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저 별 너머에
병장 김무준 2009-02-12 22:44:21, 조회: 141, 추천:0
형님 날씨가 제법 춥습니다 그려.
에 그러니까 집을 비워 둔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이제는 집주소조차 까먹었어요. 소행성 B-621이었나. 클레오파트라란 이름은 아직 기억이 나는데 이래서야 집에 제대로 찾아갈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형님이야 심심하면 시키지도 않은 엉뚱한 일을 하는 분이니 우리 집 청소도 좀 해주셨겠지요. 아니라고 답하면 형님 집에다 바오밥 나무 씨앗을 한 포대 뿌려버릴 겁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도착한지도 퍽이나 시간이 지났어요. 아니 그래, 관광차 지구에나 가보자고 했던 건 알겠다고요. 근데 우주선이 고장 났으면 도와줄 생각은 않고, 살만한 곳이니 좀 살아보라 말하고 휑하니 혼자 날아가 버리는 건 무슨 심봅니까? 나이가 몇 갠데 유치한 장난을 치시는지 원 참. 하기야 어린 왕자는 정신연령이 자라지 않는 모양입디다.
사막을 배회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대한민국이라는 곳이었어요. 이 작은 나라에는 MIB 지부도 없는지 여태 체류권 확인 절차도 밟으라 하질 않습니다. 정체를 숨기는 것이 예의다 싶어 지구인 껍데기를 쓰고 몇 년을 보내는데, 맨 인 블랙이라는 영화는 잘도 만들어 홍보영상으로 사용해 놓고는 불시착한 타행성인을 내버려 두는 건 또 무언지요. 원래 이런 동네인가요. 뭐 절차야 어찌되었건 행성법상 따지고 보면 우주난민에게 절차를 밟도록 조치하지 않은 건 지구 쪽 잘못이니 나는 죄 없다 이겁니다. 설마 스파이다 뭐다해서 잡아다가 고문이야 하겠어요.
뒹굴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우주선 고치기조차 귀찮아져서 그냥 머물고 있습니다. 수리야 끝났습니다마는 연료 액화시키기가 번거로워 몇 해를 미루다 영주권이나 따볼까 해서 이상한 제도에 몸을 담았습니다. 처음에야 짜증이 오뉴월 유성우 쏟아지듯 퍼부었지만 요즘은 할 만 해요. 몇 달 더 있으면 국적도 가지게 될 테고. 그럼 우주법상으로 큰 문제도 생기지 않겠죠. 원래 생각 없이 살지 않습니까. 으히히.
지구인들은 나이를 먹으며 순수를 잃어갑니다. 형님이 나이는 먹지만 겉모습과 정신연령이… 아, 이거 욕은 아니에요. 어쨌거나 변함없이 사는 것과는 달리 지구인들은 순수를 잃어요.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현실에 눈을 떠가는 성장의 과정이라 하던데 썩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몇 년 생활하니 이들의 사고에 젖었는지 아니면 지구인이라는 착각에 빠졌는지 철든다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체험하고 있습죠. 그네들 몸에 금속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건 알겠는데 이런 식으로 꼭 늘려야 할 필요가 있는지요. 무슨 전투종족도 아니고 뼈도 금속제로 이루어진 마당에 더 튼튼해지려 한다니. 쩝. 그다지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
가끔 법적인 문제를 망각하고 사랑에 빠져 존재를 드러낼 때가 있었습니다. 헌데 이 지구인들이 순수를 정말 잃어버린 건지 도통 믿지를 않아요. 외계인이라고 그렇게 말해도 증거를 대보랍니다. 우주선이라도 보여줘야 할까 봐요. 그러면 보나마나 MIB 애들이 튀어나와 기억소멸광선을 쏘고 돌아갈 텐데. 어차피 뇌 구조상 기억도 하지 못할 것들을 대체 왜 확인시켜 달라고 하는 건지. 시각적 정보에 의존하려는 발버둥이 안쓰럽습니다. 이건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정말 우주선을 보여준 적이 있어요. 어디서 왔는지 양복을 빼입은 윌 스미스가 영어로 쌍욕을 퍼붓더니 협박을 늘어놓고 아가씨에게 광선을 쏘더이다. 기왕 만난 거 체류절차 좀 해결해주고 가랬더니 그것까지는 관할 범위가 아니라나요. 낙후된 정치체계를 갖고 있다더니 정말이더군요. 한국 지부가 있기는 있냐는 말에 그렇게 당연한 걸 왜 묻는지 되묻더니만 신경질 적으로 떠났습니다. 홍보영상 세 번째를 찍어야 한다나.
정말이지 친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성에서 오로지 행성에 남아있는 순수가 좋아 여태 머물고 있습니다. 행성자체가 지니는 자정 시스템의 순수. 어린 지구인들의 순수를 보면서 즐기고 있어요. 까놓고 말하면 우리 동네에는 이제 순수가 없잖습니까. 다들 자기 살기 바쁘고 자기 멋에 취해 살아가는데. 에, 형님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어허 이사람 아니라니까?
