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탐구주제 (1)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경제학은 희소한 자원을 무한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집단의 행위 양태를 개체와 집단간의 함수와 효용과 편익으로 분석하는 학문, 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지만 이는 일반적인 정의와는 차이가 있다.
사뮤엘슨은 경제학의 탐구 주제로, '경제의 3대 문제'를 제안했다. 1) 어떤 재화를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 2)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3) 누구를 위하여 생산할 것인가는 각각 효율적 생산과 방법과 분배에 대한 내용으로서 희소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 주체들 모두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연구를 말한다. 보다 일반화해서 말한다면 경제학의 탐구 주제는 요약하여 '단위 경제 사회 내의 효용 총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효용이란 조야하게 말한다면 각 개인이 어떤 활동이나 취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의 증가'를 말한다. 개인에게 효용을 줄 수 있는 물건이나 활동은 경제학적으로 '재화(Goods)'라고 할 수 있고, 그 반대되는 것들은 (이를테면 범죄, 환경오염) '비재화(bads)'라고 부를 수 있다. (주 : 비재화는 한국 경제학계에서는 확립된 어휘가 아니다) 제한된 효용을 갖고서 최대한의 효용을 창출해 내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흔히 개개인간의 선호도가 극에 달할 정도로 다른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떡만두국을 좋아하지만, 다른 어떤 사람은 군대리아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제한된 예산 내에서 매일을 떡만두국으로 편성하면 떡만두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복합적인 현재의 식단 하에서보다 조금 더 효용이 증대될 수 있겠지만, 군대리아를 좋아하는 사람의 효용은 최소한 그 만큼 증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병사가 있다면 그 병사의 효용은 도리어 감소할 것이며, 어떤 사람이 얼만큼 있는지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에 부대 총 효용은 메뉴판 편성 변경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없다. 모든 효용이 이러하다. 어떤 사람은 여가가 더 좋아서 숙직을 안하려고 할 수도 있을테고, 어떤 사람은 소비 가능성 증대(즉, 소득의 증대)를 더 선호하고 여가에 대한 선호가 낮아서 매일같이 초과 근무를 자청할 수도 있다. '어떤 재화를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무실 선임이 크게 마음 먹고서 내무실원이 함께 먹을 군것질 거리를 BX에서 직접 구매해 온다고 가정하자. 이때 내무실 선임은 이왕 마음 먹은 것,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나 냉동을 말하지 않고 후임들에게 너희가 가장 좋아할 수 있는 메뉴를 사와야겠다고 말했다고 치자. 내무실원이 20명이 넘어선다면(편의상 모두 자신의 선호를 밝힐 수 있다고 가정하자), 아마 확률적으로 그 선임은 꽤나 당혹스러운 결과에 직면할 것이다. 그가 보유한 돈은 2만원 뿐인데, (즉, 예산제약은 2만원 값을 담보하는 직선의 안쪽 면적일 것이다) 와인숙성불고기를 즐기는 후임이 3명, 팝콘치킨을 좋아하는 후임이 1명, 프링글스가 아니면 죽어버리겠다는 맏후임이 한명, 오로지 만두를 많이 먹으면 먹을 수록 즐겁다는 친구들이 5명 있다고 치자. 일반적으로 한명이 '자신이 선호하는 냉동 한 봉지'를 먹을 때 효용이 극대화된다면 (그 이상은 배가 부르다) 선임은 냉동 20봉지를 사오는 것이 가장 좋을 텐데, 2만원으로 20봉지를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링글스만 해도 이미 3천원에 육박하며, 프링글스를 구입한다면 모두 냉동으로 구입했을 때보다 다른 19명의 효용이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많이 먹는 것에서 선호도를 보이는 5명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BX 앞에 선 선임은 모두의 효용을 정확히 고려해 구매할 수 없으며, 분명히 회식시 누군가의 효용은 2만원/20에 못미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앙계획경제가 주류경제학에서 비선호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개개인의 선호는 매우 다양하며, 이들의 선호를 중앙에서 모두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일 노동을 통한 소득으로 소비를 증대하여 얻는 효용보다 여가의 효용이 더 큰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집에서 놀고 먹음으로써 사회 총효용을 보다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앙계획경제에서 그와 같은 개개인의 효용함수를 모두 고려할 수는 없다. 중앙계획경제에서의 생산과 소비는 모두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무임승차의 가능성을 항상 내포한다. 따라서 여가-노동간의 시간에 대한 예산제약선의 효용극대화는 최소한 항상 무시되며, 이를 정당하게 평가하여 효용 최적화를 이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오늘도 자유경제체제를 주장한다. 경제학적으로 완전한 효율성을 보이는 시장은 '완전경쟁시장'이라고 칭해진다. 여기서 개개인의 선택은 온전히 자율적이며, 개개인의 행위는 모두 효용 극대화를 이뤄낸다. 시장의 총 효용도 극대화되어 있으며, 일시적인 시장의 흔들림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보정되고 균형값을 향해 이동한다. 개개인의 효용함수는 모두 적확히 반영되며, 총효용은 '거래비용'을 제외하고는 전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최대값을 갖게 된다. 현재까지 이 모형보다 사회 총효용을 극대화시키는 모형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