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수요와 공급의 원리 (1)
경제학에 대해 어지간히 문외한인 사람이 아니라면, 최소한 수요와 공급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문계 고교 이상의 학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평면 상에 가위표 모양을 한 두개의 직선을 전혀 보지 못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그래프에 대한 분석인, '가격이 오르면 수요량이 줄어들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량이 증가한다'는 말 또한 함께 유명할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대한 개념은 경제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반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또한 유명하다.
문제는 수요공급곡선에 대한 흔한 오해들이다. (대박 쉬운 경제학을 연재하면서 대체 얼마만큼 많은 오해들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실상은 흔히 그러하듯, 당장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흔히 수요공급곡선의 기본 원칙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가격이 오르면 재화에 대한 효용이 낮아진다'라거나 혹은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이 덜 사려고 한다'는 정도의 개략적 이해를 하고 있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실제로는 수요공급의 이론은 조금 다른 내용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한 재화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효용은 모두 다를 것이다. 이를테면 토끼를 하나 소유하게 되는 것에 대해 토끼 모에 마니아라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효용을 느낄 수도 있고, 토끼털 알레르기를 가진 환자라면 토끼에 대해 음의 효용(즉, 토끼는 이 사람에게 비재화이다)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재화들에 대해 모두 제각기 다른 효용기준을 갖고 있으며, 이는 최소한 사회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원칙이 없다고 일단 가정한다. (이를테면 초콜렛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노란티셔츠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만일 이들의 효용을 일관된 기준에 따라 규정할 수 있다면, 그 숱하게 다양한 효용들을 그 기준에 따라 정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기준이 없다면 우리는 이 사회 내의 구성원들의 효용을 최적화하거나 분석하는 모든 시도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1 따라서 경제학에서는 일정한 가치 기준을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 기준이 바로 화폐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격'이 바로 그런 척도의 역할을 하게 된다. *2 각 개인은 자신이 재화의 구입에 대해 얻는 효용 이하의 대가를 지불하기를 원한다. 예를들어, 내가 새 헌병 배지에 대해 약 2천원의 효용을 느끼고 있다면, 새 헌병 배지를 갖고 있는 전역 예정자에게 2천원보다 많은 액수의 향응(이를테면 마사지 20분 해주기)을 제공하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 된다. 한편, 생산자는 자신이 해당 재화를 생산(혹은 획득, 유지 기타 여러가지 개념이 가능하다)하는데 소모된 비용 이상의 효용을 제공받기를 원한다. 만약 내가 대박 쉬운 경제학 1-8을 쓰기 위해 총 8시간을 소요했고,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얻은 효용은 없으며, 내가 1시간의 가치를 약 1만원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난 8만원 이하의 대가를 받고는 대박쉬운경제학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흔히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이 부분이다. 경제학적으로 효용이나 비용이란 화폐적 의미의 수입과 비용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위에서 일부러 시간이나 마사지를 비유로 든 것도 그래서이다. 효용이란 자신이 물건을 소유, 이용하게 됨으로써 얻게 된 '기쁨'과 '이용가치'를 뜻하고, 비용이란 기회비용을 뜻한다.
이를테면 내가 컴퓨터를 구입하는데 1백만원을 지출하였고, 그 컴퓨터를 1년간 사용하면서 소소한 기쁨들을 잔뜩 누렸다고 해보자. 그 기쁨과 활용가치(아마도 최소한 레포트를 쓰고 지인들과 연락을 할 수 있었을테니)를 화폐로 환산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긴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당신에게 만일 1천억을 줄테니 그 1년간의 기쁨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상당 수 사람들이 기꺼이 그럴 것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컴퓨터의 효용은 최소한 1천억원에는 못미치는 것이다. 만일 컴퓨터의 가격이 1천만원 넘었더라도, 아마 또한 상당수 사람들은 컴퓨터를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번에는 그 효용들의 가치가 화폐로 환산해서 1천만원은 되지 않는 것으로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구입에 1백만원을 지출했다는 것에서, 컴퓨터를 구입한 사람들이 컴퓨터의 효용에 1백만원 이상의 (최소한 1백만원에 상응하는) 효용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효용은 화폐화할 수 있으며, 경제학의 논의에서 효용과 비용들은 대부분 (생산자 이론 등 비교적 계량화가 쉽게 가능한 분야는 화폐가치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같은 방식으로 추상화된 가치들이 반영된다.
마찬가지로 생각해 보자. 기회비용이란 내가 한 행동을 하게 되어 포기하게된 선택지 중 가장 큰 효용을 가진 것의 효용량을 뜻한다. 쉽게 설명하면, 내가 BX에서 냉동을 먹게되어 포기하게 되는 가치는 화폐 1만원과 점심을 먹을 가능성이 되는데, 사병식당 점심이 내게 제공해주는 효용을 화폐로 환산했을때 9천원이었고 내가 BX에서 지출한 화폐가 1만원이라면 내가 지불한 기회비용은 1만원이 된다. 만일 사병식당 점심이 내게 제공해주는 효용을 1만2천원이라고 한다면, 이번엔 내가 지불한 기회비용이 1만 2천원이 된다. 전자의 경우 내가 지불한 비용은 일반적인 상식대로 화폐값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화폐값은 기회비용이 아니다.
