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Stairway to heaven..
상병 강수식 2008-07-11 12:33:27, 조회: 276, 추천:1
날씨가 너무 더웠다. 잠을 자려고 하는데 온 몸에 끈끈하게 땀이 들러 붙는다.
그래서 결국 천장에서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기로 했다.
한참을 더위와 실갱이를 했다.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귀에 꽂아놓은 CDP로는 서태지의 로보트가 흘러나왔다.
반복된 바람에 더 이상 난 알 수없네, 내가 누군지, 여긴어딘지.
정말로 여긴 어딘지. 스물 셋의 내 청춘을 한낮 벽으로 가두워 놓고 나에게 뭘 바라는건지.
소중하게 생각했던 꿈들을 접어놓고 더위와 씨름하면서 국방색 포단위에 패대기쳐진
내가 너무나 불쌍했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리다 설핏 잠이 들었다.
나는 꿈과 잠 사이의 경계선에서 국방색 포단을 망토마냥 두르고, 1m 남짓한 높이의 벽에게
M16소총으로 '좌베어'를 연신 외치며 허우적대고 있었다.
CDP에서는 이제 Led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이 흘러나왔다.
다라라랑, 띠라라랑- 천국의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를 표현하는 듯한 메마른 기타반주소리가
유일한 현실인 듯 땀을 흘리며 허우적대는 내 귓가로 바람처럼 스쳐지나갔다.
순간 머리위 하늘에서 하얀 빛줄기가 쏟아져내리며 긴 계단이 만들어졌다.
옳커니, 저 계단을 올라가면 나는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겠구나. 하는 순간 어디서 누군가가
껄껄껄껄 거리면서 웃기시작했다.
"넌 나의 실패작이야. 껄껄껄껄. 어리석은 놈. 껄껄껄껄껄"
이제 나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하늘을 향해 연신 '우베어'를 외쳤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위로
칼이 휙휙 거리며 번뜩였다. 귓가에는 로버트 플랜트가 속삭이고 있었다.
There's lady~who...
그때였다. 쿵, 하면서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내 머리 옆 50Cm쯤 사이를 두고 스탠드에 세워놓았던 기타가 무엇인게 두드려 맞은 따당~하면서 메마른 줄 소리를 튕겨냈다.
누가 이 야밤에 기타를? 미친X이 아니고서야 8명이 잠들어있는 한밤중에 생활관에서 기타를 연주할 리가 없었다. 머야 이건. 퍼뜩 눈을 떠보니 캄캄한 생활관이었다.
이상하게도 너무나 조용했다. 매트리스 위에 펼쳐진 포단은 비상을 꿈꾸다 접혀진 날개마냥 주름이 잔뜩 잡혀있었다. 여전히 귓가로 흐르는 Stairway to heaven만이 어둠속에 꽉 차 있었다.
그 때 근무 복귀를 하던 내 부사수가 헉, 소리를 냈다. 녀석은 생활관 천장위에 달려있던 선풍기를
바닥에서 들어올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닥에 사방팔방으로 분해되어 어둠속에서 번쩍이는
선풍기 날개의 파편들. 선풍기의 날개가 회전을 하던 모습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 치고, 그것도 모자라
사방팔방으로 파편을 튀겨낸 흔적이 생활관 바닥에 처참이 남아있었다.. 꿈일까? 아직도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가질 않아서 쓱, 몸을 돌려누워봤다. 포단위에 씨익, 웃음을 짓는 듯 번뜩이는 선풍기 날개의 파편이 그제서야 보였다. 순간 먹먹한 현실이 밀려들어오면서 잠이 달아났다. 열대야의 폭염이라지만 등줄기로 서늘한 한기가 흘렀다.