요즘 들어 점점 순수를 잃어가는 지구를 보면서 계속 머물러야하나 고민 중입니다. 뭔가 치고 박고 싸울 조짐이 계속 보이거든요. 아무리 순수가 좋아도 목숨 걸고 여기 있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분명 비벼볼 만한 행성은 맞는데, 모르겠습니다. 고향별은 잊어버린 지 오래고 태어난 별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까먹었는데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잖아요. 심심하기는 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좋기는 좋고요. 지나가던 우주 깽깽이가 개뼈다귀인지 착각하고 주둥이를 벌릴 때는 좀 난감하긴 했지만.
세 개의 목숨 중에 이미 두 개를 써버렸고, 이제 하나 남았는데 대체 뭐에다 투자를 해야 할지. 법이 바뀌어서 생명을 담보로 투자를 할 수가 없게 되었지만 분명 삶에는 영혼을 걸만한 것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형님은 그걸 장미와 여우에 걸었고 나는 사랑과 꿈에 걸었죠. 남은 하나를 지구라는 행성에 걸지 아님 다른 걸만한 곳을 찾아야 할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형님은 어쩔 건가요? 그동안 투자한 거 죄다 날려먹고도 지구에 투자를 했잖아요. 이제 하나 남았을 터인데 장미에 다시 써 볼 겁니까? 그 아가씨 툴툴해서 또 버림받을 지도 모른다니까요. 거 참. 에, 순수하고 귀여운 게 형님 매력이니까 알아서 하셔요.
일단 좀 더 있어봐야겠습니다. 국적 취득이 코앞인데 때려 치기도 그렇고 아직 못 가본 곳도 많거든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나이 든 지구인에게도 순수가 존재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될 지 누가 알아요. 문자와 종이로 순수를 전하던 지구인들도 분명 있었으니까, 어딘가에는 있겠죠. 하암. 졸립니다. 좀 자야겠어요. 이번에 다가오는 때에는 꼭 연료를 처리해야 하는데 성격상 또 다음으로 미뤄버릴 것 같습니다. 한 번 놀러 와요. 꿈이나 한 잔 합시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15:03
상병 최준호
꿈이나 한 잔 합시다... 2009-02-12
22:48:39
일병 송기화
음, 자기가 외계인이라는 사람 은근히 많네요.
제 주변 사람도 자기가 외계인이라던데.
그런데 '나 초능력 있어'라고 해도 '그럴 것 같았어'라는 대답이 나오는 사람이라...
설마 무준님도? 2009-02-13
08:46:13
병장 안재현
기화님은 흡혈귀잖아요!! 2009-02-13
09:13:46
병장 안재현
어린왕자에게 쓴편지~
[칼럼] 공중그네를 통해 생각한 문화의 비판적 수용
병장 김무준 2009-02-13 21:47:49, 조회: 263, 추천:0
1.
국사와 근현대사를 좋아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우리네 역사를 뒤돌아보면 항상 침략에 맞서 싸우던 사실만이 가득했다. 외세의 침략에도 국가를 온전히 지켜내 왔다는 사실이 그리도 자랑스러웠는지 몰라도 후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멋진 역사는 아니었다. 제국주의적 국가관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국이나 일본 같은 강대국에 비해 우리 선조들이 강인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준 건 또 아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역사자체를 보았을 때 우리가 늘 수비적인 입장을 취해오지는 않았다. 중국 역사서에서는 치우를 약탈자로 묘사했다. 고구려 역시 마찬가지. 북방 유목민족의 호탕한 기상을 지니고 있었기에 통일신라 이전의 국가들은 싸움꾼에 가까웠다고 느껴진다.
우리는 신라가 당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했다고 교육받았다. 말이 통일이지 고구려 땅은 모조리 내어준 것이 아닌가. 발해는 결국 멸망했고 지금의 한반도는 백두산을 수원으로 하는 양 강을 국경선으로 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 국경선의 위쪽 지방은 러시아와 중국의 영토가 되었다. 조선조 그 땅이 우리네 땅이었다는 기록이 있건 없건, 현실에 기초해 보면 지금의 모습이 우리역사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식의 문제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그릇된 역사관 주입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역사가 중국 것이 되는 과정에도 관심이 없는 것이 우리니까. 분노의 초점은 이차 대전당시 아시아를 식민지화 했던 일본에만 맞춰져 있다. 한 국가에 대한 분노는 문화에 대한 적개심으로 통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일문학을 다양하게 소비한다. 서점에는 해외문학만큼 다양한 일문학 서적이 배치되어 있고, 국문학을 소비하지 않는 이들도 일문학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라이트 노블류건, 일본현대문학이건 매니아 층은 우리 현대문학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두텁다. 출판시장도 자본주의 시장이니 서점에 일문학 서적이 넘쳐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장이 이렇게 돌아가거나 말거나 일문학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글쟁이도 일문학을 멀리하는 부류에 속한다. 문예이론을 공부하는 사람이 문학작품을 읽지 않는다는 게 지독한 역설이지만 국문학도 접하지 않는 마당에 일문학을 손에 들 이유가 없다. 어쨌거나 드물게 소설을 접할 때에도 일본현대문학 보다는 국내현대문학을 잡았다.
