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션입니다
아파트 사이사이에는 마치 사회 암적 존재라 불리우는 블루클럽 모냥 ‘놀이터’가 의무적으로 들어차 있다. 그 모습은 과연 황량하기 이를데 없다. 이름은 ‘놀이터’이건만 분위기는 황량함으로 대체 되는 것이다. 위생상의 문제로 놀이터의 흙바닥이 말랑말랑한 합성수지 소재로 변한 이후로는 그 분위기가 더하다. 무엇보다도 놀이터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동네 아이들의 몫이다. 놀이터 인터리어가 귀신의 집처럼 황량하다 할지라도, 아니며 허허벌판 모래판만 있는 놀이터라 할지라도 아이들만 천진난만하고 재밌게 논다면 분위기가 황량할 리 없다. 활기차고 재미난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놀이터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있다. 마냥 생기 잃은 녀석들이라는 거다.
방학을 맞아 학교에도 갈 일 없는 나로서는, 수험생도 아니거니와 공부하기가 딱히 뭐했다. 때문에 시종일관 허송세월로 방학을 지내기에 이르렀는데, 이따금 그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집 앞 놀이터를 빼꼼히 내다 볼 량이면, 그러한 무료함이 오히려 가중되고는 했다. 거기서 뛰놀아야 하는 애 녀석들이 좀 체로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여름방학인고로 더위에 지친 나는, 사용자도 없는 그 놀이터를 나만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원래 피가 맛이 없어서인지 모기가 잘 물지도 않는 나는 심심하면 맥주나 한 캔 사다가 집 앞 놀이터에서 홀짝이며 달밤 청승을 떨고는 했다. 그 흔한 에어콘 하나 없는 집안에서 죽치고 있는 바에야, 달밤에 나와 청승이라도 떠는 것이 낫겠다 싶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이런 아들의 심정을 이해해 주셨는지 그나마 맥주 덜렁덜렁 들고 놀이터에서 홀짝이는 한심한 노릇을 별말씀 없이 묵묵히 받아주셨다. 심지어 담배불이라도 붙여 그네에서 깨적대고 있더라도 어머니는 별말씀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셨고.
아마 여름밤 중에서도 열대야가 가장 심하던 날이었나. 집안도 덮고 바깥도 덥고 어딜 있어도 더우니 기왕 나온 김에 죽치고 있자 싶어서 11시가 넘은 시각까지 놀이터에 죽치고 앉아 있던 나에게 한가지 광경이 밀려왔다. 한 쌍의 개들이 그것이었다. 심부름을 다니건 뭐 싸돌아 다니건 우리 동네를 다니면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들개였는데, 그 두 녀석은 이곳이 사랑의 러브호텔이라도 되는지 깡총거리며 들어와 서로를 애무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놈들 노는 꼴이 우스워 담배나 물고 무연히 치켜보았다.
고개를 잠시 숙여 불을 붙인 동안 녀석들은 어느새 교합해 있었다. 헐떡대면서 반복적인 운동을 하는 두 마리의 개. 장소 선택은 또 어찌나 잘 했는지, 그 녀석들의 운동만큼이나 구조적인 면에서 유사한 ‘시소’가 바로 그 장소였다. 나는 그네에 앉아서 팔을 그네 줄 바깥쪽으로 걸치고 푸푸거리며 담배연기를 뱉았다. 내가 내쉬는 숨소리를 들었는지 녀석들도 헥헥 거리며 자기들 작업에 열중했다. 아 이 찌는 듯한 여름밤에 담배 피우면서 놀이터에서 짝짓기 하는 개들의 모습을 보니. 참 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이면 여기냐.
나는 녀석들의 하는 꼴을 좀더 지켜보다가, 볼게 못된 다는 생각이 짐짓 들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더우면 잠 자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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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우리들이 짝짓기 하기에 굉장히 좋은 장소였다. 나는 그녀를 유혹해서 이리로 데리고 왔다. 몇 번째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폭신폭신한 것이 바닥도 딱 좋고, 모래 바닥이 아니라 지저분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 외면하는 곳이다. 이렇게 잘 꾸며놓은 곳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내가 무어, 언제고 시선을 신경썼다는 것은 아니지만은, 괜히 인적이 있으면 악마적인 심성 탓에 훼방을 놓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챙피함 때문이 아니고 훼방 때문이다. 한마디로 거슬린다는 거다.
