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짧은 나들이  
병장 김무준   2009-02-12 20:27:35, 조회: 173, 추천:0 

문득 내가 열네 시간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강렬한 흡연욕구는 느껴지지 않는다. 우선은 크게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으니까. 썰렁하게 조용한 날이 있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음악이라도 틀까 생각하다 그만둔다. 음악은 지난 삼일동안 지겹도록 듣다 왔다. 엠피쓰리에 음악을 꾹꾹 눌러 담아 제임스 블런트와 니켈백의 앨범을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아가씨의 집에 도착했다. 연락을 하지 않고 갔기에 집이 몇 호 이던가 고민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열리고 탱크 탑 차림으로 마주친 아가씨. 부스스한 머리. 부은 얼굴. 벙 찐 표정.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다 딱 눈이 마주쳤다. 으히히히… 으아아아 하고 괴성을 지르며 문을 닫아버리려는 아가씨를 붙잡았다. 나 바쁜 사람이거든요?

막무가내로 집에 들어가 옷을 벗었다. 아, 내가 짐승이어서 모닝 섹-스를 하고파 옷을 벗은 건 아니다. 진짜 바빴으니까. 적어도 열한 시 반까지는 대전에 도착해야 했다. 아가씨는 이불을 눈 밑까지 덮고서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군복을 훌훌 벗어버리고 따뜻하게 입을까 어쩔까 고민하다 대충 차려입고 가방을 쌌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저는 이제 대전으로 내려가야 하나이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뽀뽀를 몇 차례 해주고 집을 나섰다.

나가자마자 동석씨에게 연락을 했더니 이런 제인장. 제주도에 날아가 있단다. 두통이 치밀어오는 대가리를 붙잡고 한숨을 서너 차례 내쉰 후 대전행 케이티엑스에 올랐다. 엄마의 고모의 환갑잔치니, 내게는 외고모 할머니쯤 되시겠다. 어릴 적부터 우리새끼 하시며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셨고 입사 후에도 면회를 오시곤 했으니 찾아뵙는 것이 예의! 여기까지는 좋았다 이거야.

주는 대로 술을 퍼마셨고 다시 부산으로 가는 고속철에 탄 후에 입질이 왔다. 속은 메스껍고 열차는 후덥지근하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데 에라 모르겠다 잠이라도 자자며 책상에 퍼질러졌다. 이십분 쯤 잤을까. 신호가 왔다. 오 마이 갓. 머리를 감싸 쥐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사복을 입고 있어서 머리 속에는 온통 ‘쪽 팔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힘들게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흔드는 순간. 웁스. 문이 잠겨있다. 문 너머에서 아련히 들리는 노크소리를 들으며 위 속의 내용물이 올라왔고 필사적으로 입에 머금은 채 정신을 잃었다.

그러니까. 기절을 했다는 거지. 객실이 아니니 망정이지 자리에서 퍼졌으면 개 쪽을 팔 뻔했다. 무튼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니지. 쓰러진 모양이다. 누군가 내 겨드랑이로 팔을 집어넣어 쓰러진 나를 일으켰다. 정신이 들었다. 학생 술 마셨어? 오오. 다행이다. 학생으로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입 안에 토사물을 머금고 있는 상황이라 차마 답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승무원이 달려왔고, 나는 간이의자에 앉아 승무원이 주는 물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았다. 물. 물이 필요해. 토하고 싶다는 제스처를 날리며 승무원이 비닐봉투를 가지러 간 사이 심각하게 고민했다. 뱉어? 말어? 뱉어? 약 삼초간의 고민이 끝나고. 삼켰다. 으엑. 잠깐의 해프닝이 끝났다. 세상이 그렇게 삭막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저씨는 쓰러진 나를 도왔고, 나는 몸을 추스르고 무사히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산에 도착해 전에 사귀었던 아가씨를 만났다. 이 년 만이던가. 아가씨를 고등학생 때 만났으니, 오랜만에 보는 아가씨가 예쁘게 보였다. 놀라운 화장의 기술이라. 서면 백화점에서 아가씨가 만나기로 한 후배들을 기다렸다. 약속시간까지는 삼십분 정도가 남았고, 지갑은 두툼했고, 할 일이 마땅찮아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오호. 나이스 타이밍.

