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그 사건이 시작된 날은, 정확히 내가 태어난지 꼭 스무해 째 되는 날이었다. 그래 쉽게 말하자면, 스무 번째 생일이었다는 소리다. 생일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축하도 받고 기분이 좋고 하는 건 다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아주 스페셜하고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아주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 스무 살이 되던 생일 날,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가 차려주신 미역국을 먹고, 튼튼한 장이라도 과시하려는 듯 꾸룩대는 배를 처리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동안 즐겨왔던 일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화장실의 내음도, 그리고 꾸룩거리는 배도, 저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도, 평범한 아침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확히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지 모르겠다. 미역국이 문제였는지, 혹은 20살의 생일이라는 것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그 전날 밤 자세를 잘못 잡고 잠을 자서 그랬는지, 아직도 도통 알 수가 없다.
팬티를 내리고, 변기 위에 앉아, 잡지책을 펴고 볼 일을 보았다. 매번 화장실에 올 때마다 보는 똑같은 잡지 였으므로 흥미로울 것이 하나 없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란 바쁘기 마련이라서, 아무리 작은 일에 있어서라도 투잡스를 강요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시간 안에서 하나의 일만을 처리 하는 것은 무척이나 아까운 것이라는 거다. 노래를 들으며 책을 본다던가, 밥을 먹으며 신문을 본다던가, 나처럼 볼 일을 보면서 아무 쓰잘데기 없는 글자들의 배열을 보는 행위. 가 경제적이라는 것이지.
그런 나를 꾸짖고 싶었던 걸까, 잡지책을 뒤집으며 뒤척이다가 일이 잘못되어 휴지가 굴러 떨어져 버렸다. 휴지 걸이에 걸었으면 진작 이런 일이 없잖아. 라고 쳇쳇 거리던 나는, 일단 나오던 놈이나 다 나오게 하고 저 휴지 문제를 고민해 보자 싶어 막바지 힘에 열중했다. 휴지는 내가 변기에 앉은 상태로 잡기에는 이미 멀리 굴러가 있었다.
퐁
나올 놈이 나오고, 이제는 마무리만이 남은 상태가 되었다. 저기 굴러가 있는 휴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3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러니까 속칭 똥꼬 부분을 잘 오므려서, 팬티가 지저분하지 않게 만들어 준 뒤에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 휴지를 집는 방법이 하나. 있는 힘껏 바람을 후후 불어서 벽면에 튕긴 공기가 휴지를 밀어내게끔 하는 것이 둘.(지금 생각해도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디까지나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SOS 요청이었다. 화장실 문도 안 잠갔겠다 동생을 불러다 요것 좀 주워 달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허나 20살의 생일을 맞은 오빠의 첫 모습이 변을 보다가 변을 당한 모습이라면, 아무리 내 동생이라도 그다지 기분이 유쾌할 리가 없으니까, 3번은 제외하기로 했다. 뭐, 2번도 말이 방법이지 택도 없는 이야기니까 열외로 두자면, 이제 남은 것은 어기적 어기적 기어가는 방법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갑작스런 귀찮음이 몰려와 사태를 더이상 진행 시킬 수 없을만큼 무기력해 져 버렸다. 들고 있는 잡지책을 옆에 올려 두고, 엉덩이를 오므려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 줍는 그 행위가 어찌나 그리 귀찮게 여겨지던지!
이에 나는 아까 언급한 2번의 방법보다도 더욱 어이없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었는데, 그것인 즉, 매크릭스의 네오나 스타워즈의 제다이나이트가 하는 것처럼 물체를 염력으로 붕 띄워 잡는 영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스스로도 참 실 없다 생각이 들어 피식 하고 웃고 있는데, 잡지책 너머로 희게 붕 떠오른 것이 있는 것이었다. 뭐라고? 그래, 무언가가 붕 떠올라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휴지는 제 스스로 중력의 힘을 이겨낸 채 마치 유령처럼 둥실거리며 떠올라 내 손까지 안전하게 착지했다. 나는 잠자코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대체 이게 무슨일이지 싶어 멍하니 휴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악!”
