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청춘의 종언’ —2008년, 불안한 이십대를 위한 소고(小考) (3)  
병장 고동기   2008-12-12 17:15:49, 조회: 224, 추천:1 

7. 촛불과 이십대

김홍중 자기 계발하는 이십대의 대척점에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십대가 있을 겁니다.
우석훈 제가 알기로는, 이십대도 많이 나갔지요. 초기에는 적게 나가다가 일주일 지나고 나서는 상당히 많이 나갔는데, 십대들은 교복이라는 인식표가 있으니까 하이라이트가 되고, 이십대는 예전에는 대학 깃발 아래 모였었는데 대학 깃발이 꼬진 것 같으니까 또래 그룹끼리 모여 다니다보니 이십대라는 상징적인 지표가 없어서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것 같아요. 제 주변을 샘플링해보면 나가기는 엄청 나갔어요.
김현진 촛불도 윗선에서 이십대들을 엄청 왕따시켰어요. (일동 웃음) 십대들은 자연스럽게 나서는데 이십대들은 뭐 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냐? 토익공부 하냐? 하고 소위 지식인들이 훈계하는 건데, 우리가 보기엔 ‘아저씨들 그런 말 할 시간에 나와서 물대포나 같이 좀 맞지……’ 그런 거죠. (웃음) 안나온 아이들은 미안함은 있어요. 제가 여자아이들이 많이 활동하는 카페 같은데 글을 올리기도 하고, 최근에는 비정규직 투쟁 같은 걸 하면서 개인적으로 바자회를 하는데, 물건이 계속 와요. 그 안에 보면 편지나 쪽지가 들어 있는데 항상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미안합니다’거든요. “나한테 왜 미안해?” 그러는데 그게 서글픈 거죠. 죄책감에서 한 단계 희석되기는 했는데 그래도 미안한 건 있는 거예요. ‘아이씨 나는 지방에 살아서……’ ‘아이씨 나는 야근이야’ 하면서…… 그리고 얘들이 못 나오는 이유도 재밌는 게, 비정규직이다 보니까 주말까지 일해야 해서 못 나가고, 당장 생활이 바쁘고……
우석훈 감성 같은 걸 보면 노동의식이나 계급의식 같은 건 약한데 이를테면 젠더 문제라거나 생태나 미학이나 문화적인 감수성은 대단히 높거든요. 그래서 보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계급담론으로 치면 아무것도 아니 것 같은데, 다른 방식으로 문화담론 같은 걸 보면 사실은 사십대에 비해서 훨씬 진취적이거나 진보적인 면이 있어요. 그러면서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정도로 상당히 열려 있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뭔가 특징이 하나 있으면 상(像)을 잡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보면 이명박 정부라는 게 워낙 쉽잖아요. 그리고 대운하라는 걸 보면 초기에 오십 대 오십 상태에서 반대의견이 높아질 때 보면 이십대가 많이 바뀌거든요. 그러니까 얘기하는 것과는 또 별도로 감성적으로 저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시대적인 뭔가는 생긴 것 같아요. 대운하를 이십대들이 정말 아니다라고 생각한 건 그것보다는 먼저였던 것 같아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느낌이나 이미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사실 촛불이 너무 셌다는 느낌은 있어요. 몇 가지가 무르익은 상태에서 왔으면 뭔가 집단화된 움직임처럼 보였을 텐데 사실 쇠고기 사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시기에 던져진 거였고.
백가흠 옛날과 달라진 게 그런 것 같아요. 집단적인 감성이 되살아났다는 거. 그게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이념이 생성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사건이잖아요. 그래서 진보진영에서 좀 더 열광하고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인데, 더군다나 이십대의 젊은 세대가 주체였다고 친다면……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게 기대했었던 것과는 달리 완전히 돌아서지는 않은 거잖아요. 계기만 있었을 뿐이고 결국 완전한 정치의식이라든지 개념까지는 가지 않은 거죠. 지난 호 『창작과비평』에서 촛불 가지고 특집 지면을 꾸민 걸 읽은 적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거기에서 내린 진단마저도 이미 이들이 이끌어가고 있는 감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에서 좀 바뀌어야 될 것 같아요. 기성세대 자체도 이들이 갖고 있는 색깔 자체를 뭐라고 진단내리기가 너무 모호하고…… 저는 집회 분위기도 너무 낯설어서 적응을 못 하겠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디에 서 있어야 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우왕좌왕했는데 계속 드는 생각이 길가에 있는 술집에서 저걸 지켜보고 싶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조금 젊은 세대의 친구들은 전혀 불편함을 못 느끼는 걸 느끼게 되고…… 거기서 다시 괴리감도 생기고.
김홍중 이건 여담입니다만,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왜 이렇게 높아졌습니까? 우발적인 충돌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폭력에 대해서도 지극히 예민한 촉수들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약간 강박적인 수준에까지 이르렀던 것 같은데요.
