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이중개념주의자 이해하기  
병장 정영목   2008-06-29 00:50:05, 조회: 342, 추천:0 

좌측 깜박이에 우회전.

인터넷의 어느 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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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하길, 중도파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주류 입장과 '타협'하거나 양 극단에서 다른 극단 쪽으로 이동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언뜻 들으면 현인의 가르침으로 들리는 이러한 주장은 실제로는 잘 안되거나 엉뚱한 결과를 낳곤 하는데, 이 기현상을 <프레임 전쟁>의 저자 죠지 레이코프가 '이중개념주의자(Biconceptuals)'란 용어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중개념주의는 두뇌의 시각과 신경 계산 기제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진보주의 세계관과 보수주의 세계관은 상호 배타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에는 두 세계관이 나란히 존재하며, 각각 상대편을 신경적으로 억압하고 경험의 여러 다른 영역을 구조화한다.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인 것이나, 진보적인 국내 정책과 보수적인 외교 정책을 동시에 지지하는 것, 시장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면서도 시민적 자유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별로 특이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치적인 이중개념주의자들은 평범하다. 그들 가운데에는 단일 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중개념주의자를 '중도주의자'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중도주의 세계관이란 결코 없으며, 진정한 중도파는 정말로 거의 없다. 참된 중도파는 선형 척도를 찾으며, 그러한 척도에서 중간 입장을 취한다. 학교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지출을 해야 하는가? 많은 지출? 적은 지출? '적당한' 양이 바로 참된 '중도파'가 말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중도는 정치적 이념이 아니다. 서로 다른 전장에서 현저하게 대립하는 두 이념을 사용하는 것도 '중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중개념주의이다."{1:37}

그의 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중도는 없다'인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 정치 스펙트럼을 다룰 때 자주 등장하는 이차원의 선을 생각해봅시다. 양 극단에 극좌파와 극우파가 있고 그 사이에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분포해 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 숫자에 압도된 나머지, 중앙 지역을 하나의 독립된 정치적 영역으로 간주하고 중도파라고 이름 붙이지요. 그리고 여기서부터 소위 '현실론'이란 것이 도출되는데, 사실 이 '중도'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면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려고 하는 이들은 일종의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중심은 어디까지나 저곳이므로 극단에 있는 이들은 현실을 감안하여 자신들의 이상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당신이 '진지하게' 그 중도파가 되어 보면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대부분의 현안이 평균값이 아닌, 예/아니오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에 분노하겠지요. 여기서 다시 한 번 레이코프의 말을 들어봅시다.

"사형은 존재해야 하는가? 당신은 어떤 사람을 오직 조금만 죽이거나 중간 정도만 죽일 수 없다. 낙태는 합법적이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중도적으로 낙태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살을 도와주는 것은? 중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삼진아웃은? 오진아웃을 선택하는 것이 중도인가? 북극야생생물 국가 보호 지역에서의 군사 훈련은? 심지어 '적당한' 훈련조차도 훈련이다."{1:39}

자, 만약 당신이 환경 파괴에 대한 반대 의사를 대중들에게 설득하려고 할 때, 개발주의자들의 의견을 절충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레이코프에 따르면,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 파괴를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일정한 조건에 따라 개발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은 결국 개발에 찬성한다는 소리가 됩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세요. "우리의 모든 행동은 '지속가능성'과 '생태다양성'을 고려야 한다". 자, 뭔가 차이를 느낄 수 있나요? 전자의 경우엔 자신만의 프레임이 없습니다. '필요불가결한 개발'이라는 상대방의 프레임 안에서 행동하고 그저 그것을 흠집낼 뿐이죠. 게다가 상대를 있지도 않은 중심으로 끌고 가려다가 되려 자신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반면 후자의 경우, 상대방의 프레임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로 이슈를 다룹니다. 이는 아주 미묘한 차이지만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볼 때,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대단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여기까지 전, 어설픈 타협이 상대의 프레임을 강화시킬 뿐이라는 레이코프의 주장에 십분 동의합니다. 그러나 다소 의문이 있습니다. 이중개념주의가 함의하는 바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확고하게 지키는 전략을 취하면, 토론이 마치 서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된다는 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원자력을 개발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대체 에너지에 더 투자해야 한다"라고 응수하면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옳은 대처이긴 하지만...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네요. 여기에 뭔가 더 심오한 매커니즘이 있는지 없는지. 일단 지금은 "남을 깍아 내리는 네거티브 전략보단 자신을 강화시키는 포지티브 전략이 더 유효하다"라고만 이해해 두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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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 죠지 레이코프, 『프레임 전쟁』, 창비, 2007.