영화 <도쿄>에서 레오 까락스는 <하수도의 광인(제목이 정확하지는 않다)>을 내놓았다. 주인공의 이름 메르드는 광인이라는 뜻의 불어다. 메르드는 하수구에 살며 이따금씩 지상으로 나와 엽기적인 테러를 일삼다 결국 이차대전이 끝나고 버려진 수류탄으로 도쿄에 테러를 가한다. 밥 대신 일문국화를 먹고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지껄인다. 레오 까락스는 메르드를 통해 일본에 잔재하는 제국주의적 사고를 비판한다. 도쿄 시민이 죽어나가는 장면을 통해 제국주의 부활의 폐해를 말했다. 영화를 통해 비판되는 것처럼 일본에는 아직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시와 소설에는 저항적 메시지가 가득했다. 일제는 작가를 탄압했다. 펜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고 문화의 힘이 반일(反日)의 형태로 발전하는 것을 예견했기에 철저히 내리 눌렀다. 일제는 패망했지만 그림자를 걷어내는 데 실패한 대한민국에 일본의 잔재는 가득하다. 문학은 역사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근대문학이 그랬다. 인간은 사관과 함께 자란다. 일본의 작가들도 같을 테다. 문학은 사유에서 탄생하고, 다양한 사고라는 뿌리에서 사유가 탄생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고는 가치와 함께한다. 이 과정을 알고 있기에 일문학에 거리를 둬왔다.
2.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는 신경외과의 이라부와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 공중그네는 소설 속 단편의 제목이다. 소설에는 야쿠자, 이라부의 의사 동기, 프로야구 선수, 서커스의 공중그네 연기자, 성공한 여류 작가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다들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른 인물들이지만 갑작스런 장애로 고생한다. 장애는 심리적 장애이지만 일상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중증 장애다. 야쿠자는 칼을 무서워하게 되고, 의사는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올스타 붙박이 삼루수는 송구 실수를 반복하고, 서커스단의 에이스는 공중그네 쇼에서 실수를 거듭한다. 거기다 작가는 작가의 생명인 이야기를 쓰지 못한다.
이라부의 치료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와 함께 진행된다. 플라시보 효과는 약의 원 목적과는 상관없이, 심리에 의해 의사가 말하는 약효들이 작용하는 일종의 착각이다. 이라부는 비타민제를 치료제라 속이고 환자에게 투여한다. 비타민제는 때로는 수면제가, 때로는 진정제의 역할을 한다. 어째보면 이라부는 돌팔이 의사에 가깝다.
<공중그네>로 오쿠다 히데오는 치유의 과정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물으나 그 과정은 유쾌하다. 소설 속에서 이라부와 친구가 신사의 이름인 金王을 金玉(불알이라는 뜻의 일본 속어)를 고치는 장난은 문화적 차이로 그렇게 와 닿는 유머는 아니다. 그러나 이라부의 행동에 당황하는 인물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소설을 읽는 내내 깔깔깔 하고 박장대소를 할 수는 없지만 풉 정도의 웃음은 곧잘 터진다. 국가를 넘어 웃음의 코드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문학에 편견을 가진 이들이 우려하는 부분 즉, 일본 제국주의적 사상이나 극우적 사고형태는 일문학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일문학 작품은 애초에 제도적 장치를 통해 걸러지는듯하다. 지금의 사오십 대와 보수적 사고를 가진 이들(가령 글쟁이와 같은)은 일문학을 꺼린다. 현실이 어떻게 변화하든 고정관념은 쉽사리 변화하기 힘들다.
일문학이 지속적으로 국내에 유입되는 이유는 재미와 문제제기를 동시에 포함하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문학이 현실과 타협해 살아남기 위하여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형태가 일문학의 형태가 아닐지 예상해본다. 단순한 예술은 더 이상 돈이 되지 못하고, 아름답게 밥 벌어먹을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진지 오래다. 날로 위축되는 출판시장에서 자본주의로 인한 변화의 수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3.
보수적 사고를 지닌 이들이 왜 상대적으로 일문학에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위에서 말했다. 그럼, 지금처럼 일문학에 계속된 편견을 가져야할까. 글쟁이는 뿌리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보수적 인간이다. 현대 한국의 뿌리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매번 비교되듯 프랑스와는 달리 국가의 건설 과정에서 친일세력을 적절히 솎아내지 못한 대한민국은 문화 전반에 걸쳐 일본의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했다. 글쟁이의 입장에서는 조금 빨라 보이는 일본문화 개방이 이루어졌고, 지금의 십대와 이십대는 일본문화를 자연스럽게 소비하며 자랐다.