프라다며 루이비통 매장을 뒤로하고 남성복 코너로 돌진했다. 무려 오십 퍼센트나 세일 중인 수트들을 보면서 이걸 지를까 말까 수십 번도 더 고민했다. 지오지아나 솔리드 옴므는 왜 눈에 띄는 건지. 한 차례 돌아본 후 전자기기 매장에 갔다. 이런 x. 아이리버 이-백을 한 번 보고 가야겠다 싶어 진열대 앞에 선 순간. 내 지갑은 이미 입을 열고 있었다. 안 돼요, 돼요, 돼요, 돼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지갑은 열렸고,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손에는 아이리버 이-백 사기가 모델이 들렸다. 일층 화장품 매장에서 크리니크의 스크러핑 로션을 사고서야 지갑은 닫혔다. 내가 이렇게 돈 쓸 형편이 아닌데. 어쩔 수 없는 짐승의 본능이요, 보는 만큼 열게 되는 것이 지갑이니라.

후배들을 만나니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아가씨가 후배들이 날 불편하게 볼 것이라 이야기하더니 그럴 만한 후배들이었다. 고등학교시절 열심히 괴롭혔던 후배들이었다. 이년 삼년 전 이야기지만 껄끄러울 밖에. 만나서 술을 마시는 데 술이 통 들어가질 않았다. 식은땀이 다시 줄줄 흐르기에 녀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술로 대신하고 자리를 떴다. 물론 마무리는 했지. 옛날에는 미안했다. 남자답게 한 잔 술로 풀었으면 좋겠다. 밤새 달리지 않을 거냐고 붙잡는 멋진 녀석들을 뒤로하고 아가씨의 배웅을 받으며 밀리오레로 향했다.

가는 길에 웬 여인네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네? 학생이세요? 학생이세요? 란다. 오오 드디어 학생처럼 보이기 시작했구나. 고개를 끄덕였더니 술냄새를 맡았는지, 술 드셨구나 하기에 예. 뭐 때문에 그러시나요? 하고 물으니 패션 쪽으로 공부하는 중인데 궁금해서 물어보려 했단다. 술 냄새를 뿌리며 대화를 할 수는 없기에 여인네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당당한 애티튜드. 당당한 자세는 옷을 입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표현하게 해준다. 스타일링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음을 뿌듯하게 느끼면서 밀리오레에 들어갔다.

지름신은 무서운 신이다. 적당히 벌겋게 변한 얼굴로 남성복 매장을 쏘다녔다. 페도라를 구하기 위해 왔다. 돈도 들어왔겠다. 기분도 좋겠다. 색깔이 약간 마음에 들지 않지만 패턴과 형태가 마음에 드는 페도라를 샀다. 덤으로 전통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회색 목걸이도 하나. 적당히 지른 상황이라 지름신의 손길을 뿌리치고 본가로 향했다.

그 전에 사진학과 친구에게 들리는 센스. 편도선 수술로 골골거리는 놈을 뒤로하고 집에 도착했다. 느려터진 컴퓨터를 포맷하고 아주 오랜만에 마비노기를 켰다. 재미난 게임이 어느새 채팅노기, 덕후노기 따위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하는 건 알겠는데, 간혹 나처럼 순수하게 게임이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 그렇게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아줘 엉엉. 골골거리는 친구와 함께 게임 상에서 만나 던전을 돌다보니 아버님이 오셨다. 니켈백과 트래비스, 핑크 플로이드, 마룬 파이브, 제임스 블런트, 후바스탱크 등의 음악을 아이리버 이-백에 넣는 작업을 돌리고서 아버님과 대화를 나눴다.

약 두 시간 정도. 정말 오랜만에 인생과 앞으로의 삶, 가족에 대한 대화를 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날로 커져가는 내 씀씀이. 하고 싶은 것들은 많아지고 아버님은 나이를 먹는다. 집안에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내 힘으로 내 능력껏 현실을 즐기며 꿈을 꾸고 살고 싶다. 그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볼 작정이다.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장복무를 신청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버님은 말했다. 무엇을 선택하든 네가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을 택해라. 아버지는 너를 믿는다.