우석훈 이유는 모르겠는데 두세 명한테 그 얘기를 들었어요. 전경들한테 부딪쳤는데…… 같은 얘기예요. 자기가 너무 화가 나서 한번 때렸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자기도 괴물이 되는 것 같다. 그게 무서워서 그 뒤로는 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세 명 봤거든요. 이십대 학생들인데…… 사십대나 오십대들은 그건 나약한 거라고 얘기를…… 아니, 폭력 없이 뒤집힌 게 어디 있냐고 하는데, 이십대들과 얘기를 해보면 그건 자기 안의 내면화된 원칙 같은 거예요. 저는 그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왜 생겼는지는 모르겠는데 한편에서는 그걸 비폭력의 이상한 이데올로기라고 보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자기 원칙 같은 거라고……
김현진 (웃음) 제가 왜 웃냐면, 제가 촛불집회 때도 만날 갔는데 비폭력이라고 말할 때만큼 웃긴 적이 없었어요. 비폭력이라고 말하면 왜 공정무역이라고 말할 때랑 느낌이 비슷하지? (웃음) 역사에서 혁명이 피 없이 달성된 것이 뭐가 있어요? 사실 비폭력이라는 건 ‘겁나요. 때리지 마세요’ 이런 거거든요. 무섭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그런 얘기들이 비폭력이라는 세 글자로 압축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쪽에서는 폭력으로 나오는데 우리는 비폭력해서 어쩌라고?
근데 운동이 뭔지 모르는 저 같은 애들이 왜 거리로 튀어나왔냐? 화가 나거든요. 진중권씨 명언처럼 ‘사람을 왜 때려요?’ 에다가 ‘아니,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딴 것 쏘래?’ 이런 거죠. 상식적 차원의 참여예요.
백가흠 지금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는 비폭력과 가장 먼 사회라고 전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비폭력을 외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너무 큰 것 아닌가 생각이 돼요. 그렇다고 폭력을 옹호하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요. 오히려 너무 과도하게 이성적이고 또 과도하게 도덕적인 것들을 스스로 압박하는 강박증 안에 있는 게 아닌가. 결국 이런 도덕, 이성 강박은 돈과 관련된 것들이라고도 저는 생각하거든요. 돈을 놀리면서 가장 완전한 자본주의의 세계에 몰입해 있는 것이지요. 다시 얘기하면 청교도들의 이중적 행태쯤. 어떻게 보면 결국에는 미국 얘기겠지만 한쪽에 존재하고 있는, 양면처럼 계속 따라다니는 주입식 윤리, 주입식 도덕, 이건 기독교적이겠지만 어쨌든 우리도 많이 결합된 강박증이 있는 것 같아요.
우석훈 제가 본 프랑스 시위는 대부분 그런데, 노조에서 차량들을 동원해서 점잖이 지나가지요. 그리고 흩어지면 뒤따르던 십대들이 지나가면서 다 부수고 가요. 그래서 정부가 평화롭게 안 해주면 안 되는 게 그렇게 안 해주면 십대들이 뒤따라가면서 다 부수고 가게 되거든요. 십대 방화범들? 정말 개념 없고, 상가 간판 부수고, 심지어 소니 워크맨 집어가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시위대가 폭도로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경찰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시위대의 본진을 보호하죠. 흩어지면 정말 무서워지니까요. 사실 평화라는 건 그런 거거든요. 그리고 통제되지 않은 군중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한국은 너무 완벽한 디스플레이를 가지고 있어서 십만 명이 모여도 휴지 하나 없고……
김현진 진짜 웃긴 건 폭력이라고 말할 때 여기에 안 나오자니 죄책감은 크고, 앞에 나서자니 물대포는 아프고 차갑고 맞기는 싫고, 그럴 때 나오는 안이한 구호거든요. 그것도 그런 말을 하는 아이들이 꼭 인도에 서서 해요.
백가흠 그게 좀 시간이 지나면 술집에서…… 생맥주 들고 건배하면서…… (일동 웃음)
우석훈 일본소설들을 보니까 일본도 단계를 거친 것 같은데요. 초기에는 사소설이 아주 많다가 최근 삼사 년 동안 약간 위로문학 비슷하게 그런 식의 컴포트를 주고 하다가 올해는 프로문학이라고, 일본식 표현인데 일본에서 이십대들 스스로 ‘프레카리아트’라는 이름을 쓰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혼자서 외롭다고 하다가 위로도 해주고, 그래도 위로가 안 풀리잖아요. 그래서 싸우자는 식으로 오는 것 같은데, 그 단계론이 한국에서 맞을지는 모르겠는데요. 삼사 년 전까지는 이십대들을 핍박하고 그런 게 있었거든요. 구제불능이라고들 하다가 이삼 년 전부터 지금 위로문학이라고 치면 위로하는 얘기들이 클라이맥스로 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 나온 몇 개의 성장소설들을 보면 얘기를 계속 들어주는 게 모티프인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고민했던 건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현실을 보여주고 뭘 하자고 하는 프로문학이나 또 리얼리즘이나 선동으로 갈 수 있느냐를 보면, 사실 이 단계는 필요한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위축되어 있으니까. 그냥 이름 부르고 나오라고 하면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일본의 예를 들면 위로받고, 이를테면 자빠져 있다가 일어서볼까 하는 것과 촛불집회와 이명박이 만들어낸 악몽 같은 세상이 병존하고 있는 거죠. 
김현진 아까 심리적 박탈감이라고 말했잖아요. 저는 명박산성 컨테이너를 보면서 얘들이 이제는 모욕감까지 박탈당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게 대중에 대한, 시민에 대한 얼마나 엄청난 모욕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 앞에서 <바위처럼> 부르고 춤이나 추고 앉아 있고 맥주 사가지고 와서 호호거리고 있고. 그 앞에서 모래주머니 좀 쌓는다고 그렇게 발광을 하고 스티로품을 쌓는다고 그렇게 싫어하는 걸 보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이제는 아이들이 통제가 너무 잘된 나머지 모욕감까지 박탈당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날은 얼른 집으로 들어오게 되더라고요. 

