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신지
병장 정근영 2009-08-09 16:04:28, 조회: 187, 추천:0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 노희경,「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
정신없이 밀려드는 업무에 책 한 장 읽지 못하고, 글 한 줄 쓰지 못하는 나날들이 계속되던 요즘, 별 생각없이 한 번 훑어보려 이 책을 집어들었던 나는, 첫 장부터 숨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명색이 글을 쓰는 것으로 먹고 사는 작가라면, 모름지기 읽는 사람의 마음 속을 파고드는 문장 한 줄 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이라지만, 어줍잖은 공감을 넘어 글쓴이와 내가 동일시되게 하는 문장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나 특별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특별한 순간은 그리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무릎을 탁-치게 하는 문장과, 경이롭다고 느껴질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문장을 만나기는 오히려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장들을 만났을 때의 압도적인 경이로움과 감탄은, 책을 덮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그라들고 만다. 왜냐하면 그것은 애초에 나의 생각과, 나의 경험과, 나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남의 글이고, 남의 생각이고, 남의 감정이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문장을 만나는 순간은 지적 충족과 짜릿한 전율이라는 독서의 미덕과 구별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리고 단언코 나는 공감의 미덕이 그 중에서도 최고라고 생각한다. 무척 오랜만에, 나는 오늘 그 최고의 사치를 다시 한 번 누릴 수 있었다. 별 기대도 하지 않고 집어들었던,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어느 드라마 작가의 에세이에서.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니, 이 문장들을 읽는 순간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하는 편이 맞으리라. 2007년 5월, 무슨 이유였는지 그녀와 싸우고 난 뒤 일주일 동안 연락도 안 하다가, 기숙사 복도에서 밤늦은 통화를 하던 날 그녀가 내게 던졌던 한 마디를. 울면서 투정을 부리는 그녀에게 나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라는 투의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목이 메이는 듯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있지... 가끔 이럴 때 보면, 너는 나에게 헤어지자는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아..”
나는 몰랐다. 남자가 여자한테 차여주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며, 내가 먼저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지는 말자고 다짐했지만, 그것은 여태까지 사랑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자의, 정말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별의 순간은 언제나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들고 만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한동안 안고 살아가겠지만, 그것을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에는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생겨난다. 이별을 고해야 하는 자가 떠안아야 하는 부채의식과 미안함,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가 느낄 수 밖에 없는 배신감은, 대부분의 이별을 그리 아름답지만은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나는 어쩌면 내가 받을 상처들이 두려워 그것들을 그녀에게 모두 떠넘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게 만들어서, 그녀로 하여금 가해자의 미안함과 피해자의 배신감을 모두 어지게 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남자가 차이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나 자신이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채로. 나는 이제야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다.
왜 어떤 관계의 한계를 넘어야 할 땐 반드시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아픔을 공유해야만 하는 걸까? 그냥 어떤 아픔은 묻어두고 깊은 관계를 이어갈 수는 정말 없는 걸까?
……
그러고 보니 지난 사람에게도 난 아무 얘길 한 적이 없었다. 정말 서로의 아픔에 대한 공유 없이는, 그 어떤 관계도 친밀해질 수가 없는 걸까? - 같은 책, p. 106
스스로의 치부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또 있구나 하는 공감으로 인해 위안을 받고 치유된다. 마치 살 속 깊이 곯아버린 고름이, 살이 째지는 고통의 과정을 거쳐 다 빠져나가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는 것처럼.
나는 남들과 스스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무엇이 나를 고토록 남들과 격리시켰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확실히 단언할 수 없는 물음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학창시절 나를 지탱하고 있던 자존심이 아니었나 싶다.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학생으로서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만한 미덕(이를테면 준수한 성적, 뛰어난 운동신경, 적당한 겸손, 원만한 인간관계 등과 같은)을 웬만큼은 갖추고 있던 나에게, 자신이 유일하게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수한 학생이었고, 좋은 친구였으며, 뭇 학부모들에게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나의 가치를, 내 스스로가 어쩔 수 없는 절대적인 어떤 것으로 인해 손상시키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충분히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잘난’인간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철이 없고 부끄러운 과거이긴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분명 그랬다.
