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히키코모리  
상병 김무준   2009-01-17 05:11:22, 조회: 211, 추천:0 

아침에 일어난다. 자고 일어나면 샤워를 해야 한다. 책을 읽고 덮는다. 밥을 먹는다. 양치는 하루 세 번. 어금니까지 구석구석 닦아야한다. 다시 책을 편다. 또 읽는다. 덮는다. 밥을 먹는다. 양치는 하루 세 번. 어금니까지 구석구석 닦아야한다. 다시 책을 편다. 덮는다. 화장실에 간다. 화장실에서는 책을 보면 안 된다. 휴지는 세 칸. 휴지는 변기에 함께 버린다. 다시 샤워를 해야 한다. 밥을 먹는다. 양치는 하루 세 번. 어금니까지 구석구석 닦아야한다. 잠자리에 눕는다. 젖소무늬 안대를 써야 잠이 잘 온다. 낮에 본 책을 생각한다. 잠이 온다. 잔다.

매주 수요일은 야구를 보는 날이다. 야구를 보며 치킨을 시킨다. 후라이드 치킨을 시킨다. 맥주는 안 된다. 순살 치킨이어야 한다. 순살 치킨을 먹어야 음식 찌꺼기가 없다. 치킨이 온다. 치킨이 온다. 치킨이 온다. 오. 사. 삼. 이. 일. 딩동. 그리고 잔소리가 시작된다. 또 야구 보냐? 이 생활 지겹지도 않냐. 책이나 보고 앉아있지. 쓰레기 줘 버려 줄 테니까. 매주 닭 먹고. 옷 빨아 입는 게 용하다. 밖에도 좀 돌아다녀. 어… 어?

-투 쓰리 풀카운트. 제 육구 던졌습니다. 아 맞았습니다. 뻗어나가는 공. 잡아. 잡아. 잡아. 잡아! 잡았습니다! 믿기지 않습니다! 투수가 믿을 수 없는 높이로 뛰어올라 뻗는 타구를 잡습니다. 아웃. 아웃입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롯데가 삼성을 꺾고 가을에도 야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삼만 부산 갈매기들의 염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 어색한 침묵이 어이진다. 투수가 마운드에 떨어지며 목이 부러진다. 흙빛 마운드에 피가 튀고 더그아웃의 선수들이 달려 나온다. 삐뽀삐뽀. 구급차 소리가 들린다. 선수들에 가려 투수가 보이지 않는다. 닭돌이와 나는 멍하니 티비를 바라본다. 들것 사이로 투수의 손이 빠져나온다. 투수는 공을 놓지 않는다. 공 끝에 맺힌 피가 그라운드에 떨어진다. 풀에 빨간 점이 찍힌다. 똑. 똑. 똑. 소리가 들린다.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야. 옷 챙겨. 고개를 젓는다. 옷 챙기라고. 다시 고개를 젓는다. 야이 씨-발아 옷 챙겨서 나오라고! 다시 고개를 젓는다. 정신 차려 새-끼야 넌 저걸 보고도 집에 틀어박혀 있을 거냐? 옷 챙기라고! 다시 고개를 젓는다. 이 답답한 새끼야 옷 챙겨! 닭돌이가 멱살을 잡는다. 다시 고개를 젓는다. 닭돌이가 주먹을 들어 얼굴에 날린다. 아프다. 개-새끼 넌 친구도 아냐. 닭돌이가 치킨을 던지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간다. 아. 닭 값 받아가질 않는다. 큰일이다.

닭이 맛이 없다. 그래도 먹는다. 음식 찌꺼기는 없다. 얼굴이 아프다. 양치는 하루 세 번. 어금니까지 구석구석 닦아야한다. 젖소무늬 안대를 써야 잠이 잘 온다. 낮에 본 책을 생각한다. 잠이 오질 않는다. 큰일이다. 닭 값 줘야하는데. 옷을 입을까. 나갈까. 아냐. 큰일이다. 얼굴이 아프다. 거울을 본다. 멍이 들었다. 아프다. 닭 값 줘야하는데. 옷을 입을까. 나갈까.

옷장을 연다. 옷을 찾는다. 입을 옷이 없다. 옷은 잠옷 밖에 없다. 옷 장 구석에 유니폼이 보인다. 옷을 입을까. 나갈까. 아프다. 닭 값 줘야하는데. 유니폼을 입는다. 신발을 신는다. 나갈까. 아프다. 책을 챙긴다. 나갈까. 고개를 젓는다. 나갈까. 고개를 젓는다. 나갈까. 고개를 젓는다. 목뼈가 부러지는 투수의 모습이 생각난다. 똑. 똑. 똑. 핏방울 소리가 들린다. 무섭다. 나갈까. 고개를 젓는다. 닭 값 줘야하는데. 나간다.