8. 2008년 이후 이십대의 향방

김홍중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 가지 각도에서 포착하려고 했던 이십대 모습은 지나 십 년간 형성되어온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2008년에 접어들면서 한국사회가 새로운 방향으로 굴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의 대규모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퇴행적이고 파행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올봄에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있었죠. 또 최근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재편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예단하긴 어렵지만 어쨌거나 세계적 수준에서 역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십대에 대한 우리의 논의도 이런 새로운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리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사항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제 삼십대로 접어드는 현재의 이십대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둘째, 이제 이십대로 접어드는 현재 십대들은 과연 어떤 이십대를 보낼 것인가?
우석훈 올초에 일본의 이십대 NGO들이 방문했었고, 그때 한국에서 아주 작은 NGO운동을 하는 이십대들과 만나는 자리를 주선했었거든요. 그런 비슷한 게 몇 번 있었습니다. 근데 국제적인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일본의 이십대를 만나서 얘기를 하니까 ‘니네들도 그래?’ 그러고, 그리고 일본의 이십대들도 우리나라에 와서 고시원 이런 걸 보면서 ‘너희 진짜 불쌍하다’고 얘기를 하면서 잘 통하는 것 같더군요. 사실은 국내에서만 얘기하면 좀 닫힌 공간인데, 일본의 이십대와 만나서 얘기를 하니까 서로 말이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오랫동안 봤던 친구들인데 미국의 잘사는 이십대들만 생각을 하다가 그렇지 않은, 이를테면 뉴질랜드의 이십대를 만나거나 호주의 이십대를 만나거나 그럴 때 전혀 다른 생각의 전환을 하는 걸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미국의 클라이맥스로 올라갔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국제적인 만남이라든가 책을 통해서라든가 그런 소통 같은 게 되면, 다른 방식의 질서나 사유가 나올 수 있는 균열의 공간이 나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지금 십대들에 대해서는, 이십대들에게 물어보면 자기네들 때보다 사교육이 훨씬 더 강해졌으니까 더 열악하고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반면에 십대는 극까지 간 거 아니에요. 사실은 촛불집회 때 충격을 받은 건데, 그 얘기는 그거거든요. 왜 이제까지 있나? 이맘때는 아직 초저녁이다. 열두시엔 잠 좀 자자. 이런 것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의 이십대가 십대일 때는 괴롭기는 했었는데 그 정도로까지 시스템으로 몰아붙이지는 않았거든요. 근데 지금 십대는 육체적으로 수면권 같은 것을 주장할 정도로 정말 극한까지 몰려있는 상황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지만 중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인권단체가 나름 잘 운영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지금 이십대가 십대 동아리보다 못한 건데, 지금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웬만한 학교에는 인권동아리가 몇 개씩 있고, 연합동아리가 있고, 이게 막 커지거든요. 근데 별 얘기를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책 몇 권만 읽고 우리가 괴로웠던 얘기를 해보자 하면 잘돼요. 지금 일종의 사교육 트라우마 아니에요? 그게 움직이는 공간이 더 클 건지 아니면 너무 괴로우니까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자기네들끼리 위로를 하면서 서로 뭉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으니까요. 사교육을 지지하는 집단이 더 셀지, 지금 중학생들의 인권의식과 이를 지지하는 집단이 더 셀지, 조만간 이 거대한 싸움이 한번 벌어질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좀 희망적으로 보는 편이에요. 사람이라는 건 영물 아니에요? 너무 괴롭히면 그냥 노예가 될 것 같은데 그것도 견딜 수 없게 괴로우면 또다른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라고……
그런데 그런 게 촛불집회 때 십대도 그랬지만, 사람들은 그 십대들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나왔던 친구들과 제가 만나서 얘기를 해보거나 하면 나왔던 사람들 중에서 촛불이 마음속에서 꺼진 사람은 없거든요. 어디 갈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이를테면 마흔 명 중에서 다섯 명이 나온 반을 제가 몇 개 샘플링해서 조사해봤는데, 다섯 명이 나오려면 스무 명 이사의 친구들이 걔를 도와주고 지지를 해줘야 나올 수 있었거든요. 이를테면 얘가 나왔는데 친구들이 이른다거나 ‘너 왜 나가냐?’ 하면 못 나오거든요. 그런데 절반 이상은 ‘네가 공부를 잘하니까 나가라’거나 혹은 ‘너는 결심했으면 나가라. 나는 못 나가는데 도덕적인 지지는 하겠다’ 이런 정도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진짜 여기까지 나온 건 소수지만 그 안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대하를 한거죠. 잘 포착되지 않아서 그렇지만.
김현진 저는 2008년에 개인적으로 얻은 게 뭐냐 하면, 물대포 물에 대체 뭘 탔는지 시위를 하다가 상처를 입었는데 거기에 물대포를 맞으니까 한 달 동안 안 아물고 진물이 엄청 생겨서 나중에 흉터가 이만하게 남았는데, 그게 저만이 아니에요. 그래서 만날 때마다 “새끼들, 물에 도대체 뭘 탄 거냐?”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아니면 강남 성모병원 로비 농성 참여했다가 질질 끌려나가다가 생긴 흉터나, 2008년의 MB정부가 저한테 첫해에 남긴 건 흉터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 이십대가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은 무기력감과 패배감인 것 같아요. 박탈감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뭔가 가져봤다가 빼앗겼어야 박탈감이 있는 거니까. 그냥 무기력함, 패배감 같은 거죠. 우리가 졌구나, 그래서 우리 세대는 앞으로도 계속 이거랑 싸워야 하지 않을까? 그게 제일 큰 숙제인 것 같고요. 아까 초반에 청춘은 다 똑같지 않냐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그게 되게 공감이 가는데 청춘의 껍데기라고, 그걸 만약에 벗고 누가 걸어가면 뒤에 따라가는 십대 아이들도 그걸 쓰고 걸어갈 거란 말잊. 그리고 이 뒤의 십대 아이들은 계급이나 이런 게 훨씬 더 내면화되어 있어서…… 제가 가끔 지방에 가서 강의를 하다보면 공고 같은 곳에는 한 달에 백만원 이상 벌 거라는 희망을 가진 아이가 아무도 없어요. 그게 수도권과는 다른 건데요. 그리고 여상 같은 경우는 서울에서도 “얘들아, 너희들 크면 뭐 할 거니?” 하면 “경리 해야 하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가능성이 더 닫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껍데기는 아이들이 계속 쓰고 걸어갈 것이기 때문에 386 부모들이 ‘촛불소녀가 희망이다’ 그러면 속으로 ‘좋아하네’ 그러는 거죠. 그럼 애들한테 제대로 큰 건이나 제대로 시켜주든지…… 그런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아이들이 또 뒤에서 청소년의 껍데기를 쓰고 걸어갈 생각을 하면 마음도 아프고. 근데 유일한 희망은,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시피 너무 밀어붙이면 죽어버리는 것보다는 다른 것을 할 테니까 그때쯤 연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청춘의 껍데기는 변함이 없지 않을까 싶어서 서글프죠. 그리고 이 서글픔과 싸우는 게 제일 큰 숙제인 것 같아요. 옛날처럼 주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백가흠 저도 다소 피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제가 요즘에 읽어내고 있는 소설들의 주제나 소재를 생각해보면, 확실하게 문학에 있어서 주제자체는 많이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들을 풀어내는 방식들이 계속 변하고 있는 거라고 봐요. 요즘에 나타나는 이십대 작가, 혹은 거기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제가 판단하기에는 젊지 않아요. 이제까지 쭉 얘기했던 것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저는 오히려 더 여유로워 보여서 너무 좋아요. 다급하게 문제를 풀어내려는 방식에 익숙한 기존 세대들이 성급했다고 반성해본다면 좀더 기대를 많이 가져야 되지 않을까요.

