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탈출기  
병장 김선익   2008-11-23 17:22:55, 조회: 196, 추천:0 

꽉 찬 야구장(궁)에서는 자리 예매를 하지 않는 이상(든든한 후원자)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내 옆에 술이 잔뜩 취한 아저씨가 올 수도 있고 미모의 아가씨가 앉을 수도 있고 야구에 박식한 아저씨가 앉았다면 무료해설을 들으며 즐거운 관람을 할 수도 있다.  이 문단을 괄호 안에 든 단어로 살짝 바꾼다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는 것만이 아니라, 내 옆에 누가 오느냐가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누가 앉든 무시하고 야구 관람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인식하고 의식한다. 선악과를 먹고 난 후의 아담과 이브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택한 생존방식은 바로 가식이다. 지금 우리들은 자신의 악함을 감추는데, 서로의 시선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들은 선하다 라는 착각에 빠진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가식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완성된다. 우리들의 관계도 이런 가정 하에 출발한다.

한 때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는 심한 배신을 당했거나 혹은 인간관계에서 권태감을 느껴본 경험이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추억을 회상하다가 얻은 결론이었다. 슈퍼에 들어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그냥 물건을 들고 나와버릴까 하다가 누가 볼까 걱정된 마음에 그만둔 적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는데 대변기가 막혀버렸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나와버렸다. 초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지금도 물론 친하다) 2학기 학급회의에서부터 나쁜어린이와 착한어린이를 뽑는 부분이 새로 생겼다. 나는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장기를 두는데 훈수를 했다는 이유로 나쁜 어린이로 추천했다. 그런데 다른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를 나쁜 어린이로 추천하다니, 이런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내 친구가 번쩍 손을 들며 나를 나쁜어린이로 추천했다. 자기 집에 놀러와서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다 빼먹었다는 이유였다. 후보는 나와 그 친구였다. 투표가 시작됐다. 나는 나한테 투표를 했다. 나는 그 주의 나쁜어린이로 선정되었다. 나는 아직도 마음 속 깊이 나쁜 마음을 가득 숨기고 있는 나쁜어린이다. 이젠 과거가 아닌 추억이 되버린 이 모든 것들과 사람들은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는 나의 일방적인 생각과 더불어 나온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이 놈의 가식덩어리들 지겹다. 모두 버리고 떠나버리자. 각별한 사이 몇 명한테만 말을 하고 입궁을 해버렸다. 관계를 모두 끊어버리고 나만의 일탈을 해보는 것이다. 2년 후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리라, 은든고수가 된 기분이었다. 입궁 후에야 내가 결코 가식과 관계의 모순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몇 가지 착각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2년은 생각보다 매우 긴 기간이다. -구성원들 모두가 사바세계에서 온 사람들이라 이 곳은 단지 궁이 아니라 사바세계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고, 오히려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야 할 뿐만 아니라 반강제적이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이런 나의 착각은 나의 생각과 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이번 설탕 때, 저랑 만나서 술 한잔 하시겠습니까? 놀러가겠습니다.
- 너 어떻게 우리한테 말도 안하고 입궁할 수가 있어? 설탕 나와서도 연락도 안하고, 벌써 밧데리를 3개나 달았네. 연락해. 얼굴이라도 보자.
이런 말들이 나에겐 모두 가식처럼 느껴졌다.
- 너는 잠자는 백설공주한테 왕자가 왜 키스를 했는지 아냐?
- 깨우려고 그런거 아닙니까?
- 아니야 임마, 너 같으면 아무도 안 보는 곳에 여자가 누워있으면 그냥 지나갈거냐. 백설공주하고 왜 난쟁이하고 같이 나오는지 알아? 그게 다 심오한 뜻이 있어. 난쟁이였기 때문에 왕자가 미처 발견을 못한거야. 아무도 안 보니까 왕자가 그럴 수 있었던거지. 다 가식이야.
- 에이, 너무 억지다.
- 예전에 어떤 섬에 전염병이 걸린거야. 사람들은 구덩이를 파서 병에 걸린 사람들을 그 곳에 격리시켰지. 그런데 그 섬에 화산이 터진거야. 그래서 모두 도망가기 시작했어. 그 때 그 구덩이에 있던 사람들은 뭘 했는지 알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미친듯이 집단성교를 했어.
- 흠, 아직 잘 모르겠어요. 
- 너도 지금 나한테 괜한 가식을 떠는거야. 나도 물론 그래. 고로 나는 미리 도망갈거다. 더불어 이게 설탕 때 너하고 나하고 술을 마실 수 없는 이유다. 

