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행복을 찾아서  
병장 허기민   2008-09-04 15:28:37, 조회: 179, 추천:1 

  * 글을 다 쓰고, 이걸 올릴까 말까 고민을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제 경우엔 다른 사람들이 제 글을 보면 왠지 모르게 제 글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저 역시도) 기분이 들어서요. 그래도 에라, 한 번 훌러덩 벗어보자(?!)라는 심산으로 올려봅니다. 헌데 벗은 모습에 실망할 분들이 꽤 많을 거 같네요(웃음).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첫째로 불교에서 정한 삼복(세복(世福), 계복, 행복) 중 하나로 대승의 행법을 지키며, 대승 경전을 읽고 이해하여 다시 남에게도 권하는 것이다. 나머지 세복과 계복에 대해서도 잠깐 소개하자면 세복은 세상의 윤리 도덕을 실천함으로서 얻는 복이고 계복은 부처가 제정한 계율을 이행함으로서 얻는 복이다. 불교식 행복은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의미가 강하다고 볼 수 있겠다. 둘째는 복된 좋은 운수를 의미한다. 너의 행복을 빌게라는 말은, 둘째 의미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의미는 좋은 운수, 길한 운세를 뜻하는 행운과도 가깝다. 마지막으로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이다. 행복이란 단어는 생각보다 거창한 뜻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마지막 의미는 나를 덤덤하게 만든다. 내 몸 하나 건강하고,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 크게 불편한 상태도 아니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이번엔 이 행복이란 녀석과 조금 친해져 보려고 한다. 이리와, 나랑 같이 놀자. 

  다른 이들은 행복을 삶에 있어 공기 같은 존재라고 칭하며 최대한 친해져보라고 권한다. 우리 주위에 내 자신은 정말 행복하다고 할만한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가.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요, 가족들이 건강하다는 것도 행복이다. 예전 전후 세대들처럼 우리는 굶을 일이 거의 없으며(오히려 자의적으로 굶기도 한다), 사회보장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하지만, 적어도 20대 초반(!!)의 내가 느끼기엔 부족함은 없어보인다(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상대적 양극화가 심해져가는 모습은 안타깝지만, 우리는 지구가 생긴 이래로 도구적인 능력은 가장 높은 축에 속하고, 누릴 것은 대부분 누리면서 살고 있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 내가 보는 세상은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만. 그런데 예전의 나, 현재까지의 나는 그다지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는 아니다. 여름철에 득실대는 모기만큼 행복이 내게 찾아왔더라면, 아니면 내가 행복을 찾았더라면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

  그동안 내게 있어 행복이란 녀석은 언제 찾아왔을까? 막역한 녀석이었다면 공자님처럼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하면서 반겼겠지만, 행복이란 녀석을 보려면 나는 꽤나 곤혹스러운 일들, 고통스러운 일들을 많이 겪어야 했다. 그 중 내 인생의 6년을 채웠던 중, 고등학교 시절에 남았던 짧디 짧은 행복은,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이었다. 헌데 정말 그 순간뿐이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뜬, 당신의 합격을 축하한다는 문구를 본 딱 그 순간만 좋았다. 가슴 속에서 찌릿한 무언가가 자그마한 스파크를 내더니, 금방 사그라졌다. 이 느낌이 행복인걸까? 정말 짧네? 왜 이리 허전하지? 단지 노력의 결과를 보상받았다는 느낌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랬나?

  당연했다. 나는 내가 스스로 느끼는, 내가 원하는 행복을 얻지 못했으니까. 나는 남들이 인정해주는 행복만을 좇아 달려간 것이다. 그로 인해 나의 행복은 시나브로 거세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학창시절 나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저 교실에 앉아있을 때 교우들이 열심히 노트를 뒤적이기에 나도 같이 따라서 뒤적였다. 적는 게 뭔지도 모른 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낙오자가 되니까. 남들이 열심히 뛰니까 나도 같이 뛰었다. 남들이 집에 가니까 같이 공부 외의 다른 것을 하고 싶어도 바로 집에 갔다. 제때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문제아가 되니까. 집에서는 부모님이 가끔씩 한숨을 쉬며, '너 대학은 가는 거냐?' 라고 물어볼 때마다 왜 나는 고개를 숙였을까? 잘못한 건 아닌데, 공부보다 내가 더 좋다고 느끼는 걸 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못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뭔가 허전했다. 나는 공부를 안 해도 괜찮은데, 왠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지도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이 밥을 먹는 것처럼, 숨쉬는 것처럼 그냥 누가 가리키는 대로 움직였다. 이렇게 하면 행복해지겠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다보면 언젠간 내게도 오겠지. 