9. 대담을 마치며

김홍중 흥미롭고 중요한 문제들을 많이 지적해주시고 진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첫째가 생태학적 관점의 중요성입니다. 우석훈 선생님이 『88만원 세대』에서 ‘다안성(diverstability)’이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다양성과 안정성의 결합을 의미하는 생태학적 용어인데요. 이와 같은 생태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보면, 한국사회는 하나의 숲입니다. 거기에 이십대라는 식물군도 있고, 십대도 있고, 기업도, 국가도, 시민사회도 있는 거죠. 이십대의 현 상태는, 숲의 구성요소들의 전체적 신진대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십대의 전반적인 무기력을 소위 ‘청춘의 종언’이라는 수사로 풀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유행이 되어버린 이 ‘종언론’을 다시 거론하는 것이 약간 부담이긴 하지만, 종언이라는 것이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질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제 적극적인 의미에서 청춘의 종언을 선포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거죠. 문학의 종언이 이제 문학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것을 명확하게 하는 언명이라면, 청춘의 종언도 낭만주의 이후에 청년들, 그러니까 이십대의 어깨에 부과되었던 시대의 무게를 좀 덜어주자는 맥락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의 형이상학적인 과제를 이십대에게 주면서, 그 과제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주지 않을 때 이십대는 병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지난 십 년 한국의 이십대의 모습이었구요. 청춘의 종언이란 이런 의미에서 이제 이십대에게 부과되었던 사회적 과제를 모든 세대가 나누어 갖자는 것입니다.
김현진 저 무지 부담돼요. 낭만도 있어야 하고, 패기도 있어야 하고, 경제여건도 되어야 하고. 거기에다 출산율이 떨어진 것도 이십대 여자의 책임이라고 하지…… (웃음)
우석훈 저는 재미 같은 걸 추구하는데요. 얼마 전에 방송국 피디 좀 높은 사람한테 질문을 받은 게 뭐냐면 경제프로에 관한 얘기인데 어떻게 하면 육십대, 칠십대 할머니들이 화면을 보겠냐는 거예요. 한편으로 저는 경제나 사회 얘기를 하는데 이십대나 십대에게 얘기를 할 때도 장치가 많이 필요하고 어렵거든요. 그런데 육십대 할머니들에게 얘기를 해서 이 상황을 직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거냐? 그런데 버라이어티쇼 같은 건 너무 재밌잖아요. 근데 그거랑 경제프로도 경쟁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무슨 짓을 하든지 간데, 강호동을 데려오든지 어떻게 해서든 보게 해야 하는 건데, 저는 문학이나 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명이 아직 끝난 건 아니고, 그런데 그 사명이 어깨 위에 가득히 각성되고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문학한테 주어진 일이 아직도 있고…… 아까 말씀하신 변기가 있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거냐 하면, 또 버라이어티쇼랑도 싸우고 영화랑도 싸우고 음악이랑도 싸우고 그래서 잠깐이라도 이런 세상이 있고 이런 걸 꿈꿀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이십대 작가들만이 할 일은 아니고 문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고민해야 하겠죠.
백가흠 그렇게 버라이어티적으로 문학을…… 그건 좀 힘든 것 같아요. 실은 끔찍하죠. 우리가 버라이어티랑 경쟁을 하고 후배들이 재밌는 영화나 음악하고 경쟁하야 한다면…… (일동 웃음)
김현진 그러면 동방신기랑 경쟁해야 하네?
백가흠 아니, 정말로 옛날에 황석영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바리데기』가 나왔을 때인데 “내 경쟁상대는 동방신기다”,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젊은 독자들이 많아진 것에 반가워서 하신 말씀이었는데.
자신감도 있겠지만 말씀하셨듯이 어떻게 말하면 방식 자체가 남겨진 몫 같아요. 우리 문학 자체가 너무 진지하고 계속 상처에만 집중해 있다면 이제는 그걸 잘 도려내고 털고 이런 것들도…… 그런데 아까 얘기해듯이 제가 여유로워지고 성숙해졌다는 건 그런 재미를 얘기하는 거죠. 버라이어티쇼만큼 재밌지는 않겠지만 우주를 끌어들이는 방식 같은 건 매우 신선했어요. 저하고 나이 차이는 별로 안 나는데도 불구하고…… 젊은 작가들에게 좀 기대를 가져도 좋다고 봐요. 그리고 어떻게 된 세상인지 끊임없이 문학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젊은이들도 너무 많고요.
우석훈 생산 원가가 낮아서 그래. 영화를 그렇게 달려들어서 할 수는 없잖아요. (웃음)
백가흠 그것도 그런 것 같아요. 딱 그 학번이 영화판으로 우르르 간 세대였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그때 문학을 한 것이 잘한 것 같기도 하고…… (일동 웃음)
김현진 저는 문학지망생이기도 하지만 쓰고 있는 글들이 ‘괜찮아, 안 죽어’ 그런 얘기거든요. ‘래미안에 안 살아도 안 죽고, 자이에 안 살아도 괜찮고, 반지하에 살아도 살아져.’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살려고만 해도 너무 힘들다. 이 공포감을 완화시키는 게 굉장한 숙제인 것 같아요. ‘얘들아, 안 죽어 괜찮아’ 그런 얘기를 계속하고 싶은데 약간 억울한 마음은 ‘왜 이 이야기를 내가 해야 하지? 나도 지금 같이 떨어야 하는데…… 어른들이 해줘야 하는데 왜 안 하고 내가 하고 자빠졌지?’ 이러면서…… 입금을 하든가…… 그런 고민이 많아요. 지금까지의 얘기는 ‘너희들 죽는다’거든요. 여기에서 프레임을 바꿔서 ‘얘들아, 너희들 안 죽어’ 그 얘기가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우석훈 저도 개인적으로 올해 ‘생태’라는 키워드로 계속해서 책을 쓰는 중인데, 사실 지난 이 년간 계속해서 이 개념에 대해서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88만원 세대’ 같은 것도 가난 속에서도 생태적인 삶 같은 걸 계속 고민한 건데 내년부터는 이 키워드를 ‘우정과 환대’로 바꾸려고 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과연 사회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종종 해봅니다. 사실 한국에서 근대를 공간을 만들면서 ‘라이벌리티’, 즉 적대적 상호경쟁이라는 관념 속에서 우리가 한 삼십 년 정도 살아온 것 아닐까 싶네요. 이것을 깨기 위한 개념 중에 ‘연대’ 같은 개념이 있기는 한데, 아직도 사회적으로는 좀 무서운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연대에 대해서 이십대랑 얘기하다보니까, 농담인데 제가 연대를 나왔으니까 고대는 어쩌고…… (일동 웃음) 그래서 곤란한 것도 있지만 무거운 것 같아요. 그래서 ‘우정과 환대’라는 개념에 대해서 자꾸 생각해보게 됩니다. 연대는 사실 서로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방향이 안 맞거든요. 세대 간 연대라고 하면 나이 많은 사람은 줬다고 생각하는데 십대들은 ‘썩은 동아줄 아냐?’ 하고. 매칭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연대를 왜 못 하냐 하면 답이 안 나오니까. 환대라고 하면 미소를 지으면 되는 것 같아요. 쟤가 미소를 받든 안 받든 간에 환대는 조금 더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거니까, 그게 다각적으로 많이 나오는 게 실질적으로 연대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아닌가 싶어요.
김현진 최근에 연대가 뭔가 하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너무 손에 잡히지 않는 거니까 고민을 하다가 최근에 농성장 같은 데 가서 굶고 앉아 있으면 스물두 살에서 스물다섯 살까지 그 투쟁만 하고 있던 조합원 여자애가 컨테이너 뒤로 데리고 가서 “언니, 굶지 말앙. 우리가 왜 굶어야 해요?” 그러면서 거의 울면서 몰래 먹이려고 하고. 그런 거라든가 성모병원에 가서 질질 끌려 나와서 결국은 안 뺏기고 싸우고 있는데 뒤에서 이십대 여자 조합원이 와서 갑자기 울면서 와락 껴안고 그런 게 있는데, 간단하게 그런 게 연대인 것 같아요.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고 나랑 비슷하게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프레임이 ‘너보다 잘난 아이가 몇 명인지 알아? 지금 네가 전국에서 몇 등인지 알아?’ 그런 걸 자꾸 가르치려고 하니까…… 그런 압박만 없어도 같이 손잡고 갈 수 있을 텐데…… “야, 옆집 누구는 의사를 만나는데 네가 정신이 있냐 없냐?” 그런 부담만 거둬줘도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아요.
김홍중 오랜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상으로 대담을 마치겠습니다.









