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잠에 취해 쓴 이야기  
병장 조현식   2008-07-22 10:17:43, 조회: 412, 추천:6 

어느 남자가 깊은 잠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그는 유명한 철학자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맨 처음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이 나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자는 단 한마디로 플라톤을 찍 소리 못하게 눌러주었다.

다른 철학자들과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나와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한 마디만 하면 그들은 얼굴을 붉히면서 종종걸음으로 저 꿈의 뒤편,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흥분한 남자는 자신이 꿈에서 한 말을 반드시 깨어나서도 써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그 한 마디를 되뇌며 옆의 종이에다 자신의 말을 휘갈겨 썼다. 

‘이 한 마디라면 내일부터 철학의 역사는 내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남자는 만족하며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깬 남자는 제일 먼저 자신이 한 밤중에 휘갈겨 놓은 종이를 급히 꺼내들었다. 거기에 몇 천년간의 철학사를 바꿀 한 마디가 담겨있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는 괴발개발 갈겨쓴 하나의 짧은 문장이 써 있었다.


「그건 니 생각일 뿐이지」



살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글과 스쳐지나간 음악과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그림이 유난히 강렬하게 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짱구 머리 한 구석에 자리를 잡을 때가 있다. 이 짧은 글의 출처나, 내가 언제 이 글을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어린 시절 봤던 이 글은 그때부터 나의 생각의 척수 같은 것이 되었다. 

니 생각일 뿐이지 라는 말에는 이미 토의가 없다. 교류도 없다.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그쪽은 1년 보냈는데 나는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나갔다고 우긴다면,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 해줄 조력자가 없는 1:1 맞장에서는 아예 대화가 시작도 되지 않아버린다. 나는 이러한 말을 매우 경계하며 살아왔다. 세상 사람이 60억인데, 그렇다면 세상은 하나, 지구촌 한 가족이 아니라 60억 개의 세상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야구를 좋아하고, 사진을 좋아하고, 공군에 온 공군병장 조현식은 세상에 나 하나다. (사람 찾기를 해도 나 하나다) 만약 인도에 크리켓을 좋아하고, 정체모를 비트의 인도가수의 노래를 유행가로 아는 사람 樗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에게 나는 세상 밖의 인간이다. 

이렇게 봤을 때, 楮“ 야구란 운동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운동이고, 야구선수나 외계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반대로 나에게 크리켓이란 건 TV에서 보긴 봤는데 과연 그것이 직접 하는 운동인지, 아니면 TV 스포츠하이라이트에만 나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 틀어놓는 영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너무 멀리 갔다고 생각하는가? 멀리 가지 않아도, 인트라넷에서 나오는 각종 연애물(다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은 매우 믿기 힘들지만, 그런 사랑방식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래 달릴 리플은 욕 밖에 없다. 나나, 樗犬, 각종 연애물의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다 사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게 확실하다면, 그것은 ‘니 생각’ 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들어주어야 할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이롭다. 인도의 杵씩 별 볼일 없는 남의 연애이야기도 그런데, 이 곳의 글은 더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는가? 존중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사람의 생각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 사람이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내 것처럼 변환시켜 (내가 아는 사람 이야기인데... 라고 시작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내 이야기라고 생각해버린다) 써먹어 볼 수도 있다. 그래서, 60억명의 사람이 있는 이상 60억개의 이야기가 있고 최소 240억개 이상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며, 300억개가 넘는 슬픈 이야기가 존재하고, 세상은 계속되어간다. 이 때 위와 같이 ‘어쩌라고’ 마인드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머릿속에서 데미안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이야기는 스치듯 안녕일 뿐이고, 영원히 1인칭주인공시점에서 몬스터나 잡으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남의 생각에 대해 비난적인 태도를 가지며 가시가 3만개 돋친 말이나 해대다가 도대체 내 생각은 말도 못해보고 셀프과시 끝에, 위의 이야기처럼 꿈에서 깨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건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건지 웃기려는 건지 애매할뿐더러, 봐주는 사람도 없다는 데에서 더욱 슬프다.

그래서, 이런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올 무한 ‘써먹을거리’들을 놓치고 싶지 않으면 저 이야기를 웃어넘기지 말자. 요새 현실적이고 경제관념이 투철한 책이 인기라고 하니 하는 말이다. 내가 볼 때 이것도 경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런 웃어넘기는 이야기들을 이런 저런 대회에다 하나 둘 씩 내서 소기의 효과를 많이 보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 적어도 책마을의 주민이라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이나 사상같은 건 몰라도 뻔뻔스럽게 이름 적어가면서 내 글의 소재 정도로 써먹는 담대한 성품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귀랑 눈 닫고 ‘니 생각일 뿐이야’ 라고 말하는 건. 다시 생각해봐도 영 아니다. 







-이 두서없는 글에 대한 해명


남자와 여자가 장례차에 올랐다. 남자는 동생을 잃었고, 여자는 남편을 잃었다. 가까스로 장례식을 마친 둘은 슬픔에 잠겨 차 안에서 말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순간 여자가 분노에 찬 얼굴로 남자의 얼굴을 때렸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죠? 너무 혼란스러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이 상황에서...저는 당신의 제수에요. 아무리 그이가 죽었다지만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제 허벅지를 더듬는게 말이 되나요? ”

그러자 남자가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나도 내 동생을 잃어 너무 혼란스럽고 슬픈 상태인데, 내 몸이 뭘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

                                                                                            - 오쇼 라즈니쉬 「배꼽」 중에서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4:05:17 

 

병장 전승원 
  작문에 대한 격의 차이에 낙담하고 있습니다. 2008-07-22
10:22:50
  

 

병장 이동석 
  그렇습니까? 
배꼽! 

오늘도 조현식님의 고갱이를 후르륵 쩝쩝 맛있는 라면. 2008-07-22
10:30:46
 

 

일병 오창희 
  저희집에도 배꼽이라는 책 있는데 완전 누렇게 營윱求. 
제가 태어나기전에 사셨다는데... 2008-07-22
10:33:39
  

 

일병 김세현 
  이 세계에는 60억개의 슬픔이 있다...?라는 글귀를 어디서 본 기억이 나느데 가물 가물.. 
삶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같아요 (웃음) 2008-07-22
11:00:09
  

 

병장 이재민 
  그래서 결론은 
하이브리드 
잉? 2008-07-22
11:40:22
  

 

병장 이태형 
  허허. 
뭐라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역시 필력이 대단하세요. 2008-08-14
20:4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