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쪽팔림2  
병장 주해성   2008-07-28 09:53:11, 조회: 291, 추천:0 

번창하고 있는 책마을과 달리 저는 요즘 너무 혼란스럽군요.
바라던 책마을의 번창을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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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조금 더 냉철하고 비판적이며 모든 것을 거국적이고 중대하게 사고하고 동시에 조금 더 열정을 품고 있었던 그 시절에 나는,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자발적이든 폭력에 의한 것이든 그곳에서 토론에 임했다.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그 상황에 의해서라고, 나 스스로 진지한 고민과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아니라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 흐릿해진 기억을 방패삼아 뒷구멍을 파놓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더욱이 나에게 말했었으니. 학원 강사를 한다는 22살 그녀에게 “나는 과외나 학원 강사로 업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것은 나의 흥미여부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기형적이고 그릇된 교육환경에서 나온, 조금 더 건강하고 발전적인 사회를 위핸 결단코 없어져야 할 사교육시장에 내가 동참하긴 싫다. 너무 과하게 측정되어 있는 사교육비, 그 핵심인 비(費) 때문에 눈이 멀어 내가 그런 일을 할 것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사촌동생을 상대로 과외를 했었다. 그것은 업이란 단어를 핑계로, 또 그 녀석에게 내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핑계로 사촌동생집은 사교육비에 어떠한 경제적 타격을 입지 않을 거라는 핑계로 1년 넘게 가르쳤다. 그리고 군대에 왔다.

나에게 항상 미안하다는 의대생 친구와 통화를 했고 그렇게 미안하면 과외자리나 알아봐 달라고 했고 쉽지가 않다며 전역하면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하는 말을 끝으로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수화기를 내림과 동시에 나는 그때 그 생각이 다시 생각났다.

너무나 쪽팔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분명 하지 않겠다고 단언했었고 지금 다시 그것을 구걸하고 있었다. 굴러온것도 아니었고 누가 먼저 해보겠냐고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아니 나의 학벌로는 과외를 한다는 것이 더욱 이상했었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을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감먹겠다는 심보. 아니, 그보다 더 한  치졸하고 옹졸한, 오만한 심리적 계산을 한 것이 분명했다. 나의 도덕적 이상은 이따위 밖에 안 되는 것인가! 현실이라는 미명으로 모든 것을 용납시킬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옳은 것인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변질되어버렸는가 난 자신을 향한 말도 똑똑히 듣고 있지 못하는 건가? 이게 무슨 헛지럴인가.
다시 생각해보자. 그때 말했던 것은 분명 나였다. 지금 나에게 다시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나는 거절 할 수 있을까? 이런 병신!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나는 아마 그 짓을 하게 될 것 같다. 안하겠다고, 이제라도 절대 그러한 것을 하지 않겠다고 그때처럼, 단호히 나는 말 할 수 없다. 아아...... 이것이 진정, 지금의 나가 아닌가. 쪽팔리다. 이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이것이 이성적인문제인지 감성적인 문제인지 조차 판단하지 못하겠다. 모르겠고, 어지럽고 두렵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이겼다고 환호도 졌다고 패인을 시인 할 수 도 없었다. 그냥 졌으니 여기서 끝내줘라고 누구에게 부탁한단 말인가! 정치적인 중도의 불지옥이 자위를 표방한 나 자신의 중도(이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의 깨달음에 고통과 비슷할까. 이것은... 해결책이 없다. 머리가 아프다. 우직우직. 쪽팔리고 괴롭고 아프고 혼란스럽고 슬프고 쓰레기 같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괴로워하며 기록 할 뿐...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0:02:03 

 

병장 김준호 
  과거의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에 반하는 지금의 모습에 실망하고 좌절할 때가 많겠지만, 어쩌면 지금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진심에 더 반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답니다. 뚜렷이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으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다음을 대처해야할지 생각하려 노력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겠죠.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땐, 잠깐동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언젠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정신이 번쩍 들 때가... 흐흐 2008-07-28
10:34:43
  

 

상병 최광준 
  변하지 않는건 없죠 2008-07-28
11:07:40
  

 

병장 이태형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안다는 것만큼 축복받은 일도 없을거라 생각해요. 
그때 그렇게 말했던 것이 정말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요인들에 휘둘려 착각 속에서 말했던 것인지는 해성님만이 알테지만, 중요한 건 지금이고, 광준님 말대로 변하지 않는건 없으니 너무 촛점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해요. 
히히. 뭔 소리를 한거래. 이거야 말로 가당키나 한 말인가! 2008-07-28
11:40:33
  

 

병장 윤형주 
  올해초 타계하신 박경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나요, 

"문학에서만큼은 나에게 타협이란 없다." 2008-07-28
12:50:45
  

 

병장 윤형주 
  덧붙이자면, 

지식인의 얄팍한 속성도 잘 알고계셨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도 탁월하셨던 그 분도 
세상과 타협했던 부분은 있었나봅니다 2008-07-28
12:53:48
  

 

병장 윤형주 
  그러고보면, 

'합리화'라는 놈은 참 무서운 놈입니다 
합리화에 의한 합리화를 위한 합리화는 결국 또다른 합리화니까요 2008-07-28
12:55:56
  

 

병장 임정훈 
  아직까지는 저도 그러한 기형적 사교육에 끼어들기 싫어서 아직까지는 과외는 해본적이 없군요. 많이 들어오긴 많이 왔는데 거절은 다 했는데. 
후회는 안 하지만 아쉽긴 하군요 2008-07-30
15:14:10
  

 

병장 이동석 
  음, 임용에 떨어진 대다수의 친구, 선배들은 이렇게 말하죠. 
한국 사교육 없으면 우린 어떻게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