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정체성' 
 병장 진규언 04-10 11:06 | HIT : 244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사춘기때 끝냈습니다. 아니 그런줄로만 알았습니다.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그때가 '시작'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아니 그럴 것입니다. 철없던 까까머리 중학생일적,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친구들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던 고민들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어쩌면 평생 유효할지도 모르겠지만.

 대통령에게는 '유권자'이고, 정부기관에게는 '시민'이고, 기업에게는 '소비자'이고, 항공사나 버스회사에는 '승객'이고, 출판사에게는 '독자'이고, 라디오에게는 '청취자'이고, TV에는 '시청자'이고, 미술관에게는 '관람객'이고, 통신회사에는 '고객'이고, 음식점에게는 '손님'이고, 병원에게는 '환자'이고, 변호사에게는 '의뢰인'이고, 국세청에게는 '납세자'이고, 병무청에게는 '병역대상자'이고, 프로그램업체에게는 '사용자'이고, 학교에게는 '학생'이고, 부모님에게는 '자식'이고, 형제에게는 '형제'이며, 자식에게는 '부모'이고, 여론조사기관에는 '조사대상자'이고, 보험회사에는 '가입자'이고, 친구에게는 '친구'이며...

 그렇습니다. 이토록 수많은 정체성 속에서 살고있습니다. 그러니까 혼란을 겪는 것이 당연하다 이 말이지요. 그나마 다행인건 이 안에서야 정체성이라는게 까짓거 두가지로밖에 나뉘지가 않아요. '나보다 높은사람' 혹은 '나보다 낮은사람'.. 간단합니다. 높은사람에게야 뭐같은 일이 생겨도 면종복배하면 그만이고, 낮은사람에게야 폭력을 부리든 자애로움을 보여주든 내 알바가 아니지요. 이렇게 단순하고도 간단한 정체성에 반기를 들려 할때 고통스러워집니다.

 예를 들어, 책을 대함에 있어서 진지한 '독자'가 되려고 할때에 내용과 실천 사이에서 지독히도 괴로워합니다. 주말에는 진중권씨의 <폭력과 상스러움>을 뒤늦게 읽었습니다. 맛깔나게 글을 지으시더군요. 몇몇 유명인사들을 속 시원하게 깝니다. 대략 이문열, 공병호, 복거일 기타 등등.. 미친언사에 대한 미친소리도 서슴지 않으시던데. 대단들 하십니다. 욕먹는 분들이나 욕하시는 분들이나. 당연히 미친세상에 어울리는 미친소리이나, 지극히도 당연한 이야기를 할때에도 미친 정체성에 괴로워합니다. 

 지극히도 당연한 일에 왜 분개해야 하며, 왜 미친짓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고통스럽습니다. 어제는 가까운 '아랫님'에게 이야기 했었죠. 
" 내 식기를 내가 닦는게 왜 당연해? 이건 말도 안돼." 어떻게 보면 참 당연할 수 있지요.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그런데, 어떤 관점에서 보면 당연하지가 않아요. 이것마저도 타성에 젖어가는 제 정체성을 발견해 버렸으니까요. 그래도 퍽이나 간단합니다. 허용된 정체성의 범위 내에서야 마음껏 폭력을 휘둘러도 어떠한 제재따윈 찾아볼 수 없으니까. 

 지난 봄 나들이 때는 이런 일도 있었지요. 학교를 갔다가 아는 님을 만났습니다. 새내기적 고민을 털어놓았었고, 함께 술잔을 기울인적도 꽤 되는 옆 학과 아는 님이지요. 그렇고 그런 모임에서 그렇고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었지요. 높은 자리에 있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이를테면 한 무리의 지역수장쯤은 되려나) 저의 색깔을 떠나서 뚜렷한 언변이 좋았고, 뚜렷한 정체성이 좋았습니다. 한 무리를 이끌려면(아니면 참여자에게 주체적 이끌림을 얻어내려면), 저정도의 확고한 정체성은 지녀야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으니까요.
" 나는 socialist이다"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던 첫 만남에서부터 이거이거 이 사람을 '정보는 국력'이라는 곳에 신고해야 하지 않나 하고 고민했던 어린날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 뛰어난 애국자네요. 그래도 그의 뚜렷한 생각에 매료됐었고(제가 그 생각을 배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경외심 정도는 싹텄을... 아님 말고) 따라서 모임에도 나가 열변을 토하던 그들에게서 누구보다 더한 열정은 배울 수가 있었지요. 

 하여튼 그런님이었지요. 안부를 물었습니다.(군인의 안부야 뭐. pass)
" 요새 취업준비하느라 바빠. 여기저기도 넣었고, 여기저기는 1차는 합격했고 면접준비, 여기저기는..어떻고 저떻고.. 그런데 지난날의 경험이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길가던 중의 인사라 더 긴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이런 기분, 아시겠지요? 예상하신대로 여기저기는 그님이 성토를 마지 않던 그곳이며, 다른 여기저기는 폭파해야 한다던 곳이지요. 심지어는! 전국에 자전거를 가장 많이 뿌린 언론사에도 지원을 한걸 보면.. 스펙이 대단하긴 대단한가봐요. 진정으로 대단하죠? 그 와중에 챙길 것(?)은 챙긴걸 보면 말이지요.

