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이웃집 눌헌씨  
병장 김무준   2009-02-16 15:05:37, 조회: 271, 추천:0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전화 즉시 가입시켜 드리겠습니다. 암 진단 시 최고 일억을 보장해 드리는 무결점 디 오 지 책임보험. 저 탤런트 이순재도 가입했습니다. 월 삼만 구천 팔백 원에 만나는 고품격 보험 서비스. 가입 즉시 사고를 당하시더라도 삼천만원 지급. 팔십 퍼센트 이상 후유장애 발생 시에도 일억…

티비에는 시끄러운 보험광고가 흐른다. 한숨을 쉬고 밥상을 치웠다. 물도 넘어가질 않는다. 요즘 티비에는 각종 보험광고가 판을 치고 있다. 너무도 쉽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보험회사와 유명인들을 보며 과연 죽음이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인가를 묻는다. 내게는 보험광고나 사채광고나 거기서 거기처럼 느껴진다. 사후의 일들을 대비해 미리 이자를 넣는 사채. 넘치는 보험이 고리대금과 무엇이 다를까.

며칠 전 건강검진을 받았다. 결혼 후 아이를 여섯이나 키우고 나서 간 병원이니 남들보다 늦었다면 늦은 건강검진이었다. 일이 바쁜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사설 경비였다. 경비일이라는 게 쉬워 보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고되고 불규칙적이다. 퇴직 후에야 시간이 났다. 모시던 어른이 이제 나도 건강을 챙겨야 하지 않겠냐며 병원을 소개해줬다. 차라리 가지 말 것을 그랬다. 그래. 그렇고 그런 시시껄렁한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놓을 것을 그랬다며 후회하는 중이다.

굉장히 희귀한 병인데 가끔 걸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장병의 일종인데 현재는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습니다. 이게 발견하기 전에는 아무런 징조도 없다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이어지는 병이라… 설사 조기에 발견한다 해도 치사율이 백 프로에 가까우니… 허허. 차라리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의사양반은 웃으며 죽음을 선고했다.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생을 살아오면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다분히 존재함을 깨달아왔다. 내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적은 것도 아니다. 그동안 친구들의 부음 소식을 가끔 들어왔다. 하지만 이게 내 일이 되리라고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곧 손자 손녀들 재롱도 봐야하고, 마누라랑 알콩달콩 남은여생을 보내려고 했거늘. 이래서 티비는 보험광고를 죽어라 내보내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이니까.

답답함에 물을 마시려는데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쥐어짜는 것 같은 고통이 심장에 전해졌다. 괴한과 싸우다 가슴을 수십 차례 차였을 때처럼 묵직한 아픔이 전해졌다. 아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햇빛. 햇빛이 보고 싶다. 마루를 기고 기어서 창가로 향했다. 따스한 빛이 내리쬔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서 죽을 수는 없다. 살려줘. 살려줘…

신이 나의 말을 들은 걸까. 고통은 잔잔해졌다.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의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느꼈다. 창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갔다. 문득 어린 시절 뛰놀던 뒷동산이 그리워졌다. 이제는 멀어진 친구와 뛰놀던 그 동산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힘들게 걷고 또 걸었다. 동네가, 세상이, 정겨웠던 것들이 많이 변해있음을 느꼈다. 아내도, 자식들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산 아래서 내려다보던 마을이 그리웠을 뿐이다. 등산로를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친구와 함께 쉬던 나무는 뿌리 채 뽑혀나갔고, 그 자리에는 자그마한 정자가 들어서 있었다. 눈물이 솟아올랐다.

쿵. 심장에 뜨거운 무언가가 흘렀다. 쿵. 지나간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쿵.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저 마을이. 쿵. 모시던 어르신의 너털웃음이. 쿵. 나와 마주쳐 수줍게 미소 짓던 아내가 떠올랐다. 쿵. 쏟아지는 고통에 쓰러지고 말았다. 쿵. 내가 지키던 곳이. 쿵. 여섯 아들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쿵. 세상이 하얗게 밝아짐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나는 죽었다.










엄마 여기와 봐, 강아지가 누워있어!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15:43 

 

병장 김무준 
  쩝. 2009-02-16
15:07:53
  

 

상병 최한들 
  반전이군요. 꽤나 흥미로운 주제이긴 한데, 
어딘가 안맞는것 같아요. 

너무 어거지를 부린다. 하는느낌이랄까... 꼭 반전을 노리지 않더라도 중간부까지의 느낌은 참 좋은데, 중간 이후로 흐지부지 해지는 것 같네요. 

아마도 자신의 예정된 죽음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자마자, 바로 그 죽음이 들이닥치니, 조미료 맛이 너무 튀는 것 같습니다. 고의적인 것은 좋아하지 않아요. 2009-02-16
15:23:28
  

 

병장 정병훈 
  낄낄낄- 2009-02-16
15:25:14
  

 

병장 김무준 
  손가락 놀리다보니 생각하기가 귀찮아져서 후딱 마무리지었습니다. 낄낄. 2009-02-16
15:27:29
  

 

병장 김민규 
  그러게 제때제때 심장사상충 주사를 맞아야죠. 2009-02-16
15:38:30
  

 

일병 송기화 
  낄낄낄. 안그래도 심장사상충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해 복날이 6월이라 준이라고 이름붙였던 누렁이가 생각나요.(멍) 2009-02-16
15:45:19
  

 

상병 김준 
  강아지 이름이 저랑 같네요(울음) 2009-02-16
16:10:14
  

 

병장 정병훈 
  (↑)김무준씨, 이름 한자 뺀다고 못 알아보지 않습니다. 낄낄낄- 

와하하하하 2009-02-16
16:19:16
  

 

일병 한영빈 
  병훈씨 낄낄 센스만점 2009-02-16
16:25:18
  

 

병장 김무준 
  이건 뭔 즈질 개그를 하고 계십니까. 2009-02-16
16:25:31
  

 

병장 김민규 
  이쯤되면 병장 김이 출동할 때인가. 2009-02-16
16:30:11
  

 

병장 홍석기 
  병! 2009-02-16
16:34:23
  

 

일병 권홍목 
  장! 2009-02-16
16:41:47
  

 

병장 김무준 
  김! 2009-02-16
16:51:39
  

 

상병 손근애 
  민! 2009-02-16
17:29:33
  

 

병장 정병훈 
  규! 2009-02-16
17:34:46
  

 

병장 정병훈 
  응? 크크크 2009-02-16
17:34:57
  

 

일병 송기화 
  깔깔깔깔. 
역시 모두 알고있군요.(뭘?) 
민규님 우리는 속지 않아요. 아 크크크크크크크크큭 2009-02-16
17:50:30
  

 

상병 손근애 
  계획대로다.(씨익) 2009-02-16
17:59:56
  

 

병장 김민규 
  맙소사 2009-02-16
18:19:27
  

 

병장 이한준 
  놀라운 책마을 주민분들의 팀플레이에 감탄마저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