먹고 자고 입을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집안사정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여유있는 생활을 할 정도로 넉넉하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나를 둘러싼 조건들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어떤 것을 가지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처럼 막무가내로 울고불고 떼쓰면서 부모님을 당혹스럽게 한 경험은,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억지를 부려도 안 되는 일이 있고, 떼를 써도 불가능한 일이 있다는 것을, 무슨 이유에선지 이미 깨닫고 있었다. 아니 안 될 것에 대해서는 애초에 욕망조차 갖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때에도, 나는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고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억지로 학원을 보내 공부를 시키려고 하는 것 또한, 나는 거부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한 달에 20~30만원씩 부어가며 해야 할 필요를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차라리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경제적 조건 뿐 아니라, 친인척 관계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셨고, 장녀인 어머니는 똑똑하고, 딱 부러지는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 때문에 최종학력이 중졸에 머물러야 했다.(나는 지금까지도 어머니가 정규교육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면, 굉장히 큰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둘째딸인 이모는 알코올중독에 엄청난 낭비벽을 가진 데다가, 이혼까지 해서 지금은 어디 있는지 소식조차 모르고 있다. 그나마 막내인 삼촌은 성실하고 착실한 성격 탓에 큰 문제없이 자리를 잡고 있기는 하다.. 면 물론 60~70년 대의 힘든 시기를 살아왔던 다른 많은 가족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 나는 여태까지 있는 줄도 모르고 살던 넷째 이모 내외와 두 명의 사촌동생과 극적인 가족상봉을 경험했고, 다섯째 이모도 미국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제 손으로 버린 자식이 기어이 당신을 다시 찾아낸 것을 보고 어떤 심정을 가졌을까. 지금은 정말로 한 가족이 되어 기분좋게 가족모임을 가고는 하지만, 당시 넷째 이모가 외가를 다시 찾아낸 이유가 단지 그리움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원망과 미움, 배신감과 복수심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으리라.
친가 쪽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는 중풍에 걸려, 노년에 자식들에게 싫은 소리만 하다가 돌아가셨고, 큰아버지께서는 워낙에 엘리트셔서 꽤나 성공을 한 축에 들기는 하지만, 이건 무슨 하늘의 장난인지, 끝내 자식을 갖지 못하셨다. 둘째 큰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워낙 사이가 안 좋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서야 얼굴을 종종 뵐 수 있었을 뿐이고, 셋째인 아버지께서도 학창시절에 공부에 취미가 없으셨던 탓에 일찌감치 운전대에 손을 올리셨다. 막내 삼촌은 중국계 교포와 결혼해서 딸래미 하나 낳고 잘 사는가 싶더니, 그 사람은 결국 중국으로 도망가버렸다. 이런 상황에 내가 무엇보다도 부담스러웠던 건, 내가 장손이라는 사실이었다. 외가쪽에도 넷째 이모가 오기 전까지는 거의 띠동갑 정도 차이나는 사촌동생 한 명 뿐이었기에 나는 외가던, 친가던, 어떤 가족모임을 가서도 나랑 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 나는 사촌형, 누나들 얘기를 즐겁게 떠들고 다니는 애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같은 핏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시니컬하게 얘기하고는 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 정도로 가족사는 나에게 굉장한 콤플렉스이자 트라우마였다. 남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할, 부끄럽고 창피한 이야기랄까.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예전 여자친구를 포함해 남에게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위의 인용문에서 나오듯이 이건 나에게 커다란 아픔이었으니까. 워낙에 어렵고 힘든 60~70년대였기에, 이보다 더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가족도 많을 거라고 지금에 와서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저걸 어린나이에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 그녀도,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는 나에게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내가 저 때 익힌 거라고는 나도 상대방의 영역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상대방도 나에게 깊이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적당한 거리재기’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와 사귈 무렵에 그녀도 종종 이런 얘기를 하고는 했었다.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 당시 나는 그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아픔을 그녀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내 결점을 남에게 보여주면, 그들이 나를 떠나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그것이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인 줄도 모르고.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 같은 책, p. 106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언뜻 생각하면 당연한 사실인데도,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남녀는 곧잘 저 사실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연인이니까. 지금 이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얼마나 이기적이고 오만한 생각인가. 아무리 우리가 가깝다 한들,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도 내가 될 수는 없는 일인데, 어째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걸까. 아마, 바로 그것이 사랑의 가장 큰 맹점이리라. 뜨겁기만 한 사랑 끝에 남는 것은 결국 파멸뿐인 것을.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사랑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아포리즘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멋있고 그럴 듯하게 포장했을 뿐이지 결국에는 완전한 사랑을 갈망하고 지나간 이별을 슬퍼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부하고 틀에 박힌 사랑이야기가 대중들을 사로잡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난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닫는다. 평범하기 때문에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번쯤 사랑과 이별을 겪어본 사람은 그 글 속에서 따뜻하게 치유받는다. 노희경은 담담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했고, 나는 그 속에서 나를 발견했다. 그녀의 괜찮다는 말이 마치 나를 향하는 말인 것 마냥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어왔다.