나는 이 가식과 관계의 틈바구니에서 계속 도망쳤지만, 도망치는 나에게 궁의 특성은 끊임없이, 또 반강제적으로 관계를 맺어주었다. 더 이상 도망 갈 곳이 없었다. 결론은 1.내가 죽어버리거나 2.새가 되어 날아가버리거나 3.변종인간이 되버리거나 4.새로운 도망갈 길을 찾는 방법이었다. 
나는 비겁하게도 기가 막히게 도망을 잘 치는 편이라 4번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다만 굳이 궁에서만이 아니라 이 끊임없는 관계의 고리에서 1,2,3번을 택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리며, 나는 귀찮은 휴머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금요일에 봉안윙반으로 빼앗긴 컴퓨터를 포맷된 상태로 다시 받았습니다.
-일주일 후면 지긋지긋한 필승3주훙령도 끝이 납니다. 책을 읽고 싶어요.(울음)
-고은호님이 알려주신 시인 사이트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프린트해서 시간날 때면 꺼내서 보곤해요. 정말 깊은 감사드립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59:33 

 

상병 양 현 
  아아. 그 페이지 저도 알고 싶은걸요. 
이래저래 주변지인들이 많은건 좋은 것 같더랍니다. 
모르고 있던 걸 알게 해주니까요. 2008-11-23
17:39:11
  

 

병장 김선익 
  흠. 노트에 적어놓은 걸 옮겨적은건데 
영 매끄럽지 않고 뒤죽박죽이네요. 
지우고 싶은데, 양현님이 벌써 댓글을 달아놓으셔서 차마 지우질 못하겠어요. 
사이트 올리는건 금지되어 있으니까, 대신 쪽지로 보내드릴게요. 2008-11-23
18:06:00
  

 

일병 김태경 
  사회와 주변의 관계에 전전긍긍하는 저로써는 선익님이 상당한 쿨가이로 보이네요(웃음) 근데 하나하나의 관계를 살펴보면 적당한 거리의 관계를 꼭 가식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2008-11-23
23:57:57
  

 

상병 이지훈 
  전 그런 가식마저도 그 사람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저에게도 가식적인 면이 있을테니까요. 아니 있죠 
물론 남의 가식이든 제 가식이든 그 가식이 제 취향(?)에 벗어나면 많이 괴롭지만요 

어느 정도의(?) 가식은 인간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흐흐 2008-11-24
04:21:45
  

 

병장 김낙현 
  가식을 버리기 위해 인간관계를 내쳤다는 건가요... 

헌데 끝부분에는 고은호님의 영향을 받고 계시는데요. 아무래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 같군요. [웃음] 2008-11-24
08:19:47
  

 

병장 이동석 
  사바세계의 이동슥과 궁의 이동슥은 매우 다르지만, 결코 어떤 모습을 가식이라고 부를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사바 이동슥과 궁 이동슥의 가면을 바꿔 쓴것에 불과해요. 여기서 가면은 가식과는 별 상관이 없어요. 왜냐면 가면 뒤에는 실체가 없거든요. 그 가면들의 총체가 이동슥일뿐이니까요. 

뭐 그러거나 말거나 화산이 폭발하고 구덩이에 갇혀있을때 성교를 한다고 하는건 위악이거나 인간에 대한 왜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걸 죽음에 임박한 순간에도 솔직하지 못하다고 표현한다면 입을 다물수밖에요. 2008-11-24
08:25:23
 

 

병장 이동석 
  역시 선익님 글은 산뜻-하네요. 고민마저. 2008-11-24
08:27:14
 

 

병장 김선익 
  낙현/ 
관계를 내쳤다기보다는....... 2008-11-24
19:04:29
  

 

상병 이호석 
  고민을 한단 자체로 그대는 이미 성공하셧소.! 2008-11-28
23:2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