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제목 미상
상병 박찬걸 [Homepage] 2008-08-15 08:44:21, 조회: 138, 추천:0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2년의 인생동안 여러번의 쓴맛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인생이란게 그냥 저냥 지나가면 재미없는게 인생이고, 역경을 딛고 일어나야 좀 더 성장하는게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시련은 힘들고 어려운것이 사실이다.
내 인생의 첫번째 시련이라면 시련은 바로 배신이다. 나는 그들을 철썩같이 믿었건만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은채 멋대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렇다. 그들은 바로 유니콘스 야구팀인 것이다. 17년 인천야구의 한을 풀어준 그들은 00년. 내가 중1이 되던해에 아무런 상의도 없이 서울로 가겠다고 떠나버렸다. 이럴수가. 말도 안된다. 나는 "유니콘스, 너마저"라고 외치며 점점 쓰러져가고 있었다. 야구 본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던 어린 나는 그것이 국가의 음모라고 생각하고 야구판도 역시 국가가 쥐고 흔들고 있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은 야구를 보지 않겠다며 내 인터넷 즐겨찾기에 등록되어 있던 야구에 관련된 사이트를 전부 지워버렸다.
당시 내 인생의 야구는 정말 거대한 존재였고 거대한 존재이다. 야구를 막 보기 시작했을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ㅡ왜 그렇게 대답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되지만 이순신이니 장영실이니 세종대왕이니 이런 걸출한 위인들만 생각해내서 대답하곤 했지만 나는 절대로 그런 사람들보다 돌핀스팀의 선수들이 더욱 더 존경의 대상이었다.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정명원과 최고의 에이스 선발 정민태, 한국 최고의 타자라 생각했던 김경기가 그 대상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갔고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야구를 꽤나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돌핀스는 유니콘스에게 팀이 팔려버렸고 그러면서 알지도 못하던 선수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레이더스가 99년을 끝으로 더 이상 팀이 유지가 안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박경완 같은 레이더스의 유능한 선수들이 유니콘스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니콘스는 98년 우승을 했다.
돌핀스도 충분히 우승 할 수 있는 팀이었다. 그들 역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지만 두번 모두 준우승을 한ㅡ물론 준우승도 잘했지만 인천 야구의 한을 풀어주지는 못한 팀이었다. 그런데 유니콘스가 떡 하고 우승을 했으니 이건 뭐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나는 그들을 정말 사랑하였고, 시설 안 좋기로 유명한 도원야구장ㅡ등 받이 의자는 커녕 좌석제 시행도 안되는 야구장이니ㅡ을 여러번 찾아가서 열심히 경기 보고, 열심히 욕하고, 열심히 물건을 집어던졌다. 그러면서 야구에 점점 눈을 떠가던 그때쯤, 유니콘스는 가버렸다. 서울도 아닌 수원으로.
그래서 나는 과감히 야구를 버렸다. 야구는 다시는 안 보겠다고 다짐아닌 다짐까지 했다. 난 정말로 야구에 관심을 확 끊고 스포츠를 더 이상 즐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일 월드컵이 열리면서 난 다시금 축구에 관심을 가졌다. 해외 축구라던지 K-리그를 열심히 봐가면서 축구 선수들을 외워대기 시작했다. 난 거의 지역 연고팀들을 응원했기 때문에 인천팀이 없던 당시로는 부천을 응원하다가 인천 유나이티드(이하 인유)가 생긴후로는 응원팀을 그곳으로 변절하고 이기든 지든 열심히 응원하고 욕했다. 에라이 삐리리들아. 어떻게 인천은 축구나 농구나 야구나 전부 다 거기서 거기처럼 꼴등만 해대냐. 야구하다가 농구하고 축구도 하냐. 아 답답해 죽겠다. 뭐야 인유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선수들만 있는거지. 야야 어디로 패스하냐. 슛이 아 미치겠네. 못 봐주겠다. 에라이 응원하던 부천이나 어라? 아니 왜 또 제주도로 가는거냐. 아니 이건 또 뭐지. 전후기 통합 1위? 변변한 선수도 없는데 어떻게 된거지? 그래서 결승전을 보러 가기로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아자! 거기다 수능 본 수험생은 공짜로구나~ 수험표 챙기고, 돈도 좀 가져가서 먹을것도 좀 사야지. 아 문학 경기가 정말 좋긴 좋구나.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울산을 넘지 못하고 인천은 준우승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인유는 정말 대단했다. 정말 변변한 선수도 없이 준우승을 해낸다는거 자체가 K-리그에선 볼 수 없는 그런 경우였기에.