기회비용과 효용은, 따라서 개인의 가치체계에 따라 지극히 다른 값을 가질 수 있다. 예를들면 개혐오증이 있는 사람에게 애완용 강아지는 제로의 효용을 갖게 되지만, 생태주의자는 개를 거래하는 행위 자체를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개의 거래에 대한 효용은 무한대이며, 따라서 거래 행위가 불가능해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강아지에게 40만원의 효용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근수에 따라 효용을 느끼는 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효용은 천차만별이다. 만일 각 개인들이 느끼는 효용을 크고 작은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PQ평면*3 상에 소비자들의 효용곡선은 전반적으로 우하향*4하는 형태로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가격이 낮으면 낮을 수록 해당 재화에 대해 가격보다 높은 수준의 효용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며(당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더 많은 재화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말이 된다. 바꿔서 생산자 (판매자) 입장에서의 기회비용 역시 나열한다면 동일한 평면상에 우상향하는 직선이 도출될 것이며, 이는 더 높은 가격이 제시될 수록 그 이하의 비용을 느끼고 있는 생산자가 많을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수요와 공급의 이론이란 바로 이것을 뜻한다.
이제부터 각자 종이를 하나 준비하고 지시에 따라 한번 그려보길 바란다. 먼저 가로세로축에 각각 P와 Q를 기입한 평면 상에 우상향하는 곡선을*5 대충 죽 그어보자. (직선이어도 상관없다) 이 곡선 중 적당한 한 점을 잡아서, 그 점의 y축(P축) 값에 해당하는 점으로 수직선을 그어보자. 대략 취향에 따라 모양이 다르겠지만, 아마도 삼각형이나 사반원 비슷한 형태가 나타났을 것이다. (곡선이 체증할 경우에는 다른 형태도 가능할테고, 미친듯이 횡보하는 곡선이었다면 복잡한 모양도 가능할테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X축과 맨 처음 그은 우상향하는 곡선, 그리고 방금 그은 수직선이 둘러싼 부분의 면적은 바로 '가격이 그 값일때 생산자가 원하는 만큼 판매할 수 있다면, 생산자가 획득할 수 있는 이득의 총합'에 해당한다. *6 이번엔 반대로, 그 아래 다시 PQ평면을 도시한 다음 우하향하는 곡선을 적당히 그어보자. 이번엔 Y축과 X축으로 둘러싸인 면적이 자동으로 나타날 것이고, 이건 가격이 0일때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획득할 수 있다면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효용의 총합이 된다.
합쳐서 생각해보자. 양자는 각각 자신이 지출할 비용과 얻을 효용간의 함수로서 거래를 결정한다. 생산비보다 수입이 적다면 생산자는 생산하지 않을 것이며, 효용보다 가격이 높다면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완전하고 자유롭게 경쟁이 이루어져 거래가 성사된다면, 적정한 거래는 바로 두 직선의 교점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 교점에 해당하는 P와 Q의 값이 바로 사회효율적인 가격과 거래량을 뜻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거래가 이뤄졌을 때 양자는 가장 효율적이게 거래를 할 수 있으며 사회 총효용은 극대화된다. 왜냐하면 두 곡선의 교점에서부터 P축까지의 거리를 높이로 하는 삼각형 형태의 면적이 자유거래로 얻어낼 수 있는 사회총잉여로, 가격기구 하에서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사회전체의 생산자 총합은 우상향하는 자신의 곡선에서 Q축을 향한 면적(즉, ∫f(q)dq)보다 낮은 보상을 받고서는 생산하지 않는다. 만일 임의의 Q값의 거래가격이 자신의 곡선의 P값보다 낮다면 생산자 일부는 시장에서 벗어나게 되며, 그 P값을 받고도 계속 생산하기를 용납할 수 있는 생산자만 남게된다. (즉, 곡선에서 보다 오른쪽의 낮은 지점의 생산자들) 따라서 위의 적분값은 생산에 따른 비용이라 할 수 있으며, 생산량 증가에 따라 필요로 하는 비용도 증가한다. 하지만 거래가격은 거래에 참여한 생산자들 중 최대비용을 지출하는 생산자의 비용과 같으며, 따라서 그보다 적은 비용을 소모한 생산자들은 그 가격만큼 잉여를 얻게 된다. 이 면적은 생산곡선에서 P축을 향한 면적(즉,∫f(q)dp)에 해당한다. 소비자잉여도 마찬가지 원리로 구할 수 있다.
*1. 실제와는 조금 다르다. 예를들면, 효용에 대한 기수적인 기준 없이 단지 서수적으로 분류하는 것만으로 소비자효용이론을 도출할 수 있으며, 이를 '현시선호이론'이라 부른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일관된 기준이 있을 경우 분석이 월등히 수월해지는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화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예정이다.
*2. 화폐와 가격은 좀 많은 차이를 갖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별 상관없을 것으로 생각하니 혼용하도록 할 예정임.
*3. 그래프의 x축에는 재화의 수량(Quntity), y축에는 가격(Price)을 대입시킨 평면을 PQ평면이라고 부릅니다.
*4. 그래프가 오른쪽으로 갈 수록 낮아지는 것을 우하향이라고 한다. 반대로 오른쪽으로 갈 수록 높아지는 것은 우상향이라 칭한다.
*5. 곡선의 왼쪽 끝이 어디서 시작하는 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단 이 곡선은 반드시 제1사분면에서 존재해야 한다. 2, 3, 4 사분면에 존재하는 부분은 경제학적으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6. 한가지 조건이 더 따라 붙어야 의미가 있다. 재화의 생산량이 0에서 부터 각자가 설정한 점까지 변동할 때의 효용 총합, 이라고 쓰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