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 지하철
병장 임정우 01-15 10:43 | HIT : 196
지금은 화창한 햇볕이 막 솟아오른 때이다. 숲이라고 즐겨 표현되는, 즐비하게 빼곡히 차곡히 정돈된 어느 아파트 입구에서 한청년이 걸어 나온다. 청바지에 검은 재킷을 입은 것으로 보아 바깥 날씨는 적당히 선선해 보인다. 청년은 적당한 신장에 꽤나 준수한듯. 단정한 머리칼은 지나가는 바람과 친숙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쌍커풀이 없는 눈매와 곧은 코는 남자다운 면을 강조하나 얇상한 턱선에선 여성적인 향취도 감지가 된다. 어깨에는 가죽으로 만든듯 보이는 각진 가방을 걸치고 있었는데, 옷과 가방을 관찰하여 내린 결론인, 캐주얼한 패션으로 보아 그 청년은 학생정도인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세밀하게 그를 관찰해 보고자 하나, 청년은 걸음을 재촉하여 어디론가로 재빠르게 걷는통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만다. 청년이 사는 곳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라 차도에는 버스정류장과 지하철 역이 적당히 합리적인 거리마다 위치하여 있다. 청년은 둘중 지하역을 선택하여 향한다. 역 입구에는 누군가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농후한 볶은 머리스타일의 펑퍼짐한 아주머니가 작은 규격의 신문따위를 건내주는데 청년은 그것을 익숙하게 받아 겨드랑이에 끼고는 계속 걷고 있다. 뿐만아니라 각종의 사람들이 컨베이어 벨트의 어떠한 물건들처럼 무표정하고 반복적으로 같은 행동을 하고 내려가는 것이다. 양복을 입은 중후한 반백의 신사나 짧은 스커트를 입은 코에 점이있는 어떤 누님이던, 결론적으론 실험실에서 행해지는 반복훈련을 내심 기쁘게 받아드리는 하양생쥐마냥 그토록 실험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별 어려움 없이 발견할수 있다. 지하철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의 광경과 별 다름이 없음을 이견없이 받아드리도록, 모두를 기분좋게 교육시켜 간단한 물건이 되는 과정에 일조함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포장만 다르게 입혀있는 동일한 제품들 사이에서 다시금 청년을 찾도록 하자. 청년은 입구를 통과하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천장에 박쥐처럼 달라붙어있는 전광판에서 다음열차가 곧옴을 암시하고 있다. 청년은 좀전에 받은 신문을 보려다가 곧 접어야 함이 성가신지 반으로 다시 반으로 접고는 가방속에 구겨넣어 버린다.
삐익, 소리와 함께 열차의 속도는 줄어든다, 그것은 관성의 법칙과 어느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진듯한 속도로, 그 속도의 그래프는 곡선의 형상을 갖추고 있음을 눈치챌수가 있다. 이제 청년은 콩나무시루의 일족으로 자기 스스로의 호적을 옴겨야 함을 각오한다. 눈가에는 체념의 얇팍한 주름이, 한일자로 다물려있는 입가에는 반복되는 가혹한 운명에 맞서고자하는 단호함이, 작게 벌렁거리는 콧구멍만이 긴장한듯 식식 거리는 숨고르기운동을 하고 있다. 푸식,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4-3번에 위치한 전동차의 문이 작은 개한마리가 겨우 꿈틀대며 빠져나올만한 공간을 제공하는 순간부터, 개보다는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성급한 짐승들의 일종의 전쟁이 시작한다. 전쟁의 발발은 생존의 터전에 걸린 결승점에 정시에 터치하고자하는 필연적인 욕망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어느누구의 잘못이라고는 도저히 명할수가 없다. "빌어먹을" 청년은 옆사람이 듣기에는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혹시나 들을까 하는데서 오는 불안감때문에 작은소리로 말한것은 분명 아니라고 주장하는 찡그린 표정을 짓고는 문화인의 시루 더미속에 자신의 몸을 , 좀전의 스스로가 가방속으로 구겨 짓이겨 넣었던 신문처럼 딱 그정도 모양으로 구겨져 들어간다. 푸식, 좀전에 문이 열리던 소리와 완벽히 동일한 소리와 함께 4-3번에 위치한 문이 닫힌다. 이제 전동차는 젓먹던 힘을 동원하여 서서히 출발한다. 다시 전동차 안을 살펴보자. 사람이라 불리우는 제품들의 사지가 기묘한 형태로 엉켜있어, 회색양복의 뿔테 안경을 쓴사람이든 이어폰을 낀채 눈을 감고 있는 여학생이든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부부건 모두 어디론가 내동댕이쳐짐만을 공포의 전부로 인식한 그러한 표정으로, 늙은 고목의 멋대로 뻗혀있는 가지처럼 얽히섥히 기묘한 형국을 이루고, 그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안그래도 부족한 산소속에 달라붙어 피할수없이 들이키고야 마는 것이다. 검은 자켓의 청년은 끔찍함에는 익숙해 질수없는 과정임을 절실히 알고있다. 