 진정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할때에는 오른쪽 차선에 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나랏님께서도 이런 발언을 하셨다지요. 먹고 사는 문제의 우선적인 해결을 위해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 언제부터 이분께서 국가주의를 쌍수를 들어 환영했는지는 모르지만.. 왼쪽에 섰다간, 누군가의 발목잡기로 밖에 비춰질 수 밖에 없으니.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 하여 높은 자리의 누군가를 비난하면 안된다지요. 죽을만큼 더 노력하는 길밖에는 없다지요. 여기까지는 참 맞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공병호씨처럼 '그러다 안되면 장기매매까지도 허용해야한다'라는 미친소리를 하면 안되는 것이지요. 인권, 인권, 인권을 그리도 강조하는 것은 신기하게도 아름다운 나라의 매 아저씨들입니다. 요건 또 희한한 일이네요.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인권은 그리도 소중하다며,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룩한 분들의 인권따위는 짓밟는 아저씨들의 언행이 어떻게 이해 되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근에 타결된 협정자체는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적어도 일자리는 소폭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면 좋은거잖아요. 

 누군가 그랬다죠.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맞는 말입니다. 돈독에 눈이 벌게져 세상을 돈놀음으로만 보고 살순 없겠지요. 적당히 교양있고 적당히 문화적으로도 풍부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요. 타 학문에 대한 경외심을 넘어 최소한의 이해는 하고 있어야 '소통'이 가능하다고 누군가는 또 이야기 했습니다.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 에 대한 고민을 일정부분 해결하고 난뒤에 교양과 예술과 문화를 즐기고 싶다고. 맞는 말입니다. 오만 시사현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더라도(그래서 무지한 누군가에게 남몰래 우월감을 갖더라도), 마그리뜨전을 관람하고 있는척하더라도, '교양서적'을 읽어 머리속이 생각들로 넘쳐나게 되더라도..

 오히려 많이도 모르는 편이 나을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이젠 더이상 어리지도 않을뿐더러, 이까짓 사춘기적 생각따위는 예전에 내던져 버렸어야 하는데.. 그래서 승자의 논리를, 승자의 개념을 머리속에 콱 하고 탑재하려고 합니다. 자전거 신문을 보고, 자본가들의 놀음인 주식시장에 발을 담궈보고, 모 소설가가 주창하는 망국적인 영어공용화론에 발맞추려 애쓰고, 3不정책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모 유력한 대권주자께서는 이런말씀을 하셨답니다.(개인적으로는 좋아라 하는 분입니다. 지금보다도 어린날 역설적이게도 희한한 모임에서의 활동덕분에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은적도 있지요. 그래서 좋아하나..)
" 학생운동은 문제제기에 그쳐야 하지, 그 문제 자체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맞는 말씀입니다. 암 그렇고 말고요. 문제제기에 그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 그것만이 현실을 위해 노력하는 방안이 아니던가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참여는 '선거'입니다. 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참여가 '문제제기'이겠지요. 딱 그정도 입니다.

 진중권씨의 <폭력과 상스러움>과.. 고전의 해석판인 플라톤의 <국가론>을 동시에 읽다보니 머리속에서는 신당창당과도 같은 혼란스러움이 일어납니다. 개인의 정체성이 결코 국가에게 함몰되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아니 그렇다고 하는게 아니라, 지극히도 정상적인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국가를 위한 선혈이 낭자하는, 그리고 그것을 아름답게 여기며 쾌락을 느끼는 그 빌어먹을 국가주의(혹은 군국주의)에 개인의 존엄성이 침해 받으면 안되는 일이지요. 플라톤은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국가를 위해 이 한몸 다 바칠 수호자가 필요하며, 그는 곧 철학자여야만 한다. 자기를 희생하며 국가를 위해 투신해야 한다. 

 진중권씨 말대로라면, 이 나라의 국운을 건 결단 따위는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종류의 것입니다. 국운과 개인의 운은 완연하게 별개라는 이야기지요. 맞는 이야기일수도 있습니다. 어제 KOSPI지수가 1500을 돌파했다고 하여 개별종목에 투자한 개인들이 돈을 버는게 아닌것 만큼이나 정상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일견 타당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플라톤씨의 망극한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국가는 누가 운영하나. 공무원의 월급은 쥐꼬리인것이 사실이며, 안정적인 철밥통이라는 인식도 사상 초유로 100여명의 인력조정이라는 사건으로 우리우리 특별시의 시장님께서 불식시키려 애쓰고 있는 판에.. '국가를 위해 헌신할' 명분과 동기는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장하준씨가 <국가의 역할>에서 언급했듯이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연봉과 명예 이외에도 '국가를 위해'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가장 큰 동력이라고 말하지요. 사람들의 집중되는 관심과 북돋움이 없다면 투신할 이유는 없을 수 있지요.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철인정치론도 일정부분 정당성을 가질 수 있나봅니다.

