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가면 내 멋대로 해석 
 병장 임정우 03-28 18:41 | HIT : 196 



 니체는 말했다. 가면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가면뒤에는 그 가면을 착용한 얼굴이 있질 않는가? 라며 누군가는 말한다. 허나 실제론 그 각각의 가면 자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누군가가 정말 화가나서 우레와같은 소리를 내뿜고 양팔을 거칠게 휘휘 내젖는 분노의 화신이 되었다고 하자. 하지만 그 사람에게 즐거운 일이 생긴다면, 그는 배꼽위에 양손을 겹치곤 환한 웃음을 머금은 천사같은 행태를 부릴지도 모른다. 분명 한사람임이 분명한데 화가 날때는 분노의 가면을, 즐거운 일에는 웃음의 가면을 쓴채, 마치 두명의 서로 다른 사람인것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독자적인 인간의 보편성은 사라져 버린다.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쓰고, 쓰는순간 그사람은 가면 자체가 된다. 나는 니체의 이 이야기를 듣고 커다란 공감과 -속이 뚤리는 기분과- 엄청난 공포심을 함께 느꼈다. 왜냐하면 이 말대로라면 나의 본질은 사라져버리고 상황에 종속된 꼭두각시만이 존재하게 되어버리니깐. 공감하는 무언가가 공포심을 선사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무서운것이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내가 인식하기 이전부터 깊은곳에서 이미 알고있었던 사실은, 그것이 나중에 좀더 확고한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에 나로하여금 좀더 강한 신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일은 바로 그러했다. 인식에 강타 이후는, 주변에 모든사람들이 때에 맞는 가면을 쓰고, 끊임없이 교체를 玖?웃는상과 우는상의 본질은 실상 공허함 자체로 발현되었으며, 나는 거울속에 비치는 나의 모습에게조차도 허무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슬픈일이 생겼을때 내가 정말 슬픈것인가, 실제 아무일도 아닌데 슬퍼해야하는 상황의 협박의 못이겨 그럴듯한 우는상의 가면을 쓰고야 마는것인가, 반대로 정말로 안타까운 일임에도 별거아닌듯 쿨한듯 지나쳐 버린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가면을 쓰는 순간, 가면뒤에는 아무것도 없고, 가면자체가 진정한 내가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불쾌한 회의들이 나를 감싸돌며 사지를 사납게 도려내는듯 했다. 매번 모습을 바꾸는 진실이야말로 손가락 마디사이로 새어나가는 광폭함을 집어삼킨채 나의 무지함을 비웃고 달아남을 가벼운 요깃거리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진실이야말로 끊임없는 가면을 교체하고 있으며, 가면뒤에는 어떠한것도 존재하지 않는것이 아닌가. 


* 궁금증 
1. 가면뒤에 어떤 존재도 의지도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닥쳐오는 상황에 반응하여 가면을 선택토록하는 의지 이전의 의지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병장 이승일 
 그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니체는 가면 뒤에 어떤 존재도 의지도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우리는 가면을 벗깁니다. 얼굴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벗길 수 있으며, 그 뒤에는 또 얼굴이 있습니다. 또 벗깁니다. 또 있습니다. 또 벗깁니다. 또 있습니다. 또 벗깁니다. 또 있습니다. 또 벗깁니다.또 있습니다. 또 벗깁니다.또 있습니다. 또 벗깁니다.또 있습니다. 또 벗깁니다.또 있습니다. 또 벗깁니다.또 있습니다. 또 벗깁니다... 

 우리는 무한히 계속 쓸 수는 없으므로 어디선가는 멈춰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또 있습니다" 에서 멈출테고, 다른 사람은 " 또 벗깁니다" 에서 멈출 것입니다. 

 자, 우린 대체 무엇을 알았을까요? 03-28 * 

 병장 임정우 
 무언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랑 
 무언가 생각만 하는 것이랑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것이랑 
 다 거기서 거기라는걸 안것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완전히 믿을수 없다는걸 알겠습니다. 03-28   

 상병 최혜중 
 사과가 사과기때문에, 슬프지 않습니다. 
 인간이 인간이라서 허무할 수 없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해서 공허하지 않습니다. 

 사고의 확장이 가져오는 이율배반은 대개의 경우에 공포라고 불리는 것, 
 그 이상의 것도 , 이하의 것도 아닙니다. 03-28   

 병장 이승일 
 그 이상입니다. 03-28 * 

 상병 최혜중 
 자아의 고의적 붕괴를 그 이상이라고 이야기 하자면, 그럴수도 있겠군요. 03-28   

 병장 이승일 
 컵을 크게 만들면 더 많은 물을 담을 수 있지만, 컵을 깨뜨리면 세상을 담을 수 있습니다. 03-28 * 

 병장 임정우 
 전설적인 얼터너티브 밴드 너바나의 커트코베인을 그린 영화 'Last Days' 中 
" 죽음에 대해 겪지 않은 사람은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내 속에 있는 감정들의 자유로움이 죽음으로 사라져 버릴 수만 있다면...." 03-28   

 병장 배진호 
' 가면뒤에 어떤 존재도 의지도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닥쳐오는 상황에 반응하여 가면을 선택토록하는 의지 이전의 의지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간단하게 말해서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무엇이든.. 
 신이든 정신이든, 영혼이든, 무의식이든.. 우리가 명명지을 수 없는 어떠한 것은 
 분명 존재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모순이 추가되는 것이겠지요.. 03-28   

 병장 이건룡 
 아니면 단지 가면 아래에는 권태가 있을지도 모르죠. 

" 지옥에서 영겁의 벌을 받는다는 생각에 고대의 영겁희귀 사상의 기세를 가장 무시무시한 지점에서 꺽어버렸다. 고통의 영원성으로 순환의 영원성을 대신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361쪽)" 
 순환에 영원성에 갖힌 채 권태란 소파에서 요설스럽고 단조로운 기쁨의 푹신함에 몸을 맡긴체.. 03-29   

 병장 임정우 
 가면안에는 의혹 또는 맹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으악) 03-29   

 상병 김병완 
 폴 발레리가 "생각하는 데로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가는 데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듯이 인간은 심리와 행위간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가 발생할 때 행위쪽으로 기우는 현상적 존재이지요. 가면을 쓰는 행위 자체가 가면뒤의 얼굴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결국에는 가면을 선택하고 착용하는 행위의 역사로서의 자아만이 가면 뒤에 남아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