그러니까 저 선풍기의 위치가 조금만 미묘했더라면, 나는 잠자다가 떨어진 선풍기에 머리를 맞고
숨진 혹은 떨어진 선풍기가 땅바닥에서 퉁겨낸 날개 파편에 목덜미를 긁힌 사상자가 되어
전군의 아침 사탕보고시간에 이야기거리가 되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아쉬웠다.................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생각보다 상황은 처참했다. 선풍기는 한 때 제 열정의 전부였던
세 날개를 모두 일어버리고 볼품없이 조각나 있었다. 고작 한 자리에 고정되어 얼마간의 거리를
회전을 통해 왔다가하며, 사람들의 체온을 낮춰주기 위해 하루종일
어지럽게 돌아가야하는게 선풍기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녀석도 제가 가진 날개를 가지고
헬리콥터의 프로펠러나 혹은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싸구려 장난감의 프로펠러처럼
언젠가는 공기를 가르면서 힘차게 앞으로 뻗어나갈 비상을 꿈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녀석은 자기가 꿈꾸었던 비상을 결국 실현시키지 못하고, 고작 한 순간의 자유낙하만을
자신의 운명 최고의 도전이며 결실인양 겸허히 받아들이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어쩌면 선풍기 날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제 몸을 산산이 조각냄으로써,
나에게 말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쓸데없이 담벼락과 총검술을 하고 있는 내게, 삶은 소중한 것이라고.
천국의 계단으로 올라갈 생각일랑 접어버리고 주어진 하루를 감사히 살라고.
비상을 꿈꾸다 날개를 잃어버리고 처참히 망가질지언정, 단 한번의 자유낙하만을 한다하더라도
니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라고. 지금 이 순간, 현재를 감사해하며 살라고.
문득 선풍기가 바닥에 뿌려놓은 처참한 사고의 잔해들이 부러진 내 날개인것 마냥 안쓰러웠다.
나는 주섬주섬 날카롭게 조각난 선풍기 날개의 파편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는 기타를 잡아 Stairway to heaven을 연주해주었다.
부디 편안히 잠들기를. 단 몇초간의 자유낙하였지만 그 순간의 비행을 행복하게 가슴에 새기면서
천국에서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프로펠러가 되기를.
안녕, 선풍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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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죽을 뻔 했습니다.하하. 아침에 일어났는데 식은땀이 삐질 흐르더군요.
우리 모두 저녁만찬이 있을 그 날까지, 몸 조심하고 다치지 말아요(웃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56:00
병장 이동석
선풍기는
천국의 계단으로 붕붕거리며 날아가고 있을겁니다.
부웅부웅 뿌욱.
어쨌거나 몸조심하세요. 2008-07-11
14:00:56
일병 이동열
식겁하셨겠습니다(덜덜)
정말이지 다행입니다.(땀) 2008-07-11
16:00:13
병장김종빈
아이코. 다행이군요.
선풍기를 향해 묵념. 2008-07-11
16:54:06
상병 강수식
동석 // 예예, 아마 그렇겠죠? 어지간히 몸조심한다고 하는데 이거는 뭐
생각지도 않았던 사고가.. 헐헐..
동열//식겁했습니다. 그래도 뭐, 설마 잠자다가 선풍기 맞고 죽겠어요?(웃음)
종빈//예. 멋진 녀석을 위해 묵념 한 번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아요.(웃음) 2008-07-11
19:35:55
이병 장봉수
천국이 바로 옆에 였군요... 2008-07-11
22:11:37
상병 박찬걸
허... 그런적 많죠. 선풍기 부서져서 파편 날아다니는적.
고등학교때도 그래가지고 애들 전부 식겁하고
일주일가량 선풍기 안 틀고 살았던 적도 있었어요.
덕분에 더워서 다들 불쾌지수 급상승(웃음) 2008-07-12
14:17:00
병장 이태형
기타로 그 곡을 연주하시다니요.
허허. 2008-07-14
17:13:14
병장 이재민
저도
일병즈음
옆에 쌓아놓은 음료수박스가 무너져내려
죽을뻔 했다죠 2008-07-18
09: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