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한국 현대시의 출발과 모더니즘
병장 조현식 2008-10-30 13:26:37, 조회: 145, 추천:0
고등학교 국어에서 나오는 내용을 상기해보자. 한국의 현대시는 이전의 전통시가들과 단절되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경향의 시작은 1930년대에 시작된 모더니즘 계열의 시가 등장하면서부터인데, 우리는 보통 이러한 모더니즘을 현대시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지금의 시들은 모두 모더니즘과 긴박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 현재 출판 중인 그 어떤 현대시도 이 30년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가 어째서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역시 당시 시대상의 파악이 필요하다. 2,30년대에는 급격한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당시의 지식인층은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한국의 근대화를 서두르고 있었다. 이러한 급박한 변화는 전통시가들을 온전히 현대로 가져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전통시가와 완벽히 융화되지 못한 채 달려가기 시작한 시문학계의 변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20년대에는 외국의 낭만주의, 상징주의를 받아들여 현대시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의 기틀이 잡혔다. 이 와중에 카프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시를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이것들은 형태적인 기틀만 잡은 채 아직 어떠한 정신도 담아내지 못했던 과도기의 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 초에 와서야 문단은 카프의 이러한 사조에서 벗어나 시의 예술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이 결과 등장한 것이 시문학파와 모더니즘계열이다. 시문학파의 경우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모더니즘은 그렇지 않다. 모더니즘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 당시 한국 현대시의 기본이 되었던 영문학에서는 T.E.흄의 이미지즘이 이미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한 발 더 나아가 거기서 발전한 엘리어트 등의 현대 자유시 운동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우리의 현대시가 전통시가로부터 발전된 것이 아니라 전혀 동떨어진 영문학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알아 볼 30년대 현대시들의 가치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30년대에 와서야 시가 시 본연의 예술성을 회복하는 시기였으며, 완벽하게 영문학에 본을 둔 모더니즘계열과는 달리 반대로 시문학파에서는 고전시가와 전통의 소재를 살려 나름의 발전을 진행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문학파에서 이러한 전통을 기반에 둔 예술을 발전시켰다면 모더니즘계열은 이전에는 없었던 독특한 예술성과 새로운 시의 구조를 탄생시켰다는데 의의가 있다.
새로운 시의 구조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모더니즘 시는 모든 언어 자체를 사물로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것은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미지즘에 대해 살짝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이전 영문학을 지배하던 것은 낭만주의 사조로서 인간 중심적이고 심미적인 글을 쓰는 것이 주류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회상은 이미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시작되었으며 프로이드가 인간의 무의식에 대해서 주창하던 때였다. 거기에 더해 1차 세계대전은 인간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서구 사회의 문화에 큰 변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19세기까지 지배했던 기독교의 영향 때문인지 당시에는 종교와 현실과 학문이 동일한 선상에서 취급되었는데, 이 물리적이고 단순한 정의가 깨져버린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 니체, 베르그송 등의 철학자들이다) 흄은 이렇게 불분명했던 세계를 방금 말했던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고, 각자의 세계는 서로 연결될 수 없음을 주장했다. 동시에 그는 예전 고전시로의 회귀를 꿈꾸었다. 고전시는 낭만주의의 특징인 유한과 무한의 갈등을 빼고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과장되지 않은 방식이었는데 이것을 끌어와 이미지즘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미지즘은 선택된 대상을 분명하게 표현하지만 그 안에서 시인이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비유 또한 현실에 있는 사물을 묘사적으로 그리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경우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불리한 점이 작용했으나 이미지즘 시인들은 특별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이 표면적으로 무관한 여러 이미지의 나열만으로도 효과적으로 그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이미지즘이다. 이러한 시를 J.C.랜섬은 또 다른 말로 사물시라고도 했다. 말했듯이, 모더니즘의 기본 근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모더니즘 시는 항상 사물이 중요시 되었으며 그로 인해 당연히 시간보다 공간이 부각되어 나타났다. 또한 사물을 묘사하는 것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시가 아닌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에, 시가 점점 산문화되었다. 