나는 짧게 소리치며 휴지를 내던져 버렸다.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 같았다. 혹은 휴지로 가장한 괴물인지도 몰랐다. 벌렁벌렁 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나는 다시 몸을 기울여 그 휴지를 다시 한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휴지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도 귀신의 손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동생이 투명실로 장난 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고삐리 내 동생의 머리로서는 그런 고급 장난을 칠만한 자격이 되지 못했고, 상황적으로도 그런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 이건 어쩌면 정말, 내 초능력인지도 모른다. 하는 확신이 든 것은 그때였다. 흔히 말하는 포스를 쓸 수 있게 된 것일까. 어디 한번 다시 해봐야지 싶어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휴지를 둥실 떠 올리는 상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휴지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다시 한번 내 상상대로 붕 떠올라 주었다. 이번엔 잡지책, 다음엔 칫솔, 치약, 비누, 샴푸통, 안 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 나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이 세기적인 발견에 나는 신이 나서, 밑 닦는 것도 잊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팬티를 입었다가 찝지름한 기분에 깜짝 놀랐다. 당황하면서도 즐겁게 뒷처리를 다 하고 나니 이제는 내 초능력을 선보일 기회만 남았다. 나는 내 영광의 첫 물건이 되어준 휴지를 들고 화장실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엄마 엄마! 이거 봐요 이거!”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 져서, 얘가 아침부터 왜이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거 상관없이 일단 보여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휴지를 식탁에 놓고 집중을 해서 휴지를 떠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영상은 분명히 그려졌는데도 휴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어? 왜 이러지?”
그러나 휴지는 뿌리를 박은 듯 절대로 떠오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억울함을 증명하려는 듯 아까 떠올랐던 비누라던가 칫솔, 치약 등을 모두 가져와 차례로 재시도 해보았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정말 아까는 됐다면서 하소연을 했지만, 증거 없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지라, 어머니에게는 꿈같은 헛소리로만 들렸을 뿐이었다.
“아무렴, 우리 아들이 거짓말 할까봐서, 엄마는 다 믿지 믿어”
이런 식으로 농담조의 빈정거림만 들었을 뿐이다.
동생에게도 마찬가지로 수선을 피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편으로는 답답하면서도, 정말 내가 볼일 보다가 꿈이라도 꾼 게 아닐까 혹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다 꿈이 아닐까 싶어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볼은 얼얼하기만 했다.
한동안 초능력에 대해 체념하고 있던 내가 다시 환호성을 지르게 된 것은 그 날 저녁이었다. 생일이랍시고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자리가 있었다. 그 곳에 나가기 전에 마침 또 변이 마려웠던 것인데, 볼 일을 보며 아침과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 재현해 보니, 초능력이 여지없이 되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헛 것을 본 것일 리가 있나
나는 휴지를 공중에 붕붕 띄운 채로 엄마를 소리쳐 불렀다. 엄마는 왜 부르냐는 식으로 투덜투덜 거리셨다. 이윽고 엄마가 문 앞에 이르러 내가 문을 열라고 했을 때까지도 휴지는 공중에 잘만 떠 있었다.
허나,
문을 여는 순간 휴지는 중력의 법칙을 따라 툭 떨어져 버렸고, 엄마는 대체 왜 불렀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이후 몇 차례 실험을 해 본 결과, 나는 나의 초능력이 극도로 한정된 조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화장실에서 큰일을 볼 때만 가능 하다는 것, 그 화장실은 밀폐된 공간 안이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문이 열리는 순간 마법은 풀려 버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척 난감해 졌다. 초능력을 얻었으되, 제대로 써먹을 곳이 없었다. 그나마 방송국에 나가서 초능력 시범을 보이는 것도, ‘대변을 보는 동안 초능력을 쓰는 사나이’ 라는 타이틀이 걸린 방송이 나오게 될까봐 두려워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전 국민을 상대로 ‘ 저놈은 똥 쌀 때만 초능력 쓴데’ 하는 놀림감이 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나마 화장실이 아닌 바깥에서 쓸 수 있는 염력이라면, 여러 곳에서 꽤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텐데, 내가 쓰는 염력의 전부는 그저 잡지책을 손 뻗어 들기 귀찮을 때 들어 올리는 것이라던가, 휴지를 들어 올리는 것 뿐이었다. 이렇게 쓸모없을 수가! 그나마 염력을 자유 자재로 다루게 된 끝에, 휴지를 염력만으로 둘둘 풀어낸 다던가 잡지책을 공중에 띄운 채 염력으로 책장을 넘기는 등의 고급 기술을 사용 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의 고찰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과연, 이런 능력이 나만 있는 것일까. 어차피 밀폐된 화장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면 당사자 이외에는 모르는 사건일 텐데, 모두들 스무살이 되는 해에 초능력을 얻고도 쉬쉬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나 그 상상의 대상이 여자라면 꽤나 불온했다. 염력으로 휴지를 풀어 뒷처리를 하는 여성의 모습이라니, 아직까지 여자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는 나에게는 그런 상상만으로도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러니, 이런 능력을 얻어도 쉬쉬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 놓고 보니, 어머니가 ‘그럼 우리 아들 말 다 믿지’ 하는 식으로 놀렸던 것이, ‘그래 너도 이제 그 단계에 들어섰구나, 성인이 되면 다 그런거란다.’ 하는 비아냥으로 비췄다.
