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이상  
상병 주해성   2008-05-22 14:29:19, 조회: 223, 추천:0 

이상

환골탈태를 끝내고 향긋한 매연을 마신 후에야 이 세계에 말을 붙일 수 있었다. 5월의 찬란한 싱그러움은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데, 외로운 친구들아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한걸음에 달려 나와 육군 예비역들의 짬내나는 이야기 판 좀 들어보자.
없는 국번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삐-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삐-
“수업중이야” 뚝-

혼자 돌아다닐 곳도 많거니와, 강제적인 텔레포트시전까지는 항상 짧게만 느껴지기에 가방을 둘러매었다. 1년 만에 매어보는 가방이라 한들 요로코롬한 무게감은 사회에 있을 적과 다르지 않을 탠데,  도스토예프스키를 위시한 오만과 자위적 표상의 결정체 역할을 했던 그것들과 비슷한 무게감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2007 이상문학상 작품집.’

기뻤다. 분명 내돈주고 산 책이었지만, 1년간 눈에 보이지 않아 기억 속에서 흐려졌던 이 책의 존재가 어느 순간 내 앞에 툭 놓여졌을때 나는 이 책에 강한 운명적 끌림을 느꼈다. 1년 전에 내가 오늘 나에게 준 선물. 주는 사람이 꽁 했던 기분이었다 하지만 받기만 잘 받으면 그만 아니던가. 잃어버렸던 물건에 운명이라는 수식어를 부여 할 만큼 5월의 봄은 좋았다.


치긱치긱. 철컹철컹. 
지하철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서울 도심 속으로 흘러 흘러 가고 있을 때 문득, 이상했다. 어느 외국영화에서 보던 지하철의 우울한 느낌은 그곳의 칙칙한 조명과 어스름한 구조물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좁은 철 구조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넋을 잃고 있었다. 괜스레 어색한 나는 손잡이를 잡았다. 사람들의 땀과 기름으로 얼룩진 손잡이는 충분히 불쾌하였고, 내 앞에 앉아 있던 두 젊은 남녀 -여자는 쥐마냥 입을 모아 눈화장을 하고 있었고, 위장복을 입고 있는 아저씨는 졸고 있었다.- 의 모양새 또한 불쾌, 불편 했다. 조금 더 이상해 졌다.


저 어여쁜 뒷모습을 뽐내는 여인의 앞모습은 어떨까 라는 생각 반, 출입문에 기대어 책이나 읽을까 하는 생각 반을 합쳐 후다다다다닥 달려가 2-1번 문에 기대어 슬쩍 쳐다보았던 그 여성분의 얼굴은, 
기억나질 않는다. 단지 무표정이었을 뿐.
아마 그때였다. 지하철 내에 질 나쁜 공기 때문인지 소음에 개념에 너무나도 정확히 들어갈 소리들 때문인지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에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그런 것인지, 나도 곧 이상해졌고, 조금 덜 이상했었을 적 생각이 났다.


내가 어렸을 적, 담임선생님은 이따금씩(그것이 1년에 몇 번씩 행해졌을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축소된 내 기억 속엔 저 표현이 맞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나의 장래희망과 부모님이 원하시는 장래희망으로 조사하여왔었다. 아무생각 없던 나와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라는 우리부모님과 달리 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들은 의사라는 직업을 원했었는데 그로 인해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우리집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는 더욱 더 잘 살게 될태고, 많은 사람들이 의사를 한다면 대부분에 병들은 고쳐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어떻게 돈을 벌어 살태지? 미래에는 만병통치약이 개발될려나? 만병통치약을 개발한다면 더 이상 의사들은 돈을 못 벌 터인데, 그렇다면 그들은 약을 개발 안하려나? 그러면 일부로 바이러스를 퍼트리게 되진 않을까? 어찌됐든 지금보다는 평화스러워 지겠지. 지금 보단 좀 더 행복할 태지.’


내 기억 속에 첫 번째 고민과 달리, 이상문학집은 암울했다. 천사가 있던 침이 고이던 모두 다 우울해 보였고 고통스러웠다. 습관적 두통이 나를 다지 꼬집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눈앞에 눈(雪)이 떠 올랐다. 5월의 눈은 작고 예쁘고 뽀송뽀송하고 또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너무 놀라 눈을 씻으며 다시 보았을 때 그것이 내 책에 우연히 끼여 있던 꽃가루임을 알았다. 허나 그것은 여전히 예쁘고 매혹적은 모습으로 살랑살랑 내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내 마음을 이끌었고, 일순간에 들어 찬 소유욕으로 손을 뻗었을 때, 눈은, 처참히, 뭉개졌다.

무표정으로 책을 다시 보았을 때 이상이라는 이름이 하이라이트 되었다. 이상. 나는 그의 작품을 읽어 본적 있었던 가? 그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공무원 시험과 편입을 준비한다던 예비역친구, 나, 그리고 이 지하철의 탄 사람들의 이상은 무엇일까. 머리가 아프고, 이상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0:01:46 

 

병장 김별 
  김애란-침이 고인다 가 이상문학상을 받았었나요? 
잘 모르겠어서 질문드립니다. 
// 
그리고 서울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무표정함은 정말 기이하더군요. 
놀라울 정도로 생기가 없어 보였습니다. 
서울에서 대표적으로 싫어하는 광경 중 하나입니다. 
무슨 그렇게 찌든 표정을 지을까.. 
완전 소름 끼치더군요. 
유일한 건 학생들의 밝은 모습이 유일하달까.. 2008-05-22
14:42:53
  

 

상병 조현식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 시리즈는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더군요. 

오히려 소년J의 말끔한 허벅지나 약콩이 끓는 동안이 더 재밌지 않았는지.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언제나 그렇지만 뒤쪽에 실린 소설들이 더 재밌어요. 사실 몽고반점이나 밤이여 나뉘어라도 그닥 재밌게 읽지 못했거든요. 제가 가벼워서 일 수도 있지만. 

침이 고인다는 07년 작품집 뒤쪽에 있어요. 그러고보니 08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못샀네요. 국문과에서는 매년 이걸로 토론하곤 해서 꼭 사야하는 책이었는데. 2008-05-22
15:36:07
  

 

병장 장재혁 
  김별// 명예의 전당에 김지민씨의 '지하철 2호선이 멈춰섰을 때'를 한번 읽어보세요. 
지하철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2008-05-22
15:39:11
  

 

병장 김별 
  장재혁// 지하철 2호선이 멈춰섰을 때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잘 파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 대한 답을 그 작품으로 대치해주셨다면, 

지하철 이동수단 안에서 순간적인 사건들의 연속때문에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목격 했을때,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하철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서울에 사는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쯤 되는 것인지... 

일단 광주지하철은 사람 자체가 극소수니 제외하고, 다른 나라나 다른 도시 지하철을 한번 가서 관찰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