어른들이 남자는 자라며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눠봐야 한다는 말을 한다. 맞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한 사람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남자였다. 아버지는 내게 가난한 집안 형편을 주었고, 현실적 문제로 어린 시절의 내 꿈을 지지해 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원망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나이를 먹어 아버지와 현실적 문제로 대화를 나눌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늙는다. 몸은 더 야위어가고 머리를 희끗하게 변한다. 반백이라. 적은 나이는 아니다. 앞으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옥으로 만들어진 침대는 무척이나 따뜻했고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아버님의 방문을 열었을 때 아버님은 아침 일찍 일을 나간 후였다. 어제 어머니와 아침 겸 점심 약속을 했기에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하암. 다 때려치우고 하루 종일 자볼까 하다가 전화통 너머로 어머니의 잔소리가 들려올까 후다닥 샤워를 마쳤다. 어제 산 페도라를 어떻게 활용해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름신은 옷이 아닌 잡기에 강림하셨다. 타탄 체크 패턴의 셔츠를 입고 다시 체크무늬 스카프를 맸다. 검은색 카디건을 입고 그 위에 밝은 회색으로 된 얇은 재킷을 입었다. 부산은 따뜻하다. 위쪽과는 무려 육에서 칠도 가량 차이가 났다. 봄이랄까. 페도라를 쓰고 검은색 로퍼를 신고 나니 그럭저럭 봐줄만 한 청년이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이정도면 괜춘하지.

어머니께서는 늘 그렇듯 친히 집 앞까지 왕림하셨고,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나섰다. 이제 막 중학교 이학년이 되는 철없는 남동생을 데리고 고기 집으로 향했다. 머리 꼴이며 말투며 행동 하나하나가 영 마음에 들지를 않아 불편하게 쳐다보다가 그 옛날 부모님이 저 때의 나를 보며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니 그게 웃겨서 피식 웃고 말았다. 이놈아. 그러게 여동생으로 태어났으면 내가 물고 빨고… 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척이나 잘해주지 않았겠니.

돼지갈비를 시키고 밥을 먹었다. 연장복무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묻는 어머니께 우선은 사년짜리 대학을 가야하지 않겠냐고 답했다. 전문대를 졸업하자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장남의 똑똑한 머리가 퍽이나 아까운 모양이었는지, 차라리 단기하사로 지원해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모아 유학을 가라고 권유했다. 말이 권유지 이건 협박이다. 어차피 학비 보태주지 않을 마당에 부모님의 권유가 우습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어쩌겠나. 그래도 부모님은 생각하고 있는 최선의 방법을 제시한 것이겠거늘 했다.

그렇게 유학을 가면 취업할 때쯤 내 나이가 스물아홉 서른. 외국에서 자국민도 아닌 외국인 유학생을 뭐 좋다고 나이 서른씩이나 처먹어 실무 경험도 없는데 자국의 스물 셋, 넷 젊은이들을 팽개치고 나를 선택할까. 물론 실력만 받쳐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만일 일이 잘못 되 국내로 유턴이라도 하게 된다면 내게는 서른의 찬란한 날들이 아니라 서른의 타오르는 지옥이 펼쳐질 것이 아닐까. 몸서리 쳐지는 상상에 사년짜리 대학을 가고자 마음먹었다.

노력만 하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도 만만한 사립대야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겠지. 하지만 우선 현실을 택하기로 한 이상 제대로 된, 그러니까 간판이라도 멀쩡한 사년 제 대학을 나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내년 이월까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내년 수능을 준비하며 미술학원을 다니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 방법이 연장복무가 되든 전역 후 사회생활이든 내년에 수능을 보겠노라고 인생노선을 수정했다. 아아. 대한민국이여. 꼭 이렇게 나이에 얽매여 인생을 계획해야 합니까요.

결정은 보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아들에게 잠시 보류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했다. 사실 전역까지는 백일도 넘게 남았고 그 동안 경기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를 일이다. 불을 보듯 빤한 경기라지만 그래도 나아지리라 믿는 게 사람 심리니까. 동생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버리고 사진학과 친구와 해운대에 가기로 했다. 카메라는 꼭 들고 오도록. 오늘 형 패션이 좀 상큼하다. 너 군대 가기 전에 우리 사진이나 좀 찍자. 말이 우리지, 사진 찍는 것 다 놈의 몫이지만.