빛은 딱 알맞을 만큼 들어오기 때문에, 가려지기에도 좋다. 그리고 이따금 삐걱대는 그네 소리는 우리의 헐떡임을 숨겨주기에 좋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곳을 낮에도 줄곤 애용하고는 한다. 낮 역시 이 장소는 인적이 드물다. 마치 이 곳만을 피해 움직이는 듯이 사람들은 얼씬거리지 않는다. 아마도 이 곳은 개를 위한 장소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보았던 한 커플이 떠오른다. 그네들은 벤치에 앉아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는데, 꽤 야심한 밤이었다. 우리처럼 항상 발가벗고 있는 것이 아닌지라 자유로운 짝짓기는 못하더라도, 충분한 애무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가 그네 삐걱이는 소리에 맞춰 헐떡대듯이 그네들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벤치는 위로 뻗은 등나무에 가려서 그림자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숨어 들어가 그들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아, 그렇다면 말을 바꿔서 해야 할 것 같다. 이곳은 아마도 연인들, -일테면 개나 사람이나- 을 위한 공간인 가 싶다. 그것도 적나라한 애정행각을 위한 장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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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막으려 했지만 그의 손길이 조심조심 다가오는 것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몇 번인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초지일관 하나의 의지인 듯 싶었다. 그래 져주는 척이다. 적당히 싸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의 애무를 즐긴다. 사랑의 표현은 이렇게 사랑스럽다. 그의 손이 팔을 더듬다가 은근슬쩍 가슴 깨로 다가온다, 키스하는 그의 미적미적한 입술이 나를 달싹인다. 놀이터의 밤. 여름밤의 뜨거움 만큼이나 그의 숨결이 뜨거웠다.
돈 없는 고등학생에게 인적 없는 놀이터만큼 애무하기 좋은 장소도 없을 것이다. 기왕이면 더 먼 숲속이 좋겠지만, 이런 아슬아슬함도 짜릿함을 배가시키는 원인 중의 하나이다. 틀림없이 그는 흥분한 것 같다. 얼굴이며 손이며 모두 뜨겁다. 나 또한 심장이 뜨겁고, 덩달아 몸도 덥다. 그것은 여름밤 때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속삭인다.
“사랑해”
“...”
서로의 얼굴을 마주본 뒤 또 입 맞추었다. 웃음이 나온다. 그가 혀로 나의 턱선 에서 귀로 올라오는 부근을 더듬었다. 여름밤은 계속 뜨거웠다.
우리에게 이 놀이터는 유일하게 허락된 천국 같았다.
“컹!”
“컹!”
“어마 깜짝아!”
한참 키스하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개 두 마리가 저 쪽 시소 부근에서 깡총거리며 서로의 꼬리를 잡으려 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개라면 질색이었다. 귀엽고 자시고를 떠나 너무 무서웠다.
“야, 저거 뭐야. 아 나 무서워어”
“어? 뭐가 무섭다그래. 괜찮아 일루와”
그러면서 그가 또 키스한다. 나는 두려움도 잊고 또 다시 그의 입술에 기대었다.
탁탁탁탁
이상한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다 보니 개 두 마리가 그 짓을 하고 있었다. 나와 남자친구는 키스를 하다 말고 굉장히 요상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코믹적이면서도 그렇지 못하고 또 왠지 떨떠름하면서 기분나쁜, 그런 요상한 분위기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더 이상 키스할 기분이 아니었다.
남자친구도 그것을 눈치 챘는지 괜히 시간 탓을 하며 늦었다고- 집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괜스레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그 짓거리를 하고 있는 개들에게 돌맹이를 집어 던질까 하다가 남자친구가 볼세라 꾹 참고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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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또 남자친구를 만나고 왔나부다. 화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입술도 좀 부르튼 것이 이상하다. 나는 초등학생이지만 (초딩이라고 부르지 마라, 기분나쁘다) 그 정도 낌새는 술술 눈치 챌 수 있다. 나도 5학년 이니까, 키스하는 것이 어떤 느낌이라는 것은 대충 들어본 바가 있다. 5반에 노현식이는 키스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났단다.