그대여
이제 부디 나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사랑에 배신은 없다. 사랑이 거래가 아닌 이상, 둘 중 한 사람이 변하면 자연 그 관계는 깨어져야 옳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마음을 다 잡지 못한 게 후회로 남으면 다음 사랑에선 조금 마음을 다잡아볼 일이 있을 뿐. 죄의식은 버려라. 이미 설레지도 아리지도 않은 애인을 어찌 옆에 두겠느냐. 마흔에도 힘든 일을 비리디 비린 스무 살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가당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린 모두 오십보백보다. 더 사랑했다 한들 한 계절 두 계절이고, 일찍 변했다 한들 평생에 견주면 찰나일 뿐이다. 모두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다 괜찮다. - 같은 책, p. 24
하늘에 박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별을 바라본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지난 순간들과,
섣불리 영원을 약속하지 못했던 내 모습과,
어린아이처럼 눈물만 뚝뚝 흘리던 너의 모습과,
마지막 내 눈에 비친 차가운 뒷모습을 추억한다.
그리고 웃음짓는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지나간 나의 사랑에 안녕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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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8:39:18
병장 차종기
꺄악, 근영씨, 너무 오랜만인 거 아녜요,?
지금 읽기엔 조금 길군요, 밥 먹고 읽어야지. 흐흐. 2009-08-09
16:06:54
병장 차종기
아픈 글이네요, 근영씨의 글은 아파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요.
밖은 눈 부시도록 맑은데, 금방 비가 올 것만 같아요. 2009-08-09
17:52:39
병장 송형근
잘읽었습니다.
저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2009-08-10
11:12:58
일병 김건
저도 이 책을 읽어 보았지요.
왠지 글쓴이의 고독감이 전해져 오는듯해서 처음에는 거북했지만 읽어갈수록 내 사랑은 어땟나 하고 견주게 되더군요.
뒤돌아봄이 그 못난 사랑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추억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근영씨와 이 책의 만남도 역시나 그랬던 것 같네요.
잘 읽고 갑니다.
[re] [내글내생각] 나의 사랑이 무사하니까, 너의 사랑도 무사하기를.
병장 차종기 [Homepage] 2009-08-09 23:14:13, 조회: 145, 추천:0
그녀와 처음 만난 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과 더 친해지고 싶었을 뿐. 그 곳에 그녀들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당시 머리도 지금처럼 짧았고, 개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었던 내가, 어떻게 그녀의 눈에 띄었을까란 의문을 지금의 그녀에게 물어보며, 자기가 좋아하는 회색 반팔 셔츠에, 나 혼자 운동화를 신었다는 것 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그래도 그녀가 날 바라보는 눈빛은 아주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다. 어린 우리에게 딱 어울릴만한 이유와 상황이었다. 친구들과 그녀들이 짝짝이 나뉘어지기 시작할 무렵, 나도 그녀 옆에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아무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 앞에 있으면, 나는 초라해졌고, 불안해졌고, 겨울날 앙상하게 남은 가지마냥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래도 그것은 사랑이었다고, 감히 말한다.
우리는 가끔 전화를 했다. 휴대폰이 귀하던 시절, 집 전화로 몰래 몰래, 그리고 오래 오래. 그녀의 간혹 들려오는 가냘픈 숨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서 맴돈다.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 이야기나 되는데로 지껄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보다 어린 그녀는 나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우리는 단 둘이 만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무리에 속해 있었고, 비밀스러운 관계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잘 웃었다. 내가 잘 웃지 못해서 그런지, 그런 그녀가 너무 예뻐보였다. 아니 아름다웠다. 그래서 감히 다가가질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사이엔 알수없는 거리감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월드컵. 2002년 월드컵. 그것이 우리를 뜨겁게 만들었고, 당시 공을 쫓지 않고, 꿈을 좇던 나는 그 빨간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되는 경기력을 펼치는 선수들을 보며, 감탄했고, 그것을 지켜보는 그녀의 옆얼굴이 감탄스러웠다. 처음으로 축구말고,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안정환이 역전골을 넣었을 때, 너나 나나 할 것없이, 껴안으며 폴짝 폴짝 뛰었다. 소리까지 질러대며. 그 곳의 사람들은 우리 둘의 그런 행동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내가 그녀를 껴안았다는 걸, 인식한 것은 집으로 돌아와 그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였다. 수줍은 목소리로, 내 품이 따뜻하다며,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말하던 그녀. 그녀는 내가 꼭 축구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 그래서 축구에 더 집착했다. 비록 고등학교 1학년때 어줍잖은 감독에게 퇴짜를 맞긴 했지만.