하지만 그런 나의 축구 열정은 대학을 들어가면서 깨지고 말았다. 학부에서 만난 친구녀석. 1학기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기말고사가 끝나고 술 한잔 하고팠던 나는 당시 꽤나 우울해하던 녀석을 불러내 단 둘이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녀석은 베어스팬이라는 것과, MLB를 무척이나 좋아했으며, 철원에 산다는 것과,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것과, 좋아하던 여자가 연하를 좋아하지 않아서 힘들어 했다는 것과, 둘이 맞춘 수업에 내가 끼게 된것과, 내일 야구장을 가자는 요청을 하였고, 나는 당시 인천에는 와이번스가 주둔해 있었고, 그 팀은 레이더스 선수들을 많이 데려와서 인천 토박이 팀이 아닌거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과, 친구인 여자애가 우리와 친한 형을 좋아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는 것과, 유니콘스가 배신해서 더 이상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것과, 그래도 오랜만에 야구장은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나는 그 친구 손에 이끌려 그것도 베어스와 와이번스의 대결을 보러 잠실 야구장으로 향했다. 친구녀석은 몇번이나 와본듯 익숙하게 매표소로 향하였고, 야구장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과자와 맥주를 사고, 담배를 한대 핀뒤 자리에 앉아 열심히 응원을 해댔다. 결과는 베어스의 승리였다. 친구는 말했다. 야구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응원했냐면서 역시 야구인의 피는 어디 가지 않는다고 앞으로도 자주 오자는 말을 남겼다. 그때부터였다. 나의 야구혼이 다시 살아난 것은.
5년이 넘게 보지 않던 야구에 적응하기 위해 각 구단 홈페이지를 돌면서 선수들 이름에 적응해가기 시작했고, 박재홍, 박경완이 와이번스에 있는것과, 내가 한창 보던때 있던 선수들이 아직 뛰고 있어서 안심할 수 있는것과, 야구판도가 많이 바뀌었고, 유니콘스는 서울에 입성하지 못하고 모기업의 부도로 인해 아직도 수원에 머물고 있는것과, 신인 지명을 하지 못해서 팀 유지가 힘들다는 것, 베어스는 신구 조화가 적절하게 잘 되어 있어서 우승권이라는 것과, 자이언츠는 몇년째 바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과, 트윈스가 몰락하여 명문 구단으로써의 체면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계속 야구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 없으면 나 혼자라도 갔다. 그 녀석도 내가 없을땐 혼자 다녔다. 게다가 잠실과 문학은 시설도 정말 좋았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도원 야구장에 비하면 그곳은 5성급 호텔과도 다름 없는 안락한 등받이 의자에 개인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 경기장이었다. 문학은 그것도 모잘라서 탁자석이라던가 스카이박스까지 설치했으니 이건 뭐 메이저리그 야구장 저리가라였다. 야, 오늘은 탁자지정석 앉아보자. 얌마 거기 만 오천원이나 하잖아. 그 돈이면 경기 보면서 맥주를 세개는 사겠다. 만 오천원이면 도대체 얼마나 있어야 되는거냐. 걍 오늘 한번 진탕쓰고 며칠 안오면 되지 뭘. 그럴라나. 그럼 뭐 오늘 돈 좀 많이 들고가서 실컷 보고 먹을거 많이 먹고 끝나고 밤새 술이나 즐기자.
그렇게 06년 시즌은 끝이 났고, 와이번스는 6위에, 베어스는 5위에 머물렀다. 가을잔치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렸기에 야구에 관심을 중단시키고 겨울 스포츠의 최고봉인 농구장에 시선을 돌리고야 말았다. 그러던 중 친구와의 내년 시즌을 함께 야구장에서 보내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채 입궁을 해버렸고, 그렇게 와이번스는 07년에 우승 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내 생일에. 기뻐서 웃어야 할지, 결과만 봐버린것을 통탄해야 할지.
다시금 되새겨 보면 스포츠는 내 인생에 있어 한 획을 그은 마치 사람'인'자에 줄 하나 그어서 큰'대'자를 만들었다고나 할까. 야구는 나를 이끌고 가는 견인차 같은 것이다. 나를 열심히 살게 해 주는 원동력 같은 동기 부여제인것이다. 앞으로도 야구를 열심히 보면서 인생도 열심히 살아나가야겄다. 플레이 볼!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3:05:37
병장 이태형
야구 열정이 남다르시군요.
전 야구, 농구, 축구, 구구구구구구구구... 하나도 별 관심이 없어서..
심지어는 월드컵을 해도, 한일전을 해도.
나는 동기부여제가 왜 없지.
아직 못 찾았나. 2008-08-15
08:52:17
병장 이동석
기아의 무등경기장은 정말, 가만히 앉아서는 절대로 야구를 못 봅니다.
의자가 엉덩이를 너무 쪼여요. 정확히는 응침을 놓는 의자랄까요. (크크)
그래서 경기 시간내내 일어서서 응원을 하지만,
입궁 시즌즈음 해서부터 출타를 하건 말건 야구장은 안중에도 없었으나
다음 출타때는 야구장을 가야겠군요.
야구장에서 먹는 맥주가 그리워요.
물론, 기아가 가을에도 야구를 할수 있을때나 가능하겠지만. 기아 팟팅. 크크. 2008-08-15
11:28:20
상병 박찬걸
타이거즈도 요즘 슬슬 부활기미가 보이다가 휴식기에 들어가 버렸죠.
뭐 일단 후반기를 잘 노리면 언제든 치고 올라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