한국은 동북아 문화권에 속해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며 문화의 교류와 변화속도는 이십세기에 비해 훨씬 빨라졌고 더욱 빨라질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다르면서도 상당히 닮아있다. 일본의 사회적 문제 중 많은 부분이 한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젊은 세대의 은둔형 외톨이화나 비정규직 문제는 꽤나 비슷하다.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기에 두 나라의 문학도 닮은 점이 많다. 일본과 한국의 현대문학은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을 공통적으로 포함한다. 김미월의 <서울 동굴 가이드>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두 나라가 닮아있기 때문일 테다.
비록 그 과정을 풀이하는 코드 자체는 문화적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한국의 현대문학에 우리가 우려하는 극우적 사고가 포함되지 않듯, 일본의 현대문학도 그렇다. 슬프지만 이십대가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갈수록 잃어가듯 일본의 젊은 세대도 과거를 빠르게 잊어가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글쟁이가 접한 일문학이 제도를 통해 걸러진 반쪽짜리 문학일지는 몰라도, 문학을 통해 해석한 일본의 젊은 세대에 우리가 걱정하는 제국주의의 잔재는 남아있지 않다. 우리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해 있고, 차가운 현실을 걱정하고 있을 뿐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도 우리네 이야기처럼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 지난 십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가져온 글쟁이의 우려가 보수적 사고에서 비롯된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일문학이라고 해서 모든 이야기가 과거로의 회기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일본 작가들이 제국주의를 부르짖는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의 공부로 좀 더 넓은 태도로 문화를 수용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매체를 접함에 있어 무조건적인 수용은 지양해야 할 부분임은 분명하다. 매체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수용되어야 한다. 우리 세대는 매체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꽤나 부족하다 생각한다. 문화에는 상대적 우수가 없다. 우리 것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듯, 일본이 경제적으로 앞서나간다고 해서 그들의 문화가 우리의 문화보다 우수한 것은 아니다. 문학 역시 동일하다. 일문학이 원 소스 멀티유즈를 바탕으로 한 컨텐츠 생산의 세련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해서,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나오지 않았다 해서 국문학이 일문학보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문학을 통해 지적유희를 즐기되 문화의 상대적 우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와 함께 비판적 태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문화는 이 시간에도 빠르게 교류하고 변화한다. 비단 일문학에 국한된 태도가 아니다. 해외문학을 접함에 있어서도 무조건적인 수용을 지양하고 비판적 태도를 갖출 때 합리적인 문화의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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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15:13
상병 김예찬
'메르드'는 똥, 이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제가 이제까지 잘못 알고 있었군요. 텍스트가 결국 실제 세계라는 컨텍스트의 모사에 불과한 이상, 이미 전 세계가 유사 공간이 되어버린 시대에 텍스트에 국적이 따로 있겠습니까. 문학 역시도 이제는 진정한 '세계 문학'의 시대가 오는 것이겠죠. 문제는 그 '세계'라는 것이 자본의 힘에 의해 획일화 되어버린 차갑고 냉정한 공간이라는 것이겠지만. 2009-02-14
07:54:04
병장 홍석기
음, 저는 처음에 일문학이 범람하는 이유가 문화적 코드가 가장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준씨가 말씀하신 대로 이곳이 잔재를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것이 이유일수도 있겠죠. 그렇게 일상 생활의 면면에서 어느정도 공감되가 형성되고, 또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번역체도 상당히 깔끔하게 나오곤 하니까(개인적인 사견이지만) 말이죠. 다른 나라의 문학- 모르는 건 패스하고 그나마 깔짝댄 적이 있었던 영미문학을 보자면- 샐린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같은 '세계문학전집' 클래스에서 그 계보가 딱 끊긴 느낌조차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이쪽 문학은 공감대 형성이 조금 어려워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무준님 말처럼 '일문학이 지속적으로 국내에 유입되는 이유는 재미와 문제제기를 동시에 포함하기 때문' 이 아니라 '재미와 문제제기를(어느-정도는) 포함하는 것을 선별하기 문에 일문학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것 같아요. 자본의 논리에 강하게 휘둘려서, 그 넓은 일문학 중 에 '사소설', 그 사소설 중에 팔아먹기 좋을 것 같은(이왕이면 영화도 나오고 뭐 이런거) 만 골라 오는 것 같아요. 비단 일문학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외국 문학이 그런 것 같더군요. 노벨문학상 발표 전후시기를 제외하면 가볍지 않은 소설은 찾아보기 어렵달까.