그리고 몇 년간의 공백과, 상실의 시간. 그녀가 있을 때 보다, 그녀가 없을 때 더 절실함을 느꼈다. 꼬였다가 풀리고, 풀렸다가 꼬이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어떤 식으로 우리가 이어졌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지만,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었고, 그녀의 볼에 입맞춤을 할 수 있었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볼은 폭신폭신하고, 어리숙한 입술은 그 무엇보다 달콤했다. 무럭무럭 자라는 마음과, 넘치는 감정에 수도 없이 입을 맞추고,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절대 속에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나는 어리숙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치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노력만 했을 뿐, 그녀에게 좋은 사람은 커녕 상처만 주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너무 나약해서,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도 상처 받기 일쑤였고, 그런 상처를 그녀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변명을 하자면, 모두 불안해서 그런 것이었다. 나의 초라함으로 인해, 그녀가 떠날 까봐, 나의 속이야기, 즉, 아픈 구석을 이야기한다면 그녀가 훌쩍 가버릴 것만 같았다. 맞아, 나는 내가 말을 안해도 그녀가 다 알아주기를 바랬다. 정기적으로 꾸는 악몽도, 날 괴롭히는 가족관계도, 모두 그녀에게 비밀로 했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날 치유해 주기를 바랐다. 멍청하게도, 그것이 일방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녀에게 그것을 강요했다. 영문도 모른채 당하기만 하던 그녀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엔 떠나버렸다. 꽤나 중요한 시험을 치던 날에. 나는 시험을 망치고, 몇날 몇일 밥을 안먹어서, 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그녀는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결론적으로 그녀를 떠나게한 것은 나의 치부였던 것이다. 나는 죄책감을 느꼈고, 무력감을 느꼈다.
고삼때, 흔히 말하는 야자를 밤 늦게까지 했었다. 나는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으므로, 10시가 되면 땡땡이를 치기 일쑤였다. 그 시간에 버스를 타면 같은 자리에 앉은 여자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항상 웃고 있었다.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띄고는 항상 정면을 바라보며 갔다. 나는 그 앞에 서서 그녀를 떠올렸다. 도무지 웃어지지가 않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저 여자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기에 저런 편안한 미소를 띄는 걸까. 항상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면 먼 길을 돌아갔다. 우리가 같이 걷던 거리, 함께 앉았던 벤치, 밤하늘을 바라보던 놀이터. 다 둘러보고 올때면 그녀가 내 옆에 있는 것만 같아, 항상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집구석으로 돌아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눈물을 베고 잠이 들었다.
나도 그녀에게 털어놓지 않은 것이 많듯이 그녀도 나에게 털어 놓지 않은 것이 많았다. 작년 겨울. 그녀의 집 앞 놀이터에서, 갑작스런 연락으로 우리는 다시 재회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얼굴이 밝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그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적잖이 놀랐다. 놀이터 가운데에 있는 벤치에 마주보며 앉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힘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그가, 그녀에게 손을 댄다고, 딴 여자를 만난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그치만 그런 그를 사랑한다고. 그래, 사랑한다고는 하지 않았으나, 나에겐 그 생략된 말이 들렸다. 네가 뭐가 모자란다고 그런 새-끼를 만나. 그 새끼, 조심하라 그래. 내가 죽여버린다고. 내 입에서 내 감정과는 상관없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그녀가 나를 만류했다. 그러지마. 그럴까봐,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아아, 차라리 울기라도 하지. 항상 그녀는 웃기만 했다. 이제야 알았다. 그녀가 정말 웃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녀가 처음 드러낸 속내를 받아들이는 것은 5분조차 걸리지 않았다. 그래, 네가 좋다면, 내가 응원해줄께. 비록 내가 다치더라도 말이야. 그리고 그 후, 그녀는 딱히 나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설탕을 먹을 때마다 만나기는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났다.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나는 들어주는 입장이었다. 내 마음속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어올 때마다 그녀가 되살아났다. 그리고 욕구가 태어났다. 그녀를 더 알고 싶다.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 그 곳만 제외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내 마음이 점점 깊어질 수록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점점 빛이 났다. 잔인하게도.