우석훈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과정 졸업. 저서『아픈 아이들의 세대』『음식국부론』『한미 FTA 폭주를 막아라』『도마 위에 오른 밥상』『88만원 세대』『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촌놈들의 제국주의』『직선들의 대한민국』『조직의 재발견』『괴물의 탄생』등이 있다.

백가흠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광어」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조대리의 트렁크』가 있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시나리오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대학원 재학중. 저서로 『네 멋대로 해라』『불량소녀백서』『질투하라 행동하라』『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등이 있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과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EHESS) 언어과학박사. 현재 『사회비평』편집위원. 대구대 사회학과 전임강사로 재직중.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14 14:56)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01:15 

 

일병 김태경 
  와 닿는 내용이 많네요. 20대라는 세대가 정말 스펙트럼이 넓어서 정의내리긴 힘들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제목에 나온 것 처럼 '불안감'인것 같습니다. 정말 저희에게 누군가가 '그렇게 안해도 먹구살수 있어~'라고 넉살 좋게 이야기 해주면 참 위안이 될텐데 말이죠. 2008-12-12
19:39:54
  

 

병장 양 현 
  일단 중요한건 88만원 세대. 역시 이게 대새군요. 맙소사. 이사람 이거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이게 뭔가요. 네? 나이가 없어요 나이가. 이 사람들 나이가 어떻게 되는거죠? 도대체 어떻길래 이런 글을 써재낄 수 있는거죠? 네? 에? 근데 김현진 이사람 좀 멋지네요.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 뭐 이런거랑 불량소녀백서 이딴거. 좋네요. 좋아요. 어휴. 보고싶어지는데요. 에세이스트. 우와. 이런 직업도 있나요. 이렇게 말하는것도 있나요. 맙소사. 전 동기님이 더 나빠요. 왜 이런 글을 이제사 보여주는거에요. 에잇 에잇. 근데 한예종 다니면 좋나요? 몰라요? 모름 누가 알려주겠죠 뭐. 

여하튼 전 오늘부터 우리 동기님을 우러러 보겠습니다. 보다가 목 부러지면 어쩌죠... 2008-12-12
20:18:33
  

 

병장 이동석 
  홍명교님이 연대 반대 고대 다니시다(?) 한예종 영상원 들가셨습니다. 친애하는 소설가 김애란님(?)도 한예종 출신이시고, 제가 숭배하는 에세이스트 김현진님도 한예종 나오셨고, 오오- 

라고 하는건 그냥 개소리고. 뭐 하버드건 예일이건 이제와서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나 한예종 강력하게 가고싶어함) 아, 엠병. 진짜 김홍중씨 말처럼, 형이상학적이리만치 거창한걸 하라고 하면서, 사회경제학적 조건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라는건가 싶고. 그냥 뒤질놈은 뒤지고 안 뒤지고 싶으면 적당히 시스템에 따라댕겨라-하는 시스템에 찌인한 가래춤이라도 밭어 주고 싶은데 

아놔 
우리가 합시다. 책마을 시즌2 뭐하러 만듭니까? 형이상적인 목표고 그런거 모르겠는데, 땀병, 그냥 신나게 열받고 신나게 뛰어노렵니다. 사회경제학적 조건, 이 초큼 걸리적 거리긴 하는데, 뭐 오늘도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전국 몇등인지를 헤아리며, 스펙을 쌓고 있는 친구녀석이 괜히 송구한 태도로 김밥나라 김밥 한줄은 사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님이 스크럼이나 짜봅시다. 폭력? 비폭력? 전의경 죽빵 날리는게 세상 뒤집어 지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물대포는 정말 짱납디다. 물대포정도 깨부수는 폭력은 봐주시지요. 

(아, 이걸로 얼개는 또 다음기회에...) 2008-12-13
03:19:31
 

 

병장 김태형 
  아 여기까지 달려왔군요. 

한예종은 알아주는 학교입니다. 뭐, 저도 학벌이야 개나줘야겠습니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은요, 그 경우에는 당사자(개인)이 의식이 깨어있어서 그만큼의 노력을 한 경우에 하나의 학교라는 시스템을 능가할 수 있는 경우구요 뭐 아무튼 저는 학교를 별로 좋아하진 않으니까 이건 그냥 쓸데 없는 소리구요. 


'무모함이 없는 세대'로서 무모하게 뭔가 해 보고 싶어지는군요 점점 더. 이 글 이전에는 도전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면 이후로는 '무모함'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뭐, 그렇다구요. 숫자 놀음에 놀아나지 않고 어려움이 찔찔거리지 않고 패기있는 무모함 가득한 이십대를 꿈꿔 봅니다. 아- 2008-12-13
09:58:37
  

 

병장 김민규 
  '우리 이십대가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은 무기력감과 패배감인 것 같아요.' 그런가? 사실 치열하기로는 그 어느 세대보다 이른 나이부터 치열했고, 그럼에도 성취감은 없었던, 그래서 무기력하고 패배한듯한 느낌이 드는건지. 그럼 그 대안으로서 제시된건 뭐죠. 공포감의 완화는 심리적 안정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어떤 실제적인 방법론을 주는건 아니니까요. 
그러면 이 꼬여버린 룰을 뒤엎어야 하나. 근데 또 이게 어려운게 뭔가하면 사회에 있는 포지션들을 지탱할 수 있는 총량은 제한되어있는데 윗 사람들을 이른 나이에 잘라내면서 20대를 초과수용하고있는 구조라서 무턱대고 우리 자리 내놓으시요, 라고 할 수도 없는거거든요. 개발시대의 논리로 파이나 더 키워라. 우리는 그에 걸맞는 사람이 될게. 라고 스스로 자백하고 있는게 20대고. 

'래미안에 안 살아도 안 죽고, 자이에 안 살아도 괜찮고, 반지하에 살아도 살아지죠'. 어쩌면 20대 스스로의 허영심이 일정기준 이하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을수도 있죠. '오히려 너무 과도하게 이성적이고 또 과도하게 도덕적인 것들을 스스로 압박하는 강박증 안에 있는 게 아닌가.' 그래요 쌈박질은 어린 애들이나 하는거라고 배웠어요. 누가 때리면 두어 대 맞고 드러누워버리래요. 그렇게 철저하게 통제된 자신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죠. 그러면서도 코엑스몰을 걸으며 카메라 마끼아또를 죽죽 빨며 메가박스로 들어서는 자신에게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거든요. 나와 그 화려함을 동일시하면서. 
저는 의아한게 소비지향적 20대, 경제주체 20대에 대한 물음이 왜이렇게 짧게 잘려버렸을까 싶군요. 더 깊이 파고들어도 괜찮았을법한데. 꼭 20대만의 것은 아니라구요? 음... 고민을 좀 해봐야겠군요. 2008-12-13
17:43:56
  

