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재활용  
병장 김무준   2009-04-28 22:54:02, 조회: 157, 추천:0 

유일하게 절친한 정규직 직원의 도움을 받아 우체국에 다녀왔다. 마감에 아슬아슬하게 원고를 붙일 수 있었다. 

며칠 동안 원고의 자간을 수정하고, 롯데 관계자가 요구한 대로 라이센스에 문제가 없도록 텍스트를 대폭 수정했다. 열두 시간 쯤 걸리지 않았나 싶다. 대화형식만큼은 죽어도 고치기가 싫어 그대로 두었는데 걱정이 많다. 작년 십이월 경부터 시작된 공모전에는 수백의 원고가 폭탄처럼 쏟아졌을 테고, 예심에서 단 스무 편만이 걸러지니 어쩌면 더럽게 보일 텍스트가 예심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을까 근심이 앞선다. 심사위원 대표를 맡은 이외수씨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꼭 필요했던 공모전이 탄생했다. 심사 중점은 상상력을 부여하여 이야기를 창의성 있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스토리라인은 참신할지언정 이렇다 할 환상적인 메리트가 없으니 이것 또한 걱정거리다. 그래서 별 기대는 하지 않는 중이다.

원고를 붙여놓고 인터넷을 뒤지는데 엠비씨의 새로운 주말 드라마로 이천구 외인구단이 방영된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현세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새롭게 재구성한다는데, 기사를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노리고 손가락을 놀려대지는 않았지만 내심 야구라는 소재가 굉장히 트렌디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오월 초부터 야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온다니 뭔가 씁쓸했다. 이번 공모전의 모토가 원 소스 멀티유즈를 위한 원천 컨텐츠 확보에 있는데 이래서야 원.

최근 옛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외인구단은 만화로 탄생한 후에 영화화도 되었었고 세월이 지나 이제는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진다. 얼마 전에는 아키라 토리야마의 드래곤볼이 영화화되었다. 트랜스포머의 속편이 나오며 프라다와 함께 손잡고 대규모 마케팅 전략을 편다는 거야 유명한 이야기고, 곧 터미네이터의 속편도 개봉하는데다 헐리우드에서는 이미 장화홍련을 비롯 수편의 한국영화를 리메이크하는 중이다. 영화판에서는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새로운 컨텐츠를 발굴하는 대신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작품들로 수익을 뽑아내는 게 추세라 해석한다. (이거야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원더걸스가 복고의 힘을 타고 노바디 열풍을 가져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손담비가 디스코풍 의상을 입고 토요일 밤에를 외치며 왕좌에 올랐다. 노라조는 내도소에서, 아주 대놓고 원더걸스의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했고. 이은미의 애인있어요는 적지 않은 가수들이 불러댔다. 성진우는 태진아 핑계를 대며 트로트 가수로 다시 태어났다.

삼성에서는 꽃보다 남자의 인기에 힘입어 뚜껑 몇 개 끼워주는 식으로 햅틱 팝을 시장에 내놓았다. 모토로라에서도 베컴폰 후속모델로 브이텐을 선보였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 해도) 이뿐이랴. 케이블 채널을 돌리면 무려 현대판 둘리가 출현하고 카툰네트워크에서는 깔끔해진 톰과 제리가 나온다! 무시무시한 바람이다.

패션에서도 봄바람은 거세게 불어 닥친다.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가죽제품들과 데님(청바지) 의류가 올봄 트렌드로 제시된다. 돌체 앤 가바나나 아르마니에서 파자마 형태의 수트를 내놓거나 말거나 프라다와 랑방, 준야 와타나베에서는 올 봄/가을 컬렉션에서 데님을 주 소재로 선택했다. 아무리 패션이 문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반영하고 또한 주기적으로 순환한다지만. 문화 전체에 걸친 재활용의 바람은 그칠 줄을 모른다.

조류독감에 이어 돼지 인플루엔자까지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병했다. 질병도 트렌드를 타는 걸까. 

다방면에 걸친 재탕의 흐름은 많은 이들이 추측하듯 지속된 경기침체 때문이 아닐까. 밖이었다면 이게 다 이모씨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으리라. 이유야 어찌되었건 시장은 사골국물 우려내듯 육수를 뽑고 또 뽑는다. 경기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이런 흐름이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근데 왜 경제는 과거의 찬란했던 시절로 회귀하지 않는 걸까. 쩝.

이 문화라는 것이 굴러가는 모양새를 보면 참 재미있다. 문화 역시 사회에서 발생하는지라 어떤 형질을 공유하고 있기에 그런 거겠지만. 한편으로는 참 슬프다.

실러라는 양반은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어서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며,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있다 씨부렁거렸다. 다들 정지해버린 과거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것처럼 보여서 슬프다.

감기가 낫질 않아서 슬픈 건 아니고.



뱀발. 출판사랑 이야기가 쫑나서 슬픈 건 더더욱 아닙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3:40 

 

병장 최동준 
  시대에 덧붙임>덧붙임>덧붙임 이라는게 지금이라지만 그 사이클이 왠지모르게 눈에 띄게 줄어드는 느낌...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이 빨리가서 사이클이 점점 줄어들어 보이는걸지도 모르지만. 

으헤헹. 세상을 발전시키는건, 리사이클에 결국 지쳐서 생기는 지루함이 아닐까 합니다. 2009-04-29
00:01:09
  

 

병장 홍승표 
  유행은 돌고 도는거니까요...(웃음) 
아..그리고 본문중에 있는 '애인있어요' 라는 노래는 이은미씨 노래죠.. 
이윤미씨는 작곡가 주영훈씨의 아내 되시는분의 이름...후훗 2009-04-29
08:11:41
  

 

병장 김무준 
  수정했습니다. 이름이 헷갈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