버스를 타면 해운대까지 한 번에 간다. 정말 아름다운 교통이다. 귀에 이어폰을 나눠 꽂고 힌더의 립스 오브 엔젤을 들으며 바다로 향했다. 잠에 취해 도착한 해운대에는 인파가 바글바글 거렸다. 구일 대보름 축제 때문에 모인 듯 했다. 늘 앉던 벤치에 가 앉았다. 우리 사진 찍자. 우리 둘이서 찍은 사진은 몇 장 없지 않냐. 그렇게 사진을 찍는데 우리 앞으로 금발의 여자아이가 지나갔다.

해운대에는 외국인 여행객이 정말 많다. 대리석으로 된 돌을 뛰어넘으며 재롱을 부리는 아가씨가 귀여웠다. 힘겹게 징검다리를 뛰어넘으려 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그런 아이를 보며 웃었다. 저러다 대리석에 처박으면 졸라 아플 텐데. 금발의 여자아이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징검다리를 건넜고, 우리는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

나 결혼하면 꼭 금발의 미녀랑 결혼해서 저런 딸 하나 낳을까봐. 지-랄을 한다고 구박하는 친구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렸다. 기왕이면 마누라는 이탈리아 여인이었으면 좋겠다. 사글사글한 매력이 있는 여인. 이건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도시 이야기에서 생긴 나만의 판타지다. 언젠가는 금발 미녀와 결혼을 하고 말리라. 기필코.

영화 이야기를 하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보고 싶어 남포동을 가자 졸랐다. 부산역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삼십분 쯤 지나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 년 반 만에 남포동을 다시 찾았다. 재작년 시월 이후로 남포동에 와본 일이 없었다. 작년 일월에 나는 여인네와 헤어졌고 남포동에는 딱히 갈 일이 없었다. 친구에게는 영화 보러 가는 김에 국제시장에서 수입 담배나 사오자 했지만, 나는 흘러버린 시간과 조우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여인네는 걷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기에 하루는 서면에서부터 남포동까지 걸어갔던 적이 있다. 두 시간 가량을 걸었다. 당신과 걷던 길. 프랑스 문화관인지 뭔지. 잠시 쉬어가던 공원. 고추잡채를 사 먹던 비오는 날의 차이나타운. 당신의 집에 가기 위해 타던 부산역 버스 정류장. 음료수를 사던 편의점까지 아름답던 추억이 구석구석 묻어있었다. 기분 좋은 슬픔에 취하며 남포동 피프광장에 도착했다.

친구는 캐논 서비스센터에 들리자 말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코데즈 컴바인 매장으로 들어가 굉장히 특이하게 생긴 티를 발견했다. 작년 시즌 제품이라는 데 단 두벌이 남아 있었다. 왼쪽은 반팔이요 오른쪽은 민소매인 하프 슬리브리스톱이 긴팔 셔츠 위로 레이어드 된 티였다. 세일 기간이라 반값으로 육 만원인 티가 삼 만원 조금 모자란 가격이 되어있었다. 지를까. 말까. 지를까. 말까. 지갑은 여전히 두둑했다. 사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도 알았다. 그래도 매장을 나왔다. 어제 무리한 감이 없지 않으니 오늘은 참자. 사실 지금 엄청나게 후회하는 중이다. 그냥 그 때 사고 후회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텐데.

매장을 나와 국제시장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사해방이라는 이름의 중국집 간판이 내려가 있었다. 경기가 정말 좋지 않은 모양이다 싶어 유심히 쳐다보는데 불에 탄 흔적이 보였다. 흰 짬뽕이라는 그 집 특유의 메뉴가 맛나던 집이었는데. 당신과의 추억이 새겨져 있던 자리는 불에 타 사라졌다. 흘러간 것들을 뒤로하고 걸었다. 케이에프씨. 크리스피 크림. 남포동 곳곳에 당신과 함께한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아름다운 기억들로 남았다. 이년간의 연애 동안 아름다운 것들만을 선물해 준 당신에게 감사하며 거리를 걸었다.