비판적 수용,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나 오직 재미를 위해서 마케팅되는 일본 사소설과,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사실 이것들은 그 문화적 컨텍스트에서 읽어도 꽤나 흥미로운 여러가지 분석을 해낼 수 있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웃기다,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 따위라든가 '동명의 영화 개봉!', '현대인의 OO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에서 끝나버리는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괜히 깔짝대었나...쩝. 2009-02-14
12:14:41
병장 김민규
저는 일문학을 잘 읽지 않습니다. 아니,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많이 읽지 않았'습니다. 뭐 다른 범주에 있는 글이라고 많이 찾아 읽은 것은 아니니 특별한 증상이라고 하기도 어렵겠지마는, 그러니까
이건 제가 코엘료의 글을 잘 읽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칩니다. 1) 근본적으로 그의 글을 읽지 않은 것은 저의 편협한 독서(보다 솔직하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독서량)의 결과이지만 2) 무언가 지나치게 포장된 듯한 상품감이 몰입을 방해하고 책을 "글"로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작용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물론 일본 작가가 썼다고 해서 반드시 그러한 구분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저의 편식의 기준이 'MADE IN JAPAN 인가'로 결정되었던 것도 아닙니다. 중학 시절 읽는 책들마다(예, 구십팔퍼센트 장르문학이었습니다.) 서두에 '노르웨이의 숲'을 최고의 책으로 언급하기에 거기서는 무슨 마법을 쏘나 하고 읽었다가 한 세달 정신 못차리기도 했지마는, 뭐랄까
적당히 감상적이고 적당히 재치있으며 무겁지 않은 수준에서 적당-히 현실을 다루는 미적지근한 부드러움에서 심상찮은 기시감과 일관된 의도성을 발견하는건 리플을 보아건대 저만이 아닌 듯 하여 안도감이 드는군요. 제게는 코엘료도 그렇게 느껴졌으니 일문학에서 그런 기운을 느낀 것만은 아니었으나 빈도가 더 잦았던 것은 - 대중 안에 있기를 선호하고, 독특하되 튀어나오기를 두려워하는 일본인 특유의 조화적 정서때문이 아닐까, 라고 해석해 봅니다. 2009-02-14
16:40:56
병장 김민규
문화개방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장벽을 갖고 있는 우리인 듯 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극우적 사고를 우려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선정성이라는 훌륭한 명목도 지금까지 영향력을 충분히 미쳐왔죠. 하다못해 꽃보다남자만 하더라도 일본판으로 보면 다소 쇼킹, 한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어차피 인터넷때문에라도, 그런 인공적 배제논리는 더이상 효력을 가지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편견과 별도로 일본의 현대 대중문화 전반에 흐르는 자본의 논리, 말초적 자극들을 따져봐야 할 겁니다. 저는 어쩔수 없이 보수적 인간인 듯 하며, 현대의 문화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조작한다는 음모론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말하자면 - 영화를 보면서 도저히 나의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과장된 현상들에 '프리섹스 권하는 사회'를 느낀다 이겁니다. 일본문화에서 그런 경향성을 보다 극단적으로 느끼고 있고요.
문학은 아주 지엽적인 부분일 뿐이겠지요. 2009-02-14
16:51:47
병장 김무준
에, 메르드의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옆에 앉은 친구가 그렇게 설명해줬던 기억이 있는데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확실치 않군요.
민규씨가 말하는 선정성의 문제도 있습니다. 성(性)적인 측면에서 인식이 많이 개방되었다고는 하나 일본이나 유럽의 문화를 보면 거부감이 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예(禮)를 중요시 여기는 한국의 민족성과 관련해서 해석할 수도 있겠죠. 아직도 성인용품점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여자를 보면 ‘저 여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라는 눈빛을 보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문학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와 같은 부분에서도 그들의 성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차이는 굉장히 무겁게 다가오죠.
어쨌거나 문화가 사고와 행동양식을 조장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많은 언론이 특히 공중파나 신문 같은 매체가 매체의 특성을 망각하고 다분히 주관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나, 비평이 한계를 지님과 마찬가지로 언론 역시 인간이 이끄는 것이니 절대적 객관은 존재할 수 없겠죠. 문화는 사회 다시 말해 인간의 행위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문화마저 권력화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문화는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문화는 점점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고 지켜져 왔던 것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다원화는 문화교류에서 오는 산물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만, 개방된 문으로 다양한 것을 받아들이되 우리를 잃어버려서는 곤란합니다. 언어가 민족의 얼이라면 문화는 민족의 정체성입니다. 좀 더 포용력 있는 자세로 다양성을 받아들이되 걸러낼 것은 확실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점점 사람들이 진짜 중요한 것을 잊어간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네요. 2009-02-14
18:22:36
상병 이동열
저같은 경우에는 한동안 일문학에 빠져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2006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 정도, 아니 이보다 조금 앞서 일문학의 붐이 일어났었지요. 저역시 그 붐에 휩싸인 사람중 하나입니다. 일문학의 경우 좀더 가볍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물론 국내에 소개되는 일문학이 어느정도의 선별을 거쳐 들어오기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여기에서 또 한번의 자정작용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독자의 몫이지요. 방식의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무준님이 말씀하신 문화의 비판적 수용이란 측면에서의 접근도 있을 것이고, 저같은 경우는 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텍스트보다는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는 텍스트를 선호하는 측면에서 접근할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일까요? 저는 일문학 작가중 이사카 코타로를 선호합니다.
