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일상과 비 일상 사이에서 세상을 꿈꾸며  
병장 김민규  [Homepage]  2008-12-19 03:19:11, 조회: 186, 추천:2 

눈앞에 일렁이던 모든 것들이 잦아들어간다. 죽어야 다시 살 수 있고, 그래야만 수직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했던가. 이제는 모든 것이 진부하고 지루하게 느껴져 더 이상 지속할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내게 있어서, 현실의 감각으로 다가오는 이 세계는 피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다.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을 버리고 뛰내리는 것이다. 죽자. 그래야 내가 살고, 너도 살 테니.

드르렁, 쿨, 쿨.

꿈을 꾸었다. 나는 그와 함께 있었다. 서울 시내의 어느 백화점, 화려한 진열품들을 좌우로 두고 걸으며 나는 이 일상 속 非 일상에 소스라쳤다. 길거리로 나서 차들이 빵빵거리며 헤드라이트를 부라리며 지나가는데, 분명 너무도 익숙해야 할 그 장면이, 어느 샌가 내게는 멀기만 한 민간 세계의 모습이 되었다는 점을 자각했다.
언젠가 겪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맞다. 의정부 삼공육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이틀 밤을 보내고 입대 장정 신분으로 어색하기만 하던 <민간 버스>에 올라 철원을 향했을 때, 창밖으로 펼쳐진 <민간 세계>의 모습에 아, 이런 세상도 있었던가, 라며 생소해 하던 내가 떠오른 탓이다. 삼일 전만 해도 당연하게 걸어 다니던 그 거리들이 그렇게 이상해 보일 수가 없었다.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닌데 당연하던 일상은 비 일상의 극치가 되어 심지어는 백일설탕을 받을 때 까지도 어쩌다 눈에 밟힐 때 마다 지옥 같은 느낌을 선사했던 것이다.
생각의 나라에는 길이 없어서 꿈은 제멋대로 흘러갔다. 주위 배경은 몇 번이 바뀌고 나는 뭐가 그리 바쁜지 무언가를 계속 찾아다니고 있었다. 비 일상이던 모습들은 어느 샌가 친근한 모양으로 다가와 내 안에 자리 잡고 익숙한 것들과 조우하며 나는 물들어가고 있다. 그저 지금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던 세계에 다시 돌아와 그 거리를 걷고 있으려니 해방감과 안도감이 속을 가득 채우며 토실토실한 물만두가 된다.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떠들고 그와 이야기하며 그 얼마만의 것인지 모를 감정을 만끽하는데 번개와도 같은 뇌성이 뒷머리를 자극하며 찌릿, 하는 전기 방전이 느껴진다. 아아, 시-바, 맞다, 오늘 복귄데! 시계를 보니 이미 야속하게도 저녁 아홉 시가 되었고 나는 꼼짝없이 미 복귀 신세다. 망했다. 망했어. 이제 다 끝났구나. 허겁지겁 버스에 올라타 미친 듯이 달린다. 아저씨, 제발요, 좀만 더 빨리요, 아아, 이제 난 어떡하면 좋지-

벌컥, 눈을 뜨니 차가운 바닥을 뒹굴며 아아, 아아, 하는 나를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며 지나가는 이들의 상像이 잡힌다. 돌아온 <일상>의 감각은 너무도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것이어서 잠시간 받아들였던 꿈속의 <일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저 멀리 스카이 라이프에서 나오는 브아걸의 ‘어쩌다’가 나의 현실을 일러줄 뿐이다. 천정에는 쌍팔년도 석면 타일이 어설프게 박혀 있고 진열품들이 있던 자리엔 색 바랜 시퍼런 관물대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다. 여기로구나. 다행이다. 아, 정말 다행이야. 미 복귀한 것이 아니어서. 휴....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내가 이 꼴이 됐는지.

