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균형이론

경제학 이론을 공부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한계효용혁명 이래의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는 수식과 그래프로 가득 메워져 있습니다. 경제는 곧 수학의 분과나 마찬가지고, 경제학의 연구 주제는 그 그래프 속에 있다는 식의 사고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지요. 그 사고가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과학이라는 '인간의 학문'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맹신이 아직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 풍토상 그런 믿음이 문제를 야기할 확률은 적지 않아 보입니다. 어쨌든 경제학의 그런 문제점은, 지금 다룰 것이 아닌 듯하니 짧게 정리하고 접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래프와 수식은 대부분 한 가지 상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균형, 이라고 이름붙여진 그 상태는 최소한 두개 이상의 곡선이 마주하여 닿는 접점이나 교점에서 발생하며, 대부분의 경제 이론은 바로 그 지점에 대한 연구들로 이뤄져 있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요-공급곡선간의 교점입니다. 가위표 모양의 그래프는 경제학 그 자체를 상징할 만큼 유명하지요. 각론 이상의 경제학에서 그렇게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의미 자체는 언제나 계속 반복되니까. 

그런데, 그런 균형점들은 대부분 단위 시장 내에서의 균형을 뜻합니다. 여기서 단위 시장이란 평택지역 시장이라거나 한국 시장, 그런 식의 단위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일한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 혹은 단일한 요소(즉, 노동)이 거래되는 시장과 같은 것들을 뜻하지요. 보통 우리의 교과서는 종이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3차원 이상의 그래프를 원활히 표기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제 이론은 2가지 이하의 재화가 존재하는 시장을 가정하고 그 안에서의 균형을 논합니다. 

당연하게도 이같은 시도는 항상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입니다. 노동을 거래하는 시장 *1이 기업과 노동자간의 협의를 통해 균형을 이뤄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물품에 대한 소비시장은 불균형을 보일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경제적으로 비효율이 그대로 온존하게 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경제학을 일부 공부해본 사람들이 배우게 된 '균형'들은 대부분 이같은 한정된 시장에 대한 '부분균형분석'이론입니다. 

따라서 시장 전체에 대한 최적화, 효율적인 시장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모든 시장을 아우르는 '일반균형분석이론'이 필요하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모든 시장은 모든 시장과 연결되어 있고, 부분 시장의 모든 요소는 필연적으로 외재적으로 결정됩니다. 한계효용과 같은 극히 일부의 요소들을 제외한 모든 요소들을 이해하고 현실의 시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장을 포괄하는 일반균형이론이 필요한 것이죠. 

왈라스와 파레토가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일반균형이론에서는 모든 재화가 독립되지 못하고 관련재로서 존재하며, 시장간 상호의존성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특정시장에서 발생한 불균형이 어떻게 일반 시장으로 퍼져나가는지를 분석할 수 있고, 현실 시장을 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지요. 이 이론에서 균형이 존재한다면, 그 균형점에서는 1) 모든 소비자가 효율극대화가 달성되도록 재화수요량과 요소공급량을 결정할 것이고(즉, 소비량과 노동량을 결정할 것이고) 2) 모든 기업은 이윤극대화가 달성되도록 재화공급량과 요소수요량을 결정할 것이며, 3) 주어진 가격체제하에서 모든 재화 시장과 요소시장에서의 수요-공급량이 일치할 것입니다. 완전경쟁시장이론*2에서 도출된 결론을 일반시장으로 확대한 것이죠. 애덤 스미스가 자신있게 말했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도출 시도라고 말하면 대략 상관없겠습니다. 

문제는 모든 시장을 동시에 고려하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이냐는 것이었지요. 당연하게도 모든 시장에 대한 동시 분석은 정말 힘겨운 작업이니까요. 이탈리아학파, 파레토가 이 일반균형이론의 필요를 제기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는데 일반균형이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은 1950년대 애로우와 드브루에 의해서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모든 시장들을 최대한 일반화하고 규격화하는 작업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경제학에 수리적인 분석 방식이 정형화되게 된 것이죠. 한계비용이니 한계생산물가치니 하는 것들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입니다. 모든 단위 시장들을 최대한 수리적으로 분석하여, 그들을 취합하는 것으로서 일반 균형 분석을 도출하자는 것이죠. 

왈라스가 제시한 왈라스의 법칙은 이 일반균형분석에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만 그 자체로 독특한 내용을 갖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가격체계가 주어진다고 해도 시장 전체의 초과 수요의 가치는 0 이라는 것입니다. 즉, 개별 재화시장에서 불균형이 이뤄진다고 해도 경제 전체적으로는 총수요와 총공급 가치는 항상 일치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전체의 시장이 n개라고 하면, 만일 n-1개의 시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n번째 시장은 자동적으로 균형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학적인 엄정한 증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이 법칙이 의미하는 바는 사실 꽤나 중요한 것이죠. 화폐란, 단지 환상적인 어떤 척도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고전주의계통의 학파에서는 화폐의 힘을 사실상 없다고 가정합니다. 화폐 정책을 통해 거시경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상은 기본적으로 케인즈에 의한 것이며, 오늘날 시장 효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카고학파 등 새고전학파는 화폐의 의미를 높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확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일반균형이론에 대한 지금까지의 설명이 주는 시사점도 의외지요. 아직 경제학은 우리의 경제 여건을 익숙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경제학은 고작 초등학교 내에 형성된 독립적인 유희왕카드-딱지-구슬의 거래 시장의 물가나 유동량조차 제대로 설명하기 힘겨워 한다는 겁니다. 앞서 말했듯 일반균형이론은 굉장히 복잡하고, 손쉽게 도출되기 힘드니까요. 경제원리를 경제 모든 곳에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은 오늘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지요. 진리의 편린조차 언제나 진리일 수는 있겠지만, 반대로 사람 잡는 건 선무당이기도 한 법입니다. 어느 쪽이 진실에 닿을지는 더 고민해야겠습니다만. 



*1. 경제학적으로, 생산에 전제되어야 할 것들 중 재료나 재공품을 제외한 모든 것을 요소라고 칭합니다. 요소에는 자본과 노동이 있지요. 경제학적인 자본은 사전적 의미의 자본과는 조금 다릅니다. 경제학적으로 자본이라 칭하는 것은 공장 설비나 임대한 땅, 시설, 기계 등이 해당됩니다. 경제학에서 보통 '단기'라고 하면 요소 중 최소한 1가지가 고정되어 있는 기간을 뜻하며, 일반적으로는 노동이 자본보다 훨씬 유연하기 때문에 단기란 '자본량이 고정되어 있는 기간'이라고 칭해도 상관없습니다. 따라서 '요소시장'이라고 하면 당연하게도 노동이 거래되고 있는 시장을 뜻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논의에서는 지금 설명한 방식을 적용해 설명하겠습니다. 

*2. 완전경쟁시장이론은 차후에 설명할 예정입니다. 아마도 9부가 될 것같습니다. 현재 예정에 따르면 7부 후생경제학, 8부 수요공급곡선, 9부 완전경쟁시장이론입니다. 완전경쟁시장에 대해서는 고교 시절 배운 수준으로 이해해도 현재까지는 무리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