 

상병 김무준 
  김현진 

저는 2008년에 개인적으로 얻은 게 뭐냐 하면, 물대포 물에 대체 뭘 탔는지 시위를 하다가 상처를 입었는데 거기에 물대포를 맞으니까 한 달 동안 안 아물고 진물이 엄청 생겨서 나중에 흉터가 이만하게 남았는데, 그게 저만이 아니에요. 그래서 만날 때마다 “새끼들, 물에 도대체 뭘 탄 거냐?”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아니면 강남 성모병원 로비 농성 참여했다가 질질 끌려나가다가 생긴 흉터나, 2008년의 MB정부가 저한테 첫해에 남긴 건 흉터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 이십대가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은 무기력감과 패배감인 것 같아요. 박탈감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뭔가 가져봤다가 빼앗겼어야 박탈감이 있는 거니까. 그냥 무기력함, 패배감 같은 거죠. 우리가 졌구나, 그래서 우리 세대는 앞으로도 계속 이거랑 싸워야 하지 않을까? 그게 제일 큰 숙제인 것 같고요. 아까 초반에 청춘은 다 똑같지 않냐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그게 되게 공감이 가는데 청춘의 껍데기라고, 그걸 만약에 벗고 누가 걸어가면 뒤에 따라가는 십대 아이들도 그걸 쓰고 걸어갈 거란 말잊. 그리고 이 뒤의 십대 아이들은 계급이나 이런 게 훨씬 더 내면화되어 있어서…… 제가 가끔 지방에 가서 강의를 하다보면 공고 같은 곳에는 한 달에 백만원 이상 벌 거라는 희망을 가진 아이가 아무도 없어요. 그게 수도권과는 다른 건데요. 그리고 여상 같은 경우는 서울에서도 “얘들아, 너희들 크면 뭐 할 거니?” 하면 “경리 해야 하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가능성이 더 닫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껍데기는 아이들이 계속 쓰고 걸어갈 것이기 때문에 386 부모들이 ‘촛불소녀가 희망이다’ 그러면 속으로 ‘좋아하네’ 그러는 거죠. 그럼 애들한테 제대로 큰 건이나 제대로 시켜주든지…… 그런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아이들이 또 뒤에서 청소년의 껍데기를 쓰고 걸어갈 생각을 하면 마음도 아프고. 근데 유일한 희망은,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시피 너무 밀어붙이면 죽어버리는 것보다는 다른 것을 할 테니까 그때쯤 연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청춘의 껍데기는 변함이 없지 않을까 싶어서 서글프죠. 그리고 이 서글픔과 싸우는 게 제일 큰 숙제인 것 같아요. 옛날처럼 주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걸어가야 되는데. 하아. 속이 탑니다. 2008-12-13
21:30:07
  

 

상병 김무준 
  좋은 글 올려주신 동기씨에게 감사를. 2008-12-13
21:31:08
  

 

병장 이동석 
  전 원래 김현진씨 좋아했는데, 더 좋아질것 같군요. 김현진씨한테 연락이나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메일 보내면 간간히 답도 해준다던데. 

아니, 이 글을 읽고, 이딴 감상을... 

제 실체없는 무기력감과 패배감은 아직도 잡히지 않습니다만, 고동기님의 수고가 우리에게 좋은 실마리가 될것이라는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년동안이나 유예해왔던, 선택과 투쟁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다시한번 다잡아봐야겠습니다. 2008-12-13
21:42:50
 

 

병장 문두환 
  이걸 손수 손으로 쳐 준 그 노고에 일단 감사를 드려야겠네요. 열심히 프린트 중입니다. 안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저와 동행할 벗 하나를 얻은 느낌이군요. 

살짝 오버해서, 정말 나중에 술이라도 한 잔 하게 된다면 
해야 할 이야기들이 조금 더 많아진 느낌이고 또 더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제가 정리해가야 할 부분에 대한 힌트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깊어가는 밤 입니다. 소주 한 잔 그리운. 2008-12-14
00:17:58
  

 

병장 김민규 
  부탁입니다. 세개다 가지로 보내버립시다. 네? 

가지로 
가지로 
가지로 
가지로 
가지로 
가지로 
가지로 
가지로 
가지로 

자, 9표, 안되나요? 음, 안된다면 당신의 한표를 보태줘요. 2008-12-14
02:02:50
  

 

병장 이동석 
  파하하, 가지로- 2008-12-14
02:50:56
 

 

병장 손정우 
  1과 2는 좋았지만 3은 걸리네요. 
명박산성 앞에서의 행동은 제가 볼때 '모욕감 박탈' 이라기 보단 일종의 '승화' 로 보이는 데 말이지요. 마냥 헤헤거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소통의 정부, 이것이 mb식 소통인가' 등의 통렬한 풍자도 있었고. 

무엇보다 비폭력이란 구호가 한낱 '겁나니 때리지 마세요' 이런 것으로 비하되고 나중엔 술집에서 건배하며 하는 구호가 될 거라는 부분은 그 구호를 외친 사람들에게 모욕적으로까지 들리는군요. 
이게 현재의 메인스트림들이 
'도덕적으로 살자' 는 말을 
'한낱 패자들이 승자에 빌붙어 살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일 뿐이다' 라고 비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결정적으로 
저쪽에서는 폭력으로 나오는데 우리는 비폭력해서 어쩌라고? 
라는 대목에서 'ultra'를 느끼며 현재 이 사회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기에 눈에띄진 않지만, 
이분들 역시 메인스트림으로서는 안되겟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8-12-14
05:37:17
  

 

상병 김무준 
  세개 다 묶어서 가지로. 이건 길이 길이 남겨야 됩니다. 2008-12-14
07:51:48
  

 

병장 김민규 
  저도 3편은 심각하게 마음에 걸립니다. 

"여기에 안 나오자니 죄책감은 크고, 앞에 나서자니 물대포는 아프고 차갑고 맞기는 싫고, 그럴 때 나오는 안이한 구호거든요" 
"아이들이 그 앞에서 <바위처럼> 부르고 춤이나 추고 앉아 있고 맥주 사가지고 와서 호호거리고 있고. 그 앞에서 모래주머니 좀 쌓는다고 그렇게 발광을 하고 스티로품을 쌓는다고 그렇게 싫어하는 걸 보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이제는 아이들이 통제가 너무 잘된 나머지 모욕감까지 박탈당했구나 하는 느낌" 

자기들의 향수에 빠져서 그저 자기시대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이 팍팍 느껴지는데다가, 일,이편에 비해서 분석 자체도 겉도는 느낌이예요. 꼰대스럽다고 할까요? 니들이 뭘 알아서 하겠어, 니들이 그 정도 수준이지, 그냥 상식적 차원의 참여야. 2008-12-14
08:42:54
  

 