오늘이 며칠이고 지금이 몇 시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주섬주섬 밖으로 나서니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같이 일하는 miner님이 없는 날이다. 비정규직인 내가 정규직 행세를 하며 그 자리를 메워 줘야 하는 어쩔 도리 없는 날. 여기저기서 전화와 메일과 서류들이 날아든다. 휙휙휙, 베지터가 기합을 내지르며 던져드는 그 공세에 이 까짓 거 우습다는 듯이 초사이언인 변신을 할 필요도 없이 한 손으로 탁, 탁, 막아낸다. 어쭈, 제법인걸? 베지터는 씩 웃더니 돈대 기리기리 돈대 기리기리를 외친다. 아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덩치만 산만했지 실속은 없던 키다리가 한 손을 앞으로 뻗고 어설픈 팬티를 걸친 채로 날아온다.
그와 힘을 겨루며 팔씨름을 하다가 몇 시간이 지나고 대충 급한 불은 다 끈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이내 허무해진다. 내가 왜 안도감을 느끼고 있지? 내가 없던 지난 60년 동안도 무탈하게 굴러온(아, 서류질의 분야에 한정해서) 조직 아니었던가. 언제부터 나와 관련이 있었다고 그 리그에 끼어들어 내가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나. 나는 잠시 끌려온 비정규직일 뿐인데, 내가 멈춰버리면 산불로 번지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게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져 일상이 뒤틀려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정규직들과 통화를 하고 이런저런 사정 설명을 하고 조율을 하고 있는데, 그냥 아싸리, 밖에서는 하고 싶어도 활성화가 안 되는 <정규직 되기> 스킬을 발동해? 그렇지 않은가. 청년실업 대란에 달러는 오르고 코스피는 반토막 나고, 이 와중에도 개발 좋아하는 헛발질 아저씨는 수맥 운운하며 딴세계 소리를 하고 있고 말이다. 소용돌이쳐 가는 저 불쌍한 비정규직의 고난을 나와는 관계없는 非 일상으로 만들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 있는데 왜 다들 모른 척 거절하고 있는 거지?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도 ‘여기에 있어 다행이야’라고 안도할 정도의 일상이라면, 과감하게 잡아 버리는 것이 평생의 생애 주기를 놓고 봐서도 더 나은 일 아닐까? 

생각의 나라에는 역시 길이 없어서, 가만히 내버려 뒀더니 아주 가관이군. 막돼먹은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다시 일상의 상식으로 돌아와 일기장을 펴고 끄적여 나간다. ‘당신이야 학교도 6666을 나왔고, 이제 막 이곳으로 왔으니 의지에 불타 무엇이고 하고 싶겠지만, 나는 불과 서너 달 후면 나가서 내 삶을 꾸려야 한단 말이오. 청년 실업이네, 경기 침체네 하는데, 무슨 놈의 실전적 어쩌고, 너무 멀게만 들린단 말입니다. 내 이곳에 있으니 어쩔 도리 없이 예는 지켜야겠으나 내 입장도 좀 헤아려 주십시오.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나가서 뒤늦게, 좀 열심히 하다 보니 준비 못 했습니다, 하면 누가 도통 알아는 준답니까. 본질적인 회의감마저 흡수해 누르고 조용히 보내고 있으니, 너무 과한 기대는 마시고, 그저 날 좀 내버려 놓아 주시오’
‘감히 어디서 나불거려!’ 또 망할 놈의 삐에로다. 나의 내밀한 마음의 소리를 듣고는 이곳에서의 <일상의 규범>과 엇나가는 것을 느꼈는지 깊숙하게 태클을 걸며 나자빠지는 것이었다. 어디까지가 일상이고, 어디 부터가 아닌데? 도대체 왜 자꾸만 강요하는 거냐고! ‘저는 제가 살아오던 세계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잠시 머물러갈 룰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라, 말투가 왜 이래. 종결어미를 잘라 내치려고 하는 내 의지와는 달리 규범에의 속박은 너무도 익숙하여 이미 몸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다. 미치겠군.

