그 한계효용을 소비를 통해 체감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이 연인에 대한 소유 혹은 생활의 공유라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그러한 논의는 이 자리에서는 최소한 걸맞지 않다. 

연인의 사망은 따라서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한 (이를테면 그 愛가 줄수 있는 한계효용값을 낮출 수 있는) 행위자 본인의 향후 모든 행위는 모두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전락하며, 그 어떤 행위도 본인에게 효용을 제공할 수 없다. 경제학적으로 비용은 기회비용에 해당하며, 사랑이 가장 높은 효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사망 이후 행위자 본인의 그 어떤 행위도 그에 상응하는 효용을 충족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비용은 항상 수익을 초과하며, 행위자 본인은 모든 비재화 가운데서 살아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효용은 충족되지 못한다. 언제까지고 죽은 연인은 행위자에게 추억과 번뇌로서 기억되고, 효용은 어떻게 해서든 충족되지 못한다. 행복감에서 행위자는 언제나 계속 멀어지기만 하고 모든 일에서 행위자는 손실만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행위자가 무덤에 엎드려 죽었다는 사실에 경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무한의 고통 속에 빠진 이가 순순한 죽음을 택하는 것을 우리는 비판할 지언정 욕할 수는 없으니까. 



*1. 정확히는 화폐가 아니라 두번째로 높은 한계효용값을 갖는 재화가 기회비용에 보다 적합하다. 하지만 소비 행위에 화폐, 그리고 시계열적인 이해를 추가한다면 소비는 지금 아니면 소비하지 못할 것 중 하나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소비할 수 있는 것을 단지 미래로 이연하는 효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 소비 행위까지 포괄하는 진정한 기회비용은 아마도 화폐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로 아래 단락에서 기회비용이 화폐가 아니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비할 수 없다'는 조건은 기회비용을 화폐로 전이시키는 효과를 실종시킨다. 따라서 기회비용은 원리적으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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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다면 이해하겠지만, 이 글은 소비자효용에 대한 '대박 쉬운 경제학' 9편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