병장 윤영돈 
  하아- 머리속이 너무 복잡한 상념들로 가득차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이건 진짜 길이 남겨야돼요. 2008-12-14
10:05:45
  

 

병장 이동석 
  글쎄, 논지가 약간은 곡해된면이 없잖아 보이는데요. 김현진씨의 표현이 그렇다는거지, 비폭력-에 대한 우석훈씨의 분석은 그냥 상식적이랄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폭력 없이 뒤집힌 게 어디 있냐고 하는데, 이십대들과 얘기를 해보면 그건 자기 안의 내면화된 원칙 같은 거예요. 저는 그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왜 생겼는지는 모르겠는데 한편에서는 그걸 비폭력의 이상한 이데올로기라고 보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자기 원칙 같은 거라고……] 

그리고 문제의 김현진씨의 표현에 관한겁니다. 제 성정이나 표현방식도 별 다를게 없어서인지 전 별 거부감이 없군요. 김현진씨의 언어에 적응되서 그럴수도 있을겁니다. 예민하고 감성적이면서도 거침없고 직설적-이라는 상투적인 수사로 그의 언어를 규정할수는 없겠지만. 
물론 김현진씨마저도 쉽게 '그런애들'이라고 범주화하는것같아 아쉽기는 합니다. (사실 전 모든 범주화에 반대하기에) 

사실 이 이야기에서 다루고 있는 현장에서의 비폭력은 뭐랄까, 린치를 당하고 있는 현장에서 난 비폭력주의자야-라고 말하는 것 만큼이나 공허함을 표현하려던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뭔가 곤란할듯하여 자체검열) 
모욕감마저 박탈당했다-라는 표현은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엄연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사표현을 합법적으로 하겠다는 지정된 장소에서 '합법 집회'를 할때부터 컨테이너를 용접-해 산성을 지어놓은 걸 보고도 별 감흥이 없다는건 정말이지 머릿속에 박혀있는 시스템칩-의 작용이 아닐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왜 저게 화가 안나는걸까?를 고민하면서 저걸 모욕으로 느끼지 못하는게 과연 자연스러운걸까-하며 그러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짤방-을 보며 그만 피식했죠. XX산성-이라니 껄껄. 

전 생각보다 온건한 비폭력주의자입니다만,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조차 비폭력-을 외치는것이 과연 간디의 그 비폭력인지, 나도 너 안때릴꺼니까 너도 나 때리지마-인지는 조금 생각해봐야할것 같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언론의 선정적 묘사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화적인 문화운동에서 불법폭력시위로 변질된게 아니라는건 확실합니다. (검열) 2008-12-14
11:39:44
 

 

병장 김민규 
  뭐 멕시코를 향해 가는 몰락가문 양반의 끝까지 꼿꼿한 모가지와 같은 느낌으로 비폭력을 지적했다면 모르겠는데 말이죠, '여기에 안 나오자니 죄책감은 크고, 앞에 나서자니 물대포는 아프고 차갑고 맞기는 싫고, 그럴 때 나오는 안이한 구호'라는 식은 좀. 

이게 이미 구도 자체가 완전히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말이죠. 끽해야 열대여섯부터 시작해서 이십대 중반까지의 애들을 타겟으로 생각하고 말한 것 같은데, 걔들이 '꽃꽂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방패로 밀면 그냥 밀려 나와야 되거든요. 
아프리카로 생중계 보니까 몇 있기는 하더이다. 파이프맨. 근데 그 자리에 모인 애들 성향상 비율은 극소수일 수 밖에 없고 실제로 그렇게 들고 흔들 수 있는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아요. 근데 이 폭력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마치 궂은 일은 하기 싫은 젊은세대의 나약함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저는 차라리 어떤 도덕적 차원에서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보는데. 늑대와 양 구도, 랄까요. 간디비폭력만큼 깊이있지는 않지만 약삭바르더라도 실리적인 그런. 

그 앞에다 용접한 컨테이너를 갖다 놨네요. 들고 흔들어서 넘어뜨릴까요? 제 기억에 20대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삼청동 진입하려다 두드려 맞았던 것 같군요.(학교 게시판에 올라왔던 당시 글을 떠올리고 있어요) 골목길에서 길막 당해서. 그래서 이건 무모하다, 막히면 앞뒤로 갇혀서 다 죽는다,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근데 10대들은 그래야 할 책무에서 제외를 해 줘야 할 것 같거든요.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게 10대와 20대가 섞여있는 상황에서 위에서 지적하는것도 '니들은 토익공부하냐' 라는 비아냥을 들었다는 소리고, 20대가 어떤 현장에서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보기 힘들고, 게다가 깃발을 중심으로 모인 군중이 아니었다는 특수상황도 작용을 했을거고요. 그래서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어떤 주목받을만한 행동력을 보여주기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겠다는 점이죠. 이거야 그 자리에 있었던게 아니라서 함부로 떠들 말은 아니지만. 

그 앞에 앉아서 맥주 까먹고 있는 정서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는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또 그의 지적이 전혀 납득되지 않는것만은 아니예요. 좌측통행, 길 건널때는 손 들고, 쓰레기는 줍고, 시민의식, 이 세뇌의 가장 큰 대상자가 지금 20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전엔 거의 그런 개념도 없었다고 봐야겠고. 이제 좀 먹고 살만해 지면서 올림픽으로부터 시작해 90년대 들어 최고점을 찍었던 구호들 아닌가요. 시스템칩-이라. 2008-12-14
13:06:08
  

 

병장 이동석 
  좀 더 진득하게 이야기 해보고자, 일단 가지로 옮겼습니다. 

일단 이 대담은 전적으로 20대에 관한이야기이고, 10대에 관한이야기는 약간의 곁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단 대상은 그 장소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이를테면 아프리카로 생중계를 본 사람까지-20대로 한정하는게 옳을것 같아요. 그 대목에서 이야기하는 시점으로 보자면, 집회의 성격이 철야로 바뀌고 가두행진으로 바뀌던때, 물대포가 등장하고 폭력시위의 혐의가 짙어지고 곧 10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때로 봐야할듯 합니다. 

물론 그 집회의 참여자들의 계층, 연령대를 확연히 구분해서 확실히 20대는 그랬다-는건 어폐가 있지만, 분명 그 장소에서는 뭔가 그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꼭 20대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김현진씨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고, 체험에 기반해서 자기 주위의 이야기-를 하는것일뿐이라고 생각해요. 전 무서워서 감히 참여는 못했지만, 물대포가 나왔을때 그곳에 있었습니다. 어정쩡하게 한발짝쯤 떨어진 인도에 서서- 사실 처한 신분의 탓도 있었겠지만, 정말로 그 대포가 방패가 무서웠습니다. 집회는 가열되고 군중들중 일부는 열에 뻗쳐 닭장차 위로 올라가거나 닭장차 위의 전경을 밀어내기도 했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소리쳤습니다. 비폭력- 비폭력- 

폭력을 방조하자는 것도 조장하자는 것도, 폭력혁명이라도 일으켜야 했었다는건 아닙니다. 김현진씨도 그런 의도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것도 아시잖아요. 