그래서 주변의 인간들을 살해하고자하는 욕망에 사로잡혀도 보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눈을 감고 선채로 잠을 청해본다. 하지만 어느누구도 숨이 턱막힌채로는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게다가 선채로 먼곳에 있는 철봉을 움켜잡은 기묘한 자세로는 -위쪽의 손잡이는 이미 모두 강탈당해 버렸다-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는 것이다. 청년은 다시 눈을 뜨고는 지하철 노선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특정한역을 기대하며 새로운 희망에 부푼다. 한 2정거장 후면 선채로 있는 사람의 대부분을 내리고야 말것이니 우연의 여신이 업무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그덕에 잘하면 자리하나라도 생긴다면, 범처럼 날랜 몸놀림으로 자리를 낚아채고 말겠다는 다짐이 솟아 오른다. 청년이 가능성의 정도를 희망의 주판으로 튕기는 새에 특정한 역에 도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밀치고 뭉개진채로 전동차 밖으로 밀려 나간다. 청년을 고개를 바삐움직여 자리를 탐색하는데, 운좋게 바로 앞자리가 비게 되어, 몇분간의 희망이 생각보다 쉽게 성취되어 기분이 좋아보인다. 게다가 바로 앞쪽에 긴생머리의 귀엽게 생긴 여인이 있자, 몸의 혈액순환이 한껏 잘되어 창백한 얼굴에 약간의 생기마저 돌아온다.
여인을 자세히 뜯어보자. 피부는 희고 곱고 약간 살이 올랐는데 그것이 불쾌감을 주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성욕의 범주에 들어가는 식욕의 민감한 부분의 자극을 주는 류의, 소위 젖살이라고도 부를만한 것이니 청년을 더욱 흥분하게 하여 그의 검은 동공에서 빔이라도 쏟아져 나올듯 보인다. 그리고. 또 몸매는 어떠한가. 가는 목선을 타고내려가면 레이스가 적절히 수놓아진 하얀 레이스는 여성의 신비로운 언덕을 보일듯말듯하게 투명도를 조절하여 수컷의 욕망에 허기짐을 이용하여 유린할 셈으로 보인다. 천천히 아래를 향하던 청년은 더이상 눈으로 무언가를 감지하기를 거부한다.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에 다리가 제주도의 종마의 그것을 연상시킬만큼 튼실했던 것이다. 게다가 태초의 인류마냥 털도 북실한게, 겨울에 걸을때는 그 효과가 물론 탁월하겠지만, 그런것은 청년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것이다. 다만 허리위에서 발견되는 천사의 형상과 허리 아래에서 발견되는 자연인적인 모습이 조화를 이루려고 애쓰는 모습이야말로, 너무나 끔직하다는 생각이 들어 속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청년은 속으로 '이제그만' 이라고 다섯번정도 되뇌여 보았다. 때마침 청년의 마음속에서 부조화의 여신으로 명명된 그녀는 자신의 길을 떠난다. 잠시동안 흔들렸던 착각을 내던지고 청년은 억지로 잠을 청해보려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잡념을 없애고 잠을 들려고 해보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지하의 탁한 공기가 비염을 포함한 서너개의 알레르기를 소유한 청년에게는 도저히 맞지를 않는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여러번 반복되도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청년은 잠이드는것을 포기하고 인내한다. 이제 몇정거장이면 목적지에 도달할 터이니. 울렁거리는 속을 무시하고 다시금 잡념을 생각의 집으로 초대하여 이런저런 망상을 찌끄려도 본다. 그러는새, 전동차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갑작스레 긴장감에 끈이 끈어져버려, 동시에 충족된 인내심에 한계가 청년의 마음속에 잡념을 조각조각 부슬어 버리고, 그러자 그 사이에 울렁거리는 속이 삐죽거리며 치고 올라온다. 문이 열리자 마자 청년은 앞으로 내달려서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마구마구 미친듯이 뛴다. 겨우 태양빛이 간섭하는 최후의 계단을 올라가던 차에, 결국 참지를 못하고 아침에 먹었던 토마토 주스를 모두 게워낸다.
상병 정희준
상세한 묘사. 대략적인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데요.
' 수컷의 욕망에 허기짐을 이용하여 유린할 셈으로 보인다'
푸훗, 01-15
병장 제갈승
재미있습니다. 3자의 시선에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네요.. 동공에서 빔이 나온다는 구절 전까지는 좋았습니다. 01-15
병장 임정우
허접한 글. 부끄럽습니다. 01-15
병장 김청하
이쪽에서 보는 거랑 다른 곳에서 보는거랑 느낌이 다르네요. 01-15
병장 임정우
에? 어떤느낌이요? 01-15
상병 김윤호
동공에서 빔이 나오는 구절은 상당히 마음에 드네요. 01-17
상병 서승우
재미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묘사와 표현이 신선하네요..(웃음) 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