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칼 3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9-01-12 17:53:42, 조회: 86, 추천:1 

남자는 그저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에서 칼을 움직이고 있었다. 적어도 남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칼을 휘두르고 있는 남자는 필사적인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남에게는 들리지 않는, 자신에게만 들리는 비명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단한 무기도, 시간을 넘어 공격해 오는 지독한 소리들을 벨 수는 없었다.
"저..."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어차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적이기에 남자는 애초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우왓!"
남자는 조금 당황했다. 언제 내질러졌는지도 모를 목소리가 자신의 칼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를 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감았던 눈을 뜨자, 자신의 칼이 지나갔을 자리에는 왠 남자가 서있었다.
"하, 큰일 날 뻔 했네요. 좀 조심하시지요."
자신의 무자비한 칼에 맞았을 지도 모르는 남자는, 겸연쩍게 웃으며 자신을 걱정해 주었다.
"...괜찮으십니까?"
말을 하면서도 남자는 어이가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이었다면, 그 누가 되었던간에 방금 칼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벤 감촉은 없었지만 상대방이 서있는 거리는 틀림없이 그의 칼이 닿는 범위 안이었고, 그의 칼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 예 괜찮습니다."
"예?"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상대를 보고 그는 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귀신인가? 하지만 귀신이 실재한다면 그의 무기는 상대가 귀신이라도 베었을 것이다.
"대장간을 들르신 분 같군요. 알아 보시겠어요?"
상대가 어깨에서 이상한 물건을 꺼내보이며 물었다.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복장을 갖춘 남자가 손에 쥔 것은 짤막한 손칼이었다. 날끝에서부터 손잡이 끝까지 하나의 금속으로 이루어 진 것이 그가 쥔 칼과 같았다.
"전 지금 이 녀석으로 공간을 베고 현실의 틈에 서있습니다. 현실에 서있는 것이 아니니 벨 수 없지요. 여행자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냥 떠돌이입니다. 다행이군요. 이 날에 닿았다면 당신이 누구였든 죽었을 테니까요."
"그 정도의 칼입니까? 어르신은 목숨을 가져가는 칼은 쉽게 만들지 않으시는데요."
여행자라고 자신을 칭한 남자는 대장장이 어르신과 잘 아는 사이인 듯 싶었다.
"제 칼은 목숨을 빼앗는 무기가 아닙니다.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벨 수 있을 뿐이지요."
"그거 정말 무서운 칼이군요. 죽을 뻔 한거로군요. 그나저나 무슨 일로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칼을 휘두르고 계셨던 겁니까?"
말은 저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자신의 칼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마음이 상할 뻔 했지만 자신의 칼과 형제라고도 할 수 있는 칼을 가진 자를 향한 호기심이 더 강했다.
"비명을 베고 있었습니다. 아니, 베려 하고 있었다는 게 맞군요."
"비명이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만."
"제가 가진 저주입니다. 저는 지나간 시간에서 내질러진 소리를 듣습니다."
"지나간 시간이요? 저, 괜찮으시다면 앉아서 얘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여행자가 태연하게 바닥에 앉아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도 자리에 앉았다.
"어제 누군가 한 이야기를, 몇 년 전에 새가 지저귄 소리를 오늘 듣는 것이지요."
"희한한 일이군요. 그런데 그 소리를 왜 베려고 하신겁니까?"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비명을 질렀는지 아십니까? 저는 그 소리가 싫습니다."
"그 칼은 그것도 벨 수 있는 것입니까?"
아무래도 이 여행자라는 남자는 호기심이 굉장한 사람 같았다.
"아무래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지긋지긋하게 들려오니 말이죠."
말을 마치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잘못된 세상을 베어 온 세상에 들어찬 비명을 없애겠다는 목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 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비명도 없앨 수 없고, 세상도 벨 수 없다. 그는 막연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면 그 칼은 도대체 무엇을 베기 위한 것입니까?"
"이 비명이 가득 들어찬 세상을 벨 겁니다."
"세상을 베어버리면 비명이 끝납니까?"
"예?"
여행자가 뚱하니 던진 질문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을 베면 비명을 지를 입이 사라집니까? 세상을 베어 없앤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세상을 죽여 없앤다면, 하다못해 온 세상을 보러다니는 여행자인 제가 비명을 지르지 않겠습니까?"
뭔가 알 것 같았다. 어쨌건 세상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모두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조차 그의 꿈을 반대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행자는 무언가 불만이 있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행자의 대답을 기다릴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지긋지긋한 비명소리들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십니까?"
여행자는 화난 표정이었다. 화난 말투였다.
"그걸 없애기 위한 무기마저 손에 쥐고는 왜 저에게 기대십니까? 우리는 칼을 쥐고 있습니다. 마음이 꺾이든 칼이 부러지든 칼을 쥐었으면 우리는 그것을 휘둘러야 합니다. 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대답을 얻을 때까지 휘두르면 되지 않습니까!"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벨 수 있는 무기를 쥐었지만, 세상은 너무 넓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베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
여행자가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아무래도 탄성이라기 보다는 비웃음의 의미인 것 같았다.
"저는 지금 변화와 맞서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돌며, 변하지 않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변해가는 세상은 저를 매혹시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들은, 아니, 뒤로 물러서는 것조차 어찌보면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저야말로 현실과 타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 찾을 겁니다. 찾을 때까지 현실에서 벗어나 걷겠지요. 당신의 마음이 굳은 그 칼은 고작 그정도입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보겠습니다. 당신은 변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여행자는 일어서 뒤를 돌았다. 걸음을 옮겼다. 그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내려 손에 쥐고 있는 칼을 바라보았다. 그가 쥐고 있는 칼은 어찌보면 여행자의 꿈을 가장 확실히 파괴할 수 있는 무기일 것이다. 베인다는 것은 변화이다. 어쨌건 하다못해 두동강이 나니까.
"그건 싫은데."
혼잣말을 내뱉었다. 여행자도 아마 그와 같이 끝없이 헤맬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그의 말대로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니까. 
"그렇다면 세상의 이치를 베어버리자."
변화하지 않는 곳을 만들자. 세상의 흐름이 닿지 않는 곳은 죽은 곳이다. 베어 없앨 생각만을 하던 그가 무언가를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그의 꿈을 이룰 방법을 찾아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변하지 않는 무언가는, 세상의 손길이 닿지않는 세상은 여행자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도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덧. 예, 시간상으로는 이게 먼저입니다. 하지만 제마음이죠, 뭐.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02:45 

 

병장 이동석 
  아뇨, 구성 좋은데요. 세상의 손길이 닿지않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갈 과정이 궁금해집니다. 2009-01-12
20:17:36
 

 

병장 이충권 
  The Scream Cut Skill Lv10 Develop. 

Congratulations !! 2009-01-13
07:42:46
  

 

상병 차종기 
  어엇 - , 베기만 하던 검이 창조도 할 수 있는 거군요, 
그나저나 커다란 산을 저 칼로 조각한다면 , 세계의 미스터리로 남을지도, 
저 칼 탐나는데요(쩜쩜쩜) 2009-01-13
09:3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