진작에 이렇게 했다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가끔 그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좀 더 내 마음에 솔직하고, 내 아픔에 좀 더 초연할 수 있었다면, 내가 그것을 외면하지만 않았다면. 정말 그랬다면, 나는 네 웃는 얼굴만 보지는 않았을텐데. 나는 그녀에게 나무그늘 같은 사람이다. 그녀는 힘들면 나를 찾는다. 그녀는 내가 얼른 저녁밥을 먹고 나와주길 원한다. 나만큼 그녀를 위해주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 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 같은 한계가 정해진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처럼 지금의 나의 감정은 위대한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냥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 뿐인데, 우리의 관계는 이토록 깊어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 해도 상관없다. 그녀가 행복할 수 있다면.
아직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고, 거리가 눈에 보일 정도로 좁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멀리 있지도, 그리고 그렇게 폐쇄적이지도 않아졌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으니까, 괜찮다. 라고 말하고 싶다. 흘러가버린 사랑은, 흘러가는데로 두고, 우리가 새롭게 시작할 사랑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보냈던 추억은 그냥 이야깃거리로 남겨두기만 하는 거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해준다. 나의 사랑이 무사하니까, 너의 사랑도 무사하기를.
* 저의 치부를 아직 드러낼 용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근영씨의 글에 이런 답글을 달아버리는 것도 죄송스럽군요. 제목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서 따왔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8:39:39
병장 양동훈
이거였군요. 종기씨가 말했던 그 것이.
아.
깊네요.
깊어 보여요.
제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하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2009-08-09
23:47:47
병장 차종기
자꾸 하품하지 말아요, 동훈씨.
누군가 그랬던 것 같은데.
사랑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것이라고.
이게 뭔 상관이겠냐만은.
저의 사랑이 무사하니까, 동훈씨 가슴에 아주 작게 남아 있는 사랑도 무사하기를. 2009-08-09
23:57:04
병장 양동훈
종기// 제가 하는 '하암'은 하품이라기 보단 한숨이에요. 큭큭.
하루 종일 하품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크큭.
사랑이라. 남아 있을까요. 허허허.
왜 공허한 울림만 되돌아오는 걸까요.
아.
사랑해 본 적이 정말 있기는 한 걸까.
후우- 2009-08-10
00:08:31
병장 차종기
한숨, 또 한숨. 헤에-
동훈씨 가슴에 사랑이 남아있음을 저는 느끼는데
정작 본인은 느끼질 못하는 겁니까? 킬킬.
그런 회의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 사랑따위 겠죠.
동훈씨 가슴을 초강력 진공청소기로 흡입하고 나면,
청소기 진공관에 들어있을 겁니다. 먼지쌓인 아주 작은 사랑이. 2009-08-10
00:16:48
병장 양동훈
종기// 알아볼 수는 있을까요. 껄껄껄.
남아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아마, 사랑이었을 지도 모르는 것들이요.
껄껄껄.
아.
생각해 보면
미안할 일만 너무나도 많아서 말이죠.
어떻게 보면 정말,
쓰레기였으니까. 허허허허허허허허허 2009-08-10
00:41:15
병장 차종기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아, ! 있다면 있는 줄 알아요, ! 킬킬 2009-08-10
00:52:06
병장 정근영
...
한동안 말문이 막히고 말았네요.
책마을에서 그동안 종기씨와 함께한 시간이 꽤 긴 것 같지만,
사실 글 속에서 마주한 적은 별로 없었어요. 그쵸?
그렇지만 이 글 하나로도 많은 것을 나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감사해요. 2009-08-10
08:28:17
상병 신재호
저도 사랑해 보고 싶어요. 이 글을 보니 더더욱 그런 욕구가 드는군요. 2009-08-11
05:38:48
병장 차종기
근영씨 사랑해요. 2009-08-11
09:12:40
일병 김건
↑ 응?!
너무도 진지한 글을 다 읽고 가슴이 메어오는 여운에 잠겨 있을 무렵. '그것'은 예고없이 내게 다가왔다.
병장 차종기 : '근영씨 사랑해요.' 푸하낄낄킥킥!!
왠지 이 말을 하는 모습이 상상되는 것만 같아서...실례인걸 알지만..킥킥킥킥 2009-08-12
21:47:38
병장 차종기
건씨, 전 진지했어요, 킬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