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후임과 담배를 태우다 잠 이야기가 나왔었다.
고녀석은 '박준연 상병님! 저는 자대와서 잠을 자려고 누우면 항상 5분 이내로 잠이 들었습니다.' 라는 말을 뱉었다. 이 자식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아니고 대체 뭐야..란 의구심과 젠장. 나는 평균 30분인데.. 라는 부러움이 시너지 효과를 이루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불이 켜져있거나 음악을 틀거나 혹은 귀에 이야기 소리가 들리면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특히 MT나 농활때는 몸은 피곤함에 쩔어 있었지만 다른 이들의 코고는 소리에 쉽지 않은 밤을 보냈었다. 대학을 다니며 학교 앞에 살 때는 새벽에 모기 소리에 잠을 깨어 불을 켜고 무자비한 학살을 벌이고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잔 적도 부지기수다.
뭐 하려는 말은 이런게 아니라 그냥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역시 도입부 글 작성이 제일 힘들어.. 눈물) 그래서 어제도 잠자리에서 20분 음악을 듣고 20분 정도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을거다. 그 20분 동안 생각을 하며 이 곳에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땐 머리속에 단어들이 둥둥 떠다니며 나는 오만가지 문장을 만들 수 있었다. 안습. 갑자기 학창시절 배웠던 '메모광' 이란 수필(?)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먼산)
학창시절 나는 좌절할 권리도 받지 못한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평범한 학생이었다. 뭐 술을 먹거나 여자를 만나거나 담배를 피운적이 없진 않았지만 거기에 올인하지는 않았던 '주류' 고딩. 그리고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새내기 시절, 형이 최고야. 누나가 최고야. 를 떠벌리며 졸졸졸 많은 술자리를 전전했고 사람들을 만났고 돼지갈비와 백세주에 취하게 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선배의 제안(?)에 이끌려 결론적으로 나는 'Be the reds..'가 되었다. (나중에 그 선배는 나를 제발로 굴러들어왔다고 평가했지만 나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차츰 세상엔 내가 보지 못했던 면과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많은 일들이 무차별적으로 벌어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친분을 쌓을 때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되었다. red, yellow, blue 이 세종류로 말이다. red는 무조건 좋은 사람. yellow는 어느정도 나의 의견에 동조하면 좋아질 수 있는 사람. blue는 이유불문 담을 쌓고 좋지 않은 사람. blue는 내가 생각하기에 착한 사람은 될 수 있을지언정 좋은 사람을 절대 될 수 없었다.
나는 주위 사람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공유했을 때, 그들도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그게 선진국 '대한민국'의 모습이 맞냐고 다시 되물을 줄 알았다. 학교에서, 때론 고향에서 친구들을 만나며 나의 생각과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인식변화를 요구하였으나 얻은 것이라고는 서로의 감정이 상한것 밖엔 없었다. 말로 아무리 나의 행동을 합리화시켜도(행여 그들은 논리에는 동조했을지라도) 그들에겐 나의 의견은 하나의 철없는 어린아이의 이상에 불과했다. 심지어 가족조차 나는 설득시키지 못했다. 나는 실패했다. 중요한건 옳은게 아니라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 문뜩 나는 서글픔을 느꼈다. 정말 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는 차츰 정체성이 다른 이들을 만나는게 힘겹게 느껴졌다.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항상 이전의 추억만을 떠올릴 수도 없는 일이고 현재 자신의 이야기를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그들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접게 되었다. 그들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다는게 너무나 괴로웠고 내가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묘한 자괴심마저 들었다. 추측컨대 토익이나 자기계발을 하는 이들을 보며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기 하나 잘되고 보자는 이로 평가하는 내 교만적인 생각도 여기서 출발했으리라!
많은 이들이 하나같이 우선 군에 다녀와. 그럼 철이 들거야.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래. 고놈의 군대가 어떠한 곳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지 보자! 라는 생각과 함께 도망가는 심정으로 나는 군에 입대했다. 입대 후 이 '책마을'이란 공간에서 나와 비슷한 활동을 했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심지어 인트라넷에서 윤미진씨의 희망은 있다라는 노래를 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녁자의 유령으로 자주 회자되던 주영준씨와도 번개팅으로 3번가량 만났었다. (나는 영준씨와 우연히 같은 기지였다. 그것도 서로의 생활관 거리는 달리면 10초정도의)나는 그들이 너무나 반가웠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알았던 사이도 아니고 쪽지로나마, 영준씨는 잠깐 얼굴을 보고 이야기 했음에도 그런 행위 자체가 너무나 포근한 느낌까지 들었다. 마치 그동안 꾸준히 만나왔던 절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내 마음을 깨끗히 비우고 새 것으로 채워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내 동지들을 비롯한 이런 사람을 내 가슴에 담으리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어제 밤, 나는 누워 음악을 들으며 자려는 시도를 부단히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내무실로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가 들어왔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들을 하더니 사람들과 우르르 다른 곳으로 놀러갔다. 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겠으나 문뜩 그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사람을 흑백논리로 나누는 내 이분법적인 생각의 그릇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예전과는 다른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충만하게 생겼다. 근데 문제가 있다. 나는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내 이분법적인 생각을 전부터 쭉 알고 있었다. 사랑이 그렇듯 사람 맘이란게 잘 안되는 법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데 내 자신에게 최소한 하는 시늉이라도 보이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1차적으로 나는 내 자신을 혁명하지 못하였고 인간은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을 애써 거부했다. 내 주위 사람을 설득시키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비참한 마음에 애써서 내 그릇된 생각을 마치 별 일 아닌듯 넘겼는지도 모른다. 나는 간과했다. 무원칙하고 무책임한 삶은 자신에게 진정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결국 적은 내 안에 있다는 말처럼 악마는 나의 내부에 존재했다. 나는 그것을 어제가 되서야 인정했다. 문뜩 기억 저편에 먼지 잔뜩 묻어 사그라 들었던 모란공원 비석에 새겨진 거짓말 같은 말이 떠오른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입니다. 백마디의 거추장스러운 말보다 진심을 담아내는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