사족. 뭔가 옆길로 새는군요(땀)
[가입인사] 잃어버린 것들의 앞에서
병장 김무준 2009-02-12 11:22:47, 조회: 388, 추천:0
1. 생각보다 광활하게 펼쳐진 인트라넷의 세계엔 책마을을 제외하고라도 다양한 공간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수한 공간들 중에서 하필이면 책마을이라는 곳을 택하여 입주하게 된 것에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짐작합니다. 당신은 왜 책마을에 찾아들어오게 되었나요? 그리고 책마을에 입주 신청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문구가 아닌, 당신의 솔직한 진심을 듣고 싶습니다.
A.
다시 초심(初審)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라는 천주교 기도문을 좋아합니다. 관광공사에 입사하면서부터 처음처럼 생활하면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생각과 현실은 달랐고, 태도는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첫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책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명예의 전당이나 책가지에서 보고 배운 것들에 대해 가진 것은 없지만 부족한 텍스트나마 토해보자고 책마을에 들어왔습니다.
공사에서 무엇이든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있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압박에 가까웠습니다. 때문에 어차피 시간을 때울 것이면 좀 더 생산적으로 행동하자 결심했습니다. 사실 무엇이 생산인지, 텍스트로의 표현이 생산이 될 수 있는지 아직은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만족의 지적유희도 개인에게는 생산이 될 수 있으리라 핑계를 대며 오늘도 손가락을 놀립니다. 책마을은 타인의 사고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곳이었고, 두드려 맞기를 각오하며 부끄러운 텍스트를 뿌려댔습니다. 뉴웨이브 문학의 문학성 논쟁에 뛰어들었고, 예전에는 없던 패션에 대한 잡담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낯간지러운 말도 들려왔습니다. 괴수니 뭐니 하는 말들을 애써 부정하다 며칠 전쯤 자아와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타인은 자신의 거울이다. 타인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주변을 둘러보라. 스스로를 알기 위하여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귀족이나 괴수 등의 단어가 보였습니다. 은연중에 타인들이 높여 부르는 말을 인정하고 있던 건지도 모릅니다. 아차, 이건 아닌데. 브레이크를 걸고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보아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다시 가입인사를 두드리고 있는 건 반성의 의미입니다. 성장하고 싶다면 성찰해야겠죠. 인정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으리라 위로합니다.
2. '책마을'에 입주를 선택한 당신에겐, '책'에 대한 유별난 마음씀씀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당신의 삶은 '책'을 통해서 어떻게 변해 왔는지 듣고 싶습니다. 책과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책 욕심이 많았던 것은 아닌데 어릴 적부터 책을 다양하게 많이 읽었습니다. 주로 만화로 된 과학도서나 역사책이었습니다. 아직도 집에는 세계사와 삼국사, 고려사, 조선사, 근현대사까지의 역사만화가 뒹굴고 있습니다. 내용을 죄다 까먹기는 했지만요. 만화를 통해 책을 배웠고 그렇게 시작한 대부분의 소년들이 그러하듯 장르소설에 빠졌습니다. 운 좋게 뜻있는 사람들을 만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했고 현실에 좌절했습니다. 텍스트를 읽고 해체하는 법을 배웠는지라 어려운 글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언더그라운드 식으로 독서를 배웠고, 스스로 독서법을 배워나갔습니다. 그래서 박민규니 김애란이니 이문열, 황석영 등의 작가와 그다지 친하지가 못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순문학에 대한 일종의 반감을 갖고 있었고 순문학에 대한 반감은 문학 전반에 걸친 반감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지만 철저히 개인의 흥미에 따라 책을 골랐고 체계적이지 않은 독서를 해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상이나 철학을 떠나 특이하고 신선한 책을 많이 보는 편입니다.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책을 읽었습니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다양한 정보와 사유의 습득 과정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단순한 읽기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예이론 공부를 언더그라운드 식으로 해온 이후로는 접하는 모든 텍스트를 해체하는 웃지 못 할 습관이 생겼습니다. 책 읽기를 통한 삶의 변화는 비평을 접하기 전의 독서와 접한 후의 독서로 나눠지겠군요. 텍스트의 수용을 통해 인간은 변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마틴 발저의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그렇게 썩 좋지는 않은 습관을 가진지라 원하지 않는 텍스트를 접하지 않으려 철저히 차단합니다. 마틴 발저의 말대로라면, 삶 자체는 의도한 대로 변화해왔습니다. 책을 접하는 도중 뜻하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될 때도 있지만 기분 좋은 변화일 때가 많습니다. 책 읽기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도구입니다.
3.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
김경욱 - <위험한 독서> 中
당신이 읽은 책은 곧 당신을 말해줍니다. 당신이 읽어온 책들이 궁금합니다. 당신이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 중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세 권만, 보여주세요. 세 권의 책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세요.
A.
