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자아와 복제와...? 
 상병 김현진 06-19 00:52 | HIT : 119 



* 제목은 낚시입니다. 이 글은 손이 쓰는 글이고, 사실 저는 졸고 있습니다.(...)



1. '나'?

< 왕자와 거지>에서, 왕자는 거지와 옷을 교환하면서 왕자로서의 가면도 잃고 만다. (실은 그 가면이 그의 존재를 이 세계에 붙잡고 있었던 것이므로) '그'는 대신 거지의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가면은 옷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옷은 내 가면의 부연물이다. 

< 아이즈 와이드 셧>의 가면 파티처럼, 우리가 세계에 녹아들 수 있는 것은 이 가면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느냐가 아니다. 

 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 
 나. 그 가면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
 다. 비록 같은 가면이 존재한다 해도, 그걸 쓴 사람은 나와는 다를 것이라는 믿음

 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논제야말로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위 세 항이 각각 의미하는

 가. 우리가 성공적으로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나. 나는 남과 다른 가시적 형질을 보유했다는 사실
 다. 세계에 계속 존재할 자격(개성)을 보유했다는 믿음

 의 결합체가 '실존하는 자아'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2. 똑같은 '나'를 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 왕자와 거지>를 다시 예로 들지요. 왕자라는 아이덴티티를 옷과 함께 내준 '소년'은 다시금 옷과 함께 '거지'가 되는 것으로 자신을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 못박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희박해지는 것-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자연히 그것을 거부하는 행위 또한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위 논리를 기초로 생각해 봅시다. 만약 어떤 사람 A가 복제된다면, 그 사람은 그 복제된 A`에게 빼앗긴 가면을 되찾으려 할 것입니다. (실은 그 가면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므로) 그 결과는 A와 A` 중 하나의 소멸입니다. 왕자와 거지는 그저 자아의 가면을 서로 바꾼 것이므로 다시 되돌릴 수 있었지만 복제는 가면 하나를 공유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인간복제가 제도적으로 합법화 된다면, 가장 직접적인 소멸 방법인 A와 A`가 서로를 파괴하는 것(영화나 소설 등에서 나오는 가장 흔한 방법이지요)은 당연히 금지될 겁니다. 상호 파괴를 금지하면서도 인간 복제가 존재할 수 있다고 저는 주장합니다만, 그 근거는 "쌍둥이 형제"의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쌍둥이 형제는 서로 같은 것을 갖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서로 다른 것을 원하려 합니다. 그것이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만 하는 환경에서는 더더욱 강하게 나타나지요. 엄마 앞에 선 쌍둥이 아이들은 형제보다 우월하거나 다른 속성을 자기화할 것입니다. 그 '개성'이 존재를 증명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다시 A에게 초점을 돌려 봅시다. A`를 파괴할 수 없다면, A는 A`와 다른 길을 가려 노력할 것입니다. 사소한 습관에서 심지어는 성격과 외모까지도 바꾸려 하겠지요. 이 '다른 가면을 찾는 과정'은 A`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복제 이후 A와 A`는 전혀 다른 B와 C가 되겠지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새로운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A와 A`는 성공적으로 실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새로운 가면을 뒤집어 씀으로써 자신의 존재, 더불어 서로의 존재마저 인정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설령 은하철도도 폐기처분될 먼 미래에 완전한 자기 복제가 가능한 시절이 온다 해도 우리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 김청하 님께서 '좌표'의 문제를 지적해 주셨습니다만, 공간적 차이 자체가 그 둘을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규정지어 주지는 못합니다. 공간적 차이 속에서 그들이 바뀐다면 모를까요. 그 경우에도 저는 '각자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적 차이로 인해 바뀌는 것 또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전제 하에서) 변화하려는 각자의 의지에 주로 영향을 받는다고 보구요.

 도플갱어는, 그러므로 손 하나 까딱 안하고도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겁니다. 나와 좌표가 다른 나`의 공존은 치명적인 위협이 아닐까요? 나는 내가 존재하는 건 믿지만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좌표가 다른 나(나`)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나를 "내가 아닌 누군가(나`)"로부터 발견하는 셈입니다. 그 순간 나는 세계로부터 거부당합니다. 무국적자처럼.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뭐 이렇게 쓸데없이 강박적으로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건 심리학이나 실존주의 철학의 고유 특성이겠지요. 그냥 속 편하게 "뭐 어때"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만, 아직 이런 경우를 못 겪어 봐서리. (......)  


 병장 김청하 
 결론은 저와 비슷한 생각이지만 과정은 전혀 다르군요. 

' 완전한 복제'는 최소 200년 이상은 불가능하리라 예측합니다만, 일단 이 부분은 넘어가죠. 그렇더라도 이 글은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클론 앞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느낍니까?" 이건 그냥 신화 아닌가요? 