달이 떴다. 둥글다. 야구공처럼 둥글다. 어디로 가지. 닭돌이의 가게로 가자. 걷는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유니폼을 보며 키득거린다. 비웃는다. 싫다. 더 빨리 가자. 뛴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비웃는다. 싫다. 빨리 닭돌이의 가게로 가자. 가게를 쳐다본다. 오토바이를 찾는다. 오토바이가 없다. 주인아저씨가 있다. 닭 값을 주고 갈까. 아니다. 주인아저씨도 비웃는다. 싫다. 닭 값 줘야하는데. 어디로 가야할까. 병원. 병원에 가야한다. 어디 병원일까.

버스를 탈까. 아니다. 사람들이 비웃을 것 같다. 택시를 탈까. 아니다. 택시기사가 비웃을 것 같다. 뛴다. 어디로 가야할까. 병원. 병원에 가야한다. 어디 병원일까. 뛴다. 티비 앞에 멈춰 선다. 우리 집 티비랑 똑같은 티비. 티비에 뉴스가 나온다. 아나운서가 비웃는다. 싫다. 병원에 가야한다. 어디 병원일까. 티비를 볼까. 아니다. 아나운서가 비웃는다. 싫다.

-오늘 저녁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저는 지금 투수가 실려 온 병원 앞에 서 있습…

티비를 본다. 병원. 저 병원이다. 뛴다. 뛴다. 힘들다. 뛴다. 닭 값 줘야하는데. 땀이 흐른다. 힘들다. 병원 앞에 도착했다. 닭돌이의 오토바이가 보인다. 여기다. 병원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유니폼을 보며 키득거린다. 비웃는다. 싫다. 나갈까. 닭 값 줘야하는데.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땀이 떨어진다. 똑. 똑. 똑.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아. 닭돌이다. 닭돌이한테 닭 값을 준다. 뭐야 이거 주려고 여기까지 뛰어온 거야? 미친-놈. 네 친구는 닭 값보다 못한 놈이었냐? 그렇게 나오질 않겠다고 하다가 뛰어 나오네. 뭐야? 유니폼? 미쳤냐? 옷이 그거 밖에 없디?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미친. 기왕 온 김에 기다려. 결과만 보고 가자.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비웃는다. 싫다. 그래도 기다린다.

닭돌이의 오토바이에 탄다. 달린다. 바람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닭돌이의 머리칼이 흩날린다. 달린다. 투수는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단다. 슬프다. 다시 공을 던질 수 없단다. 슬프다. 여자가 투수 옆에서 펑펑 울었다. 슬프다. 닭돌이를 빼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부모님은 나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내게 돈을 붙여줘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거다. 슬프지 않다. 나는 잊혀졌다. 차라리 그게 낫다. 비웃는 건 싫다.

닭돌이는 말이 없다. 닭돌이도 나처럼 변하는 건 아닐까. 그럼 슬프다. 문도 잠그지 않고 집을 나왔다. 닭돌이는 비웃지 않는다. 조용히 가게로 돌아간다. 침대에 누웠다. 젖소무늬 안대를 써야 잠이 잘 온다. 낮에 본 경기를 생각한다. 내가 감독이라면 구회 말에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지 않았다. 그럼 투수는 목뼈가 부러지지 않았을 거다. 여자가 울지도 않았을 거다.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었을 거다. 슬프다. 잠이 온다. 잔다.

다시 수요일이다. 야구는 끝났다. 투수는 경기에 나오지 않는다. 야구를 볼 필요는 없다. 뉴스를 본다. 투수는 일어나지 않는다. 책을 읽는다. 책이 읽히질 않는다. 치킨이 먹고 싶지도 않다. 밥을 먹는다. 밥이 맛없다. 그래도 먹는다. 양치는 하루 세 번. 어금니까지 구석구석 닦아야한다. 다시 책을 편다. 또 읽히질 않는다. 슬프다. 투수는 일어나지 않는다. 공을 던질 사람은 없다. 스트라이크를 던져 줄 투수가 없다. 투수는 일어나지 않는다. 투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뉴스는 더 이상 투수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투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공을 던져줄 수 있을까.

투수가 일어날 수 있을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2:35 

 

병장 정병훈 
  언젠가 누군가 투수를 이용해 한번 더 언론에 나타나겠네요. 잃어나지 못한 투수를 취재한 뭐, 그런 얘기가 나오겠죠. 투수는 애써 웃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몇 안되죠. 세상사는게 힘드니까. 그리고 몇일 또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며 지내다 다시 또 사라지겠죠. 

그게 아니면, 후배들의 모금운동과 팬들의 모금운동으로 그를 추모할 수도 있겠죠. 그는 일어 날 수 있을까요? 휴- 2009-01-17
11:13:02
  

 

상병 김형태 
  무준씨 글을 매력있어요, 
술술잘읽히죠, 주말에 들어와본 보람이 있네요! 2009-01-17
20:38:42
  

 

병장 이동석 
  이런, 이거 이제 봐서 죄송할 지경입니다. 
이거 이거 보면 볼수록 전율이- 2009-01-21
18:2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