<폴라리스 랩소디>를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꼽지만 읽은 지 무척 오래되었군요. 그 때는 텍스트 파일로 읽었으니 꽤나 시간이 지났습니다. 약간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읽었던지라 요즘 양장본이라도 구해볼까 하는데, <드래곤 라자>양장본을 사 모으는 중이라 한참 뒤가 될 것 같습니다. 희대의 악당이자 해적 단장인 ‘키 드레이번‘은 타인의 거울처럼 타인을 대합니다. 누군가가 왕이 되고자 한다면 왕의 모습을, 사랑을 원한다면 사랑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을 뒤로하며 초탈한 자세를 보여주는 그에게 홀딱 반해서 그처럼 살아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이영도씨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작가 한 사람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로 중남미 문학을 일찍 접하기는 했지만 국내 문학에도 관심이 없어 해외문학을 접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 최근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보고서 환상적 리얼리즘에 대해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충격적이고도 현실적인 묘사와 날카로운 객관적 서술에 기겁했습니다. 번역 투의 문장에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의 대화와 서술형식은 이후 깽깽이가 생산하는 모든 텍스트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백하건데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 건 사라마구의 영향을 받은 탓입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남자들에게> 말고는 모두 어릴 적부터 집에 있던 책들이었고, 그저 좋아서 한 작가의 책을 사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나들이 때에 <눈 뜬 자들의 도시>와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를 모두 사왔습니다. 기대가 크면 으레 실망도 큰 법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만 기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군요. 리얼리즘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원래 소설과 같은 형식의 텍스트는 잘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구회 말 투아웃>을 계기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써봄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출판을 결정한 이상 더 나은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도록 매진해야겠죠. 사라마구의 소설을 읽는 과정은 리얼리즘적 사고를 따라가려는 공부의 일환입니다.
그 외에는 이탈리아에 대한 환상을 품게 해준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도시 이야기>가 있겠군요.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에 대한 책인데 초등학교시절 머릿속으로 그리며 티비와 사진으로 보아온 베네치아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 역시 베네치아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작용했겠죠. 시오노 나나미는 베네치아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 주었고 베네치아에 대한 환상은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향한 아련한 동경을 품게 해주었습니다. <1000유로 세대>를 통해 만난 이탈리아의 현실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환상을 통해 자라왔고 디자이너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꿈이 이루어지는지 아닌지는 스물두 해를 살아오는 동안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타인의 믿음과 주장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스스로는 경험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에 이탈리아에 대한 환상을 꼭 한번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4. 한 '문단'으로 스스로를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보여주기에 한 문단은 긴 것이 아니겠죠?
(단, 공지사항에 나와있듯이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들은 피해주시길 부탁드려요. 물론, 입주 신청서를 내기 전에 공지사항은 꼭 읽어보셨겠죠?)
A.
평소 ‘나’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서도 단어를 자제하는 것은 타인에게 왜곡된 ‘나’를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개인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텍스트를 통해 엄청난 한계에 부딪힙니다. 이는 아직 부족해서 일수도, 텍스트의 힘을 완벽히 사용할 줄 몰라서 일수도 있겠죠. 그동안 타인에게 자아를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본래 전하려던 자신과는 다른 모습으로 타인에게 비추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보여주지 않으렵니다. 앞으로 생산될 텍스트를 통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요.
5. 당신이 생각하는 책마을은 어떤 모습인지, 당신이 책마을에서 무엇을 만나고 싶은지 이야기해주세요.
A.
다양한 공부를 해온 이들이 때로는 휴식하고 때로는 대화하는 광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상주하는 마을이나 주거의 형태가 아닌 쉽게 오갈 수 있는 광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끌벅적하게 한 쪽에서는 박수영과 신학수의 <우월성 논쟁>에서처럼 철학과 과학이 논리적으로 맞부딪히며, 송기화는 사람들을 불러놓고 시시콜콜한 옛날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김민규는 경제를 논하며 자본주의와 새로운 자본주의를 칠판에 연구하고, 이석재는 좌중 앞에서 세계사를 강의하고, 깽깽이는 광장을 뛰어다니며 왈왈 짖어대는 시끌벅적한 광장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멱살을 잡고, 술을 퍼마시고, 시대와 현실을 비판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광장이 아닙니다. 희망을 노래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대화하며 생산적 대화를 나누는 광장이기를 바랍니다.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음을 역사가 증명해 왔습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 또한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매번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살지만 우리 중 몇몇은 별을 바라본다.’ 현실은 이십대를 88만원 세대라 부르기 시작했고 우리는 짱돌을 들지 못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하지 못하며 윗세대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각자의 유토피아는 모두 다릅니다. 우리의 책마을도 모두 다를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책마을이 더 나은 우리가 될 수 있는 도움이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노력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지고 있습니다.
Bye. By my yesterday.
6. 여기까지 쓰면서 책마을에 당신을 보여주셨다면,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야말로 가입‘인사’를 써주세요. 뭐든 좋습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써주세요.
A.
다시 인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무준입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15:23
병장 김용준
조회0에 보는 이 짜릿한 쾌감!은 역시 좋군요. 후후.
덧을 처음으로 남기고싶은 마음에 먼저 덧을 답니다.