국제시장에 도착했다. 그토록 찾던 말보로 블랙 시리즈는 없었다. 대신 블랙스톤 체리와 마바를 샀다. 종로보다 천원이 싸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며 친구에게 마바를 건넸다. 몇 군데를 더 돌아보았지만 특별한 담배는 보이지 않았다. 불룩해진 주머니를 툭툭 치면서 시계를 보는데 저녁 시간이 되었다. 친구는 비염 수술을 한 탓에 계속 아프다고 징징댔다. 약국에 들어가 진통제를 처먹이고 거리로 끌고 나왔다. 저녁 메뉴 선택에도 각종 애로사항이 꽃폈다. 뜨거운 것, 딱딱한 것은 안 됨. 부드럽고 먹기 편한 것으로 원함. 이 개눔시키. 아주 뒈지려고 난리 부루스를 추는구나. 몇 대 패주려다가 환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비를 배풀었다.

냉면을 먹고 싶단다. 오늘 사진만 찍어주지 않았다면 죽어라 패줬을 텐데. 그래도 내게는 둘도 없는 친구인지라 원산면옥을 찾았다. 냉면 두 그릇을 시키고 가격표를 보는데 칠천 원이다. 예전에 왔을 때는 사천 원인가 했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꼈다. 변화는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갑작스레 다가온다. 변함없는 맛에 칠천 원에대한 미련을 버렸다. 밖에 나오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아무렴.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토요일 저녁약속을 잡았지만 게으른 삼촌이 패스를 선언하는 바람에 오늘로 약속이 미뤄졌다. 덕분에 아가씨를 만나러 서울을 갈 수 없게 되었지. 약속시간은 다 되어가고 남포문고에 들어가 책을 한 권 골랐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 뜬 자들의 도시. 인터넷으로 사면 훨씬 싸게 포인트를 적립하면서 살 수 있을 테지만 가끔은 아날로그적 감상에 젖을 필요도 있다. 책을 사고 서점을 나오는데 늘 같은 자리에서 인사하는 영감님이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익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자리에 앉아 음악을 선곡하는데 문자가 왔다. 바다를 갈 때면 늘 만나던 아가씨였다. 해운대냐고 묻기에 남포동으로 옮겼다 답했다. 잠깐 시간을 내자니 삼촌과의 약속이 걸려 오랜만에 얼굴을 보지 못하고 노포동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아가씨는 여전히 순수했고 귀여웠다. 하늘을 보며 상처가 나있단다. 그건 네 가슴에 상처가 있어 그렇게 보이노라고 말하려다 웃어 넘겼다. 외계인이 그래놓은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거짓말. 세상에 외계인이 어디 있냐고. 나는 외계인이다. 나는 지구인이 아니라 주장한다. 사고방식이나 행동,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지구인의 탈을 쓴 외계인이지 지구인은 아니다. 아가씨도 내가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외계인이니 아니면 무어냐고 물었다.

외계인 아니잖아. 아아. 누가 보면 참 유치한 대화를 한다고 비웃을 런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짧은 한마디에 또 상처받았다. 나는 외계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나를 이해하던 시절의 아가씨는 내 말에 늘 배시시 웃곤 했다. 아가씨는 변했다. 더 이상 철없던 때 마냥 순수하지 않았다. 하늘을 보고 상처가 나있다 말하는 아가씨지만 이제는 스물을 바라보고 있는, 열아홉의 아가씨가 되었다.

씁쓸하게 문자를 주고받다 살짝 잠이 들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늘 이런 식이니까 섭섭할 만도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서 넘어간다. 버스를 타고 외가로 가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남포동에서 싸구려 지포라이터 하나를 샀다. 기름 냄새와 함께 불꽃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어릴 적에 이 동네에 살았었다. 십년 전이었던가. 예전에 내가 살던 집은 사라지고 커다란 식당이 들어서 있다. 담배연기를 뱉으며 골목을 지났다.

둥근 달은 하늘 높이 떠있었다. 육교를 지나 슈퍼에 들러 콜라를 한 병 샀다. 나를 만나자마자 삼촌은 양아치냐 물었다. 웁스. 나의 스타일이 양아치로 보일만한 것이었던가. 외가에 도착하니 소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있었다. 난 소고기는 영 좋아하질 않는데. 거기다 저녁도 먹었는데 말입니다. 군에 간 조카를 몇 년 만에 보는 자리라 비싼 소고기를 사온 모양이었다. 어쩌랴. 꾸역꾸역 밀어 넣어야지. 외가 식구들과 식사를 하는 내내 이야기를 나눴다. 삼촌은 그가 군에서 육년을 몸담는 동안 무엇을 얻어 나왔는지를 생각하라 했다. 