이 일상의 모든 것들이 진부하고 한심해 참을 수가 없어서 차라리 비 일상을 택한다. 추락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신의 끈을 놓고 한없는 의식의 심연으로 빠져들어 가는데 그 곳에는 내가 있고 동경하고 사모하며 애타게 그리고 찾던 <일상>의 세계가 있다. 비 일상으로 치부되던 가치들은 다시금 생생하게 내 곁으로 다가와 정규의 룰이 된다. 너무 멀리 있어 닿을 수 없던 친구도, 가족도, 내 집도 거기에 있다. 현실에서 도피해 원래 나의 현실로 회귀했으니 내가 무슨 연어도 아니고 무엇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몸에서 떨어져 나간 개구리 옷은 리니지를 하다 잘못 눌러 몸에 붙어버린 저주받은 아이템을 드디어 떼어낸 것처럼 시원하고 다행스럽다.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지가 않다. 영원히 머물러 있을 방법은 없는 걸까? 의지몽이 아닌 이상에야 의식적 고민은 잊혀지고 나는 또 거리를 걸으며 일상이 주는 그 자체의 소소한 기쁨에 환호한다. 그리고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는데, 어느새, 아아 젠장, 또 저녁 아홉 시, 복귀, 아 C8 정말!

내 안의 무질서들을 다스려 질서 있게 하고자 너무 많은 엔트로피를 내뿜어 그대를 힘들게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타협되지 않는 나의 일상과 비 일상 사이의 간극이 멀게만 느껴져 막연하고 막막할 뿐이다. 어떻게 나를 달래고 얼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중에 이런 흔들리는 나를 감지한 몇몇은 다가와 무언가를 일러 주려고 시도한다. 그저 등이나 한 번 쳐 주며 함께 울어 주었으면, 나도 괴롭단 말입니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길이 없는 내면의 갈등은 재크의 콩나물처럼 자라나 저 하늘을 찌르는데 오늘도 여지없는 일상의 하루는 여기까지 성큼 다가와 있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내가 이 꼴이 됐는지.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42:07 

 

상병 김지웅 
  이것 참 이럴 줄은 몰랐어 ♬ 오늘도 난 지쳐 포상만 기다리다 ♪ 
너때문에 눈물 쏙뺀 구닌들 ♬ 그중에 하나가 되기는 싫었어~♩♪ 

그래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저희는 내면의 갈등을 느끼죠, 참, 뭐랄까, 

가지로- 허허허허허 2008-12-19
03:38:14
  

 

병장 이동석 
  꾸울꿀해~ 꿀꿀해~ 꾸울꿀해~ 꿀꿀해~ 다이요트는 난몰라요~ 

난, 집에 가서도 배를 놓치는 꿈을 꾼답니다. 이런 된장. 흑. 2008-12-19
06:38:24
 

 

병장 이재일 
  김민규 병장 글참 잘쓰는것 같습니다.[잘봤어요] 2008-12-19
09:49:51
  

 

병장 이동석 
  이 글에 댓글이 없다니, 뭔가요. 2008-12-19
11:44:28
 

 

병장 김민규 
  ??? 2008-12-19
13:35:03
  

 

상병 김용준 
  일상과 비일상...저는 생각의 차이인 것 같아요. 민규님 입장에서는 환경이 크게 좌우하는 것처럼 보이고요. 환경이 변하니 생각이 변한 것 같네요. 그냥...저 혼자만의 생각이니 아니면 아니라고 울트라 펀치로 응징해주세요. 흐흐. 저도 민규님처럼 느낄 때도 있지만 제가 거부하는 것 같아요. 음...두려움이랄까? 이것들을 비일상으로 받아 들이기엔 아직 제가 어려서 보호본능을 일으키나바요. 흑흑. 

좋은 글 재미있게 읽고 생각하고 갑니다.(웃음) 2008-12-19
14:58:26
  

 

상병 정근영 
  음 
정말 설탕을 나갔다가 복귀한 날의 부대는 참 아늑하죠. 마치 진짜 집에 온 기분처럼..(응?) 
참 아이러니해요, 하루라도 빨리, 그리고 많이(!!) 궁에서 벗어나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막상 나가보면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닌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니.. 
결국은 소속과 신분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좋으나 싫으나 저녁먹기 전까지는 공사직원이니까요. 저녁을 안 먹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사회인 신분이 되는 그 순간부터는, 2년 남짓한 기간의 비일상이 다시 일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아마 그때가 되어야지만, 내 방 내 침대에서 속편하게 두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2008-12-19
15:36:32
  

 

상병 이지훈 
  모두가 자신이 네오이길 바라고 빨간약을 선택하지만 현실은 모두가 사이퍼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 같다랄까요... 2008-12-20
04:2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