.. 해서 가장 단순한 정체성만을 가지게 됩니다. 이 안에서야 '높은 사람'이거나 혹은 '낮은 사람'이거나. 그래서 우리네 책마을의 진보적인 성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오른손잡이 보수꼴통우익 입니다.


 그래도 결코 정치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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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병 임승관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대학가서 잠시 하다가 도저히 모르겠어서 접었었다는..... 
 누가 그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지금 그렇다 라기보다는 그렇게 살고 싶다 내지 그렇게 되고 싶다 라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전 지금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떠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땀) 
 그리고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은 진규언 병장님의 엄청난 독서량과 독서를 통해 그 안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에 감탄하고 있습니다.(웃음) 04-10   

 일병 박준연 
 씁쓸하네요. 
 하고픈 말이 참 많지만 지금 소속되어 있는 곳과 신분이 신분인지라.. 
 참으로 많은 말들을 꿀꺽 삼키고 있습니다. 

 적어도 일자리가 소폭 늘거라고 쌍수를 들어 타결을 환영한다는 것은 
 반어법으로 받아들여도 될런지.. 04-10   

 일병 구본성 
 이런 저런 문제들에 대해서 모르겠다 라고 밖에 말 못하는 처지라서 또 한 번 모르겠다라는 말로 도망 가야 겠습니다. 04-10   

 병장 이건룡 
 부정적인 것은 기억되는 반면 긍정적인 것은 쉽게 잊혀진다지요.뉴스에 떠들어 되는 것 처럼 80년 후에는 황량한 사막만 남을 텐데요. (웃음) 

 호르크하이머는 역사의 미완결성에 대해서 얼추. 미완결성은 완결성이 없으면 단지 관념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완결성은 과거의 부정不正이 이미 저질러진 것, 희생자들이 실제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미 완결적인 역사의 흐름은 결국 세계의 종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점이야말로 (막연하지만)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 아닐까합니다. 

 진보의 역점은 늘 그렇게(반복) 해왔다는 것입니다. "파국이란 앞으로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 했던 것"이고 지옥은 앞으로 다가올 어떤 한 것이 아니다.-지금 여기서의 삶이 지옥"인것입니다. 이러한 연속성을 끊는, 모호하게 들리시겠지만 '무역사적'반복, 즉 구원의 믿음을 가져야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까요. 

 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나 보군요. 이 글이 왜 적들의 프로파간다쯤으로 보이는지. 04-10   

 병장 이승일 
 이 글 자체에서 규언씨의 정체성이 묻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방황하는 현대 한국의 젊은이" 정도면 꽤 아름다운 정체성이 아닐까요? 04-11 * 

 병장 김지민 
1. 규언님은 한 주제에 너무 많은 '습득된 지식'을 담으려 하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그 장대한 혼란의 과정을 잘 알 수 있습니다만, 지식이 부족한 저의 경우 정보들을 하나하나 꼬집어 가며 글을 읽으려니, 논점에서 자꾸 벗어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네요. 

2. 정체성의 경우엔 어느정도 아집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규언님에겐 아직 수용의 여백이 많이 남아 있는게 아닐까요. 아니, 여백이 많이 남아 있다기 보담도, 워낙 수용을 많이 하기 때문일 거에요. (생각해 보니 '여백' 이야기는 제가 꺼낼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네요 하하) 

3. 결국은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 가 아닌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정체성은 개인의 몫이고, 비판과 칭찬은 순전히 타인의 몫이니까요.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규언님이 말씀하시는 정체성에도 양 극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 믿어요. 어떤 면에서는 이쪽, 어떤 면에서는 이쪽, 일 수 있는 멋들어진 회색이 저는 되고 싶더라구요. 그것을 유지하기란 힘들겠지만 말예요. 흐허허 04-11   

 상병 조진 
 와우 브라보 대단한 글입니다. 
 그래도 결코 정치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센스쟁이 04-11   

 병장 김지민 
 센스쟁이에 한표. 흐흐 04-11   

 상병 조진 
 정말 글 내용대로, 학생운동 하던 분들 다들 임원자리 하나씩 꿰차시고(물론 다 그렇다는건 아니지만) 노조를 귀족노조라 매도할 그분들은 아아 대한민국 꿈나무. 04-11   

 병장 김지민 
 옛날에 송희석이 "왜 할말을 못하느냐"라고 했을 때 
" 못하긴 왜 못하느냐, 이 곳 책마을은 메타포의 천국이다"라는 반박이 있었습니다. 기억이 나네요. 
 이 글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듯 해요. 히히 04-11   

 상병 조진 
 아름다운 나라의 매 아저씨들. 
 이 표현은 정말이지, 이 표현만 책가지로 보내고 싶을 만큼 대단. 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