기억마저 아련한 어린 시절부터 삼촌과 나는 싸우며 컸다. 삼촌과 조카치고는 나이차가 아홉 살 정도밖에 나질 않았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방황하던 나를 붙잡아 피씨방이며 당구장으로 끌고 다녔던 건 삼촌이었다. 힘에 겨워 발버둥치는 조카가 안쓰러웠을까. 말없이 팽팽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주머니가 빌 때면 몇 만원씩 찔러주곤 했다. 그만의 방식으로 그는 나를 이해해주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니 당연히 삼촌의 의견을 들어봐야만 했다. 그것이 도리였으니까.

가족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무엇을 선택하든 내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쪽을 선택하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되 흔들리지 말라 조언했다. 알고 있다. 타인의 말을 참고한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좋은 핑계거리가 될 수 있으니까. 이제껏 당신 때문이라는 변명을 해본적은 없지만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 내가 하려는 일은 도박에 가깝다. 실패한다면 어떤 문제가 뒤따를지 모른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한 시간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삼촌의 차에 올랐다. 캐디를 해 볼 생각이 없느냐 묻는다. 요즘 위도 그렇고 아래도 남자 캐디를 많이 구하고 있단다. 캐디가 비정규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숙모의 말로는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기에는 적당하단다. 두 사람 모두 골프장에서 일하고 있으니 자리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다. 캐디… 캐디라. 집에 도착했다.

친구가 첫 휴가를 나왔다고 나를 찾았다. 고등학교 동창인데 해병대에 지원해 무척 고생하는 녀석이었다. 얼굴 본 지도 꽤 되었고, 이래저래 신세를 많이 진 녀석이라 약속을 잡고 울산행 버스를 탔다. 정말 바쁘게 돌아가는 날들이다. 어차피 나오면서 최대한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겠다고 결정했기에 게으른 몸을 이끌고 울대에 도착했다. 제인장.

녀석의 머리는 월드컵 때 호나우도의 깻잎머리 같았다. 머리를 보고 한참을 웃어대다 술집에 들어갔다. 붉은 술을 마시고 있기에 무어냐 물었더니 복분자란다. 뭐, 몸에 좋은 술이라도 먹어야 고생을 덜 한대나? 어처구니없는 논리에 피식 웃어주고 당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밖에서 얼마 만에 당구를 쳐보는 건가. 공이 생각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매끄러운 당구대는 회전을 엄청나게 잘 먹었다. 결국 감을 잡지 못하고 친구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친구 계정으로 죽음의 기사를 깨작거리다 마지막 퀘스트를 마무리하니 강제 접속 종료가 되었다. 서버의 문제일까. 친구 옆에 비집고 들어가 잠을 청했다.

새벽부터 바쁘게 집으로 향했다. 오후에 서울에서 약속이 있는지라 움직여야만 했다. 아가씨 둘이 토요일부터 언제 올라오느냐고 하루 종일 닦달해대는 통에 후딱 준비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강남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는 늘 한 번 휴게소에 들린다. 매번 같은 휴게소. 작년 내게 크나큰 계기를 마련해준 아가씨와 함께했던 그 휴게소다. 아가씨가 섰던 자리에 내가 같은 담배를 물고 서있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지도. 그녀가 그랬듯 나도 미쳐간다.

서울에 도착해 밥을 먹었다. 아가씨들은 아직까지 고등학생 신분이라 밥은 내가 사기로 했다. 한 시간정도 밖에 보질 못한다고 말하니, 얼굴 보는 게 어디냐고 답한다. 앙큼한 녀석들. 철없던 여고생들은 이제 화장을 배우는 이십대가 되었다. 벌써 이년 후 취업걱정을 한다. 하긴 전문대에 진학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한 녀석은 메이플로 밤을 샜다며 퀭한 눈으로 밥을 먹는다. 거 참 폐인일세. 밥을 먹으며 눈이 풀리는 게 고삼 말고도 시전이 가능한 스킬이었다니. 예정과 달리 두 시간정도 수다를 떨다 헤어졌다. 날 보고 많이 서글서글해 졌단다.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도 그렇게 말하더니 내가 많이 변하긴 변한 모양이다.

