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하루는 오늘로, 오늘은 어제로, 그리고 내일 하루가
병장 김무준 2009-02-16 04:58:11, 조회: 142, 추천:0
1.
찬란한 기억들이 얼음처럼 부수어지고 흘러간 시간들이 조각처럼 깨어진다. 추억하던 날들이 겨울바람 속에 서서히 무뎌져간다. 무릎까지 쌓여버린 현실이란 이름사이로 피비린내 나는 눈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날카롭게 굳은 오늘이 쇳덩이마냥 온 몸을 긁어댄다. 가슴 언저리는 눈보라에 찢기고 뜯겨 빨갛게 바닥을 적신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폭력이 서리처럼 떨어져 내린다. 잃어버린, 잃어버린 어제와, 잃어버린 어제의 기록과, 잃어버린 어제의 기록 속 당신을, 잃어버린 어제의 기록 속 사랑하는 당신을 찾는 들 무엇도 확인할 수 없다. 스쳐간 오늘은 어제가 되었고 내일은 오늘이 된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찬란한 봄을. 그리며 세찬 바람에 맞서 오늘을 견딤을. 알 지 못할 당신의 마음이. 슬프게 하늘을 뒤덮는 눈구름 같이. 상처 입은 가슴에 찔러오는 바위. 끝 고드름이 되어 쏟아진다. 몰려오는 추위로 굳어가고 있다. 바닥에 깔린 아픔이 짙게 발목을 부여잡는다. 마음을 적시는 떠나간 당신에 내가 굳어가고 있다.
2.
하얀 것들 사이로 여우를 만난다. 순백의 설원에 뒹구는 겨울 여우와 눈이 마주친다. 본다. 여우도 웃음 지을 수 있음을. 다시 사유한다. 저 여우를 사랑하게 될까를. 사고한다. 여우와 사랑을 나누는 날이 올지를. 그린다. 백색의 종이 위로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손가락에 적시어, 가슴에 들어차는 무언가를 휘갈기듯 그려낸다. 다시는 사랑하고 싶지 않으니. 빨갛게 젖은 종이가 적지(赤紙)가 되었음을 깨닫고서. 불을 댕겨 남김없이 태워버린다. 여우 앞으로 불붙은 감정이 뒹군다. 감정은 한 줄기 재가 되어 사라진다. 여우야. 사랑하고 싶지 아니하다. 저 먼 설원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다오.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갈 수 있도록. 말라붙은 눈물이 흐른다. 마른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무형의 눈물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몸부림치지만, 겨울은 눈물을 인정하지 않는다. 마주선 여우의 볼을 매만진다. 그리고 묻는다. 네가 무슨 이유로 앞에 왔는가를. 멈추지 않는 겨울을 뚫고 설원을 걸어온 여우의 이유를. 왜. 왜. 내 앞에 왔는가를.
3.
가슴에 싹트는 당신이란 존재를 기억의 파편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존재와 존재 사이에 꿈꾸는 이해가 과연 존재할까. 흐려진 과거가 흐르고 흘러 망각의 축복을 받게 될까. 잊혀 진 것들이 그러했듯 슬프게 이별하지 않을까. 기다리면 어제와 같은 조용한 내일이 찾아올까. 낯설게 다가오는 아련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을까. 아프고. 슬프고. 괴롭고. 힘들고. 눈물이. 가슴이. 기억이. 사랑이. 서럽게. 모르게. 잔잔히. 고요히. 찾아온. 오늘을 덤덤하게 맞이해야 하는가. 슬피 저무는 것들에 안녕을 고하는가. 이 모든 사고의 원인을 아는가. 이 모든 사유의 근원을 느끼는가. 이 모든 감정의 시작이 만남에서 비롯되었는가. 이것이 사랑인지. 또, 사랑할 수 있는지.
4.
눈은 그치지 않는다. 여우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15:34
일병 송기화
슬픈 표정의 여우일 것 같네요. 그렁그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