  최근까지도 이렇게 해왔다. 이 곳에 오기 전에, 나는 어떤 이의 행정고시 합격 수기를 읽었다. 복무 중 열심히 준비한 뒤 밖에 나오자마자 본 시험에서 바로 합격해버린 어느 사람의 이야기. 놀라웠다. 세상에 이런 대단한 사람이 있다니. 그 사람이 왜 그 시험을 준비했는지의 과정은 생각지 않은 채, 나는 그 사람을 좇아가고 싶었다. 이유는? 남들이 인정해주는 좋은(?!) 직장을 얻었고, 무언가를 어떤 곳에서 얻어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사람의 인생은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다는 부러움 섞인 기대감도 있었다. 이 사람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면 괜찮을 것 같다는 무모함이 내겐 있었다.

  그 사람은 하늘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나도 하늘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람이 받았던 특기를 똑같이 받았다. 닮아가려고 노력했다. 합격 수기를 바이블 삼아, 그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갔던 그대로 따라가려고 했다. 얼마간은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공부에 투자했던 시간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로드맵을 찬찬히 살펴보며 합격의 청운을 꾸기도 했다. 합격을 하면 내 인생도 한층 밝아지겠지? 탄탄대로를 걸으면서 국가의 동량지재로 클 수 있을 거야. 그게 바로 행복이지, 별 거 있어? 월급 꼬박꼬박 타고, 사고 안 치면 직장에서 잘리지도 않아, 사회적 위치까지 보장되잖아. 이런 곳이 어디 있어? 라는 생각.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용감했었다. 헌데 곧장 지쳐버렸다. 중간 중간 고개를 드는 의문들을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이걸 준비해야 하지? 책상에 앉아있을 때 시나브로 연기처럼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결국 난 왜 그렇게 책상에 앉아있어야 되는지 답하지 못했다. 앞서 생각한 이유들은 뒤돌아 생각해보기에 너무나 궁색한 핑계였다. 바보야, 그 것도 모르면서 왜 했어?

  그 이후로 나는 방황했다. 허전했다. 컴퓨터 전원이 꺼지듯이 모든 걸 멈췄다. 헌데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목석처럼 앉아있자니, 무언가 밀린 과제를 안 하고 내버려둔 것처럼 켕기는 게 있었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 일도 안 생기는데 말이다. 그래서 영어 책을 한동안 보았었다. 불라불라는 할 줄 알아야 나중에 밖에 나가서 창피하지는 않겠지. 정확히 넉 달 뒤, 나는 영어 문제집들을 뒤편 쓰레기장에 패대기쳤다. 뭐야, 더 목이 마르잖아. 또 시작됐다, 맹목적인 행동. 같잖은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밥 먹고 대변보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는 거니까. 

  시간은 흘러갔고, 얼마 후에 나는 이 곳을 떠난다. 합격 수기는 처음엔 내 서랍에 있었다. 매일매일 그 글을 보고 나는 내 다짐을 잊지 않으려 했다. 어느 순간 수기는 관물함 구석에 있었다. 관물함 정리하다가 중간 중간 그 글을 보았다. 당연히 그 횟수는 줄어들었다. 얼마 전 나는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합격 수기가 사무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쿵 소리가 나며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래, 나는 결국 닮지 못했어. 털썩.

  처음부터 나는 단추를 잘못 꿰었던 게 아닐까?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닮아가려는 시도가 옳지 않은 것도 아니다. 허나 밖에서 써먹을 어떤 기능적인 유용함을 위한 노력이나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들을 곧이곧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내려놓지 못했다. 적어도 그러한 과정 속에 내가 있어야 했다. 내 속에 내가 비어있고, 타인의 요구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내가 나를 보는 시선에 더 무게를 두어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스스로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했다. 

  생각해보자. 나는 과연 행복한가? 앞서 말했듯이, 행복의 세 번째 의미를 상기해보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거 보면, 내가 세 번째 의미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 했거나 아니면 세 번째 의미가 나의 행복을 규정짓지 못하고 있는 것일 테다. 내 생각엔 후자의 문제다. 세 번째 의미를 보충해주는 새로운 의미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행하는 것. 지금 내가 행복하려면 이 조건을 더 추가해야 된다. 조심스러운 예측이지만, 다른 분들도 동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아니라면, 후다닥 도망쳐야지). 나는 그동안 너무 고지식하게, 하라는 것만 하고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공장에 있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그저 쟁강쟁강 한 칸 한 칸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계 같았다. 