답답하지만, 대놓고, 변 볼 때 초능력이 생기지 않느냐고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참 민망했다. 게다가 생기면 또 어떠랴. 대관절 쓸모없는 초능력인데.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X맨의 초능력자들처럼 개인 각자의 다른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혹자는 대변을 보면서 분신을 할지도 몰라. 또 누군가는 대변을 보면서 투명인간이 되는지도 모르고, 혹은 늑대인간으로 변신할 수도 있지.
그래, 다 쓸모없는 초능력이지만, 홀로 즐길 수밖에는 없는 초능력이지만, 나는 괜스레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당신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병장 박진우 (2006/06/23 16:49:21)
그럼 사진을 찍어본다던가, 아니면 화장실 밖의 물건으로 실험을 한다던가... 조금 더 현실적인 실험들을 해보는게... <데스노트>처럼.
이거 무슨 에스퍼맨도 아니고...(땀)
의심많은 성격이라 무턱대고 의심부터 들지만 지민님이 초능력자라고 하니 안 믿을수도 없고, 게다가 저도 지민님처럼 염력은 아니지만 가끔씩 피곤하면 영혼을 본다던가 꿈속의 예지가 지나치게 디테일하다던가 하는 오컬트적 능력도 있으니...
설명은 안되지만 뭐, 본인이 된다는데 믿어야지요. 흐흐흐.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린다던 사람도 있다던 김영하씨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일병 김지민 (2006/06/23 16:58:03)
픽션일 뿐인데요 뭐. (땀)
상병 허익준 (2006/06/23 16:58:06)
살짝 다른 분야이지만, 저는 철제문 바깥에서 거실TV가 켜져있는지 꺼져있는지 감지할 수 있습니다.(...)
상병 조주현 (2006/06/23 17:04:42)
익준// 허억, 그거 저만 그런줄 알았는데..(찌-잉하는 그 특유의 느낌!!)
병장 박형주 (2006/06/23 17:08:45)
익준/저도!
병장 조용준 (2006/06/23 17:09:22)
주현// 저는 어느 TV인지, 어느 PC가 켜져있는지까지 구분합니다. 이상하게 그런데 민감해서(...)
병장 고계영 (2006/06/23 17:11:14)
다른 채널의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KBS'인생극장') '아 이쯤이면 이게 할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 때 채널을 돌리면(SBS'진실게임'정도?). 딱!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의 로고가 뜨면서 시작한다는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명 '프로그램 시작 감지 능력'이라고(퍽)
병장 김동환 (2006/06/23 17:26:28)
저는 예쁜 여성을 한번 보면 절대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아요. (먼산..)
병장 정치훈 (2006/06/24 00:21:57)
저는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 날 수 있습니다. 다만 피로회복이 가능한 정도의 시간 6~8시간 이상 잤을 시에 해당 됩니다.
상병 박형민 (2006/06/24 03:07:54)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간부인지 선임인지 후임인지 알수있습니다(땀)
병장 이은호 (2006/06/24 07:15:25)
염력..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그 힘.
그 염력이란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궁금해집니다.
병장 김동석 (2006/06/24 18:53:27)
올빼미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병장 주영준 (2006/06/25 11:19:42)
커터칼로 몸에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2년만 채우면 10년내공이로군요.
병장 박진우 (2006/06/25 12:56:48)
지민// 픽션이라면 진즉에 밝히셨어야죠!!!!
상병 송희석 (2006/06/25 13:04:29)
이런! 난 능력이 없는데(좌절)
일병 김지민 (2006/06/25 14:30:00)
설마 이런 글을 그리 쉬이 믿으실정도로 제 신뢰성이 강할줄이야 알았겠습니까. 헛헛!
병장 노지훈 (2006/06/25 18:36:30)
뭐, 믿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
상병 정준엽 (2006/06/25 20:49:22)
진짜 도인들은 밝히지 않죠.
그런 의미에서 지민님은 진짜 염력이 있는 것 같아요.
상병 권오규 (2006/06/26 10:30:49)
'딩딩딩딩딩딩'소리를 듣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면 지하철이 바로 눈 앞에서 문이 닫히며 떠나가버리는 신기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고 천천히 걸어도 지하철은 약 올리듯 눈 앞에서 문을 닫으며 떠나가버리죠. 전 항상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철 괴물'과의 심리전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항상 지는 능력 또한 소지하고 있습니다.
병장 김강록 (2006/06/26 11:36:11)
혓바닥으로 담배를 끌 수 있습니다.
일병 김지민 (2006/06/26 12:55:22)
나는 모르고 있는데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 있을 거란 생각 안해보셨나요?
그 중에서도 쉬쉬하고 있는 무언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