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초심(初心)  
상병 이석현  [Homepage]  2008-11-25 08:46:34, 조회: 155, 추천:2 

초심(初心)
이제 와서 새삼스레 다시 돌아보면, 초심(初心)이란 얼마나 쉽게 망각(忘却)하기 쉬운 말인가. 모든 일이 그러하다. 처음 시작은 항상(恒常) 좋은 뜻과 의지(意志)로 시작(始作)하지만, 조금의 시간(時間)만 지나도 이러한 초심은 너무도 쉽게 변질(變質)아니 변화(變化)해버린다. 이 핑계도 각양각색이다. 어렸을 땐 ‘어려서’라는 핑계로 너무도 쉽게 초심을 버린다. 어떠한 결심(決心)을 한 후에도, 어려서(어리기 때문에 시간이 많으니까, 혹은 어리기 때문에 어리석어 허황된 목표를 잡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한다. 그렇다면 커서는 다른가? 당치도 않은 소리다. 머리가 조금씩 굵어지더니 이제는 현실(現實)을 깨달았다 주장한다. 도대체 어떤 현실을 말하는 것인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 과연 무었을 위한 불가능인가? 초심을 이루기 위해서, 그래 많이 귀찮은 건 인정하지만, 왜 불가능(不可能)하단 말까지 쓰면서 스스로를 정당화 하는지. 

#1
대학교 시절, 친했던 여대생 K가 있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학비가 만만치 않은 이곳에, K는 남들보다 더욱 힘들게 다니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은 어려운 집안형편- 흔하디 흔한 레파토리지만 - 때문에 소위 ‘대학의 낭만’이라 부르는 것들보단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전액 장학금을 타지 못하면 빚을 내야하니깐, 장학금을 놓쳐선 안된다. 그러나 K는 다르다. 물론 공부는 열심히 한다. 지금까진 단 한번도 장학금을 놓쳐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연애도 한다. 무려 캠퍼스 커플이다. 동아리 활동도 한다. 학내 동아리 중에 가장 힘들다는 방송국이다. 용돈 벌이용으로 알바도 3개나 한다. 친구들과 술 마시며 밤을 새기도 한다. 이게 사람인가? 불가능하다. K는 천재임이 분명하다. 

#2
대학에 합격했다. 내가 꿈에도 그리던 4년제 대학, 눈물이 났다. 행복해서. 그래 분명 행복해서 흐르는 것이길. 장학생으로 들어가는 건 실패했으니까. 집이 매우 어렵다. 한 학기 학비조차 감당할 수 있을까? 남들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다. 더 즐겁고 보람차게 대학생활을 할 자신도 있다. 이를 악물었다. 남들은 합격하고 놀러 다닐 때, 알바를 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못 갔다. 돈을 벌어야 했다. 난생처음 은행에 가봤다. 대출이 가능할까 해서. 알바를 한 돈과 부모님의 도움 - 빚이겠지 - 으로 간신히 돈을 마련했다. 이렇게 힘들게 간 대학교. 동기들은 다들 즐거워 보인다. 왜 내게는 회색으로 보이는 걸까? 목숨 걸고 공부한다는 말, 고등학교 때 까지만인줄 알았다. 결국 전액장학금을 탈 수 있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 점점 지쳐간다. 나는 왜 남들처럼 살 수 없을까? 가난. 가난만 아니라면 나도 남들처럼 웃을 수 있을텐데.

#3
K와 우연히 단둘이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조금씩 취기가 올라온다. 시덥잖은 얘기들이 오고가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네가 사람이냐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넌 정말 대단한것 같다고. 어떻게 남들은 한 개하기도 힘든 걸 그렇게 다 잘할 수 있냐고. 네가 정말 부럽다고. K가 말했다. “난 항상 두려워하고 있어” 무엇이. “내가 한 가지를 포기하면, 다신 그것을 할 수 없을까봐. 정말 힘들어. 넌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난 정말 너무도 힘들어. 그런데 한 가지를 내려놓으면, 그 가벼움에 빠져들겠지. 그러면 또 하날 포기하고 싶을 거고.. 그러다보면 결국 모두 내려놓고 싶어질꺼야. 난 그게 너무 무서워.”

#4
긴 여행을 떠난다. 각종 준비물들을 챙긴다. 여행의 목표도 잡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쓸 물건들도 챙기고, 길을가다 필요한 것들도 챙기고. 이제 길을 나선다. 걷는다. 걷는다. 지친다. 잠시 쉬면서 가방을 보니, 무거운 텐트가 보인다. 여름이라 날씨가 더우니 텐트는 버리고 가자고 생각한다. 다시 걷는다. 다시 지친다. 또 다른 물건이 보인다. 쓸모없어보인다....

초심(初心)을 잃지 않는 것. 그건 긴 여행(旅行)을 떠날 때 준비했던 물건이다. 내가 목적지에 다다르는데 필요했다고 생각했던 그 것들. 긴 여행에 이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진정 불가능(不可能)한가?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9
13:02:29 

 

병장 김우열 
  호오... 
뭔가 느껴지는게 많은 글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08-11-25
09:00:17
  

 

병장 정병훈 
  흐흐흐 오늘은 아침부터 읽을거리가 많군요. 읽을 거리 못지않게 할게 많긴한데... 

그런것 같습니다. 초심은 정말. 중요하죠. 저 또한 초심을 잃고 방황하던 적이 있는데, 그럴때마다 후회하고 돌아보고 합니다. 누가 그러던데요. 후회할 시간에 앞으로 나가라고... 
젠장. 후회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게아니라,) 

잘 읽었습니다. 2008-11-25
09:17:17
  

 

상병 김용준 
  정말 너무 좋은 글들 읽느라 시간가는줄 모르겠네요. 하하. 

음...이 글을 읽으면서 저의 경우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가벼움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며 살아왔을까...난 정말 바보다. 이제는 가벼움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싶지 않다. 포기하기도 싫다. 하나라도 더 지고 가겠다. 하나가 두려움이든 망설임이든...' 

저는 오늘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네요. 후후.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걸으면 되니까요. 저는 계속 걸어야겠어요. 후후. 2008-11-25
10:52:54
  

 

병장 이충권 
  초심으로 가고싶은데 이미 늦은건가요(털썩) 

후회가 드네요. 2008-11-25
11:08:16
  

 

상병 이석현 
  충권 //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죠 (웃음) 2008-11-25
13:2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