이제 무준씨의 가입인사를 읽어야죠. 흐흐. 2009-02-12
11:28:15
책마을
아, 왠지 눈물나네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2009-02-12
11:29:51
상병 구진근
조회수 0이라는 말은 제가 제일 먼저 열어봤다는 소리겠죠? 핫.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드래곤라자라고 하니.. 이영도라는 작가가 한 말이 생각나네요.
글을 쓰고 난 뒤 그 글의 주인은 없다. 그 글을 썼던사람도 그 글의 주인은 아니다.
쓰고 난 후의 글은 그 글 그 자체만이 남을 뿐이다.
그 글을 읽고 어떤 의도로 받아들이든 그것은 작가와의 의도한 바와 다르더라도 그것으로 무어라고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읽는 책에 누군가가 개입하여 이것은 이런 의도라고 설명하는 작가가 있다면 자신은 그 책을 읽지 않겠다.
이런식으로 말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어찌되었든, 다시한번 말합니다. 환영합니다. 2009-02-12
11:29:55
일병 송기화
그래요, 송기화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늘어놓을겁니다.
그런데 김무준씨는 신화이야기 안해주나요? 그거 기다리고 있는데.
또다시 반갑습니다. 무준씨. 2009-02-12
11:30:52
병장 박정순
별것도 아닌 제가 두팔 벌려 환영하고 싶네요.
기화님/ 팬이에요. 2009-02-12
11:57:22
상병 윤영준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데요.
또다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언제나 변합없는 무준씨을 위하여. 2009-02-12
12:09:15
상병 이동열
<공지로> 새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여담으로, 저역시 비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란 말을 좋아합니다. 이말을 접한 것은 이우혁씨의 퇴마록 덕분이었지요. 그뒤로 늘 마음에 담아둔 말인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그것도 무준님의 글에서 만나게 되어 더욱- 무준님이 어떤사람인지 직접 만나보고 싶어집니다. 이글은 주민탐방 저리가라군요.(웃음) 감사해요. 그리고 다시금 반가워요. 2009-02-12
12:11:04
상병 이석재
이석재는 좌중 앞에서 세계사를 강의하고,
깔깔, 전 역시 이게 어울려요. 하지만 새로운 시도도 재밌는 법이지요. 낄낄. -공지로 2009-02-12
12:33:55
일병 조영수
감회가 새롭네요.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 보여주실 것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파이팅!! 2009-02-12
13:42:22
병장 홍석기
이 글을 읽고, 이렇게 리플을 달기 위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 동안,
유토피아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군요....라는 답글을 달려다가
질기게도 나돌아다니는 견상사와 같은 깽깽이의 행적들이 문득 생각나는 바람에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이제 이런 거, 식상해요. 좀 참신한 방법으로 괴롭혀 달란 말이에요.
이런, 내 문장이 더 식상해 보인다. 나는 어떻게 그의 인사를 받아줄 것인가. 썼다, 지운다, 썼다, 지웠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초침 소리가 나를 옥죄어 온다. 우리들은, 여기까지인가. 그런데, 문득
흐흐 도대체 왜 무준씨 글만 보면 릴레이 본능이 살아나는 것일까.....나.
안녕하세요. 홍석기입니다. 리시브는 맡겨 주세요. 여전히 식상하긴 하지만. 2009-02-12
15:25:29
일병 한선덕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2009-02-12
15:58:00
병장 김용준
흠...무준씨의 주민탐방에서 몰랐던 부분을 매꿔주는 글이군요.
멋지네요! 아름답습니다!
다시 한 번 반갑습니다.(웃음) 2009-02-12
16:23:26
병장 김민규
차마 쉽게 리플을 달 수 없어 다시 읽고 남깁니다.
고맙습니다. <공지로> 2009-02-12
17:42:37
병장 김민규
그나저나 책마을의 경제학자는 동욱님이나 예찬님이 우선적으로 거론되어야 할 일입니다. 저는 그냥 막창이나 구울라요.
아니면 666 삐에로 타령이나 하며 침상을 뒹굴든지. 낄낄낄 2009-02-12
17:44:14
병장 김무준
신화이야기는 기존에 쓰던 아이디어박스를 집에다 모셔놓은 관계로 일단 보류입니다. 다시 원문이 수록되어 있는 책을 찾아 빠른 시일 내로 작성할 계획에 있습니다. 이번 달 안으로는 마무리 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09-02-12
18:43:26
병장 김무준
그나저나 대체 뭐가 고맙다는 건지... 어흠. 2009-02-12
18:44:43
병장 정병훈
이사람, 크크크 2009-02-12
19:34:53
일병 김유현
작고, 끈끈하며, 시끄럽고, 공부하는 이들의 휴식터이자 광장, 이것이 이 마을의 지향점이자 바라마지 않는 모습이겠지요. 죄송하고, 또 고마워요. 2009-02-13
16:02:10
일병 김유현
덧글 하나 다는데 무슨 방해가 이리 많은지. 그래서 하나 빼먹었네요. <공지로> 2009-02-13
16:04:29
책마을
전역인사때문에 부득이하게 내립니다. 이해해주세요! 2009-02-15
23:26:05
병장 김무준
별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