이것은 모더니즘(이미지즘)이 일상언어를 통해 시를 나타내는 것을 그 조건으로 들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년대 민요조, 카프나 30년대 시문학파 시인들과는 다른 점이다. 오히려 이들은 19세기의 낭만주의와 흡사하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시들은 일상의 이야기를 일상어로 표현했기에 필연적으로 시의 산문화가 뒤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더니즘 시인들은 아름다운 운율이나 노래하듯 읽히는 시는 언어 자체의 이름다움이었지 현대를 표현하는 수단은 아니라고 여겼다. 시언어가 아닌 일상어의 사용, 그리고 공간적인 이미지의 구현 등 새로운 방법들을 통해 한국 시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시 구조를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20년대 시라고 배운 대표적인 주요한의 ‘불놀이’나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같은 산문시들은 도대체 뭐냐 라고 말이다. 그렇다. 형태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산문시는 20년대에 그 기틀이 잡혀져왔는데 이것은 당시의 문단 상황을 살펴볼 때 매우 놀라운 일이며 단순히 모더니즘이 이미지즘이라는 서양 사조를 들여와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이러한 기본적, 형태적인 뒷받침 속에서 이미지즘의 일상적인 언어와 하나의 이미지 표현에 집중하는 양식을 빌려오는 동시에 20년대와는 다르게 은유나 상징 등 시적기법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30년대의 모더니즘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결국 고전시가의 형태나 표현 방법은 시문학파가 이어 내려오는 가운데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것은 서양의 것을 받아들여 더 발전된 우리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그때의 문화가 그랬듯이 한국 현대시 또한 서구의 영향 아래에 완벽하게 지배되어 이룩된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고 고전시가의 형태만을 취하지 않았을 뿐 우리 나름대로의 정신을 담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 학과에서 배웠었던 내용 복습 겸 정리. 아직 한참 남은 복학을 준비하며. 가물가물 사라지는 나의 전공지식들을 위해.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4:05:55
상병 김남우
국문학 전공이신가보네요. 2008-10-30
14:55:24
상병 양순호
부러워요.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것이 정말 부러워요. 흑. 2008-10-30
15:21:03
상병 양순호
생각해보면, 제 글에는 전문지식이란건 담겨져 있지 않군요. 이것이 내공 차이인걸까요. . . 2008-10-30
15:21:24
상병 김무준
잘 읽었습니다. 2008-10-30
15:46:59
병장 박석현
국문학 레포트를 보는듯하군요.. 2008-10-30
19:43:37
병장 이동석
[한국 현대시 또한 서구의 영향 아래에 완벽하게 지배되어 이룩된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고 고전시가의 형태만을 취하지 않았을 뿐 우리 나름대로의 정신을 담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뭔가 안간힘을 쓰는 느낌인데요? (웃음)
이전 시대의 정신과 단절되버린체 이식해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분야가 워낙 많기에 우리 역사는 사실 반만년이 아니라 60년이라는 요지의 새로 쓴 교과서를 봐서 그런가-
갑자기 일본이 좋아지고 미국도 좋아지고 아홍홍-
한국문학사-라고 불러도 되나요? 도 모르고 이태까지 문학한다고 떠들고 있었군요, 공부 잘했습니다. 2008-10-30
23:11:21
병장 조현식
이 글은 그냥 제 공부한거죠.. 국문학 레포트 한 번 써본거랍니다.(웃음) 2008-10-31
07:00:04
병장 조현식
부촌장님의 말에도 한 마디 드려야겠네요.
모더니즘의 이야기를 할 때는 거의 이미지즘 -> 모더니즘이 바뀌지 않고 넘어왔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애초에 모더니즘이 그걸 받아들인거니까 이상할 게 없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당시의 시는 지금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 지금의 음악을 보도록 합시다. 한국힙합이 생겨난지는 PC통신과 함께였고 김삿갓삿갓삿갓 김삿갓 하던 홍서범때부터였으니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일단 외국에서 들어온 건 확실하잖아요. 하지만 우리의 힙합과 그들의 힙합에 분명 다른점이 있죠. 우리나라 말로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니까요. 모더니즘이 지니는 가치도 이런 것입니다. 그 형식은 빌려왔으되 우리의 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죠. 또한 '한국힙합'이 생기고 우리나라 노래에 이제 중간중간 랩이 섞여 나오는 것이 어색하지 않듯이 모더니즘으로 인해 공간적이고 사물을 그리듯이 표현하는 방식이 완벽히 시문학계에 보편화되었다는 것이죠.
고전시가의 형태나 구조적인 면을 차용하고, 한국의 전통을 살린 것은 이미 시문학파에서 시도하고 있었어요. 이미지즘이 영문학쪽에서 고전시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나왔음을 생각해보면 시문학파가 그런 역활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적어도 문학은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점을 당했어도 우리나라의 말과 글을 지키려는 수많은 노력때문에 크게 타격받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도 빛나는 글들이 쏟아졌고, 이전 시대의 정신과 단절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2008-10-31
07:56:14
병장 이동석
답변 감사합니다. 우리것-과 반만년-에 대한 회의-에 대해 다시
회의해봐야겠습니다. 2008-10-31
14:29:52
병장 고은호
정말 잘 봤습니다.
그냥 보아오던 우리 현대 시에 이런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네요.
더불어 혹시 모더니즘의 대표라고 할 만한 시가 없나요?
아무래도 예를 보면 더 화악~ 이해가 잘 될 것 같아서요.
아니면 좋은 시 추천이라도..(웃음) 2008-10-31
14:4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