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이름
상병 홍성기 2008-06-30 12:29:49, 조회: 224, 추천:0
달무리 진 가을밤 교차로에서 그는 죽었다. 뺑소니에 의한 사고사였다. 육신이 없어진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한참이고 그가 죽은 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는 스스로가 누군지 고민하다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그녀를 떠올려 냈다. 어느 순간 그녀의 곁에 머물게 된 건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였다. 그녀는 참 섧게도 울었다. 그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술자리에서, 밥상에서, 회사에서, 집에서, 거리에서 그의 죽음은 몇 백 번, 몇 천 번 곱씹혔다. 하지만 언제나 그는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녀가 다시 사랑을 하고, 공무원과 결혼을 했다. 공부 잘 하는 딸과 멋 부리는 아들을 낳았다. 밥을 짓고, 밥을 먹고, TV를 보고, 골프도 치고, 여행을 갔다. 그녀는 어느 순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켜켜이 쌓여가는 세월이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가을 밤 교차로에서, 보슬비가 내렸다. 아스팔트 바닥이 검게 타들어갔다. 더 이상 불러줄 이 없는 그는 달무리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틀림없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 때, 부스러질 듯한 소리가 크게 다가와 일렁였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이놈아, 나쁜 놈아. 어둠 속에서 호롱불 같은 몸이 끄떡거리며 오열이 새어 나왔다.
아, 어머니, 가슴에 묻었던 아들의 이름. 어머니는 기적같이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다가가 이름을 불렀다. 그는 어머니께 큰절을 할 새도 없이 죽었다. 49일 째, 그는 그렇게 평생을 훔치고 미련 없이 성불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46:40
병장 이태형
약간의 반전이 있네요.
5번을 반복해서 읽었지만 마지막 단은 잘 이해가 안되는데 보충 설명 해주실 분?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았는데 49일.
음. 어렵다. 2008-06-30
13:04:03
병장 이동석
성기님은 어딘지 카프카를 닮으셨을듯,
얼굴이나 이미지가.
후하하. 2008-06-30
13:05:41
이병 홍명교
남자가 떠돌아다니는 '오랜 세월'과 어머니가 우는 '49일'을 부러 등치시킨게 아닐까요?
그냥 제 나름의 해석입니다.
어차피 떠돌아다니는 시간 자체가 죽은자의 시간이니까요. 2008-06-30
13:16:56
병장 정연홍
저도 49일째라는 부분에서 이해가 안되네요.
여자친구의 세월에 밀려 다시 그 가을 밤으로 밀려와서는 여자친구가 부르는 이름대신에 어머니가 부르는 이름을 듣고 어머니곁으로 돌아가 49일째되던 날 밤.. 여자친구곁에 맴돌던 그 기나긴 세월동안 성불하지 못했지만 어머니곁에서는 49일때 되던 날 밤. 미련없이 성불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구요..뭐랄까, 어렴풋이 감은 오는데 더이상의 설명이 힘드네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이네요. 좋습니다.! 2008-07-01
22:07:46