LICENSE.

2008. Gaiahead. Published by Creative Common License. Attribution-Noncommercial-No Derivative Works.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29:31 

 

병장 이동석 
  이 느즌시간에 무서운 꾸믈 꾸어서 책마을 왔더니 
아주 쏠쏠한 글이. 

그러나 프레임의 외연이 상대방의 외연에 맞닿아있다거나 심지어 외연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싶어 예시를 들어보려고 했더니 

이거 참 딱히 뭐가 없군요. 
(프레임에 대한 이야기 들을때마다 생각하곤 하는데) 

무서운 꾸미나 마저 꿔야겠습니다. 2008-06-29
02:37:19
 

 

상병 양순호 
  이중개념주의자라는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걸까요? 
이 글은 '프레임 전쟁'을 읽고 나서 그 안에 있는 
이중개념주의자에 대해서 쓰신 글 같은데. 

즉, 인간이란 여느 누구나 이중개념주의자일수도 있다 이거일까요? 

진보주의 세계관과 보수주의 세계관이 상호 배타적이나, 
이 두가지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하나는 것인걸까요. 2008-06-29
08:52:26
  

 

상병 박찬걸 
  어찌되었건 인간은 뭔지는 모르지만 어떠한 자신의 신념에 의해 
이중개념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물론 그것이 어떠한 단순한 이유-자신의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에 의해 그럴수도 있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자기 합리화에 의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이 진보적이다, 보수적이다 판단하기가 힘든것이 
전문가 집단-물론 꼭 그건 아니지만-은 대부분 자신들의 생각이 굳어져 있어서 
완벽히 다른 사안에 대해 진보적, 보수적 판단 정확이 내리지만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치여 제대로 사안을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여기선 언론이 될 수도 있음-의 판단을 보고 판단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들의 말이 어디가 더 현실적인지를 판단한 후에 자신의 신념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즉, 최근의 대세는 진보, 보수가 딱 나뉘기 보다는 
그냥 대세를 따르는-의지가 없는-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죠. 2008-06-29
19:31:51
  

 

상병 이태형 
  중도가 과연 없는건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보면 언어유희가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도. 
아직 제가 소화시키기엔 벅찬 주제인데요 이거(웃음) 

대세를 따르는-의지가 없는-그런 사람들 
맞아요, 너무 많죠. 
심지어 저도 그러니까(책임지기 싫어서) 2008-06-30
07:14:21
  

 

병장 정영목 
  레이코프의 말은 '거의 모두(99% 이상)'가 이중개념주의자라는 것입니다. 

인지언어학적인 관점에서, "힘은 곧 무력"이란 말을 A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A에게 '보수적 프레임(엄격한 아버지 모델)'이 뇌 구조 속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는군요. 반면, "힘은 합의를 이끌에 내는 능력'이란 말은 '진보적 프레임(자상한 부모 모델)'을 반증하구요. 

다들, 두 주장 모두 이해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직관적'으로. 요는 그 직관적인 판단을 결정하는 주체가 무엇이냐는 건데, 레이코프는 바로 그것을 프레임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이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있는 그 프레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거구요. 2008-06-30
08:43:57
  

 

상병 송승관 
  노 전 대통령이 스치는군요. 하하 잘 읽었습니다 2008-06-30
09:40:13
  

 

병장 정영목 
  송승관 님// 

그 건에 대한 유명한 어구. "좌측 깜박이에 우회전". 과연 좌측 깜박이였냐에 대해선 완전히 동감하진 않지만, 여튼. 더 깊은 논의는 위험하므로 생략하겠습니다. 2008-06-30
12:29:23
  

 

병장 이동석 
  前 대통령인데도 상관있을까요? 저도 한창쓰다 올릴랬더니 
정영목님 댓글보고 움찔. 

어쨌거나 프레임이라는 말이 가지는 말맛이 뭔가 정형적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실제의 무정형적인 관념을 나타내기엔 뭔가 동떨어진 감도 없잖아 있습니다. 2008-06-30
13:1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