누나가 남자친구랑 놀고 와서 기분이 좋던 나쁘던 간에 내가 신경 쓸 바도 아니고, 괜히 건드렸다가 신경질이라도 돋우면 내 손해니까, 나는 하던 게임이나 마저 했다. 오늘 저녁에 2렙업 하기로 애들이랑 약속했기 때문에 누나 따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나마 한창 인던에서 몹을 잡고 있는 중이었다. 301동에 사는 형철이 형이 오늘 레벨 2 올리면 살인자의 단도를 준다고 했다. 데미지가 34+2니까 엄청 쎄질 거다.
“야 임마! 너 누나 방에서 컴퓨터 게임 하지 말랬지?!”
한창 칼로 몹을 찌르고 있는데 누나가 몽둥이같은 팔로 내 머리를 때렸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아! 왜 때려!!! 아 씨8!!”
“뭐? 씨8?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어! 야! 공부나 해!”
누나는 괜히 또 성질이다. 내 방에 컴퓨터 있으면 내가 지 방에 들어와서 이거 하냐? 나도 내 방에 있으면 좋겠다. 내 방에 있으면 밤 새 게임 할 거라고 엄마가 내린 조치였다. 맞은 데가 아파 문지르면서 누나를 노려보고 있자니까 누나가 이게 어디서 대들어 하는 표정으로 맞대응했다.
“너 학원 숙제 다 했어?! 공부 안 해?”
“아 나 방금 학원 갔다 왔단 말야!!!”
나도 질 수 없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학원 갔다 온지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누나는 또 질세라 오자마자 게임하냐고 야단이다. 짜증이 났다. 2렙업 해야 되는데. 애들이랑 약속했는데. 딴 애들은 벌써 저렇게 몹 잡고 있는데. 왜 나만가지고 그래. 나도 애들이랑 놀아야 되는데.
마침내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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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더운거 잠이나 자자 하고 불끄고 잠 자려 하는 차에 전화가 걸려왔다. 뭐야 이거 11시가 넘은 시각에. 누구지?
안그래도 놀이터에서 먹은 몇 캔의 맥주가 졸음을 몰고 오는 때에 전화가 오자니 짜증이 치밀었다. 그래도, 끊더라도 받고나서 끊어야 하니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받고 보니 같은 과 임선배였다.
“어 야, 자냐? 밤 늦게 전화해서 미안해”
“아 아녜요. 아직 안자요. 근데 왠일이에요 형?”
“어, 내가 알바자리를 하나 구한 게 있는데, 그만둬야 할 것 같아서, 기왕이면 누구 주고 그만두는 게 고용주쪽도 내쪽도 좋을 거 아니냐. 그래서 혹시 너 생각있나 전화했어”
“뭔데요?”
“어, 재밌는거야. 너 정도 센스면 할 수 있을거야. 그 왜 있잖아 바람잡이.”
“바람잡이?”
“어, 약장수 바람잡이 같은 건 아니고, 관객들 사이사이 틈에 껴서 분위기 띄워 주면 돼. 방청객 알바랑 비슷한데, 좀더 주체적인거지. 공연도 공짜로 보고 수입도 꽤 짭짤하고, 좋아.”
“아 그래요? 오..”
“어, 생각있으면 말해라. 할래?”
“음.. 몰라요. 일단 생각좀 해 볼게요”
“아 그러냐? 그래 알았어. 생각해 봐. 근데 빨리 말해줘라. 나 딴데도 물어 볼 거니까”
꽤 급한 듯 했다.
“알았어요. 적어도 내일 까진 말씀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잘 자라. 밤늦게 미안해”
임선배는 또 급한 듯이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누워있으니 괜스레 몽롱했다. 놀이터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바람잡이라. 재밌겠는데? 분위기를 띄워 주면 된다는거지? 일테면, 축구에서 게임메이커 그런거지?
일련의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가지고 손장난을 놀았다. 왜 그런지 모르게 놀이터가 바람잡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공터에 부는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아니면, 아파트 사이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