그런데 전 정말이지, 뭔가의 울분-이거나 이성적인 참여-거나 대의-거나 뭐 여러 이유로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이 (이십대만 비폭력-을 외친건 아니겠지만, 그리고 여자들만 그 소릴 외친건 아닐테지만,) 젊은 여성의 목소리로 외치는 비폭력의 목소리가 마치 횡단보도 앞에 시각장애우를 위해 달린 버튼 마냥, 빨간불일때 나오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라는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이를테면 시스템메시지-랄까요. 

이야기가 많이 새는데, 전 저런 불평-이라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이 이해가 갑니다. 변호하겠다는건 아니에요. 김현진씨도 2000년대 초반학번, 기껏해야 우리가 학교 다닐때 있었던 정도인데, 체험이나 향수같은게 얼마나 차이가 있어 별로 차이도 안나는 20대를 자기시대의 기준까지나 대며 재단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같은 20대인 김현진씨가 가장 강하게 불만을 표출한건, 오히려 윗세대가 그런 표현을 할경우 벗기어려운 자기세대의 향수에 대한 혐의에서 자유롭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2008-12-14
15:55:17
 

 

병장 이동석 
  그냥, 새로운 논지 추가-는 아니고, 그냥 검열했던 이야기 풀어놔봤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을것 같아서. 2008-12-14
16:02:50
 

 

병장 문두환 
  어디까지나 저의 경험에 근거해서 이야기 해보면 

20대는 확실히 과도기적 성향이 두드러진 세대입니다. 97년 이후로 꽃꽂이병을 던져 본 적도 없고 그걸 제조해보지도 않았으니까요. 96년 연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폭력과 불법에 대해 대학생들의 시위문화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공격당한 경험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반성인지 아니면 반성을 강요 당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수경제의 급격한 침체의 덕인지 2000년대 학번 이후로 대학생의 탈정치적 성향 혹은 보수적 성향에 대해 공공연히 이야기 되어 왔으니까요. 하다못해 등록금 동결에 대한 구호마저도 스포츠적 성향이 묻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을 보면 movement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종의 내면화라고 봅니다. 90년대와 00년 이후의 대학사회는 스포츠의 '방법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의 차이를 두고 있으니까요. 수업환경의 문제라든지 교육권과 같이 자신들과 직접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나는 취업만 하면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나 하더라도 '폭력은 안돼'라는 단호한 의견은, 아무리 이것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라도 한번 쯤은 언급했었으니까요. 물론 20대를 대학생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지만 대학과 연관이 없는 이들을 고려하더라도 이미 사회 안에서도 '폭력집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몰이는 이어지고 있었어요. 폭력집회에 관해서는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의 근본적 한계 때문에 할 말이 많습니다만, 요건 요주가 아니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사회적으로 무엇인가를 쟁취하고 요구하는 것이 묘하게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언론플레이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본 글에서 나오는 어떤 '도덕적 의식'은 일종의 '주입'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아프니까 때리지 말라'는 표현은 제가 잘 못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자기혐의를 벗어난다는 의미보다 조롱처럼 들립니다. 그 현장에 가 있는 누구라도 정말 심심해서 찾아가는 사람은 없어요. 이미 일치된 문화나 공유하는 공통적 코드가 상당히 분산된 듯 보이는 20대가 누군가는 바위처럼을 부르고 누군가는 맥주를 사들고 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이니까요. 저는 오히려 궁금한 것이 왜 그 앞에서 <바위처럼>을 부르며 춤을 추면 그것이 이상한 것인지를 묻고 싶네요. 그 모습은 어디까지나 그나마라도 시위문화를 공유해본 20대들의 모습 아니던가요. 

어찌되었든 이 글은 상당히 스스로에 대해서나, 우리 세대에 대해 많은 고민점을 던져주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천천히 정독하는데도 시간이 좀 걸리는군요. 2008-12-14
16:28:33
  

 

병장 김민규 
  뭐 어쨌든간, 쓰립니다. 보고 있으면 속상하기도 하고, 그 격동의 시기를 그대로 바이-패스해버린 스스로가 아쉽기도 하고, 무엇이 정말로 지향해야 할 바인지도 아직도 잘 모르겠고 말이죠. 사실 수입문제야 상징적인 것 아니었을지요. 이게 중우衆愚냐 천심이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이 안 나요. 뚜껑 열어봐야 알 수 있을까. 

movement에 대한 거부감, 상당하다고 여겨집니다. 뭐 포스트 68세대의 자기반성도 아니고 거의 강박적으로, 그런 데는 좀 이상한 데, 라는 인식이 전반에 만연해 있다고 해야 할지요. 기륭의 用役을 고발한 학교 게시판의 글은 '시험기간인데 수고하시네요' 리플 하나를 받고 사라졌을 뿐이었어요. 반면 대륙의 나이키같은 짤방 하나 달린 글은 초성체 웃음을 끝도없이 받아냈죠. 

이게 사회적 물음의 부재냐, 라고 한다면, 글쎄요, 라고 대답을 또 해야할 것 같은데, 인연맺기학교같은 NGO적인 활동하는 애들은 또 주변에 많거든요. 이념적인 movement보다 행동적이고 실제적인 봉사의 영역이 더 커졌다고 봐야할지요. 음. 2008-12-14
18:22:05
  

 

병장 손정우 
  지금 시간이 없이 깊게 참여하질 못하는 점이 아쉽군요. 
하지만 제가 느끼고 내뱉고 싶었던 말은 김민규님이 다 해주셧다고 보네요. 
3편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생각을 정리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08-12-14
18:40:21
  

 

병장 이동석 
  이제는 우리 스스로 20대에 대해 이야기 해볼때가 아닌가 싶군요. 상대적으로 선정적인(?) 폭력- 비폭력의 논의는 전체적으로 볼때, 한 두개의 표현의 문제-라고 보는데, 그게 문제가 된다면 어쩔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현실인식이나 성찰-의 많은 단초를 던져주는 이 대담은 정말이지 뜯어먹을게 많군요. 동기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저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2008-12-14
20:02:41
 

 

병장 고동기 
  금요일 저녁에 올리고, 밥 먹고 왔더니 인트라넷이 끊겨있더라고요. 
우리 부대찌개집만 해도 문학동네를 보는 건 저뿐이니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할거라 생각합니다. 혼자 읽기에 너무 안타까워서, 아까워서 올렸습니다. 
MB산성 나오는 부분은 저도 쉽게 동의할 수 없더라고요. 
대담 마지막 부분이 성급하게 끝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불안한 이십대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는 충분했으리라 봅니다. 
앞으로 더 이야기 해 봅시다. 2008-12-15
17:4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