강변역에 들러 병장모 두개를 샀다. 애인을 만날 시간은 없었고, 애인의 집에 맡겨둔 전투모를 찾으러 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보나마나 소리를 질러대며 삐쳐있을 게 당연하니 차라리 사가는 게 낫다 싶어 군장점으로 향했다. 이등병 전투모를 사던 일이 엊그제 같다. 복귀하자마자 개념을 어디다 팔아먹었냐고 잔소리를 듣던 게 생생한데 이제는 배터리 네 칸을 당당하게 주문하고 있다.

성남에 도착해 친구에게 짐을 맡기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음 번 휴가 때도 녀석에게 신세를 져야 할 테다. 녀석과 이번 달에 면회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마침 서울에 올라와 있는 친구도 한 명 있겠다, 겸사겸사 오래니까 진짜 오겠단다. 친구 복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퍼준 것이 없는데 녀석들은 왜 이리도 많은 것들을 내게 돌려준단 말인가.

돌아오는 택시에 타고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처음 입대했던 순간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이, 세월이 무척이나 빠름을 느낀다. 이제 고작 스물두 해를 산 녀석이 뭐 그리 시간의 흐름을 느끼겠냐마는. 눈 깜짝할 새에 많은 것들이 흘러갔음을 실감했다. 일 년 반 만에 다시 찾은 장소와 이삼년 만에 다시 만나는 이들을 통해 변화를 체험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 변화이지만 변화는 갑작스럽고, 이질적이다. 그러나 기억 위에는 또 다른 기억들이 덮인다. 나는 인간이기에 모든 것들을 완벽히 기억할 수는 없다. 변화를 통해 머릿속의 이미지는 재 생성된다. 현실에 대한 인식은 나 자신을 너무도 작게 만든다. 너무나도 넓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물음의 답에는 또 다른 물음이 따르고 나는 다시 나에게 질문한다.

부대에 도착해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보름달이 둥글게 떴다. 달은 차오르고 또 깎여 나간다. 내일의 달이 어제의 달과 같을지는 몰라도, 내 눈으로 쏘아져 들어오는 저 달빛은 어제의 그것이 아니다. 기억 속의 나는 흘러간 것들에 슬퍼하곤 했다. 이제 슬픔은 고이 접어 저 달로 날려 보내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나이가 되었다. 스물 둘. 시작을 준비해야 할 순간에 서서 지난날들을 돌아본다. 내가 선택하는 답들이 비록 정답은 아닐지라도 스스로에게 후회가 없기를 달에게 소원하며 담배를 비벼 껐다. 

시간은 흐른다.





뱀발. 얼개 쓰기 귀찮아서 연재로 올렸던 것을 통으로 올립니다. 하암.
뱀발 둘. 귀족론은 적당히.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14:52 

 

일병 송기화 
  휘요오오. 
왠지 모르게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미쳤나봐요. 
그런데 전 정말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2009-02-12
20:34:57
  

 

병장 이재륜 
  그래요. 
시간은 흐르고 말고요. 
가뜩이나 힘든데, 
시간이 안 흐르면 얼마나 아쉽겠어요. 
변화는 항상 시간이 흐르니까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면 아쉽다고 하면서, 변화는 아쉽지 않다고 하지요. 
조금은 이율배반적인거 같기도 해요. 


기화님//전 빗소리가 들려요. 왠지 모르게. 2009-02-12
23:02:05
  

 

병장 안재현 
  오우.... 
기행문스러우면서 뭔가 느껴지는...하하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나들이 다녀온거 글쓰고 있었는데, 뭐 올릴수가 없겠네요. 
비교되게.. 

기화//지금 밖에 바람이 분답니다~ 

재륜// 현재 비가 무지하게 쏟아지니까요 하하 2009-02-13
09:12:58
  

 

일병 임상국 
  왠지 이소라의 바람이분다 라는 노래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