  생각해본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데 있어서 위아래는 없다. 내가 화장실에서 유한락스와 봉솔로 대변기 청소를 하든, 무더운 땡볕에 밖에 나가 축구를 하든, 내가 하고 싶어 하고 원하는 것이라면 그게 바로 내게 있어 답일 테다. 어떤 사람이 지금 컴퓨터 게임이 무척이나 하고 싶어 밖에서 풋볼 매니저를 10일 동안 해서 중독 등급을 엄청나게 높이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혀를 끌끌 차도, 그 사람의 삶이 결코 가벼워지거나 구겨지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10년 뒤에 어떤 직업에 내가 종사하고 있더라도, 누구와 결혼을 했더라도 내가 원하고 바라서 한 선택이라면 나는 후회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나는 행복을 너무 많이 원했다. 이것저것 하라는(!!) 대로 다 해봐도, 행복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허나 행복은 정말 가까운데 있었다. 앞으로는 하고 싶은 걸 먼저 해보자. 하고 싶은 것만 해도 인생은 짧다. 많은 이들은 이미 다 깨달은 것들을, 이제야 느꼈다. 행복이란 퍼즐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이 퍼즐에 작지만 의미 있는 조각 하나를 퍼즐 가운데에 제대로 끼워 놓은 느낌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4:04:53 

 

상병 이동열 
  세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고 했던가요- 

이렇게 행복은 가까운데 그것도 많이 있다는게 느껴집니다. 

다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일지도 모릅니다(웃음) 

아무튼 고시란 제재덕에 남일같지만은 않습니다(울음) 2008-09-04
15:38:47
  

 

상병 박영교 
  과거에 언젠가 행복했고,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에 
현재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 시기가 행복했을수도 있습니다 
행복은 현재엔 느낄 수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고보면 
'아, 내가 그때 참 행복했구나'하게 느끼게 만들죠 

지금 이 순간순간이 행복한 겁니다. 2008-09-04
15:58:20
  

 

병장 이태형 
  <가지로> 외칩니다. 2008-09-05
07:16:24
  

 

병장 황인준 
  저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셨군요. 
저는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울음). 

앞으로 자신이 행복하다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남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2008-09-05
08:52:13
  

 

상병 박문희 
  머리로는 이해되고 수긍도 가지만 
실제 삶에 대입하기엔 너무나도 변수가 많은 현실이란 딜레마. 
하지만 타협해가며 최대한 노력해봐야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기란 정말 어려워요. 
사실 답은 항상 가까이에 있는데 말이죠. 2008-09-05
09:12:47
  

 

병장 윤영돈 
  확실히 현실이란게 신념과 맞부딪히는게 많죠. 
그걸 이겨내는게 할일이란거겠죠. 2008-09-05
10:51:29
  

 

병장 허기민 
  답글 달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저 글 쓰면서도 도통 정리가 잘 안 됐는데, 답글 보면서 도움 받았습니다. 한번 부딪쳐봐야겠지요(웃음). 2008-09-05
13:54:30
  

 

상병 고동기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있잖아요. 그것에 맞추기 위해 자기자신을 버린채 달려온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남들 다하는 걸 안하면 불안해지게 만들잖아요. 우리나라의 지리적 요인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며 살았던 것 같네요. 2008-09-05
15:53:10
  

 

병장 이동석 
  슈퍼쥬니어 해피가 부릅니다. 
파자마 파티 

소녀시대 동생들 9명과 파자마 파티를 하면 정말 행복할꺼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보지만, 
저의 항구적인 목표였던 복상사로 삶을 값지게 마무리 할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소녀시대는 커녕, 소녀도 없는 지금도 뭐 썩 나쁘진 않네요? 
비록 지금 낡은 티비에서는 샤이니자식(성차별이냐?)들이 산소같은 너같은 소리가 하고 앉았지만, 우리 효리 누나가 멋진 남자가 되주라고 노래하기 때문이에요. 

음, 남의 시선을 의식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려는 의식속에서 의식의 흐름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살아왔던 저의 의식적인 의식을 주민분들을 의식하며 의식적으로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고 싶은 욕구가 제 무의식에서 강렬히 작용하지만, 오늘은 의식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군대의식을 따라오면서 무의식속에서는 강렬한 반발의식을 표출했기에 의식이 혼미해짐에 따라 의식적으로 일찍 하루를 마치는 의식을 경건하게 치르고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어야겠네요. 2008-09-05
19:3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