 애초에 클론은 오리지널의 가면을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복제한거죠. 물론 클론이 오리지널이 갖고 있던 사회적 지위라던가 여러가지 역할들을 빼앗으려 한다면 오리지널은 클론을 증오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클론의 존재 자체가 오리지널의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결론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도플갱어가 섬뜩한 것은 그것이 그냥 '있을 리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익숙해지면 그냥 받아들일 수 있겠죠.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빈약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똑같은 얼굴을 가졌건 어쨌건 그가 저쪽에 있고 저와 대화를 나누거나 저를 죽이려 달려들 수 있다면 그건 제가 아닙니다. 정체성 확립 오케이. 아싸좋구나. (근엄) 

 좀 거칠지만 진화론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결론도 나올 수 있죠. 자신의 유전자와 기껏해야 50% 일치하는 자식을 남기기 위해서도 이렇게들 아수라장을 만드는데, 자신의 유전자와 100% 일치하는 녀석을 대체 왜 죽입니까? 도리어 협력의 대상으로서 이보다 좋은 녀석이 있을리가 없는데요. (물론 유전자는 인간의 의지까지 결정하지는 않으니 정체성의 위기라는 것이 정말로 온다면 이런 식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겠지만) 


+. 
 좌표는 그들이 갖게 되는 다른 속성의 출발점일 뿐입니다. 물론 그것 자체가 근본적인 차이는 아니죠. 하지만 좌표 이외의 모든 것이 같다고 해서 이후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북경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이하생략. 쌍둥이는 동일한 DNA를 갖고 있으며 테스트 가능한 모든 면에서 서로를 닮지만, 그럼에도 발달 상의 여러 우연한 경험들이 그들을 다른 길로 인도합니다. 

++. 
 그리고 사실, 오리지널과 클론이 서로를 파괴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건 자명하죠. 살인이니까요. 06-19   

 병장 김청하 
 물론 제 클론이 제 아이디로 책마을에 들어와서 저질개그를 난사하고, 통장의 돈을 인출해서 짐승처럼 쓰고, 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면 저는 그 녀석의 혈관에 애정어린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싶어지겠지요. 하지만 그건 제 클론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그 녀석을 죽였을 때 저도 죽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제가 아니죠. '내가 아닌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항상 해왔던 일인데, 조금 많이 닮았다고 해서 쇼크사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06-19   

 병장 허익준 
 청하씨 말 대로, 리퀴드가 솔리드에게 열등감을 가진 건 단순히 그가 같은 빅 보스를 기반으로 한 클론이었고 둘이 동일하다는 사실보다는, 같은 빅 보스를 기반으로 했고 둘이 동일했는데도 불구하고 한 쪽은 주목을 받았고 한 쪽은 매장당했기 때문이란 점, 즉, 같은 클론이라도 개인차가 났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솔직히 리퀴드는 클론컴플렉스고 뭐시기고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찌질하잖아요. 찌질찌질.(...) 06-19   

 상병 김현진 
 클론이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의 역할을 빼앗기면 마찬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말을 인정하시는군요. 여기서 '누구라도'에는 클론도 포함되므로 논리적으로 반론의 근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인정하고 있군요. 누구라도 자신의 역할을 빼앗기면 화가 나고, 무언가에 의해 대체당하면 무력함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갖고 있는 모든 역할에 대해서 '완벽하게' 자신의 대체물이 될 수 있는 클론에게 느끼는 감정은 훨씬 치명적일 겁니다. 누군가에게 여자친구를 뺏기거나 하는 건 부분적인 문제입니다. 반면 클론은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을 가졌으니, 위험하게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전역을 하고 집에 왔더니 어느새 나랑 똑같은 애가 가족과 함께 끼룩거리며 "어, 이 촌스러운 군바리는 나랑 쫌 닮았네? 누군데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와서 내 엄마보고 엄마래? 안 꺼지면 신고한다?" 라고 말한다면, 총을 챙겨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탄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 비슷한 예로 우리 전래동화중에 좋은 게 있습니다. 손톱을 깎고 함부로 버렸더니 쥐가 그걸 먹고 자기로 변신해서 자기 자리를 차지했다는 내용이지요.) 

 이미 어느 정도 경험이 축적된 상태에서 복제물의 탄생(태아때부터 복제되는 건 쌍둥이랑 별 차이가 없으므로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은 원본과 사본에게 이후 의도적으로 서로 다른 행동과 경험을 하도록 부추길 겁니다. "주체적으로" 차이를 의도할 거라 이거죠. 제 논지가 이거예요. 

 익준/그 샘플(빅보스/솔리드/리퀴드)은 논의 주제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군요. 솔리드와 리퀴드는 이미 '차이를 의도한 후'입니다. B와 C라는, 서로 다른 가면을 이미 쓰고 있다는 거지요. 그들은 마치 쌍둥이처럼, 태어나 서로를 인식한 이후부터 끊임없이 서로에 대한 차이를 의도했을 겁니다. 그러니 격차가 났을 수 밖에요. 열등감은 그 이후의 감정, 빅 보스에게 인정받지 못한 데서 오는 감정일 뿐입니다. 만약 빅보스가 없었다면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겁니다. 06-19   

 병장 허익준 
 흐음. 그렇게 되는 건가요. 알겠습니다. 06-19   

 일병 정영목 
 흠. 전 자아 문제에 대해선 '뭐 어때'주의자입니다. 노자의 '도가도비상도'가 함의하는 바를 정확히 잘 모르면서 그것을 나름대로 실천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뭐 이 정도? 

 그리고 만약 제 복제물이 있다고 해도 저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거라 믿어요. 걔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자세로 자기 인생을 충분히 즐길 만한 녀석이니까요(하하). 경험마저도 어느 정도 공유하는 관계라면, 사회 변화를 같이 이루어나가는 동지가 될 수도 있겠네요. 오. 괜찮은 경험인데요? 아참. 전 생명 공학에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죠(땀).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머 어때요. 당연히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겠죠. 뭐 서로 극단적인 행동은 안할거라 생각하지만, 같은 존재라기 보다는 다른 존재라는 느낌이 강하게 부각될 것 같군요. 

 결론: 색다른 경험. 존재의 본질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예상됨. 그리나 곧 익숙해 질 듯. 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